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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적 종교 - 기독교
부모형제까지도 버리고 자신을 따르라고 한 예수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에게는 국가나 민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神)이고 예수이다. 그러한 반민족적인 요소로 인해 터진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황사영 백서사건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부인도 한때 천주교인이었으나, 천주교도를 처형시키게 된 동기는 황사영이 쓴 편지를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전달하려 했다가 발각된 것이 황사영의 백서(帛書)사건이다. 백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다.
① 서양제국의 동정을 얻어 성교(聖敎)를 받들어 나가고 백성들의 구제에 필요한 자금의 요구
② 청나라 황제의 동의를 얻어 서양인 신부를 조선에 보낼 것
③ 조선을 청국에 부속시키고 친왕(親王)에게 명하여 조선을 감독케 할 것.
④ 전쟁을 모르는 조선에 배 수백척과 강한 병사 5~6만 명으로 서양 전교대(傳敎隊)를 조직하여 선교사의 선교를 쉽도록 할 것.
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인가?
기독교도들에게는 국가와 민족보다도 전도(傳導)가 더 중요했던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전도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청국에 부속시키고, 외국군에게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라는 것은 이완용보다 더 큰 망국행위가 틀림없다. 이러한 망국행위를 역사교과서에 상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민족혼을 말살시키려는 기독교인들의 동조자들이 많은 까닭일 것이다. 만약에 이스라엘과 한국이 전쟁을 한다면 이들은 이스라엘편을 들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도 황사영의 후예인 이들은 단군성전 건립을 반대하며, 단군역사의 사실성을 부인하고 왜곡하며 전설로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이 일본사람(식민사관)보다 더하다 할 수 있다.
또한 기독교도의 문제점은 존유태적(尊猶太的) 선민의식에 입각한 구약성서의 민족주의적 독소를 전혀 여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간파한 사람이 바로 김용옥 교수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기독교인은 어디까지나 기독교인이지 유대교인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인이 유대교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유대교라는 것은 반드시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혈통성(the Jews) 위에서 성립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즉 한국인이 기독교인일 수 있고 유대교인일 수 없는 것은, 기독교가 유대교가 갖는 혈통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타파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상대성을 보편화시킨데서 기독교는 성립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종교적 의미는 철저히 보편적이고 철저히 추상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이라 함은 유대민족이 갖는 민족 문화적 성격이 역사적 이해의 방편으로는 고려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곧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구약성서는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는 유대인의 테두리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은 곧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일본 민족의 신도(shintoism)의 테두리에 머물러야 하는 것과 같다.
신사참배(神社參拜)에 굴욕을 느꼈던 사람들이 왜 야훼참배에는 그렇게 일고의 반성도 없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보는 눈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야훼는 어디까지나 유대민족의 신(神)이다. 야훼는 분명히 기독교의 신과는 동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은 야훼에게 객관적 종교사적 의미를 먼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기껏해야 그 물음이 나에게 던져주는 실존적 의미 이상을 취해서는 안된다.
내가 한국기독교인들이 막연하게 구약에 대해 갖고 있는 경학관(經學觀)을 살펴볼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유대인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기독교 경학관은 전통적 유교 경학관의 오류의 답습이라는 연속성에서 보다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조선조 유학의 거두, 이퇴계와 이율곡도 중국을 높이고 우리나라를 천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최인<한국사상의 신발견> p , 오늘, 1988] 삼국사기의 저자이며 유학자인 김부식은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인 함석헌, 김동길에 이르기까지 외래 종교를 신봉하다가 자기 조상을 부정하거나 조국을 천시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전에 진리를 생각하려 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主義)가 되지 않고 주의(主義)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主義)를 위한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적 특색이다."
