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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8, 2013. 3 John 7. The key to the missionary’s devotion. 전도자 헌신의 요체
7. Because that for his name’s sake they went forth, taking nothing of the Gentiles.
7.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아가면서 이방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 삼서 3:7)
(3281) (주님은 주님이 사람들에게 가지신 관심에 우리가 동일시하도록 부탁하십니다. 그 역이 아닙니다.) Our Lord told us how our love for Him is to exhibit itself when He asked, “Do you love Me?” (John 21:17). And then He said, “Feed My sheep.” In effects, He said, “Identify yourself with My interests in other people,” not, “Identify Me with your interests in other people.” First Corinthians 13:4-8 shows us the characteristics of this love—it is actually the love of God expressing itself. The true test of my love for Jesus is a very practical one, and all the rest is sentimental talk.
(3282)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실함이란 성령이 우리에게 행하신 초자연적인 주님의 속죄—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을 말합니다.) Faithfulness to Jesus Christ is the supernatural work of redemption that has been performed in me by the Holy Spirit—“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i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Romans 5:5). And it is that love in me that effectively works through me and comes in contact with everyone I meet. I remain faithful to His name, even though the commonsense view of my life may seemingly deny that, and may appear to be declaring that He has no more power than the morning mist.
(3283) (전도자의 헌신이란 주님 외에는 아무 것에도 연계를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겉으로는 세상 것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나 속으로는 하나님외의 다른 것들과는 관계를 갖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실은 비밀스럽고 점점 커가는 내면에서의 연관성을 종종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The key to the missionary’ devotion is that he is attached to nothing and to no one except our Lord Himself. It does not mean simply being detached from the external things surrounding us. Our Lord was amazingly in touch with the ordinary things of life, but He had an inner detachment except toward God. External detachment is often as actual indication of a secret, growing, inner attachment to the things we stay away from externally.
(3284) (전도자의 임무는 집중해서 지속적으로 또 완전하게 주님의 성정에 자신의 영혼을 여는 것입니다. 전도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성령에 의하여 주님을 향한 헌신으로 지배되는—똘똘 뭉쳐있는—사람인 것입니다.) The duty of a faithful missionary is to concentrate on keeping his soul completely and continually open to the nature of the Lord Jesus Christ. The men and women our Lord sends out on His endeavors are ordinary human people, but people who are controlled by their devotion to Him, which has been brought about throug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3285-오늘의 idiom)
(아주 강렬한) strong enough to grow/ put hair on one’s chest = something-usually a beverage—that is usually strong. “Wow, this coffee is strong enough to put hair on my chest!”
[Doggie Beach Bus]Before we go, you might be planning a trip to the beach for this summer. These dogs get to take one every day. And it's all (thanks) to the Doggie Beach Bus. The driver picks up her passengers in the morning. Some of them even wait for her out on the street. Once the beach bus (round) up all of its canine companions, it heads out to the water for an hour of fun. Then it's back on the bus to head home. Daily delivery service to and from the beach? Those are some lucky dogs, fur-real. They even have a designated place to leave the bus: a barking lot. Aack! We just hope they (behave) during the ride, 'cause a dog who's acting up can be a real pet peeve. All right! For CNN Student News, I'm Carl Azuz.
[애완견용 해변 셔틀 차량]마지막 소식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여름에 바닷가로 바캉스를 갈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 개들은 매일같이 바캉스를 떠납니다. '애완견용 해변 셔틀 차량'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침이면 운전 기사가 승객들을 태웁니다. 어떤 승객은 길에 나와 서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애완견용 해변 셔틀 차량이 개들을 모두 태우고 나면, 한 시간에 걸친 물놀이를 위해 해변으로 갑니다. 그런 다음 집으로 가는 버스에 다시 탑승합니다. 해변으로 매일 출퇴근시켜 주는 서비스인 셈입니다.복도 많은 개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들마다 지정된 하차 장소가 있습니다. 주차장이 아니라 개차장인 셈이네요. 개들이 차에 타고 있는 동안에는 얌전히 굴기를 바랍니다. (그런 대접을 받는대도) 버릇없이 굴면 정말 밉상이 될 테니까요. 자, 지금까지 CNN 스튜던트 뉴스의 칼 아주즈였습니다.[Vocabulary]1) catch the premiere 본 방송을 보다2) re-air 재방송하다3) trip to the beach 해변으로 가는 여행4) pick up (차량 등으로) 사람을 태우다5) round up 한 바퀴 돌다6) canine companion 개7) head ~로 향하다8) delivery service 배달 서비스9) act up 말을 안 듣다, 버릇없이 굴다10) pet peeve 불만거리, 싫어하는 일
inventory ▶ 재고, 재고품 목록. 영문정의 ▶ a formal and complete list of the articles, goods, etc found in a particular place, eg of goods for sale in a shop, or of furniture and possessions in a house.I just checked inventory and two packages of computer labels are missing.방금 재고 상태를 점검했는데 두 묶음의 컴퓨터 라벨이 없어요.
foreclose ▶ [저당물]을 유질(流質) 처분하다, [저당물]에 담보권을 행사하다. 영문정의 ▶ said of a mortgager, bank, etc: to repossess a property because of failure on the part of the mortgagee to repay agreed amounts of the loan.If you fail to meet the terms of the contract, the bank has the right to foreclose.만약 귀하가 계약을 어겼을 시, 은행은 담보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습니다.
ㆍ감정을 참지 못하다 - lose itㆍ욱하는 감정 - fitㆍ쓰러질 정도로 킥킥거리다 - collapse into a fit of giggles
[예문 1] The anchor really lost it and began to laugh uncontrollably. 그 진행자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주체하지 못하게 웃기 시작했다.
[예문 2] He suddenly lost it and started smashing everything. 그는 갑자기 감정을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웃음, 분노, 패닉 등의 감정이 갑자기 터질 경우에 ‘fit’이라는 명사를 앞에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분노를 한 번 터트릴 경우에는 ‘a fit of anger’라고 하고 분노를 여기저기 터트릴 경우에는 ‘fits of anger’라고 할 수 있다.
[예문 1] Because of his fits of violence, he’ll be in prison for the next 10 years. 그가 갑자기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그는 향후 10년간 구속될 것이다.
