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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여행기 그러면 로마 3대 젤라또 집이 어디어디라고 운운하며 젤라또 들고 인증샷 찍은 사진도 올리고, 더운 로마에서 줄이 엄청 긴것을 감수하고 긴시간 섰다가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 넣고 찍은 사진도 있고 그래야 로마다운(?) 낭만적인 여행기가 될텐데...
이 여행기는 그런거랑 관계가 먼 여행기입니다.
젤라또 그러면 스페인 계단에서 오드리 햅번이 먹었던 장소니만큼 로마에서 가장 비쌈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계단근처에서 사먹어야 할것 같은 촌티도 내보고(물론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 해야 어울리련만 이 여행기는 그저 길기만 해서 지루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심지어 제 블로그에 로마여행기를 9편을 쓰고도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한 로마인데 한 편에 몰아쓰려니 읽는이들로 하여금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한거 아닌지 의심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기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부제가 '로마의 배신'입니다.
여행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여행을 하고 오면 모든 마음의 병이 단번에 나을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행을 더 많이 다닐수록 현명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여행을 한다고 일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어제의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몇번의 여행으로 일상의 깊은 고민이 단번에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큰 욕심이다.
그럼에도 여행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로마는 이번이 3번째 여행이다.
여행이 한 번만으로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만병통치약같은 것이라면 똑같은 여행지를 3번 씩이나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 두번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무엇이 남아 있기에 같은 여행지를 또 찾게 된다.
로마는 그런 여행지다.
로마는 돌아보고도 '아 거기도 가봤어야 하는데, 그걸 봤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여행지다.
로마에서는 이전에 2번의 여행을 했지만 전의 여행에서 빠뜨리게 되었던 곳들 위주로 여행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봤지만 모르고 갔기에 보이지도 않았던 곳들' 위주로 돌아보는 일정이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안의 베르니니 조각이 그랬고, 로마의 작은 4거리의 건물 모서리에 있는 네거리 분수가 그랬다.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몰랐지만 인상적이어서 계속 뇌리에 남아 있던 곳들이다.
콰트로 분수를 보면서 '누구의 발상으로 이런 분수를 건물 모서리마다 만들었을까?' 궁금했던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곳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일정이다.
먼저 찾아간 곳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다.
로마 테베레 강의 분수가 있는 건물이 보로미니가 설계,건축한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이다.
퀴리날레 거리가 콰트로 폰타네 거리와 만나 교차하는 곳 사거리가 있다.
이 지점이 퀴리날레 언덕의 정상이다.
두 도로가 교차하는 곳 네개의 건물에 분수를 건축하여 이런 이름의 성당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예술적인 분수를 건축할 생각을 한건지 6년전 여행에서도 감동한 곳이다.
사거리에 서서 '이태리 사람들은 정말 예술이 몸에 배인 사람들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어떻게 사거리의 건물 모서리마다 이런 예술적인 분수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며 둘러 보던 곳이었다.
이 성당을 보로미니가 설계했다니 역시 문외한의 눈에도 인상적이었을 정도다 보니 건축가역시 명성이 자자한 건축가였던 것이다.
건축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사거리 좁은 앞면을 어떻게든 활용해 예술성 짙은 분수와 성당을 지어놓은 것이다.
베르니니와 양대 산맥이었던 보로미니가 만든 것임을 알게 되니 '역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건물의 설계, 건축가의 작품 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소 :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위치 : 퀴리날레 거리와 콰트로 폰타네 거리가 교차하는 사거리
또다른 모서리의 건물에 있는 분수는 피렌체 아느로 강의 분수다.
6년 전에 왔을 때는 까만 먼지가 잔뜩 끼어서 조각도 꼬질꼬질 했었는데, 조각도 청소를 깨끗하게 했고, 양 옆의 벽들도 말끔하게 새롭게 정비 되어져 있다.
사거리 또다른 건물 모서리에 있는 분수는 유노(헤라) 여신의 분수다.
이런 네개의 분수가 놓여져 있다니 그냥 흔한 사거리가 아닌거다.
다이아나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수가 있는 건물이다.
다이아나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수에 차있는 물이 시원해 보인다.
한여름 로마의 살인적인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을 것 같다.
로마에서 3박 4일을 머물렀는데 한편에 우겨 넣어 여행기를 쓰려니 읽는이들에게는 고문이 될만큼 긴 여행기가 될것 같다.
다음으로 <산 베르나르도 알레테르메 성당>을 찾아간다.
한국인 수도사분을 6년전에 이 성당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이번 로마여행을 계획하면서 다시가서 꼭 만나뵙고 싶었다.
'계속 이곳에 계시기는 한걸까?, 건강은 하신걸까?' 궁금했다.
로마를 생각하면 기억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던 여행중 만난 기억에 남던 분이셨다.