한국의 기독교신학이 하여야 할 첫 사명은 기독교의 이해 자체에서 야훼 존재상의 문화적 성격을 철저히 탈색해 내버리는 것이다. 설교에 있어서나 생활규범 속에서 구약의 명제들을 무비판적으로 절대적 진리로서 강요하거나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암암리 자신을 유대인, 그것도 맹목적 유대인으로 동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조선왕조실록』은 한 장도 거들떠보지 않은 사람들이 남의 민족의 역사책은 왜 무오류적(無誤謬的)으로 맹신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자신을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약성서』는 기본적으로 유대민족의 역사기록이다. 단지 그 역사의 성격이 야훼의 구속사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나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유대인 자신들의 구약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유대민족은 자기들의 문화를 우리 조선민족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 나라 지성인들이 자기네들의 『이조실록』(즉 여기서는 『구약』을 가리킴)을 가지고 운운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내가 지금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유대 문명론은 유대인 자신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유대인들의 멘탈리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유대인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아닌 바로 서구문명의 기독교라는 문화제국주의다! 이 기독교라는 문화제국주의는 럿셀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로마제국의 환영의 잔재일 뿐이다. 정치적 제국주의는 현실적으로 사라져도 문화적 제국주의는 오래 살아 남는다.“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다음은 인터넷의 어느 정직한 성서학자의 고백이다.
“ 한국을 보면 미국보다도 유대인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보면 여호와란 말을 쓰는데 성경을 보면 예수나 그 제자들도 여호와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과거의 유물이니까. 제가 구약학자지만 말합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온 것은 연속이 아닌데 마치 우리가 유대인인 양 여호와를 말하고 있으니! 우리는 구약이라는 것을 예수의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시각이 곧 기독교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각을 거치지 않고 구약에 있는 것을 그대로 직수입해서 쓰는 것은 비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지요.
유대인이 크리스챤이 아닌 것처럼! 샌더슨인가 하는 유대인 신학자가 기독교와 대화를 해서 쓴 책에 보면, 예컨대 예수에 대한 정보가 뭐냐고 물어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흔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복음서를 예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로 제시하지요. 그러면 샌더슨이 하는 말이 그 네 자료가 다 중복됐으니 중복 안 된 것만 합하라고 하겠죠. 그래서 중복된 것을 빼고 합해 봤더니 한 세 페이지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너희가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 이러는 거지요. 사실 맞는 말이지요. 이 말은 유대인이 우리를 놀리려고 한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30세까지의 예수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은 그대로 인정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마치 한국 사람인 것처럼, 예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양 생각하는 자세는 고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의 내용을 가만히 뜯어 보면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상하게 낳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거지요. 여기엔 낳고 죽는 것만 있지 33년의 삶이 쏙 빠져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호와神’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서는 자신을 섬기는 유대민족을 위해 다른 민족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신이 우리민족의 민족신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몰아내고 이 땅의 하느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신들이 여호와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의지할 곳이 없을 정도로 된 것은, 우리민족의 흥망성쇠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민족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만주벌판을 역사무대에서 상실하고 한반도에 들어오면서부터이며, 이후로 수백 번의 외침을 받으며, 민족의 뿌리에 해당하는 역사를 상실하면서 민족정신과 더불어 민족의 신(神)도 같이 잊혀져간 것이다. 이른바 중독(中毒, 중화사상의 유교史觀), 일독(日毒, 내선일체의 식민사관(植民史觀)), 양독(洋毒, 기독교史觀)에 차례로 감염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 뿌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무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만 중요한 줄 알고 그 뿌리를 부정하고 단절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느님신앙만 중요한 줄 알고, 자신의 조상들을 부정하면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에 ‘너의 생명은 오직 부모로 부터요, 부모는 하늘(하느님)로부터 내려 오셨으니, 오직 너희 조상을 잘 섬긴 연후에야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는 걸로 보아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일신만 믿고, 조상들의 영혼을 마귀, 사탄으로 몰아 박대하고 있다. 하긴 하나님과 같이 있던 천사들도 타락하고, 하나님 최초의 걸작품인 아담과 이브도 타락했다고 성경에 쓰여 있으니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유일신뿐이리라.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호와도 믿을 만한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황사영의 후예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추악한 반민족적 행위를 저질렀는지도 한 번 살펴보자.
▷ 신사참배 결의
* 1936년 1월29일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참배 순응의 뜻을, 6월에는 신사참배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 결의
* 1938년 9월 장로교 제27차 총회(총회장: 홍택기 목사)에서 평양노회장 박응월 목사가 제안하고 평서노회장 박임현 목사의 동의, 안주노회장 길인섭 목사의 재청으로 신사참배 가결. 총회 서기 곽진근 목사는 다음과 같은 신사참배 결의 성명을 발표 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함』
▷ 기독교지도자들의 친일행각
* 유형기 윤치호 박희도 차재명 목사 등이 1937년 각도 순회 시국강연에 나서서, 황국신민으로 부일협력할 것을 주장.