[예문 2] Their scenes had to be stopped because they went into fits of laughter. 그들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그들은 촬영을 멈춰야 했다.
‘킥킥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해 터트리다’라고 하려면 ‘burst into a fit of giggles’ 또는 ‘go into a fit of giggles’이라고 한다. 만약 킥킥거리다가 쓰러져 웃을 경우에는 ‘collapse into a fit of giggles’라고 표현한다.
[예문 1] I couldn’t help but burst into a fit of giggles. 나는 킥킥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문 2] She collapsed into a fit of giggles and rolled on the floor. 그녀는 킥킥거리다가 쓰러져서 바닥을 굴렀다.
A: Do you hear that “tick, tick, tick”? It’s coming from my car.B: 타이어에 못이 박힌 모양이야. That ain’t good.A: Holy cow! That’s just what I need! Look for a car center.B: One can’t be far away. This neighborhood is loaded with them.
A: ‘딱, 딱, 딱’ 하는 소리 들려? 내 차에서 나는 것 같아.B: It sounds like you’ve picked up a nail. 골치 아프다.A: 웬일이니. 지금 당장 정비소에 들러야겠다.B: 근처에 있을 거야. 이 동네에 널렸어.[Additional expressions]* Do you hear that “tick, tick, tick”?– Can you hear that “ticking”? / Are you aware of that ticking sound?* It’s coming from my car.– My car is making that sound. / It’s my car that’s making that sound.* It sounds like – It has the sound made when / That sound might be because* you’ve picked up a nail – your tire hit a nail / there’s a nail in your tire* That ain’t good. – That’s not a good thing. / That’s a pretty serious problem.* Holy cow! – Oh no! / Crap! / Wow! / Ouch!* That’s just what I need! – I really don’t need that right now! / That’s a major bummer!* Look for a car center. – Try to find a repair shop. / Can you see a place to get it fixed?* One can’t be far away. – There must be one close by. / I’m sure there’s one around here.* This neighborhood is loaded with them. – There are a lot of repair centers in this area.
'delete'는 주로 인쇄된 글과 관련된 것에 대해 '지우다, 삭제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컴퓨터로 입력을 하다가 오타를 발견해 그것을 삭제하는 경우, 종이에 글을 쓰다가 잘못 적어서 두 줄로 그어 지우는 경우 등에 'delete'를 사용합니다. 'erase'는 문지르거나 닦아서 어떤 것을 지우는 경우,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 등에 저장된 파일을 지우거나, 오디오나 비디오 테이프에 저장된 기록을 지우는 경우 등 사람의 기억을 포함해 저장된 기록을 지운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They are desperate to erase the memory of their defeat.'는 '그들은 패배한 기억을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한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remove'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대상은 물론 손에 잡히는 대상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erase'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eraser'가 'remover'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예문 1] Old messages will be deleted from the answering machine. (오래된 메시지들은 자동 응답기에서 삭제될 것이다.)[예문 2] I accidentally erased the monthly report. (실수로 월간 보고서를 날렸어요.)[예문 3] I had to remove rust from the bookshelf. (나는 책장의 녹을 제거해야만 했다.)
Ѩ I am writing in _____ to your letter of January 17th _____ your invoice.
a : reply – regardingb : response – toc : answer – beingd : reaction – concerning
in reply to … 는 ‘… 의 답장으로’ 라는 의미의 표현이고, regarding 이나
concerning 은 about 즉, ‘~에 관한’의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Ѩ To be spiritually minded is life and peace.
—Romans 8:6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로마서 8:6
Ѩ It’s a rather nondescript house that sits on a busy thoroughfare. With no
distinctive characteristics, this rather plain home is easy to ignore. But as I
drove past it the other day, I noticed a “For Sale” sign in the yard. Attached to
the sign was a smaller notice that happily announced: “I’m gorgeous inside.”
While I’m not in the market for a new house, that sign intrigued me. What could
make this otherwise forgettable house gorgeous inside?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집 하나가 분주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무 특별한 면도 없기에 이 평범한 집은 그냥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집을 지나가다가 앞뜰에 “매각” 표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표지에는 흥미롭게도 “내안은 참 멋지답니다.”라고 공표하고 있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새 집을 구입할 계획이 없었지만, 그 표지는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겉보기엔 별로 볼품없는 이 집의 내부를 그 무엇이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Ѩ It also made me wonder: Could that sign apply to us as followers of Jesus?
Think about it. No matter what we look like on the outside, shouldn’t there be
within us a beauty that reveals God’s love and work in our lives?
이 일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 표지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보았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겉모습이 어떠하든지 우리 속에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하심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Ѩ What does the Bible say about inner beauty? We might start
with Romans 7:22, which says,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niv). A few verses later in Romans 8:6, Paul speaks
of a Spirit-controlled mind that is characterized by “life and
peace.” And in Galatians, we see that letting the Spirit take
charge of our inner being will build in us the “fruit of the Spirit”
(5:22), a beautiful array of qualities such as love, joy, peace,
patience, and kindness.
성경에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먼저 로마서 7장 22절에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라고 되어 있고, 몇 절 아래 8장 6절에는, 성령에 지배받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특징을 갖는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를 보면, 성령이 우리의 내면을 주장하시게 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같은 아름다운 품성을 담은 “성령의 열매”(5: 22)가 우리 안에 맺혀짐을 알 수 있습니다.
Ѩ Delighting in Scripture and allowing the Spirit to work in our heart will make
us look good on the inside—and will pay off in a life that honors God.
말씀을 즐거워하고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게 하면, 우리의 내면이 아름다워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Ѩ Dear Lord, I pray that through the work of Your
Spirit dwelling within me I will be transformed
into a grand display of the fruit that will attract
others to You and reflect glory back to You.
사랑의 주님,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나로 열매가 가득한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셔서,
다른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Ѩ Righteousness in your heart
produces beauty in your character.
마음의 의로움이 성품을 아름답게 만든다.
Ѩ I met a man who was absolutely convinced that God couldn’t forgive him for the things he’d done. An older man took him under his wing, and a year later, I was delighted that the younger man had not only accepted Jesus as his Savior but was also consuming Scripture ravenously. 자신이 한 일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노인이 그를 보살펴주기 시작했고, 일 년이 지나자 그 젊은이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경도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정말 기뻤습니다.