길거리 성당 아무곳에 들어가도 로마의 성당은 박물관 같아서 당시 특이한 건물 외형에 이끌려 이름도 모르고 들어갔던 곳이었다.
예배당안에 들어가 수도사님이 앉아계신 책상위에 놓여져 있는 책을 보니 한글로 '시편'이라고 써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만난 한글이 반가웠다기보다는 그 책의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더랬다.
반가운 마음에 '한국인 이세요?'하면서 시작된 대화였다.
로마의 예배당에 한국인 수도사님이라니 한국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더 반가웠나보다.
그 후 6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장소 : 산 베르나르도 알레테르 성당
위치 : 테르미니역 500인 광장에서 나와 레푸블리카 광장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오픈 시간 : 08:30~12:00 15:30~18:00 (로마의 성당은 점심시간동안 열지 않으니 참고하자)
산 베르나르도 알레테르메 성당에 들어가니 일요 미사 중이다.
미사드리는 곳을 보니 멀리 수도사님이 보인다.
미사중이시니 만나뵐 수는 없고 다음날 다시 가서 만나기로 한다.
카톨릭 신자도 아닌 바쁜 여행자가 미사내내 참석할 수는 없어 수도사님과의 만남은 내일로 미룬다.
신부님 두분과 한국 수도사님 이렇게 세 분이서 성당에 거주 하신단다.
평일 예배당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수도사님 몫인가보다.
다음날 가니 6년 전에 앉아계셨던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신다.
6년전 이야기를 하면서 가져간 쵸코파이와 술을 건네드린다.
천주교의 경우 신부님은 술이 금지되지 않은걸로 알아서 가져 갔는데 수도사님은 안 드신단다.
신부님중에 드시는 분이 있대서 취할 정도의 양은 아니니 건네드린다.
로마가 첫 여행지도 아니거니와 한국인 수도사님께서 아직도 계신지 몰라 한국음식을 많이 가져가지 못했다.
아직도 계신줄 알았으면 좀더 많이 가져갈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예배당은 아주 가난한 예배당인 모양이다.
신자들의 헌금으로는 영위가 안된단다.
본당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공부하러 오는 신부님들 하숙을 치러 부족한 비용을 보충하며 예배당을 운영해 나가신단다.
이 예배당은 등록된 신도는 없고 일요일에는 주변 오가는 사람들이 참석해서 미사를 드린단다.
주일 헌금이 50유로도 채 걷히지 않을 때도 많단다.
오르간 연주자 아르바이트비가 50유로 라는데 그돈 마저 줄 헌금이 모이지 않을 때도 있단다.
어쩐지 짠해지는 내용이다.
너무도 예술적인 성당들이 즐비한 로마에서 내부적인 살림내용은 보여지는 화려한 외부 모습과는 다르다.
다음날 다시 가서 수사님을 만났다.
6년만에 다시 수도사님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로마하면 이 예배당의 수도사님도 늘 떠오르곤 했었다.
수도사님을 만나뵙고 나서려는데 극구 예배당에서 팔고 있던 엽서 세 장을 손에 쥐어 주신다.
엽서를 전해주시는 모습이 시골 외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머지않은 날에 다시한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신다.
6년 전에 만났을 때 '여행을 다니면 견문과 지식도 넓어지고 행복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부러움에서 하셨던 말씀이셨을까?
"종교인으로서의 삶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시는 것이니 행복한 삶 아닐까요?" 라고 대답을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베르니니의 <환희>라는 조각은 한번 봐주고 가야지 하고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으로 간다.
이 성당은 한국인 수도사님 예배당의 대각선쪽에 있는 성당이다.
이 조각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한국 수도사님이 계시는 예배당으로 잘못 찾아가는 경우가 많단다.
길건너 산타마리아 비토리아 성당에 있다고 하면 관광객들이 수도사님네 성당은 돌아보지도 않고 비토리아 성당으로 간단다.
어쩐지 그게 서운하신 모양인지 이번에 같은 말씀을 하신다.
"수사님 그게 서운하신가봐요?"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하셨었던,,,,,,,,,ㅎㅎㅎ
수도사님네 예배당에도 베르니니 제자의 조각이 있는데 사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예술성이 많이 떨어진다.
어떤게 떨어지는 지는 마음속으로만,,,,,,
장소 :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위치 : 테르미니역 근처 공화국 광장에서 언덕쪽으로 올라가면 있다.
개방시간 : 06:30~12:00, 16:30~18:00 하루중 휴식시간처럼 문닫는 시간 있으니 개방시간 확인하고 방문하자. 베르니니의 <환희>라는 너무도 유명한 조각이 있는 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는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환희>라는 조각도 다시한번 본다.
2012년에는 수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런 정도 유명한 조각이면 저도 가서 봐야겠네요' 하고 산 베르나르도 알레테르 성당에 있는 베르니니 제자 조각상을 본 후 방문했던 곳이다.
