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65만톤 용수 타당성’ 국가기관간 정면 충돌
입법조사처 “유입량 변동·낮은 이수안전도 우려”…기후부 “댐 증축·수계 연계로 대응”
발전용수 전환 법적 근거·지역 간 물 배분도 미해결…‘정책 속도’보다 검증 필요성 부상
정부가 약 800조원 규모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사업의 출발점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신호가 국가기관에서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정부의 용수 공급계획을 직접 검토한 결과, 댐 유입량 변동과 낮은 이수안전도를 근거로 안정적인 공급 가능성에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속도’보다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법조사처가 지난 16일 발표한 ‘FACT CHECK: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공급(안) 타당성 검토’에 따르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하루 65만t의 공업용수가 필요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동복댐 30만t, 장흥·보성강·나주댐 각 10만t, 주암댐 5만t을 공급하고, 광주 제1하수처리장의 하수재이용수 30만t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가뭄 등 기후변화에 따른 공급 불확실성이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5년간 댐 유입량이 크게 출렁였다고 지적했다.
2024년 보성강댐 유입량은 5년 평균보다 84% 많았지만, 2022년 장흥댐은 평균보다 72.2% 적었다. 주암댐 저수율도 2022년 26.2%까지 떨어졌다.
생활·공업용수 이수안전도 역시 영산강이 3.4등급으로 낙동강 1.9, 한강·섬진강 2.4, 금강 2.9보다 낮았다. 등급이 낮을수록 물 공급 실패 가능성이 높다.
기후부는 이에 대해 단기간의 유입량 변동만으로 공급 안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동복댐 증축과 섬진강~동복댐 비상도수로 설치, 주암·보성강·장흥댐 연계 운영 등을 통해 가뭄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조사처는 정부 계획 자체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봤다.
특히 보성강댐 발전용수 10만t을 공업용수로 전환하려면 현행 법령상 별도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고, 섬진강 수계에서 확보하는 물이 전체 댐 공급량 65만t의 84.6%에 달해 전북과 전남광주와의 물 배분 갈등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때문에 TK에서도 이번 보고서를 단순한 ‘호남 반도체 반대 논리’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입지·기반시설 타당성을 다시 따져볼 계기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구미를 중심으로 한 경북권은 기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기반에 더해 안정적인 전력원과 산업용지, 낙동강 수계, 금오공대·경북대·포스텍·한동대 등 연구·인력 기반을 갖춘 지역이라는 점에서 호남 클러스터와의 입지 조건을 객관적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 문제도 변수다. 한국전력은 지난 3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망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해 5년치 전기요금 25조원 선납을 제안했으나, 두 기업은 중장기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업의 실제 투자 판단과 정부가 구상하는 대규모 클러스터 계획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입법조사처도 정부가 용수 공급 목표량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와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합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국가 균형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이라면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부가 예타 면제 등으로 사업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실제 기업의 투자 의사와 전력·용수 공급 능력, 법·제도적 기반, 지역 간 자원 배분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향후 사업 추진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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