Ѩ Three years later, though, when I talked with him, I noticed that his enthusiasm had been replaced by grumbling: “I just don’t understand how God can let evil people prosper while so many of His children (including himself, he might have added) are struggling to make ends meet.” The grumbling ate at the joy of his faith.
그러나 삼년 후 그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의 열심이 불평으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그렇게 많은 자기 자녀들이(아마 젊은이 자신도 포함시킨 듯 했습니다)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데도, 나쁜 사람들이 잘 살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불평은 그의 믿음의 기쁨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Ѩ Like so many of us, he had forgotten how much he had needed Christ’s grace. The gratitude he had felt when he first received the Lord was now lost. This reminds us of the vineyard workers in Jesus’ parable (Matt. 20:1-16). Their focus shifted to what was happening to and for other people (vv.10-12).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는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했는지를 잊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느꼈던 감사가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포도원 일꾼들을 생각나게 해줍니다(마태복음 20:1-16). 그들의 초점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로 옮겨가 버렸던 것입니다(10-12절).
Ѩ While God owes us nothing, He freely gives us the salvation He promises when we accept Christ. He then adds to His generosity by sending His Spirit to help us in this life as we prepare for the joy of eternity with Him. The seeming unfairness of life demands that we keep our eyes on Him and His Word—not on others.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으시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약속하신 구원을 값없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관대하셔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영생의 기쁨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삶에서 불공평해 보이는 것들을 보게 될 때, 다른 것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Ѩ Lord, I admit that my focus at times gets
drawn to others and what they have.
Forgive me and help me to stop grumbling.
You are good to me and provide what I need.
Thank You. Amen.
주님, 가끔씩 저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소유로 향해짐을 고백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고
불평을 멈추도록 도와주소서. 선하시며 저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Ѩ All you need to know to be content
is this: God is good.
만족하기 위해 당신이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이다.
Ѩ Is it not lawful for me to do what I wish
with my own things? —Matthew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 마태복음 20:15
Ѩ (주님의 침묵은 이미 당신을 믿고 기뻐하고 계시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끄시려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베다니 집에서의 주님의 축복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침묵 시간 속에 있는 당신을 주님이 믿을 수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주님의 보이는 축복을 조건으로만 기도할 뿐 더 높은 단계로 주님과 함께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축복만을 주시고 더 큰 축복과 깨달음은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더 큰 깨달음을 사모하세요.) Has God trusted you with His silence—a silence that has great meaning? God’s silences are actually His answers. Just think of those days of absolute silence in the home at Bethany! Is there anything comparable to those days in your life? Can God trust you like that, or are you still asking Him for a visible answer? God will give you the very blessings you ask if you refuse to go any further without them, but His silence is the sign that He is bringing you into an even more wonderful understanding of Himself.
Ѩ (당신에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이 없어서 통곡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는 주님이 당신을 믿고 있으며, 실망에서가 아니라 기쁨의 더 큰 계시를 당신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이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Are you mourning before God because you have not had an audible response? When you cannot hear God, you will find that He has trusted you in the most intimate way possible—with absolute silence, not a silence of despair, but one of pleasure, because He saw that you could withstand an even bigger revelation.
Ѩ (주님이 침묵하시면 기뻐하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주님의 중요한 목표를 향해 이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대답은 당신의 크로노스 시간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의 카이로스 시간에 옵니다. 당신은 “내가 주께 빵을 구했으나 나에게 돌을 주셨도다,“ 라고 말했을 수도 있으나, 종국에는 당신에게 생명을 빵을 주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If God has given you a silence, then praise Him—He is bringing you into the mainstream of His purposes. The actual evidence of the answer in time is simply a matter of God’s sovereignty. Time is nothing to God. For a while you may have said, “I asked God to give me bread but He gave me a stone instead” (see Matthew 7:9). He did not give you a stone, and today you find that He gave you the “bread of life” (John 6:35).
Ѩ (주님의 침묵은 당신에게도 전해져서, 주님의 침묵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라고 당신은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즉답 속에만 축복이 있다고 믿고 있다면, 주님은 당신의 기도에서 당신이 원하는 축복을 해 주시지만, 침묵 속에서의 더 큰 축복과 은혜는 주시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면 주님은 더 친밀의 증거인 침묵의 시간을 주실 것입니다.) A wonderful thing about God’s silence is that His stillness is contagious—it gets into you, causing you to become perfectly confident so that you can honestly say, “I know that God has heard me.” His silence is the very proof that He has. As long as you have the idea that God will always bless you in answer to prayer, He will do it, but He will never give you the grace of His silence. If Jesus Christ is bringing you into the understanding that prayer is for the glorifying of His Father, then He will give you the first sign of His intimacy—silence.
Ѩ (오늘의 idiom)
(자신의 잘못으로 고생하다) stew in one’s own juice = to suffer because of one’s own foolishness or stupidity. “I played when I should have studied. Now I’m stewing in my own juice trying to pass my examinations.”
◪ plump ▶ 풍만한, 통통한, 포동포동[토실토실]한. 영문정의 ▶ full, rounded or chubby; not unattractively fat.Bake tomatoes just until plump and shiny but not split, about 10 minutes.토마토가 불룩해져 윤이 나되 갈라지지는 않게 약 10분간 굽는다.
◪ interject ▶ (말을) 불쑥 끼워 넣다, 말참견하다. 영문정의 ▶ to say or add abruptly; to interrupt with something.He interjected several times during the conversation.그는 대화 도중에 몇 차례 끼어 들었다.
◪ dissident ▶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 반대자; 반체제 인사. 영문정의 ▶ someone who disagrees publicly, especially with a government.China confirmed Thursday that it had released two imprisoned dissidents before the end of their prison terms.목요일 중국은 복역중인 두 명의 반체제 인사를 형기 만료 전에 석방했다고 확인했다.
◪ 1._________________ ______ Mr. Kim’s proposal has been approved, our department needs to hire two more designers.
A) If so(B) Rather than(C) Owing to(D) Given that
Kim 씨는 제안이 승인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 부서는 디자이너를 두 명 더 고용할 필요가 있다.
