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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원년 OB 베어스의 우승 비화
(펌글이며 스크롤 압박 장난 아닙니다)
1982년 10월12일 OB가 프로야구 원년우승을 차지하자 각 신문들은 그들의 ‘우승 원동력'을 짚어보면서 한결같이 두산그룹이 사시(社是)로 삼았던 ‘인화'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인화? 인화 좋아하네. 그때 인화가 어디에 있었어? 패배 앞에서는 오직 서로 얼굴을 붉히는 자중지란만이 있었을 뿐이야. "
당시 OB 타격코치였던 이광환(전 LG감독)의 얘기다.
OB는 똘똘 뭉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걸작품을 낳은 게 사실이지만 언필칭 인화가 선수들을 똘똘 뭉치도록 만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뜻이다.
인화. 그것은 이뤄지기만 하면 엄청나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은 혹독한 담금질없이는 말처럼 쉽게 조성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인화라는 말의 어감이 여성명사처럼 느껴지듯이 연패라는 냉기가 들이닥치면 곧바로 얼어붙고 마는 게 그것이다. 원래는 고난이 닥칠수록 인화가 더욱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련만 OB가 원년우승을 따내던 시즌막바지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던 것이 인화였고 따라서 각 신문들의 격찬이 말짱 거짓말이라는 게 이광환코치의 술회다.
당시 한국시리즈 기간중 사표를 품에 안고 다녀야 했던 이광환의 말을 통해 그 당시의 사연을 살펴보자.
82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얻은 OB는 후기리그에서도 삼성과 1, 2위를 다투며 아예 한국시리즈를 없애버리고 자동우승을 따낼 찬스까지 잡고 있었다.
9월26일 해태를 7―1로 꺾은 OB는 27승11패로 1위자리를 지켰다. 같은 날 2위 삼성은 MBC에 7―0으로 완패, 25승12패로 양팀거리는 1. 5게임차로 벌어졌다.
OB코칭스태프는 전략회의를 가졌다. MBC, 삼성과 각각 1게임씩 남긴 OB는 MBC를 누르면 삼성에 지더라도 최소한 공동선두를 확보하게 된다. 그럴 경우 삼성은 남은 3게임(삼미, OB, MBC)을 다 이기고 후기우승결정전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OB가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OB는 설사 MBC에 지더라도 삼성만 꺾으면 그대로 후기우승과 통합우승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에이스 카드' 박철순을 어느 게임에 투입하느냐 하는 문제의 해답은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MBC전은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박철순을 삼성전에 투입하는 게 정답이었다.
이에 따라 박철순은 9월28일 MBC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29일의 삼성전에 대비, 미리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OB는 필시 앞서가고 있으면서도 배수의 진을 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자 몸조심'같은 심정이랄까.
OB는 28일 동대문구장에서 MBC에게 7―0으로 완패했다. 같은 날 삼성은 삼미를 대구로 불러들여 7―4로 요리, 양팀간격은 0. 5게임차로 좁혀졌다.
드디어 운명의 29일 대구구장. 박철순―삼성 권영호의 싸움은 그야말로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대결이었다. 두 투수의 각오만큼 이 게임은 팽팽한 투수전으로 펼쳐졌다. OB는 6회초 노장 김우열의 솔로홈런으로 기세를 올렸으나 삼성은 7회말 김한근의 중월2루타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후기우승이라는 큼지막한 먹이를 가운데에 둔 두 맹수의 싸움은 9회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갈림길은 12회였다. 중전안타로 나간 허규옥을 이만수가 좌전안타로 3루까지 밀어놓자 함학수가 3루쪽에 행운의 내야안타를 터뜨려 게임을 끝냈다. 삼성의 2―1 승리.
OB가 이 게임에서 잃은 것은 승리만이 아니었다. 박철순이 8회말 무사1루에서 오대석의 번트타구를 처리하다 허리가 삐끗, 에이스로서 위치를 지키기 어려운 심각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박철순의 허리고장은 훗날 워낙 유명한 얘기가 돼버렸지만 그날 박철순은 12회까지 완투했고 그의 부상사실은 쉬쉬하며 외부에는 1급비밀로 보안유지되고 있었다. 사정을 알려고 파고드는 기자들에게는 "그저 가벼운 요통일 뿐"이라고 둘러댔다.
