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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1) 권대근 ‘해야 한다’의 폭력, ‘있는 그대로’의 사랑
- 공지영 수필 「해야 한다는 성명서」, 공지영 에세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권대근/ 문학평론가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왜 꼭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까?”
공지영은 1988년 장편소설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사랑, 용서와 치유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공지영의 「해야 한다는 성명서」는 단순한 생활 수필이나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교훈담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타인에게 품고 있는 ‘당위의 폭력’을 성찰하면서 관계의 본질과 자유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수필이다. 수필은 흔히 체험의 기록에서 출발하지만, 명수필은 개별 경험을 넘어 보편적 진실에 도달한다. 이 작품이 바로 그런 경우다.
개인적인 모녀 간의 대화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인 기대, 실망, 사랑, 고통, 자유의 문제를 성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이 이 수필이 오랫동안 독자의 기억에 남는 이유이며, 명수필로 평가받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라 하겠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나는 인간을 연구한다”고 말했다. 수필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명언이다. 수필은 사건을 기록하는 장르가 아니라 인간을 탐구하는 장르다. 공지영의 이 글 역시 인간이 왜 상처받는가를 탐색한다. 그 원인을 타인의 잘못에서 찾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해야 한다는 성명서’에서 찾는다. 이는 매우 독창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대개 상처의 원인을 배신이나 무관심, 부당한 대우에서 찾는다. 그러나 작가는 상처의 기원을 ‘상대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기 내면의 규칙에서 발견한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외부가 아닌 내부의 기대 구조에서 찾는 이러한 시각은 심리학적 통찰인 동시에 철학적 발견이다.
수필의 핵심 개념인 ‘해야 한다는 성명서’는 그 자체로 뛰어난 은유적 표현이다. 추상적인 심리 현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형상화한다. ‘어머니는 위안을 주어야 한다’, ‘아버지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는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의 나열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품고 있던 무수한 기대 목록을 돌아보게 만든다. 문학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말한 ‘낯설게 하기’가 바로 여기에 구현된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기대가 ‘성명서’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순간 독자는 그것의 폭력성과 비현실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추상적 논의를 구체적 삶의 장면 속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작가는 딸 위녕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서간체 형식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준다. 만약 작가가 철학 강의처럼 “기대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면 이 글은 건조한 교훈수필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모녀의 말다툼이라는 생활의 현장 속에서 “선생님답지 못하다”, “학생답지 못하다”, “엄마답지 못하다”는 대화가 오가면서 철학은 생생한 현실의 언어가 된다. 추상과 구체, 사유와 체험이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것이다. 좋은 수필은 생각을 이야기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다. 이 작품은 그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다.
특히 ‘누구답다’는 것에 대한 성찰은 현대 사회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린다. 우리는 늘 어떤 역할 속에 갇혀 살아간다. 부모답게, 자식답게, 교사답게,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백만 가지의 경우와 기분과 감정 그리고 사려 깊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공지영의 수필 역시 ‘누구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인간 존재의 유동성과 자유를 강조한다.