* 박희도 목사는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 한 명으로, 친일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을 발간했다. 부일협력을 촉구하는 논설 등을 실었다.
* 신흥우 목사는 당시 YMCA 총무로 재직 중이었다. 신목사는 「천황 폐하의 충성스런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이것이 조선기독교도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 이라고 주장했다.
* 김활란(이화여대 초대총장) 모윤숙(시인) 유각경(YMCA 초대 회장) 장정심(기독교여자절제회 총무) 고황경 서은숙(배화여고 교장) 등 여성지도자 들은 신사참배 내선 일체를 강조하는 강연회 강사로 나섰고 정신대 참여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 장로교와 고려파의 분열
1945년 해방 후, 신사참배를 순응했던 그룹과 이를 거부하고 순교 투옥 등 고난의 길을 걸었던 그룹과의 분열. 굴종자들은 「교회를 지켜내지 않았느냐」는 논리로 해명과 회개를 거부했다.
최근 발간된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은 친일문제와 관련 이제까지 성역으로 남겨진 부분 가운데 하나였던 기독교 분야에 대해 구체적 사건을 분석하며 다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말 기독교의 친일행위를 참회하고 무너진 양심을 회복하는 한편, 실추된 위상을 다시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분열한 개신교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과거사 청산과 공적인 참회를 통한 고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인 최덕성 고신대 교수는 책에서 "한국기독교가 신인공로(神人共怒)할 과거사를 가졌으면서도 이를 공적으로 청산한 바 없다. 교회는 단지 침략의 피해자로만 여겨왔고 우상숭배 배교 백귀난행(百鬼亂行) 민족배신 반인도적 범죄를 각자 하느님과 해결해야할 문제로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또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타협을 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교권주의 이중성을 골격으로 한 불순한 친일파 전통이 교회의 건전한 좌표설정과 개혁을 가로막아 한국교회를 불신임하게 한다."고 덧붙인다.
책에 따르면 장로교 통합측 교단이 1997년 행한 주기철 목사의 복권을 둘러싼 일련의 교계 주변 일들이 친일파 전통의 극명한 표현이다. 주 목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죄명'으로 39년 종교재판에 회부돼 목사직을 면직당한 뒤 감옥에서 숨진 인물. 저자는 그를 복권하는 마당에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기본적 시각이 '죄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참회가 전제되지 않은 채 과거 결정의 유효성을 유지하고 목사 복권이라는 해프닝을 연출했다는 평가다. 역시 우상숭배 반대로 제명당한 한부선 목사 해벌사건(1950) 신사참배 취소성명서 사건(1954) '한국기독교해방10년사 '출판금지 사건(1958) 한신대 역사날조(1990) 착종논리(1993) 등 사례로 들며 친일파 전통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기독교가 광복 후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는 민족사적인 면에서도 비판적으로 논의돼야할 주제"라며 인사들과 더불어 신사참배 거부자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차분한 마음으로 과거사를 검토할 때"라고 말한다.
교권이 우여곡절 끝에 이어지고 있지만 시간적 거리감으로 솔직한 공개 논의를 통한 비판적 자기반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나아가 일본교회가 1995년 참회고백 성명서를 통해 *천황숭배 참회 *전쟁협조 참회 *신사참배 강요 참회 *한국에 대한 죄 참회의 뜻을 밝힌 점을 들어 한국교회의 양심선언과 고백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민족이 해방 후에 이승만 정권과 더불어 친일파가 오히려 득세했듯이 기독교의 교회사 역시 부일 협력자들과 그 후손들이 오히려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문화제국주의
러셀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환영’이라고 보았다. 왜 그랬을까?
