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와 따가운 햇빛, 그리고 토플리스 미녀가 어우러진 이국땅에서의 스프링캠프가 11일 두산, 14일 현대의 귀국만을 남긴채 그 막이 걷히고 있다. 선수협과 구단의 힘겨루기 끝에 시작됐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린 8개 구단 선수들이 반갑다. 선수협도 비선수협도 아닌, 그저 야구선수였던 지난 1개월. 미국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호주, 일본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했던 야구부 기자들이 풍성한 뒷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훈련 보이코트 '물놀이' - 외출후 새벽귀가 - 귀국때 인사도 안해
○…삼성은 구단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빚고 중도귀국한 임창용 때문에 크게 술렁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제기된 '품성론'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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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신동주, 김감독에 귀국인사 '삼고초려'
○…엉덩이뼈 부상으로 캠프 도중 짐을 꾸린 신동주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날인 지난달 4일 오후 10시쯤 인사를 하기위해 김감독의 방을 노크했다는데요. 김감독은 신동주의 반응을 보기 위해 대꾸도 하지 않았답니다. 밤 12시쯤 다시 방문을 두드렸지만 꼼짝않기는 마찬가지였자. 거푸 허탕을 친 신동주가 새벽 1시에 세번째 오자 그제서야 김감독은 몸을 움직여 등을 두드려주었다고 합니다.
'삼고초려'식으로 기어이 '인사'를 성사시킨 신동주의 대견한 마음 씀씀이나, 선수의 인간됨을 파악하기 위해 퇴짜를 거듭 놓은 김감독의 뚝심 모두 제갈공명과 유비 못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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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임창용은 정반대였습니다. 임창용이 다음날 귀국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감독은 내색은 하지 않은채 "운동장에서 인사를 하겠지…"하며 기다렸다는군요. 그런데 임창용은 훈련을 보이코트한답시고 숙소에서 한가로이 수영을 했는데요.
김감독은 "방으로야 찾아오겠지…"했지만 자정이 넘어서도 소식이 없더랍니다. 알고보니 임창용은 외출후 새벽 3시에야 숙소로 돌아왔는데요.
결국 김감독은 다음날 아침에야 호텔 로비에서 짐을 싸들고 체크아웃을 준비하는 임창용과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끌어오르는 화를 꾹꾹 누른 김감독은 친히 임창용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김감독은 "잘 가시라고 전해줬다"며 퉁명스런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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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승팀 현대는 연봉협상이 벽에 부딪히자 난데없이 컴퓨터를 붙들고 원망을 했다고 하는데요. LG에서 2억원대 연봉자가 속출했다는 소식 때문이죠.
현대는 이같은 '천기'를 누설하지 않으려고 쉬쉬했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현대 선수들이 "LG도 저렇게 주는데…"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늘어놓았던거죠. 알고보니 김수경 등 신세대 스타들이 노트북 컴퓨터로 착실히 국내 소식을 업데이트, 구단 직원들보다 한발짝 앞선 정보를 동료들에게 리포트 했다는군요. 'n세대'의 완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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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최종준 단장은 소문을 과신하다 톡톡히 망신을 당했습니다. 삼성 임창용이 귀국파동을 겪으며 시끄럽자 일부 언론에서는 트레이드설이 보도됐는데요. 마땅한 마무리가 없어 고민하던 최단장은 재빨리 김재하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의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도 정도가 있지"라는 김단장의 역정 뿐이었습니다. 최단장은 소문에도 품질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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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코치 선동열 현역보다 더바빠
○…올 스프링캠프의 최고스타는 다름아닌 선동열 KBO 홍보위원 아니었겠습니까. 순회코치로 미국과 일본의 5개팀을 오가며 현역때보다 훨씬 더 바쁜 겨울을 보냈고, '국보'의 강의를 듣기위한 구단들의 노력은 악착같았는데요. 모든 선수들이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매달렸을 정도로 선위원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LG 김정준 대리는 선수지도를 마친 선동열을 인터뷰한뒤 리포트로 작성, 고위층에 보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선위원의 체재비용은 KBO가 전액 부담을 했지만 한화와 삼성 SK LG 해태 등 선위원이 거쳐간 5개 구단들은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다"며 소액을 거둬 감사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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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운 관계는 술로 풀어
○…5개팀 선수들을 지도한 선위원이 가장 껄끄러워 한 것은 각 팀 투수코치와의 관계였습니다. 방문 첫 날은 일부러 한마디의 조언도 하지 않는 등 나름대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애를 썼다는데요.
해결책은 야구계 소문난 주당답게 술이었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지도에 들어가기 전날 꼭 투수코치와 술자리를 마련해 어색함을 풀었다고 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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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두산 김인식 감독의 경우 "투수코치가 엄연히 있는데…"라며 선위원을 초대하지 않아 야구계의 의리파임을 다시한번 과시했습니다.
한편 캠프도중 유명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져 김감독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과시했는데요. 그중 해태와의 연습경기에서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수 태진아씨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죠. 구장을 찾은 유명인들은 한결같이 "김감독님의 경기를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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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숙소 수사관들 들이닥쳐 땀뻘뻘
○…두산 선수단이 사용하던 하와이의 숙소 알라모아나 호텔는 난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는데요. 장원진 김원섭이 쓰는 618호에서 스프링클러 오작동으로 물세례를 받은 사건 때문이죠. 값비싼 야구장비들이 물에 젖어 현지 보험회사에 보상청구를 하자, 직원이 출동했습니다.
보험회사 감사팀의 정보분석력, 수사력은 CIA(미 중앙정보국)에 버금간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이들의 무차별적인 질문공세에 긴장한 선수들은 죄도 없으면서 땀을 뻘뻘 흘렸죠.
결국 무혐의 판정을 받긴 했는데, 보상은 고작 글러브 세개와 스파이크 한개였습니다. 그나마 물건을 받기까지 꼬박 두달이 걸린다고 하니, 난데없는 물세례에 이은 진땀의 댓가치곤 허무할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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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외국인선수 아지 칸세코는 히스패닉계 특유의 열정을 발휘해 캠프를 뜨겁게 달구었는데요.
선수단 합류 첫날 스페인풍 살사 댄스와 노래로 선수들의 혼을 빼놓더니, 막바지에는 끊임없이 "밤이 외롭다"고 호소해 유부남 선수들을 싱숭생숭하게 했습니다. 외국인선수에 대한 배려로 여자친구 리베라가 도착한 뒤부터는 그 소리가 쏙 들어가고, 얼굴에는 웃음만이 가득했지요.
< 정리=김우석 기자 kwoose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