성모마리아의 표정이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조각이다.
해골 성당<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지오네 성당[Santa Maria della Concezione dei Cappuccini]도 가본다.
1625~1630년에 세워진 성당이다.
수많은 해골과 뼈, 수도사들의 잡다한 물건들이 카푸친 납골당[Cappuchin Crypt]으로 가는 입구에 있다.
'인간 해골을 이용한 이곳의 건축양식은 소름끼치지만 그 독창성 때문에 꼭 한번 볼만하다.'고 알려진 성당이다.
벽과 천장 전체가 인간 뼈와 두개골로 가득하다. 갈비뼈로만든 샹들리에 등이 있다.
또한 명화도 많은 성당이다.
특히 첫 번째 예배당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귀도 레니(1575~1642의)<사탄을 짓밟는 대천사 미카엘>,
혼토르스트1592~1656의 <그리스도의 조소>,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1596~1669)의 <사도 바울의 시력을 되찾아 주는 아나니아스> 등이다.
근데 이 성당을 들어가려면 입장료가 있다.
장소 : 해골성당[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지오네 성당]
위치 : 베네토 거리
로마 4대 성전중 하나인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에[이태리어 : 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 가본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걸어서 가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주도하여, 성 바로오가 순교하고 묻혔다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졌다.
이외 4대성전은 성 베드로 대성당, 산타 마조레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도 대성당이다.
장소 :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위치 : 바실리카 상 파울로역 근처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로마 4대 성전중 하나로 로마 지하철 블루라인 '바실리카 상 파올로'역근처에 있다.
대성당은 중랑 하나에 측랑 네 개를 가졌던 원래의 건물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성당은 길이 131.66m에 넓이 65m, 높이 29.70m로 로마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건물이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건물 전체가 카메라에 다 담기지도 않는다.
4대 성전인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주도하여, 성 바오로가 순교하고 묻혔다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졌다.
소지품 검사를 받고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19세기에 만든 80개의 기둥이 있다.
1823년 7월 15일 이 성당에서 지붕용 납판자를 수리하던 일꾼의 과실로 화재가 일어났다.
결국, 대성당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전까지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당 가운데 유일하게 르네상스 이전의 화가의 작품을 무려 1435년동안 유지하고 있었던 대단한 성당이다.
성당 내부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로마의 4대 성전답게 웅장하기까지 하다. 성당내부가 마치 축구장같이 넓고 크다.
로마에서 카우치서핑으로 묵던 숙소가 이 성당에서 가까워 방문하려고 자연스럽게 계획해 두었던 성당이었다.
이런 멋진 성당을 들어가 볼 기회가 닿아 다행이다.
이런 멋진 성당을 그것도 무료로 들어가 볼수 있다니 로마 여행은 축복이다.
요즘 세계도처에 테러 때문인지 로마의 큰 성당은 입장할때 소지품 검사과정을 꼭 거치게 한다.
이 성당도 군인들이 지키면서 입장시 소지품 검사를 한다.
성당 내부에 서 있는 사람들의 크기로 이 성당이 얼마나 웅장한지 가늠할 수 있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도 가본다.
옛날 로마시대 욕장을 성당으로 바꿔놓은 미켈란젤로가 설계를 했다는 성당이다.
6년전에 로마에 와서 이 성당을 들어가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성당이다.
장소 :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성당
위치 : 리퍼블리카 역 근처
성당내부는 화려하다.
성당의 외부 모습만 봐서는 내부가 이 정도로 화려하다고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성당이다.
내부 모습이 크고 화려한 성당이라 인상적이었는데 6년 전에는 바닥의 본초 자오선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된 성당이다.
성당 내부 본초자오선이 정오 12시 (서머 타임이 적용되면 1시에) 해가 남중할 때 벽위쪽의 구명에서 나오는 해가 자오선 근처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시간 맞춰 가서 그런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과학자가 아닌 여행자가 시간 맞춰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당 내부 본초자오선은 교황 클레멘토 11세가 프란체스코 비안치니에게 명을 내려 1702년 자오선 프로젝트를 마쳤다.
비안치니는 1713년 뉴턴의 뒤를 이어 런던 왕립학회의 의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로욜라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에도 가본다.
반종교개혁을 시도한 '예수회'의 창립자 료올라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안드레아 포초(1642~1709)의 천장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어 유명한 성당이라서 찾아 가본다.
장소 : 료올라 성 이크나티우스 성당
위치 : 판테온 근처
볼거리 : 안드레아 포초의 천장화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로욜라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입구에는 성당 오픈 시간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로욜라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은 포초의 천장화도 유명하지만 내부 모습도 화려하다.