◪ ㆍ빡빡한 일정 - hectic scheduleㆍ녹초로 만드는 살인적인 일정 - grueling schedule
[예문 1] The two days we spent there were enjoyable but hectic. 우리가 거기서 보낸 이틀 동안은 즐거웠지만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예문 2] She has such a hectic life between work and raising her children. 그녀는 일과 양육을 오가면서 정신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사람을 녹초로 만들 만한 살인적인 일정이라면 ‘grueling schedule’이라 할 수 있다. ‘grueling’은 ‘(바빠서) 녹초로 만드는’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예문] They get paid millions of dollars a year, but they’ve got a grueling schedule. 그들은 일 년에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지만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야 한다.
◪ 'time'은 광범위한 의미로,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을 나타내는 '시간'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It takes much time and effort to build a real friendship.(진정한 우정을 쌓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의 문장처럼 특정한 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time'이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어, 시계에 나타나는 시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his time tomorrow, I'll be in China.(내일 이 시간쯤이면 난 중국에 있을 거야.)'처럼 특정한 시간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반해, 'hour'는 '시간'의 의미로 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They're paid by the hour.(그들은 시간당 급료를 받는다.)'처럼 사용합니다. 복수형인 'hours'를 써서 '오랜 시간'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I've been waiting for hours.(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A: Food’s on! Give me a hand setting the table, please.B: Sure thing. Let’s eat in front of the TV. A movie’s on.A: No worries. Sorry I didn’t put together too many side dishes.B: No need. This looks and smells splendid. 먹자.
A: 음식 준비 다 됐다. 준비되면 식탁 차리는 것 좀 도와줘.B: 당연하지. TV보면서 먹자. 영화하네.A: 그래. 오늘 반찬이 별로 없어서 미안해.B: 그럴 필요 없어.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고 냄새도 좋다. Let’s dig in.[Additional expressions]* Food’s on! – Dinner is ready! / Let’s eat! / I’m finished cooking!* Give me a hand – Help me / Give me some help / Assist me in* setting the table – preparing the table / putting things on the table* Sure thing. – Right away. / Of course. / Happy to.* Let’s eat in front of the TV.– We can watch TV while we eat. / Let’s watch TV with our meal.* A movie’s on. – They’re showing a movie. / A good movie is being shown.* No worries. – OK. / Sounds good. / All right. / I’m OK with that.* Sorry I didn’t put together – Sorry I didn’t make / Forgive me for not making* too many side dishes – a lot of side dishes / a bunch of “extras”* No need. – It’s not necessary. / I’m fine without them. / It’s OK.* This looks and smells splendid. – This food is making my mouth water.* Let’s dig in. – Let’s eat. / Let’s have at it.
◪ An 85-year-old woman, all alone in a convent, got trapped inside an elevator for 4 nights and 3 days. Fortunately, she had a jar of water, some celery sticks, and a few cough drops. After she tried unsuccessfully to open the elevator doors and get a cell phone signal, she decided to turn to God in prayer. “It was either panic or pray,” she later told CNN. In her distress, she relied on God and waited till she was rescued. 수녀원에서 혼자 지내는 85세 된 여인이 3박 4일간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습니다. 그녀는 다행히 물 한 병과 셀러리 몇 조각, 그리고 기침약 몇 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보려고도 하고 휴대전화 신호를 잡아보려고도 했지만 실패하자,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후 CNN 뉴스에서 “공포에 떨던지, 아니면 기도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절박함 속에서 구조될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렸습니다.
◪ Asa was also faced with the options of panic or pray (2 Chron. 14). He was attacked by an Ethiopian army of a million men. But as he faced this huge fighting force, instead of relying on military strategy or cowering in dread, he turned to the Lord in urgent prayer.
아사 왕도 공포에 떨 것인가 아니면 기도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였습니다(역대하 14장). 백만 명의 에티오피아 군대가 그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막강한 군대에 직면하여 군사작전에 의존하거나 겁에 질려 움츠러 들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 절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 In a powerful and humble prayer, Asa confessed his total dependence on Him, asked for help, and appealed to the Lord to protect His own name: “Help us, O Lord our God, for we rest on You, and in Your name we go against this multitude” (v.11). The Lord responded to Asa’s prayer, and he won the victory over the Ethiopian army.
아사는 겸손하면서도 강력한 기도를 통해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주실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11절). 하나님이 아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는 에티오피아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 When we are faced with tight spots, meager resources, a vast army of problems, or seemingly dead-end solutions, let’s not panic but instead turn to God who fights for His people and gives them victory.
궁지에 몰리고, 자원도 부족하고,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고, 해결책이 도무지 없는 것 같이 보일 때, 공포에 떨지 말고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고 승리를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 In my distress, anxiety, and fear, Lord, teach me to rely on You and draw close to You. Then I know I’ll be able to stand strong in Your power and won’t be dependent on my own strength.
하나님, 제가 고난이나 염려, 두려움 속에 있을 때, 주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치시고 주님 곁으로 이끌어주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주님의 힘으로 강건해지고 제 자신의 힘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Prayer is the bridge between panic and peace.
기도는 공포에서 평안으로 이어주는 다리이다.
◪ Help us, O Lord our God, for we rest on
You, and in Your name we go against
this multitude. —2 Chronicles 14:11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 역대하 14:11
■ He who is in you is greater than he who is in the world.—1 John 4:4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 요한1서 4:4
◪ It’s not going to happen, Aunt Julie. You might as well erase that thought from your mind.” “I know it’s unlikely,” I said. “But it’s not impossible.”
“줄리 이모,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게 나아요.”라는 말에, “그래, 가망이 없어 보여.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 For several years, my niece and I have had variations of that conversation regarding a situation in our family. The rest of the sentence, which I said only occasionally, was this: “I know it can happen because I hear stories all the time about how God makes impossible things happen.” The part of the sentence I said only to myself was this: “But they happen only in other people’s families.”
