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 보다 밭농사가 훨씬 재미있다.
벼는 대부분 기계작업으로 이뤄지는데 반해
밭 작물은 사람 손으로 기르기 때문이다.
소득으로 따져도 밭 작물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밭 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 것은
촌놈들도 이제 살만해 게을러져서가 아니다.
밭 농사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잡초가 무섭기 때문이다.
어제 정성들여 맨 밭도 간 밤의 비에 다시 뿌리를 내고,
풀을 뽑기 위해 밭을 건드리면 흙 아래 묻혀 있던 풀 씨를 또 깨워 내니
밭에선 돌아서면 풀이고, 허리 폈다 다시 보면 또 풀이다.
풀, 풀, 풀...
내 밭엔 유난히도 풀이 많다.
경작 연수가 늘어날수록 새로 돋아날 씨앗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잡초의 개체 수도 줄어드는 게 보통이련만
어떤 곳은 작물보다 풀이 많다.
봄에 웃거름을 하면 작물보다 풀이 더 먼저 먹어
웬만큼 자란 여름의 잡초를 뽑는 데 어린 싹일 때보다 몇 배의 수고가 더 들고
힘든 만큼 시간도 더 걸린다.
올 한 해 다 뽑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니다. 안다. ^^*
그러나 다 뽑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성의껏, 내 할 수 있는 한, 시간이 허락되는 한,
최대한 뽑을 생각이다. 룰루랄라~
잡초라고 해서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적당히 듬성듬성 풀이 섞여 있으면 메뚜기나 여치, 진딧물 같은 벌레들이
잡초 먹느라 작물이 보호받기도 하고,
가뭄 때는 차광막 역할을 해 땅 속 수분 증발을 억제해 주기도 한다.
다만 보기가 싫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내 밭에 풀이 좀 있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그닥 흉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 마을이 좋다.
굴러온 돌의 생존법칙 중 하나는 적당히 어설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내 경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체질이다.
너무 깔끔하면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는 목적이 일하기 위한 것이 아닌 바에야 적당히 즐기며 사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여행을 하고, 산을 오르고, 술을 마시고, 커피숍 노래방서 노닥거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술 대신 담배를 피고, 그럴 듯한 여흥 대신 꽃을 가꾸고 내가 가꾼 꽃을 본다.
<오점 네모필라. 보통은 사진이 더 나은데 이건 실물이 훨 이쁘다>
<요건 꽃 양귀비. 참 이쁜 꽃인데 꽃잎을 늘 보일락말락 다물고 있어 좀 벌려 봤다.
내 것이니까 벌리지 이쁘다고 아무 거나 보이는 대로 이리 하면 안 된다>
<클레마티스, 닥터러펫>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노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날마다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이 이렇게 많은 것은
풀과 전쟁을 하듯 죽자살자 뽑아대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 눈치 살피느라 풀 뽑을 시간이 적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풀 뽑는 게 영 못마땅하신 게 아니다.
쪽팔리나 보다.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보낸 놈이 저 짓을 하고 있다고,
꼭 그렇게 말씀하신다.
동네 할머니들도 끄덕끄덕~
대체 농사와 가방끈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농사 짓는 놈들은 다 무식하고 그것밖에 할 짓이 없어서 하는 것이란 말일까?
내 밭이 풀 천지여도 할머니들이 씹지 않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공부만 하던 사람이 농사짓는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반문해본다. 내가 정말 공부만 하던 놈이었나? 키득키득.
땅에서 자라는 것들은 사람을 차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땀의 양만큼 공평하게 나눠준다.
못 생겼다고 외면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오직 처음 있던 그 자리에서 살며 사람을 기다리다 꼭 그 자리에서 죽는다.
나는 그것이 좋다.
<파종할 때는 알았는데 이름을 잊었다. 나는 이쁘면 이름 안 따진다.>
사람들은 선선한 아침 저녁을 들판 일로 보내지만,
늦은 아침에 약간의 게으름을 덧칠 하고 나면
밭엔 가장 뜨거운 한낮에 가게 된다.