제국주의의 본질은 역사적으로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에 있다. 용산에 미군부대가 없어져도 미국이라는 문화의 지배는 이 땅에 오래 살아 남는다. 당(唐)나라 문명이 통일신라문명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했듯이‥‥‥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은 사라져도 로마제국의 환영(幻影), 기독교 문화제국주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의 도올 김용옥선생의 글을 읽으면 문화제국주의의 본질을 명백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쉽게 국제적 여론을 피해가며 그 나라를 장악하는 길은 우선 그 나라에 우리나라 말을 잘하고 우리나라 풍속과 종교를 잘 알고 우리나라 풍속과 종교를 잘 알고 우리나라 문명의 모든 것을 숭상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히 우리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언어의 공통분모를 가진 그들을 대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숫자를 될 수 있는 대로 늘이기 위하여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명분아래 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그들을 서울대, 연대, 고대, 이화대 등 명문의 학교에 유학시켜 프라이드를 줄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게되고 한옥에 살게되며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를 모시는 단군교를 믿게 된다(우리나라의 모습이 한복-한옥-단군교-된장-꼬치장-김치밖에는 없다는 가설아래서 상기의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르트나 커피나 양고기요리보단 된장이나 꼬치장이나 김치 야채요리를 더 좋아하게 된다. 이들은 귀국하여 그 나라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선각자로서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며 그들은 종교적,정치적,문화적 리더로서 모든 러더쉽을 장악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단군교를 퍼뜨리고 단군교와 같이 퍼져들어갈 많은 문화적 소산과 생활습관을 전파하기 위하여 이런 유학생들 작전외로도 한국의 단군교선교사를 그 나라에 파견할 것이다. 이 단군 선교사는 한국의 거대한 강남교회들의 연보돈의 지원을 받아(한국의 교회들이 모두 단군교교회라는 가설에서) 그 현지에 가서 단군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중동나라사람들이 알라신을 버리고 우리나라 단군할아버지을 경배하며, 길가 방방 곳곳에 우리나라 천하대장군, 천하여장군같은 목장승, 석장승이 우뚝우뚝 서고 그들은 출근길에도 거기 서서 절을 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 단군선교사들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가르쳐서 사상의학대학을 세우고, 그들이 모두 한국약초풀뿌리에 의하여 병을 치료하도록 한다. 그들은 점점 한국보약과 침,뜸에 길들여져서 그들의 고유한 의학과 삶의 지혜를 망각해버릴 것이다. 그리곤 점점 그들의 가옥형태를 아름다운 한옥체제로 바꾸며 대통령의 관저까지 우리나라 99칸짜리 개와집처럼 만든다. 그들은 된장과 꼬치장과 김치를 먹고 고름 댕기달린 한복을 입는다. 이런 모든 생활습관에 길들여지면 그들은 그들의 사막문화에서 특이하게 발생했던 배두인족의 강인한 문명의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고 점점 사막에서는 살기 싫게 되고 사계절 온대농경문화인 한국의 온화하고 온후한 생활습관을 더 고등한 문명의 체계(higher civilization)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전면적으로 진행되게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그 나라에게 이권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무엇이든지 한국적인 것이 없으면 도무지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한국의 물자와 문명의 무형의 모든 것까지 계속 팔아먹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형국을 그 문명에 내재하는 내장장치로서 확보하게 된다. 웬만큼 한국군대나 외교관이 철수를 해도 그 나라의 지배는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문명의 환골탈태현상이 우리나라사람들에 의하여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우리는 시동만 걸었다) 그 중동나라 자국민들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열심히 이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일 때, 그것보다 더 달갑고 고마운 일은 없는 것이다. 이런 매우 불가능한 듯이 보이는 가설의 체계는 결코 가설이 아니라 해방후 40년간 한국과 미국사이에서 이루어진 정확한 현실이다. ‥‥‥
한국 최근세사의 문화사의 최대의 비극, 그리고 가장 집요하게 장기 지속되고 있는 조선문화 황폐화, 말살화정책인 대처-비구싸움 및 그로 인한 종단내분은 바로 이러한 미제국주의의 문화정책의 일환의 음모로서 그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노망끼 늙은이 이승만이 벌린 정치조작극에 불과하다. 이승만이 대처-비구싸움을 붙인 “불교정화유시”는 사사오입개헌의 준비를 위하여 국민의 반독재적 관심을 호도시키고 혼란위기의식을 조장시키기 위한 위장술책이었으나 불교계에선 이러한 음모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 싸움의 기만술책에 휘말려 들어가 버릴 뿐이었고 한국불교는 이로써 종단의 자주성을 상실하는 “관권불교”와 “폭력불교”의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 미제국주의와 그 앞잽이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연결되는 군사독재정권은 처절하게 조직적으로 한국민족세력 혹은 내가 말하는 반미(反美)아닌 비미(非美)적 문화(인식)의 가능성인 불교세력을 탄압, 분쇄시켰다. 그러한 조직적 탄압의 확증은 첫째, 대처-비구의 싸움조장이며 둘째는, 철저하게도 승려의 교육의 기회를 조직적으로 봉쇄시켰으며 셋째로는, 우리나라에서 고려대학과 더불어 유일한 민족재단학원인 동국대학교의 탄압과 관권화이다. ‥‥‥
미군놈들이 한국에 와서 상대하고 대접해준 한국사람들, 즉 그 당시 미국놈들하고 짝짝궁이 맞아서 출세한 놈들, 그 때 한국을 대변하여 향후 한국을 지배하는 어떤 틀을 농간한 인물들의 공통분모는 기독교인이며, 영어를 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친미기독교도들이야말로 현대 한국의 상류사회를 독점한 인물들이었다. ‥‥‥ 한국기독교세력의 팽창시기는 정확하게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시기와 일치한다. 기독교가 군사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이란 우익팟쇼정권이다. 파시스트의 특징은 강력한 반공이데올로기를 그 종교로 삼는다는데 있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냉전체제에 있어서 반공이란 친미를 의미한다. 친미의 종교적 표현이란 곧 기독교다!
