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격변기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아시아 리얼리즘전
국립현대미술관과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이 공동 기획하여 양국의 국립미술관을 순회하는 전시로
아시아 10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필리핀, 인도)의
근대미술 명화 106점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이다.
글 | 이문자 편집장
국립현대미술관과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3년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아시아 10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필리핀, 인도)의 국보급 근대미술 명화를 총망라하여, 아시아의 격변기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리얼”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으며, 전시는 다섯 주제로 구성된다.
1. 새로운 재현 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에 놓여있던 아시아 국가들은 3차원적 대상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이 “재현”하는 새롭고 근대적인 “기술”의 하나로서 서구 미술을 받아들였다. 르네상스적 원근법이 적용된 풍경이나 세미하게 묘사된 초상화들이 그러한 서구에의 충격을 반영한다.
2. 은유와 태도로서의 향토
20세기 전반,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민족”에 대한 인식이 자라났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자국 민족의 오랜 삶의 터전인 농촌 생활의 묘사는 일종의 향수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주변의 자연과 환경에 대해 진정 어린 관심은, 어떠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자발적인 민족의식을 찾아가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고투를 읽게 한다.
3. 노동자를 환호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0-40년대의 폭발적인 시기를 중심으로, 거리의 걸인, 노동자, 농민, 일반 민중의 삶에 미술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러한 인식은 제 2차 대전 이후에도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단적인 지점으로까지 나아갔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지식인 계층의 구분 자체를 부정한 채, 노동자 이미지를 영웅화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4. 전쟁과 리얼리즘
아시아의 국가들이 20세기에 직면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현실 중의 하나는, “총력전”으로서의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미술형식으로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하는 중요한 이유를 제공했다. 전쟁 상황을 기록하고, 전후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승전을 기념하고 선전하는 목적을 위해, 리얼리즘 회화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5. 사회 인식과 비판_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하여
공산주의를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1950-60년대 추상미술이 “제도화”되는 시기를 거친 후, “리얼리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등장했고, 한국,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발언을 예술의 존재 근거로 주장한 “새로운 리얼리즘” 운동이 일어났다.
전시 기간 중에 전시감상을 돕기 위해 영상이 상영되며, 청소년을 위한 전시감상 가이드, 중등교사 대상 워크숍, 대학생과 일반인 대상으로 큐레이터와의 대화와 명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세계사 등이 준비되어 있다.
1. 다카하시 유이치가 일본 메이지 유신 시기, 유곽의 위계 높은 기생 오이란(花魁)을 그린 초상화이다. 작가는 일본에 초빙된 이탈리아 화가 등을 찾아가 서양화 기법을 연마하기도 했지만, 거의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유화를 익혔다. 대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 없이, 나이든 기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에 충실하고자 한다. 이는 대상 자체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적 태도를 반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부분의 묘사를 위해 연백(鉛白)을 덧칠하는 등 전통적인 기법을 접목하기도 했다.
2. 아모르솔로는 필리핀 근대 화가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이에 속한다.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일찍부터 유화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 가는 일이 가능했고, 아모르솔로도 장학금을 받고 유럽여행을 한 바 있다. 여행 직후 그린 작품 <모내기>는, 열대의 태양아래 목가적인 전원 풍경과 건강하고 아름다운 농촌처녀의 묘사를 통해 “아모르솔로 화파”를 창시한 그의 대표작이다.
3. 쉬베이홍은 이미 1919년 프랑스, 독일 등에서 유학하고, 1927년 귀국하여 중국 근대화단의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유화와 중국화 모두를 최고의 기술로 구사했던 그는, 서구의 “리얼리즘”을 중국화에 접목시키는 나름의 방식을 개발하고 교육했다. 종이에 먹이라는 중국화의 전통 매체에, 숙련된 서양식 기법을 접목한 <우공이산>은, 중일전쟁의 기간 중인 1940년 인도의 타고르를 방문했을 때 완성된 작품이다(코끼리와 인도인의 등장에 주목하라).
4. 판께안은 학생시기부터 비엣 민의 지지자로 일본과 프랑스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호치민의 전속 초상화가로도 활약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이 북베트남을 파리협정으로 끌어내기 위해, 하노이에 11일간 공습한 유명한,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사건 발생 13년 후에 그려졌다.
5. 이종구는 고향 오지리에서 농부로 생활하는 작가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풍요로운 농부”의 선전적인 이미지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늙고 힘들고 고통에 찬 “실제”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쌀부대 종이를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에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초상을 그리고, 농업을 권장했던 국가로부터 아버지가 받은 상장들, 힘든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아버지의 편지 등을 콜라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