몇 년 동안 조카와 나는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어 왔습니다. 앞에 내가 한 말 뒤에 가끔 나는 이렇게 덧붙이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일들을 어떻게 가능케 하시는지에 대해 늘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 그러나 속으로는 “하지만 그런 일들은 다른 가족에게만 일어나지.”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 Recently my pastor has been preaching from the book of Ephesians. At the end of every service we say this benediction: “Now to Him who is able to do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according to His power that is at work within us, to Him be glory in the church and in Christ Jesus throughout all generations, for ever and ever! Amen” (Eph. 3:20-21 niv).
요즘 우리 목사님은 에베소서를 계속 설교하고 있는데, 매주 예배를 마치면서 우리는 이런 축복을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에베소서 3:20-21).
◪ This was the year God chose to do “immeasurably more” in my family. He replaced indifference with love. How did He do it? Beats me. But I saw it happen. And why should I be surprised? If Satan can turn love into indifference, certainly God can change indifference back into love.
올해는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더 넘치도록” 채워주셨던 한 해였습니다. 주님은 무관심을 사랑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어떻게 하셨냐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놀래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만일 사탄이 사랑을 무관심으로 바꾼다 해도 하나님은 확실히 무관심을 사랑으로 다시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Lord, thank You for doing immeasurably more
in our lives than we could ever imagine.
I am so thankful that You are able and often
do make impossible situations possible.
주님, 우리 삶속에서 우리의 상상을 넘어
더 넘치도록 역사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불가능한 상황들을 가능케 하실 수 있고,
또 종종 그렇게 하시니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 God’s power to restore is stronger
than Satan’s power to destroy.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능력은
사탄의 파괴하는 힘보다 더 강하다.
◪ (당신은 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의 현실은 그것과 너무나 멉니다. 우리가 상처 입고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과연 선택 받은 사람인지를 중명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쓰임을 받는 우리가 본 미래의 모습의 모습을 가지려면 그러한 시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Thank God for being able to see all that you have not yet been. You have had the vision, but you are not yet to the reality of it by any means. It is when we are in the valley, where we prove whether we will be the choice ones, that most of us turn back. we are not quite prepared for the bumps and bruises that must come if we are going to be turned into the shape of the vision.
■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닌 미래상을 보았고 그러한 모습으로 주님에 의해 쓰일 수 있도록 나는 단련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한 단련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주변의 사건들과 사람들로 인하여 생겨납니다.) We have seen that we are not, and what God wants us to be, but are we willing to be battered into the shape of the vision to be used by God? The beatings will always come in the most common, everyday ways and through common, everyday people.
■ (주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미래상을 우리가 보았다면, 그러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미래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 꿈을 믿고 바라보며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꿈을 보여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There are times when we do know what God’s purpose is; whether we will let the vision be turned into actual character depends on us, not on God. If we prefer to relax on the mountaintop and live in the memory of the vision, then we will be of no real use in the ordinary things of which human life is made. We have to learn to live in reliance upon what we saw in the vision, not simply live in ecstatic delight and conscious reflection upon God. This means living the realities of our lives in the light of the vision until the truth of that vision is actually realized in us. Every bit of our training is in that direction. Learn to thank God for making His demands known.
■ (우리의 이기적인 작은 자아는 주님이 일을 시키실 때 항상 뿌루퉁하고 샐쭉합니다. 주님의 벌과 분노 속에서 그러한 것들이 참회하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있는 곳을 아시며 현실의 고통 속에서 낮은 자세로 기어야 할 곳까지도 아시고 계십니다.) Our little “I am” always sulks and pouts when God says do. Let your little “I am” be shriveled up in God’s wrath and indignation—“I AM WHO I AM ... has sent me to you” (Exodus 3:14). He must dominate. Isn’t it piercing to realize that God not only knows where we live, but also knows the gutters into which we crawl! He will hunt us down as fast as a flash of lightening. No human being knows human beings as God does.
■ (오늘의 idiom) (무엇을 누구에게서 짜 내다) squeeze something out of someone = to apply pressure to someone in order to obtain something. (squeeze information out of him; squeezing money out of shopkeepers)
■ ㆍ냉방병 - sickness associated with air conditioners, air conditioning illness[sickness], air conditioner related sicknessesㆍ열사병 - heatstrokeㆍ소모성 열사병 - heat exhaustion
■ 여성이 남성보다 냉방병에 더 잘 걸리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두통, 콧물, 감기 몸살, 피로감 등의 증상을 보였다. 특히 냉방병이 걸리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무 효율성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냉방병에 딱 맞는 영어 표현은 없지만, ‘sickness associated with air conditioners’, ‘air conditioning illness[sickness]’ 또는 ‘air conditioner related sicknesses’ 등으로 쓸 수 있다.
[예문] Excessive and prolonged exposure to air conditioning may cause air conditioning-related illnesses. 과도하게 오랫동안 에어컨에 노출될 경우 냉방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냉방병은 냉방된 실내와 그렇지 않은 실외의 온도 차가 심하여 인체가 잘 적응하지 못해서 발생하며, 일반적인 증상은 감기 증상과 비슷한데, 차가워진 체온을 올려 주고 따뜻한 물을 마시는 등의 가벼운 치료로도 호전될 수 있다. 문제는 에어컨을 통해 일종의 곰팡이가 퍼져 발생하는 호흡기 냉방병에 걸렸을 경우이다. 에어컨에는 약 270여 종의 곰팡이가 서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곰팡이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대표적인 것이 레지오넬라균으로 인한 질환(Legionnaires’ disease)이다. 레지오넬라는 냉방 기구에 의해서 생기는 폐렴으로, 에어컨 필터를 청소해 주는 것은 기타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운 여름에도 손발이 차고, 잦은 한기를 느끼는 사람은 항상 긴팔 옷이나 무릎 담요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또한 차가운 음식은 조금만 먹고, 퇴근 후 집에 가서 손발을 따뜻한 물과 찬물에 10분씩 번갈아 담그거나 반신욕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냉방병과 함께 여름에 주의해야 할 질환으로 열사병(heatstroke)와 소모성 열사병(heat exhaustion)이 있다. 열사병은 직사광선을 받는 등 고온의 장소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현기증이 발생하고, 메스꺼움이나 졸도를 동반하는 병이다. 소모성 열사병은 고온 다습한 장소에서 작업하거나 심한 운동을 한 뒤에 신진대사가 저해되어 체력을 모두 소모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으로, 역시 현기증과 졸도 등을 동반한다.
