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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아파트계단 산행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리운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이다,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한 것이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다.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을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2023년 9월 9일(토) 오전 10시 54분에 3호선 독립문역 2번 출구에서 네명의 동기들이 만난다.
인왕산으로 향하는 날이다. 오늘 기온도 31도를 예상하는 무더위이다. 선바위 방향을 뒤로 하고 둘레길로 향하자고 한다.
둘레길은 차량들로 매연이 뿜겨져 나온다. 둘레길은 절대 생략으로 산행로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원한 산바람이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도 편안하다.
하지만 세녀석들은 모두 정상까지는 무리라고 주저 앉는다. 방법은 없다. 겨우 338미터인 거리상으로도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km 정도가 될거다.
" 너희들은 모두 여기 있어라 , 혼자 오를게다 " 한마디 뱉고 수많은 나무계단을 계속 헤맨다.
성곽이 있는 곳까지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른다. 절대로 정상을 거절하던 세명도 헐떡이며 오르는게 아닌가.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400여미터면 충분하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드디어 338미터 정상석에서 갖가지 포즈를 연출이다.
찌프려진 얼굴이 그런대로 환한 모습이 보기도 좋다.
쉼터에서 쌔완한 막걸리 두병에 쐬주 640ml를 흡입은 거침이 없는 벗들이다.
열무김치에 찰떡 한접시 영양떡 한그릇 밤고구마 댓개 또 쪼초파이 우유 몇팩 커피등이 산속의 안주이기도 하다.
세친구들이 배낭에 담아온 것들이다. 한 녀석은 거의 항상 빈손으로 오지만 손놀림은 빠르다.
숲속에 쉼터를 안내하는 표지석이 보인다..
1968년 1.21사태(김신조 사건)으로 군초소등이 생기면서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된다.
이후 1993년부터 개방되기 시작이다.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으로 군초소등이 대부분 철거된다.
그중의 하나로 병사들의 거주공간인 인왕3분초도 철거된다. 그터를 살려 못 하나 사용치 않고 목조건축물로 시민을 위한 인왕산 숲속쉼터로 재탄생이다.
버튼을 누르고 들어서니 시원하게 전망이 트인 곳이다.
지하1층과 지상 1층으로 지상1층에는 서적들도 진열이 되어있다. 보고픈 책도 골라서 독서도 한다.
인왕산 숲을 바라볼 수있는 시원스런 공간이다.
몇명의 젊은이들이 컴퓨터도 두드리고 있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이들도 있다.
안락의자도 있고 책상에 앉아 자신이 하고픈대로 즐길 수도 있다. 노객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인왕산을 등산할 수 있는 코스는 총 5개이며 각각 두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인왕산을 종주하는데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80세를 드나들고 있는 고교동기생 네녀석들은 어떤가.
오전 11시경에 오르기 시작하여 수성계곡으로 하산이다. 줄줄이 나무계단만이 하산길을 대신하고 있다.
헛디디기라도 하면 삐끗이라도 하면 어쩔까.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계단을 하산하는 때가 신경이 더 곤두서고 주위의 경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계단 난간을 붙들고 청운공원까지 도착이다. 이제서야 옥죄여 오던 심장이 해방되는 순간이다.
오르고 내리는 인왕산에 소요된 시간은 6시간을 넘기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종로3가 횟집까지도 걷기로 한다. 청와대 근처 조각상이 있는 곳을 통과한다.
청와대가 대통령궁전으로 사용할 예전 같으면 수많은 플랑카드로 둘러 쌓인 곳이다.
많은 노조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부르짖으며 통곡도 하던 곳이다. 주위로는 경찰들의 경비도 삼엄하다.
이곳이 자유민주주의의 그늘막이라면 좋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모습은 오간데 없다.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같은 새가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동기들도 몇컷의 노객들의 쳐진 모습을 폰으로 눌러제끼고 있다.
언제까지이련가. 경복궁 영내로 들어선다. 영내에는 수많은 외국 여성들이 모두 한복차림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한복차림으로 멋지게 한국여행의 모습을 담기 위함이 아니랴.
현재의 경복궁 정문은 중앙청 본관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 김영삼대통령 시절에 중앙청을 흔적도 없이 파괴하는 순간도 있다.
대동아 전쟁(the Greater East Asia War , 大東亞戰爭 , 태평양 전쟁, 太平洋戰爭)은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 하기 위해 내세운 슬로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미(毆美)의 식민지 지배를 타파하고 아시아 제민족의 해방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침략정책과 전쟁을 정당화한다. 1941년 7월 독·소 개전 후 일본군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략에 대해 미국·영국·네덜란드는 대일자산동결과 대일석유수출 금지를 단행한다. 일본과의 전면 대결을 표방한다.
이에 일제는 1941년 11월 자위자존을 목적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와의 전쟁도 불사한다.
트루먼은 그간 비밀리에 시험한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1945년 8월 6일 한 대의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거의 10만 명이 죽는다. 어떤 자는 폭발하는 순간에 죽었고 또 어떤 자는 오랜 고통 끝에 죽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 육군은 항복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이때 소련이 급히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또다시 8월 9일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된다.
엄청난 파괴가 또 한 차례 이루어진다. 더 이상 일본은 항전을 계속할 수 없다.
마침내 일본은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다.
식민지로 36년간 왜놈 쪽발이들의 발자국인 중앙청을 삭제한 것이리다.
그렇다고 78년이 지난 지금도 저들은 한마디 용서도 반성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를 하고 있다.
동경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やすくにじんじや )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한마디로 야스쿠니( 靖國 ,やすくに )는 편안한 나라라는 뜻이다. 저들의 국민성과는 정반대를 내세운 것이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근대 100여 년 간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 명의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던 한국인 2만여 명도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동아전쟁 주범(主犯)들 혼(魂)을 모신 야스쿠니신사(靖國神寺)에 공물을 바치며 머리를 조아리곤 한다.