그렇다면 기독교세력의 팽창시기와 우익독재정권의 강화시기와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 군사독재와 가장 강렬하게 대항한 세력이 바로 기독교세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제제국주주의의 브레인드레인 정책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이고 박애주의적인 개방교육의 탈을 쓰기 때문에, 그 제국주의의 주체에 대하여 찬동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을 동시에 키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브레인드레인의 특색은 친제국과 반제국을 동시에 양육한다는데 그 뿌리깊은 반동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해방후 모든 반미제국주의의 사상형태는 바로 그것이 미국유학생들에 의해서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지 쏘련과 중공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미국은 미제국의 유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반미(反美)를 가르친다. 미국은 반미 그 자체를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자기들이 콘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설정한다. ‥‥‥ 김지하를 죽였던 것도 미국이고 김지하를 살려낸 것도 미국이다. 김대중을 조선민중의 우상으로 만들어준 것도 미국이고 그를 조선민중의 똥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미국이다. 문익환을 교육시키느라고 돈댄 것도 미국이고 문익환을 반미투쟁의 기수로 키우느라고 돈댄 것도 미국이다. 한국의 모든 반미독재투쟁의 돈은 가난한 김일성 형님한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자나라 미국에서 온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사주를 받은 유럽의 기독교문화권에서 온다. 나 도올 김용옥도 이런 미제국주의의 자본으로 키워진 놈이다. 심지어 민중불교운동자금까지 유럽기독교재단에서 들어왔다고 한다면 또 말해 무엇하리요?“
☞ 국수주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민족주의이다. 이 민족주의를 국수주의와 구분하지 못하고 세계주의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 중에 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세계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주의는 언뜻 보기에 약소민족이나 강한 민족이나 자유와 평등을 가지는 좋은 사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한 나라가 세계주의를 부르짖음은, 약소민족을 침략하자는 술책이요, 또 약한 나라가 세계주의를 부르짖음은 다른 나라의 종놈이 되자는 것이라고 안호상 박사는 역설한다.
“서기 19세기에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19세기에 서양민족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세아, 호주 등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 때, 예수교를 앞세우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교는 한 때 서양 사람들이 식민지 만드는 앞잡이요 주동자라는 말까지 들었던 것이다.”