[예문] The most serious heat-related illnesses in summer are heat exhaustion and heatstroke. 여름에 열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질환은 소모성 열사병과 열사병이다.
■ 'once two weeks'는 올바른 영어 표현이 아닙니다. `2주에 한 번'이라는 의미로 정확한 표현은 'every two weeks'를 써야 합니다. '한 번'은 'once'를 쓰는데, once a week(한 주에 한 번), once a month(한 달에 한 번), once a year(일년에 한 번)과 같이 사용합니다. 여기서 부정관사 'a'는 'per(당, 마다)'의 의미입니다. 그런데,`2주, 3달, 4년에 한 번' 등 기간이 복수일 경우에는 'once in+기간' 또는 once per+기간'을 사용합니다. 기간당 '두 번'은 'twice'를 쓰는데, twice a week(한 주에 두 번), twice a month(한 달에 두 번), twice a year(일 년에 두 번), twice in two weeks(2주에 두 번) 등과 같이 사용합니다. '세 번'부터는 'times'를 붙이면 되는데, 'three times a week(일주일에 세 번), three times in two weeks(2주에 세 번)과 같이 사용합니다
■ A: For some reason, 네 생각이 나더라.B: Thank you, I guess. It’s nice to be thought of now and then.A: I couldn’t recall where you said you hail from.B: For the 50th time, I was born and raised here in the city.
■ A: 오늘 뜬금없이, you crossed my mind today.B: 고맙네. 누가 내 생각을 떠올려 주니 좋네.A: 근데 네가 어디 출신이라고 했던지 기억이 안 나네.B: 쉰 번째 말하는데, 여기 도시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잖아.[Additional epressions]* For some reason – I can’t explain why, but / For an unknown reason / I’m not sure why, but* you crossed my mind today. – you were on my mind today. / I thought of you today.* Thank you, I guess. – I should thank you. / I suppose I should be grateful.* It’s nice to be thought of – It feels good when someone thinks about you* now and then – every once in a while / from time to time / sometimes* I couldn’t recall – I couldn’t remember / It slipped my mind / I wasn’t able to think of* where you said you hail from– the place you told me you come from / where your hometown is* For the 50th time– I’ve already told you so many times / As I’ve told you so many times before* I was born and raised here in the city. – I’m from here. / I’ve lived my whole life right here.
■ slick ▶ * 1. 매끄러운, 반들반들한, 윤기나는. 2. 미끄러운 곳, 유막(油膜).영문정의 ▶ 1. said especially of hair: smooth and glossy; sleek. 2. a wide layer of spilled oil floating on the surface of water, often as a result of damage to or discharge from an oil tanker or pipelines, etc.It has a slick surface.그것은 표면이 매끈매끈하다.* 미끄러운 곳, 유막(油膜).The oil slick seriously threatens marine life around the islands.수면에 뜬 기름이 섬 주변의 해양 생물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 bemuse ▶ <수동형>곤혹케 하다, 멍하게 하다. 영문정의 ▶ to puzzle or confuse someone.The bemused bank official waited while he wrote out, "Put all the money in a paper bag."그 어리버리한 은행 직원은 그가 '종이 가방에 있는 모든 돈을 꺼내.'라고 쓰는 동안을 기다렸다.
■ relinquish ▶ 〔지위·직 따위〕를 사퇴하다, 양도하다. 영문정의 ▶ to give up or abandon (a belief, task, etc).He was preparing to relinquish his presidency and step out of the military and government career that occupied two thirds of his life.그는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그의 인생의 2/3를 몸담아 온 군과 정부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near'와 'nearby'는 '위치적, 시간적으로 근처의, 가까운(close)'의 의미를 가집니다. 'near'는 부사로 'The shops were near at hand. (그 가게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데 있었다.)', 'The bus station was nearer than the railway station. (버스 정류소가 기차역보다 더 가까웠다.)', 'Their wedding anniversary is quite near.(그들의 결혼 기념일이 바로 코 앞이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near'는 전치사로도 사용되는데, 'bring your chair near the fire(불 근처로 의자를 가져오다)', 'phone me again nearer the day when you want to see me(보고 싶을 때 가장 빠른 날에 전화해요)' 등으로 사용됩니다. 'nearby'는 형용사로, 'The nearby house was for sale. (그 이웃집이 팔려고 내놓았다.)'와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사로도 사용되는데, 'Their friends lived nearby. (그들의 친구들이 근처에 살았어요.)'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 A: How do you respond to an outrageous message posted to aboard to bait people to answer?B: Well, I simply type a follow-up message “do not feed this _____.”
a : beastb : monsterc : trolld : weirdo
troll 은 인터넷에서 단지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불쾌하거나 터무니없는 글을 올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I consider anyone who posts or sends someone an insulting or disrespectful message to be a _____.
a : flamerb : trollc : newbied : virus
인터넷상에서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비방하는 글을 올리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flamer 라고 한다.
Hate to tell you, but you're in the _____. There's no escape now.
a : friend zoneb : flamec : forumd : phishing
friend zone 은 인터넷상에서 더 이상 가까운 관계를 원하지 않는 상태, 또는 누군가를 그러한 상태로 머물게 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internet slang 이다.
■ repeal ▶ 취소하다, 철회하다, 폐지하다. 영문정의 ▶ to make (a law, etc) no longer valid; to annul (a law, etc).The City Council voted unanimously to repeal the controversial housing ordinance, which had limited the number of unrelated individuals living in the same house to a maximum of three.시의회는 논란이 일던 주택 공급 규정의 폐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이 규정은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한 집에 거주할 수 있는 인원수를 최대 세 명으로 제한한 것이었다.
■ rescind ▶ 〔법률 따위〕를 폐지하다, 무효로 하다, 폐기하다; 〔계약 따위〕를 취소하다, 철회하다. 영문정의 ▶ to cancel, annul or revoke (an order, law, custom, etc)."We want to make sure that plant shutdown is stopped immediately and the personnel orders are rescinded," a labor leader said."우리는 기필코 공장 폐쇄 즉각 중단과 인사 명령 취소를 쟁취할 것이다"라고 한 노조 지도자가 말했다.