명색이 수상이나 국회의원들의 망발에 불과하다. 전쟁 법죄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들이다.
신사(神社)란 일본 고유신앙인 신도의 신을 모시는 시설로 10만여개가 있으리라고 본다.
일본에는 십자가를 내세운 기독교등의 종교는 거의 없다. 왜 없을까. 눈을 까발여 찾아보아도 십자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오롯이 천황폐하를 신으로 모시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인간인 천왕을 종교로 치부하고 있다.
집집마다 영정사진이 있으며 촛불을 키고 세상을 등진 가족을 두손으로 빌며 명복을 빌기도 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생각뿐으로 미신을 믿는 나라이다.
경복궁을 통과하여 인사동에 들어서니 이곳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 상점을 기웃거리며 물건을 사기도 한다.
양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밀고 있는 곳에 엎들여서 동냥을 하고 있다.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날뿐이다.
막사리가 지갑에서 얼른 한장을 꺼내어 담아준다. 동정심도 기특한 모습이 아닌가. 옆에 있는 세녀석들은 그저 스칠뿐이다.
종로3가 뒷골목에 자리한 활어집으로 들어선다. 1층은 손객들로 가득하다. 할수없이 지하로 내려선다.
그곳도 겨우 넷이 앉을 자리를 차지 한다. 도다리세꼬시 큰접시 하나를 주문이다. 소주 네병도 빠질 수는 없는 지당한 메뉴이다. 추가로 멍게 해삼 한 접시도 맛본다. 해삼이 생각보다 딱딱하다.
" 왜 이리도 해삼이 딱딱합네까 "라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다.
매운탕 한냄비도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밥은 반 공기씩 매운탕에 저녁겸 점심이다.
한잔술을 부닥치며 주절이는 한마디 한마디에 폭소가 연발이다. 자신만의 주장이 곧 법이며 명령으로 생각코 있는 노객들이다.
양보란 전혀이며 눈알을 부라리기도 몇번이던가. 저녁 6시경에 시작한 회식자리는 끝임이 없다.
" 마누라가 7시전까지 귀가하라고 했다 " 한 친구의 경고는 태풍에 휩쓸린 낙엽 신세이다. 2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털고 일어선다.
종로3가역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 안녕 잘 가거라 " 한마디 주고 받고 돌아선다.
청담동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를 넘긴 시간이다. 시원한 샤워에 몸을 푼다.
인왕산은 몇년전까지도 일년에 한번은 오르내리곤 하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 산행을 하노라면 심장고동 소리가 서글프게 울부짖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 문제일까.
오늘 오른 인왕산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자연 그대로의 산행로는 어드메로 갔는가.
한마디로 서울시내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린 꼴이 아니랴.
성곽을 따라서 여전히 돌계단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여타곳의 산행로는 전부 나무계단이 뒤덮은 꼴이다. 인왕산 정상까지는 독립문역2번 출구에서 거리상으로 최소한 2km는 되리라고 본다. 최근에 지그자그로 나무계단이 설치된 곳이다. 한개의 계단 높이를 20cm로 환산해 보자. 2km는 200,000cm이다.
200,000cm(거리) ÷ 20cm (1계단) = 10,000계단이다. 총거리 2km의 5분의 1만 계단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 실제로 계단숫자는 어떨까. 0.4km 로 400m(40,000cm) 이다. 40,000cm를 1계단 높이인 20cm로 나누면 계단숫자는 어림잡아 2,000 계단이렸다.
보통 아파트 1개층의 계단 숫자는 대충 18개일 것이리라. 2,000계단 ÷18 (1개층 계단수) = 111. 111층이다. 아파트 111층의 계단을 오르 내린 꼴이다. 계산을 해보고 있는 이 노객의 몰골이 한심할뿐이다. 요즘 도시 근교에 있는 산들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평생 산행을 취미로 동기회 산행대장 노릇을 몇십년간 해온 노객이다. 단지 나이 탓으로만 치부하기엔 아니리다.
이곳에 설치한 수많은 나무계단은 누가 무슨 돈으로 지출을 한 것일까. 해당 국회의원의 주머니속에 들어간 세비(稅費)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이곳의 구청장 아니면 서울시청장의 이들의 통장에서 지출은 꿈도 꿀 수가 없으리다.
정답은 딱 한가지뿐이 아닌가. 오롯이 순진하고 착한 시민들의 얄팍한 주머니를 털어 납부한 세금(稅金)이 전부일게다.
이렇듯 시민들의 혈세로 설치한 아파트계단 같은 나무계단 인왕산 산행을 한번이라도 오르내리기라도 했는가.
손을 치켜세워 목소리로 대답하면 좋으리다.
대답하는 소리는 커녕 그저 저 높은 하늘을 휘젓는 흰구름속을 떠돌고 있는 바람소리만이 귓청을 흔들고 있다.
언제나 산을 마주하면 자연생태계 그대로의 풍광이 그리운 것이다. 대한민국은 두메 산골을 제외하면 도시는 서울을 비롯하여 아파트 공화국이리다. 시내 곳곳은 자동차 공해와 소음으로 휩싸인 상태가 아닌가.
이와같은 도시속에서 매연에 묻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이다.
대한민국에 산재하고 있는 모든 산을 아파트의 계단처럼 탈바꿈 시킴을 상상도 해본다.
어쩌다가 300여 미터 정도의 아파트 111개층을 오르내리는 산행을 즐길 수가 있을까.
나의 자식들 손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오고 할 말이 없다.
2023년 9월 9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