안드레아 포초(1642~1709)는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의 화가이자 , 건축가, 미술 이론가로 콰트라투라고 불리는 환상적인 기법을 사용한 프레스코로 유명하다.
콰드라투[Quadratura]란 건물에(특히 천장에 )공간적, 건축학적 환영을 창조하는 트롱플레유그림(회화에서 관람자가 그림을 실제로 착각할 정도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을 말한다.
안드레아 포초의 천장화는 실제 천장보다 3배 정도 높게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다. 사진으로 봐도 천장화가 아주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명화인갑다.
산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에도 찾아가 본다.
천장화가 유명해서 간 것이다.
역시 무료입장이 가능한 성당이다.
장소 :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위치 : 나보나 광장에서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으로 가려면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거리를 건너야 한다.
이 길에 있다. 64번 버스가 이 성당 앞에 선다.
볼거리 :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돔, 란프란토 도메니키노가 그린 천장의 프세스코화가 유명
란프란토와 도메니키노가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한 성당이다.
성당의 중앙 제대 성 안드레아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는 장면, 천사들이 안드레아 성인을 하늘로 모셔가는 상황이 묘사된 그림등이 있다.
안드레아 성당의 쿠폴라(돔)은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크다.
바로 그 쿠폴라를 장식하고 있는 제단 정면쪽의 그림이 1621~1625에 제작된 죠반니 란프란코의 프레스코화다.
성당 중앙에 긴 거울이 놓여져 있어 거울 속에 비친 천장의 프레스코화도 거울로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거울로 보면 고개를 들고 천장화를 보는 것보다 선명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나보나 광장에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도 가본다.
역시 무료입장을 할 수 있는 성당이다.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곳으로 한 때 프랑스 대사관이었고, 현재는 프랑스 국립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파사드에 프랑스와 로마를 상징하는 문장이 붙어 있다.
16세기 건물로 제라시 예배당을 장식한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으로 유명하다.
장소 : 산 루이지 데이 프렌체시 성당
위치 : 나보나 광장 중간에 위치
볼거리 :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와 천사> <성 마태오의 간택> <성 마태오의 순교>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와 천사>는 마태오가 복음서를 쓰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너무 못생긴데다 '성자의 품위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측에서 수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카라바조는 제단화를 다시 그리게 되었던 그림이다.
두 번째로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콘타렐리 예배소에 걸려있게 된 것이다.
이 제단화 계약일은 1602년 2월 7일로 측면에 있는 <마태오의 간택> 1599년 7월 23일보다 늦다.
원래는 이 자리에 조각가 코바르트가 <성 마태오와 천사>를 조각하여 올려두었었는데 그 대리석 조각을 끌어내리고 카라바조하고 새 제단화를 계약한 것이 1602년 인 것이다.
중앙제단화가 대리석에서 카라바조의 그림 으로 바뀔때마다 먼저 완성되어 걸려있던 <성 마태오의 간택>속 주인공들의 인물도 달리 그리게 되었다.
제단화 측면쪽에는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순교>가 있다.
중앙아래 흰 옷을 입고 한 손잡힌 사람이 성 마태오이고, 오른 손에 무기를 든 암살자는 위에서 마태오를 내려다 보며 무서운 기세로팔을 잡아 채고 있다.
주위사람들은 도와 줄 수 없어 겁먹은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하고, 놀람 외침,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는 군중들이 보이는 그림이다.
구름 위에서 천사는 종려나무 가지를 마태오에게 건네 주려하는데, 종려 나무는 순교와 승천을 상징한다.
그림 맨 왼쪽 서있는 수염의 남자가 카라바조 자신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이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콘타렐리 소 성당 오른쪽 벽화인 카라바조의 < 성 마태오의 간택>이다.
예수의 부름을 받은 한 제자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이다.
이 작품이 당시 아카데미 학장이던 추카리의 넋을 빼 놓은 문제의 작품이다.
추카리에게 호평을 받게 되면서 카라바조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이다.
바로크 첫 그림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산 루이디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있는 카라바조의 연작중 가장 먼저 주문받아 그리게 되었다는 그림이다. 계약일이 1599년 7월 23일 이다. 어떻게 400년도 더 전에 그려진 그림의 계약일이 날짜까지 알려지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그림에 계약일이 써 있는 것을 엑스레이 투시로 알게 되었단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성당의 카라바조 그림을 보려면 2유로씩 동전을 넣고 전등을 켜야 밝게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어두워서 그림을 감상하기 힘들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을 찾아간다.
이 성당도 입장은 무료다.
정면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있고 코끼리는 베르니니 작품이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장소 :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위치 : 판테온 신전 근처에 있다.
볼거리 : 미켈란젤로의 조각 <십자가를 든 예수>
이 성당에는 필리포라피의 작품[수태고지][성모승천], 성녀 카타리나의 묘. 도미니카회의 수도사이자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의 묘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이곳을 간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십자가를 든 예수상]을 보기 위해서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 미켈란젤로의 <십자가를 든 예수상>을 보러 왔다.