■ It was quite a few months before I realized that what I thought was a coincidental meeting had been good timing on my future husband’s part. 우연한 만남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결혼 전의 나의 남편이 만든 절호의 타이밍이었음을 나는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 From the balcony of the church, he had seen me, deduced which exit I might be using, raced down two flights of stairs, and arrived seconds before I did. As he casually held the door and struck up a conversation, I was oblivious to the fact that his “impromptu” dinner invitation had been premeditated. It was perfect timing. Perfect timing is rare—at least where humans are concerned. But God has specific purposes and plans for us, and His timing is always perfect.
그는 교회 발코니에서 나를 본 뒤 내가 어느 출구로 나갈지를 추측하고는 두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내려와 나보다 한발 앞서 그 출구에 당도했습니다. 그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주며 말을 걸어왔을 때, 그의 “즉흥적인” 저녁 초대가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완벽한 타이밍은 아주 드뭅니다. 적어도 사람의 일에 관련해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의 타이밍은 항상 완벽합니다.
■ We see that timing in the life of these Bible characters: Abraham’s servant prayed for a wife for Isaac. God answered his prayer by bringing the young woman to him (Gen. 24). Joseph was sold as a slave, falsely accused, and thrown into prison. But eventually God used him to preserve many people’s lives during a famine (45:5-8; 50:20). And we marvel at Esther’s courage as Mordecai reminded her, “Who knows whether you have come to the kingdom for such a time as this?” (Est. 4:14).
우리는 그러한 타이밍을 성경 속 인물들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감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젊은 여인을 그에게로 이끌어오셨습니다(창세기 24장). 요셉은 종으로 팔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결국 그를 사용하시어 기근 중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셨습니다(45:5-8; 50:20). 그리고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14)고 상기시켜 주었을 때 그녀가 보여준 용기에 우리는 감탄합니다.
■ Are you disappointed in the pace of God’s plans? “Trust in the Lord” (Ps. 37:3). God will open doors when the timing is perfect.
당신은 하나님의 계획이 더디어서 실망하십니까? “하나님을 의뢰”(시편 37:3) 하십시오. 하나님은 타이밍이 완벽한 때에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 Have faith in God, the sun will shine
■ Though dark the clouds may be today;
■ His heart has planned your path and mine, Have faith in God, have faith always.
오늘 검은 구름이 덮고 있다 하더라도
햇빛이 비추일 것이니, 하나님을 믿으라
주님이 당신과 나의 길을 계획해 놓으셨으니
하나님을 믿으라 항상 믿음을 지키라
■ God’s timing is perfect—every time!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완벽하다.
■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 .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ans 8:28
■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28
■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주님은 자비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들에 대한 주님의 아주 심한 상처 주는 말과 공격적인 말에 대해서 변명하지 마세요. 주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Our Lord’s attitude toward this man was one of severe discouragement, “for He knew what was in man” (John 2:25). We would have said, “I can’t imagine why He lost the opportunity of winning that man! Imagine being so cold to him and turning him away so discouraged!” Never apologize for your Lord. The words of the Lord hurt and offend until there is nothing left to be hurt or offended. Jesus Christ had no tenderness whatsoever toward anything that was ultimately going to ruin a person in his service to God. Our Lord’s answers were not based on some whim or impulsive thought, but on the knowledge of “what was in man.” If the Spirit of God brings to your mind a word of the Lord that hurts you, you can be sure that there is something in you that He wants to hurt to the point of its death.
■ (주님의 엄격한 거절의 말씀은 주님과 나와 간절한 희망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서 인도되기를 원하십니다.) Luke 9:58. These words destroy the argument of serving Jesus Christ because it is a pleasant thing to do. And the strictness of the rejection that He demands of me allows for nothing to remain in my life but my Lord, myself, and a sense of desperate hope, He says that I must let everyone else come or go, and that I must be guided solely by my relationship to Him. And He says, “ ... the Son of Man has nowhere to lay His head.”
■ (다른 사람에 충직하고 주님을 향한 충직은 뒤로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에는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항상 주님에 충성하도록 하세요.) Luke 9:59. This man did not want to disappoint Jesus, nor did he want to show a lack of respect for his father. We put our sense of loyalty to our relatives ahead of our loyalty to Jesus Christ, forcing Him to take last place. When your loyalties conflict, always obey Jesus Christ whatever the cost.
■ (주님의 부름이 임하면 절대 멈추지 말고 가세요. 어떤 조건을 다는 것은 의향만 있지 실행은 없는 것으로, 절대 주님 말씀에 복종하며 갈 수가 없습니다.) Luke 9:61. The person who says, “Lord, I will follow You, but ... ,” is the person who is intensely ready to go, but never goes. This man had reservations about going. The exacting call of Jesus has no room for good-byes; good-byes, as we often use them, are pagan, not Christian, because they divert us from the call. Once the call of God comes to you, start going and never stop.
■ (오늘의 idiom)
(콩을 흘리다 = 비밀을 누설하다, 잘못 행하거나 말하여 일이나 계획을 망치다) spill the beans= (1) to reveal a secret (2) to ruin a plan or an activity by saying or doing something wrong.
ㆍ소름 끼치게 하다 - make one’s skin crawlㆍ닭살이 돋다 - get[have] goose bumps, get[have] goose pimples
소름 끼친다’의 영어 표현은 ‘someone’s skin crawl’이라고 한다. 여기서 crawl은 ‘(벌레 따위가) 기어가다’는 의미인데, 마치 피부 위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을 줄만큼 ‘소름 끼치는’ 느낌이 된다. 형용사로 사용하려면 ‘skin-crawling(소름 끼치는)’을 쓸 수 있다.
[예문] Every time I think of the movie, it makes my skin crawl. 그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소름 끼치게 하다’는 ‘make one’s skin crawl’을 사용한다. 자주 활용되는 표현이므로 반드시 익혀 두자.
[예문 1] When I watched that movie, it just made my skin crawl. 그 영화를 봤을 때 그것은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예문 2] Just thinking about him made her skin crawl.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소름이 끼치거나 하면 피부가 닭살처럼 되는데, 공포나 흥분으로 인해 ‘닭살이 돋다’라고 하려면 ‘get[have] goose bumps, get[have] goose pimples’를 사용한다.
