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 1장 23절 상제께서 어느 해 여름에 김 형렬의 집에 계실 때 어느 날 밤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강 감찬은 벼락칼을 잇느라 욕보는구나. 어디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며 좌우 손으로 좌우 무릎을 번갈아 치시며 “좋다 좋다” 하시니 제비봉(帝妃峰)에서 번개가 일어나 수리개봉(水利開峰)에 떨어지고 또 수리개봉에서 번개가 일어나 제비봉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 된 후에 “그만하면 쓰겠다” 하시고 좌우 손을 멈추시니 번개도 따라 그치는지라. 이튿날 종도들이 제비봉과 수리개봉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번개가 떨어진 곳곳에 수십 장 사이의 초목은 껍질이 벗겨지고 타 죽어 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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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는 몇 가지 살펴볼만한 것이 있다...
일단 강 감찬이 잇느라 욕본 '벼락칼' 의 <벼락> 과 벼락칼이 이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비봉(帝妃峰)과 수리개봉(水利開峰) 사이에서 보여준 <번개> 는 둘 다 역의 단어로 치환하면 '離' 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그리고 이 '離' 는 아래 구절에 의하면 2개로 분리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이건 전경만의 특이점이다.)
(아래)
예시 20절 상제께서 “강 태공(姜太公)이 十년의 경영으로 낚시 三千六百개를 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흥하게 하고 제나라 제후를 얻으려 할 뿐이랴. 멀리 후세에 전하려함이니라. 나는 이제 七十二둔으로써 화둔을 트니 나는 곧 삼이화(三离火)니라”고 말씀하셨도다.
(1) 수리개봉과 제비봉
삼계대권(三界大權)의 주재자(主宰者) - 대순회보 287호 교리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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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수리개봉과 제비봉은 저렇게 생겼나 보다....중간에 동곡마을이 있다.....
제비봉(帝妃峰)은 저렇게 표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수리개봉(水利開峰) 이라는 이름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데 거기다 한자까지 친절하게 덧붙여 놓았다는 점이다......이것 또한 전경만의 특이점이다......
(2) 강감찬의 벼락칼 이야기
강감찬은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고려의 명장이자 문신이었습니다. 그와 관련한 여러 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벼락칼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잘못하면 벼락 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예컨대, 부모에게 무례하거나 밥알이 시궁창에 들어가게 하면 벼락을 맞는 등 사람들이 맘 놓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벼락을 맞아 걸핏하면 죽어서야 쓰겠냐며 벼락칼을 분질러 없애려고 우물가에 앉아서 대변을 보았습니다. 그때 벼락칼이 내려와 치려 하자 얼른 그것을 붙잡아 분질러 버렸습니다. 그 후로 벼락 치는 횟수도 적어지고 벼락칼도 도막 난 칼이 되어 순식간에 나왔다 들어가게 되니 사람이 상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13 아마도 이러한 설화를 토대로 상제님께서 그가 분질러버린 벼락칼을 잇느라 고생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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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개봉과 제비봉이 그려져 있는 그림 밑에 붙여있는 설명이다.....
강감찬에 관하여는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3) 강감찬
강감찬(姜邯贊) - 대순회보 77호 『전경』 속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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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서는 아래 인물이 오버랩되는데....(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아래)
공사 1장 30절 상제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 형렬, 출장입상 김 광찬, 기연미연 최 내경, 평생불변 안 내성, 만사불성 김 송환(河圖洛書知人之鑑金亨烈 出將入相金光贊 旣然未然崔乃敬 平生不變安乃成 萬事不成金松煥)”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날이 저물었을 때 쌀 열 말씩을 종도들에게 나누어서 덕찬과 형렬의 집에 보내셨도다.
(참고)
강감찬 - 나무위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AjMx16nkE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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