예수님의 중요부위를 종교적 판단으로 원작에서 바꾸어 놓았단다.
예술은 그저 예술로 봐줘야지 거기에 종교적인 판단을 집어 넣어 대가의 작품을 작가의도와 관계없이 바꾸어 놓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녀 프라세데 교회[Santa Prassede Basilica]로 가본다.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화를 구경할 수 있는 성당 이다.
비잔틴에서 온 예술가가 모자이크 장식을 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광장에서 가까운데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외부 모습이 초라하게 나타난다.
9세기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화를 보러간 것이다.
성 제노 예배당 내부 제단의 모자이크이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양 옆에 두 성인 성 프라세데와 성 푸덴치아나 가 서 있는 9세기의 모자이크다. 9세기의 모자이크라니 1200년전 모자이크화인 것이다. 말이 1200년전이지 지금까지 남아 있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할 일이다.
장소 : 산타 프라세데 성당
위치 : 에스퀼리노 언덕위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광장,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근처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화가 있는 성당이라기에 구경하러 물어물어 찾아간다.
건물의 파사드가 초라하여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성당이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를 네 명의 천사가 둘러싸고 있는 천장의 모자이크화다.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 대리석의 원주기둥은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찾아 보관한 것이라는 설과, 십자군 전쟁당시 한 병사가 이 기둥을 가져왔는데 이 기둥은 빌라도 총독 관저에 있던 브라이도리온 뜰에 있던 것으로 예수님이 묶여 채찍질을 당하셨다는 기둥이다.
이 기둥을 옮겨온 십자군 병사는 공헌을 인정받아 성을 하사 받았는데 지금도 현존하는 콜로나 [Colonna]기둥 가문이라고 한다.
성녀 프라세데 성당[Santa Prassede Basilica]에는 본당 천장 모자이크가 유명하다.
모자이크화도 모자이크화지만 기념품을 파는 매대 뒤편의 조각들도 예사롭지 않다.
포플로 광장으로 가본다. 삼각형 도로인 트리덴트 꼭대기에 위치한 광장이다.
정면에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18~19세기에는 이 광장에서 사형수의 공개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포플로광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포플로 성당을 찾아 간다.
오벨리스크 뒤편 오른쪽에 있는 성당이다.
소박한 겉 모습과는 달리 로마에서 가장 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성당이다.
그런데 6년전에 들렀을 때는 보물같은 그림들이 있는 성당인줄을 모르고 돌아본 성당이다.
오벨리스크 왼쪽의 '포폴로 문'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자신의 국교를 버리고 카톨릭으로 개종하며 로마로 망명할 때 이곳을 통하게 되어 교황 알렉산드르 7세가 베르니니를 시켜 포폴로 문을 새롭게 만들게 한 문이다.
바로 이성당에 라파엘로의 최대 후원자였던 아고스티를 위해 만든 키지 예배당에는 베르니니의 <하바쿡과 천사상>이 있고, 체라시 예배당에는 카라바조의 < 성 베드로의 순교> <성 바울로의 개종> 등이 있다.
1472년 교황이 안드레이 브레뇨와 핀투리키오 등에게 부탁해서 로마 최초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다가 그 후 교황 알랙산드르 7세의 요구로 베르니니에게 더 근대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라고 해서 완성된 성당이다.
장소 :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위치 : 포폴로 광장 북쪽 오른쪽에 있는 성당. [테르미니 역에서 메트로 A선타고 Flaminio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포폴로문(베르니니 가 건축) 지나 광장이 위치하고 있고 문 들어가서 왼쪽]
중앙에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모승천>.
양 옆 벽면에 카라바조의 <성 바울로의 개종(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성 베드로의 순교(십자가에 못박힌 성 베드로)> 그림이 있다.
중앙제단 바로 왼쪽의 체라시 소성당에 있는 그림이다.
카라바조의 < 성 베드로의 순교>다.
베드로는 네로황제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받자 집행관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집자가에 똑바로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입었으니 내 머리는 땅을 가리키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주십시오" 라고 했다는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카라바조가 표현한 그림이다.
카라바조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기독교 박해를 하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이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그리스도의 빛과 음성에 눈이 멀어서 말에서 떨어진 장면을 그린 것이다.
사울은 그 후 바울로 개명하고 그리스도 사도가 된다. 이 상황을 카라바조가 표현한 그림이다. 카라바조는 기인이라 일컬어질만큼 개성이 강하고 살인죄로 도망까지 다니던 화가였는데 성서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화가였나보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모 승천>이 체라시 소성당의 중앙 제단화 이다.