작품의 사유는 불교적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수행 중인 참가자에게 스님이 끊임없이 “왜 불행합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이 글의 백미다. 독자는 처음에 당황한다. 배신당했는데 불행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질문은 계속된다. 왜? 왜? 왜? 이 반복은 독자를 사건의 표면에서 의식의 근원으로 끌고 간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을 외부 세계가 아니라 집착에서 찾는다. 괴로움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 부여한 의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스님의 질문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다. 이는 불교의 연기설과 무집착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왜 꼭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까?”라는 문장은 이 수필의 핵심 문장이다. 사랑과 헌신의 대가를 기대하는 인간 심리를 정면으로 해부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원한 감정을 비판하면서 기대와 보상의 논리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고 보았다. 공지영의 통찰 역시 비슷하다. 우리는 사랑 자체보다 사랑의 보답을 원한다. 그러나 바로 그 기대가 상처의 씨앗이 된다. 작가는 이 진실을 관념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진정성이다. 수필의 생명은 진실성에 있다. 이어령은 “수필은 피가 묻어나는 장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낼 때 수필은 생명력을 얻는다. 공지영은 자신 역시 그 질문 앞에서 분노했고, 마치 수술용 메스로 마음을 긋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독자의 신뢰를 얻는다. 작가가 완성된 진리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고민 속에서 함께 아파한 사람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구성 또한 안정적이다. ‘해야 한다는 성명서’라는 개념 제시에서 시작해 모녀 갈등, 불교 수행 이야기, 자신의 체험, 그리고 딸에게 건네는 조언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매우 자연스럽다. 하나의 사유가 점차 확장되면서 독자의 이해를 깊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그만!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나가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자신에게 말하라는 대목은 무거운 철학적 논의를 따뜻한 위로로 전환한다. 이는 좋은 수필이 갖추어야 할 미덕인 사유와 감동의 균형을 보여 준다.
괴테는 “인간은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자유를 이야기한다. 타인을 바꾸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때,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공지영은 그 자유를 거창한 철학 용어가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결국 「해야 한다는 성명서」가 명수필인 이유는 분명하다. 일상의 체험을 보편적 인간학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해야 한다는 성명서’라는 독창적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통찰했다. 불교와 심리학, 실존철학이 만나는 깊이 있는 사유를 생활 언어로 형상화했다. 진정성 있는 고백과 따뜻한 위로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개인적 경험을 넘어 현대인이 겪는 관계의 고통과 자유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좋은 수필은 읽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공지영의 「해야 한다는 성명서」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우리는 이 수필을 읽으며 타인에게 내밀었던 수많은 ‘해야 한다’의 목록을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우리의 기대였다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삶의 지혜와 문학적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한국 현대수필의 대표적인 명수필이라 할 만하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중국 하북미대 객좌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이중의 층위 변용의 미학’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해야 한다는 성명서’
공지영/ 소설가
‘해야 한다는 성명서’는 이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필요할 때 정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하는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내가 뛰는 경기에 참석해야 한다. 우리 아들은 내가 뭘 사 주든지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 딸은 결혼식 계획에 내가 깊이 관여하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 며느리는 친정 식구들과 보내는 것만큼 우리와 함께 휴일을 보내야 한다. 나의 상사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알아야 하고 내가 승진하도록 힘써줘야 한다. 우리 오빠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 여동생은 내 생일에 전화를 해야 한다. 이웃 사람들은 동물을 자기 집 울타리 안에서만 키워야 하고 내가 시비 거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한다.
위녕! 정말 가을이구나. 여름이 좀 지겨워지고 있었는데 막상 찬바람이 부니까 왠지 기분이 이상하구나. 뭐랄까 여름에게 아직 좀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다고나 할까? 음, 그저 내 곁에, 내가 설사 그를 좀 지겨워하더라도 머물러줄 줄 알았던 친구가 내게 아무런 미련 없이 훌쩍 떠나버리고만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해야 한다는 성명서’라는 재미있는 말은 엄마가 얼마 전 읽은 책 『어떻게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에 나오는 구절이야. 여행을 떠날 때 터미널이나 역 혹은 공항으로 가서 엄마는 보통 책을 몇 권 사곤 한단다. 여행하는 날수만큼 미리 책을 챙겨 가는데, 엄마의 불안증 때문에 왠지 또 서점으로 가곤 하는 거야. 거기서 책을 고르는 일은 읽을거리를 미리 준비해 가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지. 의외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고나 할까. 평소라면 별로 손에 들지 않았을 책들을 사게 되니까. 이 책 역시 엄마가 여행지로 떠나기 전 터미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기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여행 내내 이 책의 구절들이 떠나지 않았어.
엄마가 위에 열거한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부분의 ‘해야 한다는 성명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망을 준다. 누군가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자신의 비현실적 기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상해서 상대를 지목하고 그를 독선적으로 비난한다.
