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몬트 유리병
신용목
매미가 내 감정을 울음소리에 담아갔다 감정을 돌려받기 위해
나는 창가에 앉아 기다린다 매미가 울면 울음소리 속으로 손을 집
어넣을 것이다 감정을 꺼낼 것이다 매미 몰래 매미를 죽일 수도 있
을 것이다 울음이란 그래서 매미 대신 감정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
다 울음이란 그래서 창가에 앉아 기다린다 손을 집어넣기 위해 감
정을 꺼내기 위해 매미 몰래 매미를 죽이기 위해 울음을 참으면 알
게 된다 계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손이었군 계절 속으로 쑥 집어
넣는 손 공중을 휘젓는 손 멀리 나무가 펄럭인다 사람을 훔쳐가는
것도 손이었군 내 속으로 쑥 들어온 손 온몸을 휘젓는 손 누군가
를 향해 손을 흔들면 보게 된다 손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비
행기
병원 옥상에 올랐을 때였다 하얀 침대 시트가 아름답게 펄럭였
고 비행기가 고요 속에 떠 있었다 나는 델몬트 유리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따서 흔들어서 따라 주려고 따서 흔들어서 따라 주려면 잠
시 울어야 했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조용히 앰불런스가 들어왔
다 주차장을 보았고 소방대원을 보았고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
에 들린 또 다른 손을 보았다 앰뷸런스에서 소방대원이 잘린 손을
들고 내렸다 구석구석 델몬트 유리병이 놓인 건물 안으로 들어갔
다
- 《시인동네》 2019년 1월호
신용목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