[예문 1] Two decades later I still get goose bumps thinking about the scene.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닭살이 돋는다.
[예문 2] When he sings, I get goose bumps. 그가 노래를 부르면 나는 닭살이 돋는다.
ㆍ성형 수술 - plastic surgery, cosmetic surgeryㆍ복부 성형 - tummy tuckㆍ얼굴 성형 - facelift, nip and tuckㆍ쌍꺼풀 수술 - double-eyelid surgeryㆍ양악 수술 - bimaxillary operation[surgery], corrective jaw surgery
성형 수술(plastic surgery, cosmetic surgery)은 수술 부위별로 단어가 존재하는데, 복부 주름 제거 및 지방을 제거하는 복부 성형은 ‘tummy tuck’, 얼굴의 주름, 기미 등을 제거하는 수술은 ‘face lift, facelift, nip and tuck, face lifting’ 등으로 부르며, 코 성형은 ‘nose job’, 쌍꺼풀 성형은 ‘double-eyelid surgery’ 등으로 부른다.
[예문 1] The reality star tweeted about her plastic surgery recovery. 그 리얼리티 쇼의 스타는 자신이 성형 수술에서 회복 중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예문 2] Plastic surgery isn’t just about wrinkles and nose jobs anymore. 성형 수술은 더 이상 주름이나 코 성형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In mercy the throne will be established;
and One will sit on it in truth . . . judging
and seeking justice and hastening
righteousness. —Isaiah 16:5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이사야 16:5
When a wildfire raged through the beautiful canyons near Colorado Springs, Colorado, it destroyed the habitat of all kinds of wildlife and hundreds of homes. People across the nation cried out to God, pleading with Him to send rain to douse the flames, put an end to the destruction, and give firefighters relief. Some people’s prayers had an interesting condition attached to them. They asked God to show mercy and send rain without lightning, which they feared would start even more fires.
산불이 콜로라도주의 콜로라도스프링스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지나 무섭게 퍼지면서 온갖 종류의 야생동물 서식처와 수백 채의 집을 소실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전국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불길을 끌 비를 보내주시고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아주셔서 소방관들을 안심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기도에는 흥미로운 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번개 없이 비를 내려달라고 간구했는데, 그것은 번개 때문에 불길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해서였습니다.
This reminds me of how we live in tension between things that save us and kill us. With fire, we cook our food and keep warm, but in it we can be consumed. With water, we keep our bodies hydrated and our planet cooled, but in it we also can drown. Too much or too little of either is life-threatening.
이 일은 우리가 우리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상황 사이의 균형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불로 음식을 만들고 몸을 따뜻하게도 하지만, 불 속에서 우리는 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이 있어 몸의 수분이 유지되고 지구가 과열되는 것이 방지되지만, 물속에서 우리는 익사할 수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생명에 위협이 됩니다.
We may lean toward justice or mercy, but Jesus keeps them in perfect balance (Isa. 16:5; 42:1-4). His death satisfies God’s need for justice and our need for mercy.
우리는 똑같은 원칙이 영적으로도 적용됨을 봅니다. 문명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서로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비와 정의의 특성이 다 필요합니다(스가랴 7:9). 예수님도 율법에 대해서는 아주 까다로우면서도 “더 중요한 요소들”(마태복음 23:23, 새번역)을 소홀히 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Look for God in your difficult place and discover what He’s doing in and through you there.
우리는 정의나 자비 중 어느 한 쪽으로 좀 더 기울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에게는 그것들이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존재합니다(이사야 16:5; 42:1-4). 예수님의 죽음은 정의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필요와 자비를 구하는 우리의 필요 모두를 충족시켜 줍니다.
Father, for personal reasons I sometimes lean toward showing mercy, and sometimes I just
want justice now. Teach me the balance as I
look at Your character and give me the wisdom
I need in specific situations.
하나님아버지, 저는 개인적 이유로 자비로 기울
때도 있고, 정의를 당장 구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주님의 성품을 보며 균형을 배울 수 있게
가르쳐 주시고 그 상황들에 필요한 지혜를 주소서.
God’s justice and mercy met at the cross.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가 함께
마주친 곳이 십자가이다.
But thanks be to God, who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1 Corinthians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고린도전서 15:57
Everything in this world eventually comes to an end, which at times can be disheartening. It’s the feeling you get when you read a book that’s so good you don’t want it to end. Or when you watch a movie that you wish would go on a little while longer.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결국 끝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너무 좋아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혹은 영화를 보면서 조금 더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 가지게 되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But all things—good and bad—do come to “The End.” In fact, life ultimately does come to the end—sometimes sooner than we expect. All of us who have stood by the casket of a loved one know the painful emptiness of a heart that wishes it wasn’t over yet. 하지만 모든 일들은 좋건 나쁘건 “끝”이 있습니다. 사실 생명도 결국은 끝이 나는데, 어떤 때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관 옆에 서 있어 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모두 이것이 끝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던 그 마음의 괴로운 공허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Thankfully, Jesus steps into the fray of terminal disappointments, and,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He interjects hope for us. In Him “the end” is a prelude to a death-free eternity, and words like “it’s over” are replaced by a joy-filled “forever.” Since our bodies are not an eternal reality, Paul assures us that “we shall all be changed” (1 Cor. 15:51) and reminds us that because of Christ’s conquering work we can confidently say, “O Death, . . . where is your victory?” (v.55).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가망 없는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오셔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끝”은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서곡이며, “이제는 끝났다”라는 말은 기쁨이 가득한 “영원히”란 말로 대체됩니다. 우리의 육체가 영생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변화될 것”(고린도전서 15:51)이라고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으며, 주님의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신 있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일깨워줍니다.
So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Our sorrow is real, but we can be filled with gratitude because God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v.57). 그러므로 근심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슬픈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57절)기에 우리 마음은 감사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Lord, keep our eyes and hearts fixed not on the temporary joys or disappointments but on the victorious realities of eternity. Thank You for Your death and resurrection that guarantee our forever future.
주님, 우리의 눈과 마음을 순간의 기쁨이나 실망에 붙들어두지 말고, 영원이라는 승리의 실제 모습에 고정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In Christ, the end is only the beginning. 그리스도 안에서 끝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