엄마가 이 구절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얼마 전 너와 나의 말다툼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때 너는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선생님답지 못하게 내게 이야기했다’고 투덜거렸고, 엄마는 바로 ‘너 역시 학생답지 못하게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맞받았고, 그때 너는 ‘엄마답지 못하게 딸을 격려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지.
‘누구답다’는 것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의 경계는 마치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다루듯 늘 어렵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고정체가 아니라 늘 수백만 가지의 경우와 기분과 감정 그리고 사려 깊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다른 말로 우리에게 어떤 경종을 울리고 있단다.
이런 경향을 고치기 위해 당신은 그 규칙들이 정확히 자신의 규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규칙들은 당신의 도덕성과 욕구와 가치관을 나타낸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할 때, 당신은 틀림없이 좌절과 고통을 맛보게 되어 있다.
언젠가 불가에서 하는 수행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어. 여름휴가 동안 직장인들이 선사에 모여서 수행을 하는 것이었어. 그때 한 사람씩 불러 세운 다음 스님이 묻는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참가자가 대답한다.
“예, 불행합니다.”
“왜 불행하지요?”
스님이 묻자 참가자가 대답하지.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위형, 말하자면 이건 그냥 예야. 이런 식으로 대화는 시작된다. 그런데 말이야.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으면 불행한 건 너무 당연하잖아. 그런데 스님은 물으셨어.
“그런데 왜 불행합니까?”
아마 글을 읽는 엄마보다 참가자가 더 당황했겠지.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예, 배신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신을 당하면 불행합니까?”
이쯤에 이르러서는 좀 너무하다 싶은데 스님은 더 밀어붙이시더라.
“배신당하면 불행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질문은 계속된다. 왜, 왜, 왜, 우리 같으면 ‘……아야 그래서 힘드시겠군요’ 하는 심리학의 기본 요소인 인정과 수용이란 없다. 그게 뭐? 그게 왜? 하고 묻는 거지. 참가자들은 (대개는 중년의 아저씨들이거나 아줌마들인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거야. 그리고 엄마도 깊은 충격 때문에 책장을 느리게 넘기고 있었다. 엄마도 언젠가 어떤 지혜로운 이에게 그런 물음을 들은 적이 있었어.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왜 꼭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까? 당신이 그에게 헌신하고 잘해주었다고 해서 그가 왜 꼭 그것을 알고 거기에 보답해야 합니까?”
그 화가 나고 인정할 수 없는 아픈 질문은 엄마의 마음을 수술용 메스로 북욱 긋는 것 같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울화와 분노의 고름들이 새어 나왔다. 엄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힘이 들 때 그 질문을 생각한다. 참 이상하지? 그 잔인한 질문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말이야.
위녕, 또 가끔 사람들은 말하지. ‘인생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한둘이야?’ 엄마는 이런 어법을 아주 싫어한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너의 후두염이 경시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인생은 고통 콘테스트가 아니잖아. 엄마의 고통도 너의 고통도 모두가 존중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위녕, 이 책을 빌려 네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만일 불쾌한 기분이 되살아나고 얻는 것이라곤 없는 낡은 생각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하라.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그만!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나가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통에, 고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내주지는 말자. 대신 하늘을 향해 한번 기도하렴.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리고 잠시 다른 일을 하는 거야. 엄마랑 수영을 하든가 말이야 음, 네가 간다면 엄마도 수영을 가보려고 하니까.
자, 오늘은 오늘만을 데리고 온다. 그러나 오늘도 좋은 하루.
- 공지영 에세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3년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는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 1·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도가니』, 『높고 푸른 사다리』, 『해리 1·2』, 『먼 바다』 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딸에게 주는 레시피』, 『시인의 밥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등이 있다.
2001년 21세기문학상, 2002년 한국소설문학상, 2004년 오영수문학상, 2007년 한국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 부문), 2006년에는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단편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 『해리 1·2』가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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