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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강해 삼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 19-요한복음 20장 23
요절 요한복음 20장 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평강과 기쁨입니다. 특히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강같은 흐르는 잔잔한 평화를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세상에 가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받고 세상에 가서 죄사함의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평강을 선몰로 받아서 죄사함의 복음을 증거하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은 평강과 기쁨을 주십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부활한 첫날입니다. 예수님은 맨처음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예수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면 먼저 열두 사도인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리아가 과거 일곱귀신이 들였다가 이제 재발되어 다시 헛소리 하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떠났지만 마리아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들이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향유를 발라 들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왔다가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다시 무덤에 와서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을 안다면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난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문도 따지 않고 갑자기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인사하였습니다. 손과 발을 보이시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몸은 참 신기합니다. 십자가의 흔적이 있지만 그것에 장애를 받지는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인사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두 번이나 평강이 있을지어다 인사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부활의 예수님은 두 가지 선물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평강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이 자신들도 잡아서 십자가에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반역죄를 처벌하면 반역자만 처벌하지 않습니다. 반역에 가담한 일당을 다 처벌합니다. 로마 시대에도 반역자가 나오면 그를 따르는 무리를 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적어도 수십만에 이르게 됩니다.
두려움은 제자들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처음 찾아온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손종하고 하나님을 떠난 후에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죄에 대해 벌받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불신과 관계 단절에서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죄가 있을 때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하였습니다. 그는 두려움이 있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디도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올 때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땅에 절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혈루병 앓는 여인을 고쳐주고 지체하였습니다. 그때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야이로는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찾아왔고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믿음을 보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야할까요? 우리가 왜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할까요? 우리가 두려워하면 사탄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려움을 심고 공격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는 일을 하고자 투쟁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 두령은 철병거와 거인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생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갈렙과 여호수아도 가나안 사람들이 거인이고 철병거를 가진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루즈벨트는 이차 세게대전과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사 선을 한 대통령입니다. 당시에 대공황과 이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루즈벨트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할 것은 전쟁도 대공황도 아닌 두려워하는 그 자체라고 하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두려움을 극복하였을 때 이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대공황을 극복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를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할 때 두려움이 옵니다. 나도 어려서 어머니가 낙태하고자 한 것으로 인한 분리 불안으로 두려움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독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믿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 함께 한다고 하셨습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굳세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담대히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의인의 승리를 믿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좋은 두려움을 가질 때 나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죽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여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악을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믿고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를 확신할 뿐 아니라 제자들도 에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도왔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도록 도왔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둘째, 부활하신 주님은 기쁨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후 슬퍼하였습니다. 특히 마리아와 여인들은 슬퍼울었습니다. 이별은 슬픔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이별을 극복하게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우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슬픔을 극복하게 도우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다시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프지만 슬픔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는 아들이 죽어서 슬퍼하는 끼사고따미에게 아무도 죽지 않은 집의 겨자씨를 얻어오면 아이를 살릴 약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는 집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겨자씨를 얻으러 다니다가 내 아들만 죽는 것만 아니라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슬퍼한다는 것을 알고 슬픔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석가모니의 슬픔 위로 방식이요, 세상의 위로 방법입니다. 나만 슬프냐 너도 슬프고 다 슬프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 위로해주고자 합니다. 세상은 위로를 주나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하여 실제적인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십니다.
한 과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 후 외아들을 잃고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인 외아들을 만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청년은 일어나 어머니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아들을 살리셔서 과부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해주셨습니다. 물론 과부와 아들은 다시 죽어서 이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있게 하고 슬픔을 극복하게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충만히 주십니다. 다윗은 죽음과 한 걸음 사이였습니다. 자신이 죽어 이 세상에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펐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기쁨을 얻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편 11)
(2)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강을 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으로 가기 전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세 가지 사명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죽어서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수도 있는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은 살고 예수님은 죽으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세상도 살고 예수님도 살리사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가는 것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시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박해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제자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세상에 부활의 주님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캠퍼스로 가서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박해를 받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도 살리고 제자들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기 위한 것입니다. 양이 이리를 이기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이 고난을 받을수록 하나님 나라에 상급이 많을 것입니다.
둘째,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기 전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령님의 힘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나요? 그들이 성령님을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죄를 깨우쳐주실 때 우리는 깨닫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충만히 받고 더욱 힘있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세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힘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삶으로 예수님의 증인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할 때 사랑의 사람, 공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할 때 우리에게 표적과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 표적과 기적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제자들은 세상에 가서 죄사함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를 깨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교만 탐심 불신 거짓입니다. 우리가 죄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직접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제자들이 면죄부를 주고 죄사함을 선포해야 죄사함을 받는다고 착각하기 쉽니다. 가톨릭의 사제들이 돈 받고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죄사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죄사함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죄사함의 역사에 제자들이 쓰임 받습니다.
죄사함은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권한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죄사함은 지금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친히 이루십니다.
먼저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탐심을 죄라고 깨우쳐주십니다. 성령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셨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없어졌다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셋째, 성령님은 죄와 사탄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고 않고 거룩하게 살게 도우십니다. 우리의 성화도 오직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사함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확신하고 거룩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결론 부활하신 주님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9절을 보시시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평안과 기쁨을 얻으려면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말씀과 성령님이 깨우쳐주실 때 민감하게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기도하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저의 내면에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저는 이를 극복하고자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일날 밤에 잠을 자는데 꿈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직접 요한복음 16장 말씀을 분명히 주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음성이 들린 후에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평안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으로 들릴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아멘 !
요한복음 20장 강해 삼부 평강을 주신 부활의 예수님
요한복음 20장 19-요한복음 20장 23
요절 요한복음 20장 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 강해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