사실 한낮엔 뽑은 풀을 그 자리에 그대로 뉘어 둬도 다시 발딱 일어나 살아날 일이 없기 때문에
풀 뽑기론 한낮이 가장 좋다.
내가 시골에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 중 하나는
풀을 뽑을 때이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풀을 뽑고,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 될 때 거기서 자라는 것들을 보고,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슬퍼질 때 꽃을 심는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불러보듯,
나도 풀을 헤며 어둑해질 때까지 그렇게 불러 본다.
내가 그때 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보고,
벌써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루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풀 뽑는 내내 기억나는 이름들은, 시인들의 이름만 빼고는 다 불러본다.
오늘 다 못 부른 이름은 내일, 그리고 모레...
어제 부른 이름을 다시 부르기도 하면서.
내 삶이 그리 복잡하지도 멀리 간 것도 아닌데
불러 볼 이름이 뽑아도 뽑아도 다 뽑히지 않은 풀만큼이나 많다는 것도
풀을 뽑으면서 알았다.
< 멀리서 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다 풀이다. 집 바로 앞이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늘 씹히기에
눈에 잘 띄는 이곳을 깔끔히 하기로 했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일이 아닌 한 씹을 이유가 없다.>
<여긴 자잘한 꽃들이 막 고개를 디밀고 있어 난이도가 좀 있는 곳이라 딱 하루 걸린다.
초보자는 택도 없는 일이다. 이건 5년차의 솜씨다.
오른쪽 포기는 다알리아, 그 앞엔 글라디올러스, 자잘한 것들은 딸기, 새깃유홍초...
잘 안 보인다면 노안이시다.>
밭이 풀밭이니 밭만 들어서면 할 일이 많다.
눈에 채이는 대로 하다 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나왔는지 까먹을 때가 많다.
풀을 뽑다보면 무릎이 가장 많이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 때마다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덜썩 주저 앉아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멀리서 캐모마일이 곱다.
내 본업은 허브를 재배하는 것인데 이 짓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른 작물과 다른 점은 내가 기르는 이것들이 좋은 향기를 뿜는다는 점이다.
향기에 젖게 해 줘서 좋다.
그러나 그것도 한 시간쯤 지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몇 개만 따도 상자에 가득해지도록 꽃이 좀 컷으면 좋겠다.
한 철에 피지 말고 계절별로 나눠서 피었으면 좋겠다.
작은 것들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가만 있어도 사과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만날 봐도 좋다. 헤~~.
<달팽이가 토실토실. 요즘 거의 날마다 비가 오다시피 하니 땅이 축축해 이놈들 천지다.
이 두 놈은 사진 찍은 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첫해는 꽃 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까워서.>
내 작은 밭에서도 잡초는 아무리 뽑아도 다 뽑히지 않는다.
다 뽑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 기력이 허락하는 한 다 뽑아내려 하고,
그러다 한 계절이 지나갈 게다.
마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계절에 다 불러보고도 더 불러야 할 이름이 남아 있고,
새로 생각해야 할 이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첫댓글 한편의 수채화를 본 듯한 느낌의 시원하신 글입니다.. 박멸시키려 하면 박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팽이가 드글드글 합니다..
팽이가 리아와 개비 잎을 좋아하더군요.
개비 잎 갉아 먹는 팽이는 용서하지만
리아 잎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팽이는 절대 용서 못합니다..
저도 한낭님의 잡초에 대한 철학을 비슷하게 따라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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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대충 뽑습니다..(사실 게을러서 그런 핑계를 대는지도 모릅니다..
잡초를 뽑아서 나무 밑에 지렁이 득실거리라고 모아두면
웬걸
.
달이 많이 떴군요. ^^* 저는 달팽이들 조용히, 지긋이 눌러줍니다.
저도 시골살이 18년차...
이젠 이골이 나련만은... 아직도 풀때문에 킁......킁.....ㅎㅎ...
겁나 선배시네요. 시골은 있을수록 정이 들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