카라바조의 그림 앞에서 2유로를 넣어야 켜지는 전등에 4번이나 동전을 넣어가면서 가라바조의 그림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얼마나 그림에 조예가 깊어야 그정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는걸까?' 카라바조의 그림보다도 그것이 더 궁금하게 했던 사람들이다.
포폴로 광장 남쪽에 쌍둥이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오른쪽이 산타 마리아 미라콜리 성당, 왼쪽이 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 성당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가 카를로 라이날디(1611~1691)가 얼마나 정교하게 각기 다른 모양의 성당을 쌍둥이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았는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쌍둥이같이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쌍둥이 성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포폴로 광장 중앙에는 무려 3,000년이나 된 오벨리스크가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의 대형 원형경기장, 치르코 마시모를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 북부의 고대도시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포폴로 광장으로 옮겨진 것은 400년 전의 일이다.
로마에서는 시간을 재는 단위부터 달라진다.
장소 : 산타 마리아 미라콜리 성당, 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 성당
위치 : 포폴로 광장 남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원주를 만난다.
지난번 여행해서는 트라야누스 원주와 혼동해서 제대로 알고 보지도 못한 원주이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원주는 이곳 콜론나 광장에 있는 것이다.
게르만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만든 기둥이다.
당시 게르만 민족과의 전쟁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장소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
위치 : 콜론나 광장
헷갈렸었던 트라야누스 황제의 원주는 트라야누스 시장에 있다.
전에는 이런 원주가 로마에 두개 있는 줄도 모르고 여행을 했었다.
트라야누스 시장 유적지에 서있는 것이 트라야누스 원주인 것이다. 사실 전에는 이것이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원주인줄 알았었다.
트라야누스 원주위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동상이 그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고, 황제의 유골은 여전히 기념주 바닥 묘실에 안치돼 있다.
장소 : 트라얀의 기둥<트라야누스 원주>
위치 :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옆 포로 트라야노에 있다.
전에 궁금했던 곳 위주로 로마 여행을 한다고는 해도 지나다 마주하게 되는 트레비 분수를 놓칠 수는 없다. 처음 트레비분수를 마주했을 때는 물속에서 금방이라도 말이 뛰어 나올것 같은 생생함에 감동스러웠던 곳이다.
진실의 입 건너편에 있는 이 고대건물이 뭐하는 건물인지 16년전에 몹시도 궁금했었는데 신전이었다.
기원전 120년에 세워진 헤라클라스 신전[Temple of Hercules Olivarius] 이었는데 이후 교회로 쓰이다가 1432년에 복구 되었고, 17세기에는 태양의 성모 마리아로 이름이 바뀌어진 로마의 건축물이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는 여행이 이번 로마 여행이다.
로마가 그리 넓은 도시는 아니니 오다가다 만나게 되는 콜로세움도 만난다.
이번 로마여행에서는 콜로세움조차 자세하게 볼 시간없이 이동중 스쳐지나가듯 보고 지나간다.
나보나광장 4대강의 분수<콰트로 피우미 분수>의 한장면이다.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건축한 <산타네세 인 아고네 성당>쪽을 손으로 '무너지지 마' 또는 <'성당 외관이 마음이 들지않아'하며 외면하는> 듯한 자세라고들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분수가 성당의 외관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완성되었다는 재미있는 스토리의 4대강의 분수다.
4대강 분수는 원래 보로미니가 제안 했으나 공모에서는 베르니니의 현재 작품이 당선 되었다.
베르니니는 로마 곳곳에 흔적을 남겨 놓은 조각의 천재인 것 같다.
장소 : 4대강의 분수
위치 : 나보나 광장
2002년 패키지여행때 베드로 대성당을 가보고 이번에 다시 가본다.
당시에 성당내부 조각이 너무인상적이라 계속 뇌리에 남아 있던 조각이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 분수대는 마데르노(1556년~1629년 1월 30일)의 작품이다.
1613년 제작된 분수이다.
드넓은 광장에 양쪽으로 두 개의 분수대가 서 있어 그냥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분수대지만 만들어진지 400년이나 된 분수대인 것이다.
대성당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분수대는 1677년 카를로 폰타나가 만든 작품이다.
마데르노가 만든 성당 오른쪽의 분수보다 64년 후에 만들어진 분수이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제작연도와 만든 사람 자체가 다른 두개의 분수인 것이다.
카를로 폰타나는 도메니코 폰타나 [현재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를 1586년 대성당 왼쪽에서 광장의 중앙으로 옮긴 책임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대성당 양쪽으로 한 개씩 있는 분수대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만든 사람이 다르듯 모습이 다르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순례왔던 모든 사람들이 물로써 죄를 씻는다는 자세로 양쪽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떠서 자신의 머리위로 뿌린 후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크는 원래 현재의 대성당 정면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었던, 1세기 떄의 로마 황제 가이오와 네로의 경기장 가운데에 장식을 위해 설치되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초기에 기념 교회를 세우면서 기장은 모두 없앴으나 탑만은 계속 남겨두었다.