즉 침략한 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선교사들은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네 민족 내 민족 따질 게 뭐가 있냐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니까 ‘독립운동’같은 것은 다 쓸데없는 짓이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다같이 섬기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믿는다고 침략자들이 피지배민족을 노예취급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해준 적이 역사상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1억2천만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무차별 살상을 당했고 그나마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노예로 팔려 갔으며, 지금 그 후손들은 혼혈잡탕족이 되거나 그 사회의 최하층 빈민으로 대접받으며 겨우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음을 아는가? 그 넓은 땅덩어리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가?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발견했는가? 그럼 콜럼버스가 그 땅에 들어 갔을 때 살던 원주민들은 인간도 아닌가? 지금 승리한 자들의 사관, 서구의 사관으로만 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콜럼버스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원주민들을 배신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콜럼버스의 만행을 시작으로 기독교 침략자들은 원주민들을 무차별 살상하고 그들의 땅을 모조리 차지했던 것이다. 조찬선 목사의 저서 <기독교 죄악사>를 보면 기독교 침략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 짓을 저질렀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주민에게 콜럼버스는 ‘악마’ 그 자체였다. 역사의 진실을 보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는 원주민이며, 결국 그 땅의 주인은 원주민이며 따라서 지금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땅을 그들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원주민들의 땅찾기 운동은 이미 시작되어 법정소송이 진행 중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 민족만 잘 났다고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이 ‘국수주의’이며, 자기 민족의 전통과 장점을 잘 보존하고 남의 민족의 장점을 잘 받아 들이는 것이 ‘민족주의’이며, 다른 민족도 동등하게 하나의 민족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민족주의이다. ‘세계는 하나’를 주장하더라도 민족을 바탕으로 주장하여야 하는 것이지, 세계 민족들을 다 섞어 비빔밥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해서는 안된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민족주의 없는 세계주의만 주장하다가는 무족보적 혼혈잡탕주의의 도가니 속에 녹아 역사의 저 편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 각 나라마다 그들의 민족사 교육을 시키는가? 세계주의만 주장하려면 세계 각 나라들의 민족사 교육을 모두 반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만큼 희한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자기 나라의 엄연히 실존했던 조상을 ‘우상’이라고 하고, 세계주의란 미명아래 ‘민족’이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내세워 국수주의에 빠져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나 있는가? 오히려 지나치게 침략을 당해 왔고 그 결과로 유교의 ‘중국 사대주의’, 일제 식민 치하에서의 ‘일본 사대주의’, 해방후 ‘서양 사대주의’ 기독교의 ‘유대 사대주의’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지 않았는가? 한 번 돌이켜 보기를 바란다.
▣ 민족문화 파괴자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은 최근 펴낸 책 「21세기 우리문화」(한겨레신문사 간)를 통해 기독교 전래를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으로 꼽으면서 기독교가 얼마나 우리나라의 민족문화를 파괴하고 자주정신을 훼손했는지 폭로하고 있다.
얼마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유림들의 분노를 촉발시켜 유교문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듯이 `기독교가 죽어야(?) 민족문화가 산다 는 논지의 이 글은 기독교문화에 대한 일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가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침략성에 가려 본질이 희석된 데다 해방 후 숭미 사상이 일반화되면서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처럼 왜곡됐다"며 제너럴셔먼호 사건, 제주민란,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고 있다.
주강현 소장의 비판의 화살은 `교육가와 자선가로 위장한 초기 개신교 선교사에게 집중된다. 1884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알렌은 운산광산을 소개해 거금을 챙기고 전차 부설권을 얻어낸 사업가이며, 언더우드 역시 설탕과 석유 등을 수입해 많은 이득을 올린 `백만장자 선교사였다는 것이다.
또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였던 브라운은 "한인은 어린애와 같이 천진하기 때문에 독립할 처지가 못된다."고 친일노선을 분명히 했으며 웰스는" 을사조약이 조인된 날은 후대에 한국의 독립기념일로 지켜지리라고 확신한다"며 일제의 침략을 미화했다.
게일도 당시의 의병활동을 가리켜 "거짓 애국의 미친 듯한 광란"이라고 매도하는가 하면 존스와 스크랜튼은 이토 통감을 만난 자리에서 "선교사들은 통감의 시정에 동정을 갖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초연한 태도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주소장은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어 닥친 대부흥운동의 열풍에 대해"신도들에게 죄의식을 불어넣어 일제의 교묘한 구조적 억압을 한국인들이 수용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난했으며 일제말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해서도 "선교사들은 어느 경우에나 거짓 논리로 무장하고 순교를 각오한 철저한 투쟁을 거부했다"고 꼬집었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초기 선교사들이 우리의 민족문화를 파괴한 사례로는 마을 굿이나 장승제 등 민간신앙을 억압한 것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란 이름으로 금지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민족문화에 대한 서양 선교사들의 편견은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됐으며 외국의 문물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어린 20대 애숭이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주소장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썼다"고 심경을 털어놓은 뒤 "교회가 민족의 삶과 일치하는 문화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제안했다.
기독교인들의 민족문화 파괴행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곳곳에서 민족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할라치면 데모를 하고 반대를 하고 있고, 단군동상 파괴는 물론이고 민족문화재인 불상, 장승 등을 마구 훼손하고 있다. 이 철부지들을 어이할꼬 ..........
첫댓글 우상숭배
부모, 형제, 친구도 믿지 않으면 우상으로 편가르는 쉬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