이를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에 의해 1586년 4월 30일 이전 공사를 시작하여 약 130여일 후 1586년 9월 10일 현재의 위치에 세우게 되었다.
탑의 높이만 해도 25m로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탑들 중 두 번째로 높으며, 무게는 300톤이나 된다.
이 거대한 탑을 옮기기 위해 그 당시 건축 설계자였던 도메니코 폰타나가 책임자로 선임되었고, 그의 지휘로 900여명의 인부와, 말 140여 마리 그리고 47대의 권선기를 동원하여 이 어려운 이전 작업을 해냈다고 한다.
16년전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서는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의 [교황 알렉산드로 7세(재위 : 1655~1667) 기념비]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었다.
이 조각을 보면서 한참동안 눈을 뗄수 없었다.
당시에는 '도데체 누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나' 몹시도 궁금했는데 베르니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베르니니의 후원자인 교황 알렉산드르 7세 무덤을 만들 때의 기념비로 베르니니가 81세의 나이에 만든 것이다.
중앙 아래부분 해골이 들고 있는 모래시계는 불가학력적인 시간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교황주위의 4개의 여신상은 사랑, 진리, 정의, 신중을 상징한다.
오른쪽 여인의 발 아래에는 지구본이 있는데 발의 위치는 영국이다.
당시 영국이 로마교회를 버리고 성공회로 국교를 바꿨던 것을 질타하는 상징적 의미이다.
영국의 헨리 8세가 앤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이혼에 반대하는 로마교회를 버린 일을 질타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냥 눈으로만 보이는 조각을 감상하는 일도 감동을 주지만 이런 조각의 의미나 내용까지 알고 보면 보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로마의 예술품들이다.특히 주황색의 대리석 조각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지하 교황들 무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전에는 이 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지하에 교황무덤이 있는 줄도 몰랐더랬다.
이번에는 지하로 내려가 둘러본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성수대의 천사상이 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 어린 천사의 조각이 너무 귀여워서다. 어느 성당에 들어가든 이만큼 멋진 성수대를 본 적이 없다. 성수대 하나도 어찌 이리 예술적일 수 있는지 감탄을 했던 성수대다.
특히 어린 천사의 얼굴 볼살이 너무 귀여워 꽉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인데 2002년에는 차마 만져보지도 못했었다. 조각이 너무 리얼해서 볼테기를 꼬집으면 말랑말랑한 어린아이의 젖살 통통한 살이 잡힐것만 같게 조각을 해놓은 작품이니 예술의 경지가 대단하다.
어린 천사의 조각을 보면 100일 정도 되는 아이의 모습이다.
'천사같은 아이'라고 할 때의 그 모습인거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천사같은 아이'와 같은 표현들이 있었던가 보다.
100일 기념사진을 찍은 아가들 모습이 딱 이런 몸매의 모습이다.
100일 전후 아가들을 모델로 해서 조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경죄에 걸리는 한이 있어도 성 베드로 대성당에를 가면 이 천사상의 볼테기를 꼬집어 주고 오리라 마음먹고 갔었더랬다.
막상 볼을 만져보니 차가운 대리석이 감촉이 느껴진다.
꼬집어 보고싶을 정도로 현실감있게 조각된 솜씨가 느껴지던 순간 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원은 콘스탄티누스 시대로 324년 공사를 시작하여 349년에 완성되었다.
410년 비스고티족의 로마 침략을 시점으로 455년에는 반달족, 846년에는 사라센족, 그리고 1084년에는 노르만족 등, 이민족들에 의해 끊임없이 약탈당했으며 그 결과 초대교회의 중요한 보물들은 거의 다 없어지고 말았다.
11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여러차례에 걸친 수리와 확장 등으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비리게 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교황 율리우스 2세 (1503~1513) 시대에 브라만테 설계도가 채택되면서 1506년 4월 18일 초석이 놓이면서 대공사가 시작되어 라파엘로, 상갈로 안토니오, 미켈란젤로, 마데르노, 로렌조 베르니니를 거치며 1625년 11월 18일 120년만에 완공된 성당이다.
안에는 140개의 대리석상(주로 교황이나 당시까지의 성인)이 세워져 있다.
44개의 크고 작은 제대가 있으며, 395개의 조각과 135개의 모자이크로로 된 그림이 내벽과 돔 안쪽에 장식되어 있다.
대성당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 그리고 조각들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국보급 보물들의 모아놓은 하나의 박물관이다.
스페인 계단도 가본다.
스페인 계단이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스페인 계단 위에 있는 성당이 궁금해서 들러본다.
스페인 계단 위쪽에 있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에 지난번에는 들어가보지 못해 이번에는 들어가 본다. 프랑스 소유의 교회로 알려져 있다.
장소 :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위치 : 스페인 계단 위
성당내부는 별로 볼게 없다.
제단 앞으로는 심지어 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그러나보다.
스페인 계단 앞에 있는 분수는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바르카시아 분수>이다.
이 분수 은근히 볼수록 멋진 분수다.
장소 : 바르카시아 분수
위치 : 스페인 계단 바로 앞
스페인 계단 건너편에 아주 저렴한 파스타집이 있다.
의자도 없이 서서 먹어야 하는 파스타집이다.
생면을 직접 뽑아서 요리한다는 오랜 역사의 파스타 집이라는데 맛은 그냥 파스타 맛이다.
먹어보니 엄청 맛있는 지는 잘 모르겠고 싼 맛에, 게다가 물도 페트병에 담아 무제한 제공해 준다.
위치 : Pastificio 파스타 가게는 스페인 계단에서 명품거리인 콘도티 거리를 바라보고 오른쪽 두 번째 골목에 있다.
서서 먹거나 테이크 아웃해서 먹어야 하는 파스타집이라지만 가격이 4유로다보니 가격이 참 착하다.
스페인 계단앞의 그 번화한 곳에서 4유로 파스타는 너무 저렴한 느낌이다.
완전 박리다매하는 집이다.
이번 로마 여행은 2002년과 2012년에 로마여행때 빠뜨리고 보지 못한 곳들 위주로 일정을 만들어 움직였다.
로마는 이렇게 3번에 걸쳐 여행을 했어도 역시 아쉽다.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예술품이나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로마는 한달정도 머물면서 여한없이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게 하는 여행지이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그런 기회를 꼭 만들어 봐야겠다.
여행 Tip 1
로마 여행은 숙소에서 대중교통으로 첫 관광지에 도착한 후에는 도보로 이동하며 구경하면 되는 여행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다녀도 멀지 않은 곳에 유명 유적지가 있으니 걸어다니며 구경하자.
길거리 보이는 아무 성당에나 들어가도 기대를 저버리게 하지 않으니 휴식도 취할겸 종교를 떠나 박물관에 간다 생각하고 들어가보자.
여행 Tip 2
로마 여행시 가고자 하는 곳은 사전에 미리 조사하여 무엇이 유명한지 알고 가자.
로마는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는 곳이다.'
모르고 봐도 예술인 것이 많지만, 정보를 가지고 가면 두 배 더 효율적이고 풍요로운 로마 여행이 될수 있으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여행 하자.
여행 Tip 3
로마 여행이 처음이고, 일정이 짧아 기동력을 살리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24시간권이나 48시간권 교통패스를 활용해보자.
[2018년 9월 현재]
1회권은 1.5유로 (개찰후 100분간 환승가능) 시간내 버스,트램 무제한 + 메트로 1회 탑승가능
24시간권 - 7유로
48시간권- 12.5유로
72시간권 - 18유로
CIS 7일권 - 24유로 개시로부터 7일 째 자정까지 버스/트램/메트로 무제한 이용가능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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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최근 신작 "유시민 작"
"유럽 도시 기행"을 읽고
늦은 시간 님의 글을 읽으니
가고싶은 이태리가 보고싶네요
감사합니다 ~~^^
그런 신작이 나왔군요? 읽어봐야겠네요. 사람마다 여행 취향들이 다른거라서 유시민 작가의 여행은 어떤 것이었나 궁금해지네요.
언제가 여행기책을 내긴 해야 할텐데,,,,지명도가 있는 사람들의 여행기는 이처럼 그의 여행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아 베스트셀러도 되곤하는데 무명의 여행가들의 책은 정말 뛰어나지 않는한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 용기내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 로마편 부제가 '로마의 배신'이라는 제목였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지중 이탈리아를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로마는 거리 자체가 예술인 곳이라 생각한답니다.
3번이나 간곳인데도 더 긴 기간 여행하고픈 여행지입니다.
사람마다 책 읽는것 또한 다르리라
봅니다 비전님이 올린 여행기를
나름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행기책을 내도 될것 같습니다
그런 여행 책을 읽고 간다면
더욱 가슴에 와 다아리라 봅니다
"아는것 만큼 보인다" 라고
... 섬세한 비전님 글 감사합니다
용기 내세요~~~짝 짝
여행기 써가지고 출판사 의뢰해서 내는 책은 낼 수 있겠지만.....
누군가 책 내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쓰다보니 ........ㅎㅎㅎ
이 여행기 공모전 주최측에서 여행작가로 1년 계약하자는 메일을 받긴 했습니다만....그 일은 책을 내는 일도 아니고......
좀더 농 익혀서 여행기 계의 전설같은 멋진 여행기를 썼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글빨 훈련을 열심히 하고는 있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댔는데 이런 정성어린 격려의 말씀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