삼성은 이날 승리로 최소한 공동선두를 확보했고 정규시즌을 모두 마친 OB는 삼성―MBC의 마지막 경기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10월2일 MBC를 대구로 불러들인 삼성은 5회초 이종도에게 선제 솔로홈런을 얻어맞고 식은땀을 흘렸으나 7회말 1사2, 3루에서 오대석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고 이어진 2사2, 3루에서 ‘OB전에서의 수훈갑' 함학수가 싹쓸이 좌월2루타를 터뜨려 3―1로 승리, 대망의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잡았다.
OB로서는 어찌보면 한국시리즈에 올랐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프로원년의 시즌을 열기 전 예상순위에서 기껏해야 3~4위로 평가되던 팀이 일약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후기우승까지 독식하려고 대들었다는 것만 해도 가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말타면 견마잡히고 싶은 법. 그 당시의 상황이나 분위기는 그렇게 느긋한 게 아니었다. OB는 뜰채로 뜨려던 월척을 놓친 듯, 다된 밥에 코빠뜨린 듯 아깝고 원통한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에이스 박철순마저 허리고장으로 등판이 어려운 상태에 놓이고 보니 OB 코칭스태프는 나오는 것이라곤 한숨 뿐이었다. 당장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내세울 투수마저 마땅치 않았다. 구단측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철순을 기용하라고 했으나 김영덕감독은 "야구는 한해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올해 우승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의 건강은 지켜줘야 한다"며 박철순을 무리하게 쓸 수 없다고 버텼다.
더구나 삼성은 한껏 사기가 오른 상승세였고 OB는 허탈감에 빠져 기가 꺾여 있었다. 승부는 이런 기세에 크게 좌우되는 법이다.
그해 한국시리즈는 전기우승팀의 홈구장[대전]에서 1차전을 갖고 후기우승팀 구장[대구]에서 2차전을 치른 후 3차전부터 나머지 경기는 서울에서 치르게 돼 있었다.
10월5일 대전구장 마운드에서 한국 프로야구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개시구를 던진 투수는 전혀 예상밖의 강철원이었다. 정규시즌에서 겨우 5승에 그친 무명이었지만 애당초 차(車)떼고 두는 장기인지라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었다. ' OB는 1회말 4번 신경식이 좌월2루타, 5번 김유동이 중전안타로 삼성선발 권영호를 두들겨 2점을 선취하고 5회말 김우열의 우중간 적시타로 1점을 추가, 3―0으로 달아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강철원은 채찍 휘두르듯 사이드암스로로 막강 삼성 타선을 5회까지 무안타로 살살 막아나갔다. 전혀 예상밖의 호투에 OB코칭스태프는 신바람을 내면서도 한편으론 언제 갑자기 몰매를 맞을지 몰라 간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제는 일발 장타였다. 5회까지 무안타로 눌리던 삼성은 6회초 4구로 나간 오대석을 3루에 두고 함학수가 좌월홈런을 터뜨려 단숨에 3―2로 따라붙었다.
OB가 8회까지 10안타를 때리면서도 추가점을 올리지 못하자 삼성은 9회초 마지막 공격 1사2루에서 배대웅이 통렬한 중월2루타를 터뜨려 기어코 3―3 동점을 만들었다. OB벤치는 다된 죽에 코가 빠진 듯 망연자실했다. 그러고도 1사2루의 역전찬스가 이어졌으니 삼성은 물에 빠졌다가 헤어나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간신히 추가실점을 막고 9이닝의 공방을 끝내자 OB가 때린 안타수는 10개, 삼성은 단 2개. 그런데도 스코어는 3―3 동점이었다. OB로서는 속이 끓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게임은 밤 11시2분까지 연장 15회를 치른 끝에 무승부로 마감하고 말았다. 원년 정규 페넌트레이스 240게임을 치르고도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무승부가 한국시리즈 첫판에서 기록된 것이었다. 말이 무승부이지 안타수 12―3의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3―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OB에게는 패배나 다름없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튿날 대구구장에서 펼쳐진 2차전은 삼성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페넌트레이스 막바지부터 삼성타선의 핵탄두로 떠오른 함학수가 2회말 선두로 나서 중전안타를 때린 것을 신호탄삼아 삼성은 타자일순하면서 4구, 적실, 폭투, 희생타, 도루를 1개씩 곁들이며 4안타를 집중시켜 단숨에 6득점, 대세를 갈랐다.
선발 계형철이 일찌감치 무너진데다 1, 3회초 구천서의 병살타가 연방 터지면서 선취점 또는 추격의 발판을 삼을 득점기회를 놓친 OB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 결국 9―0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정규시즌 마지막 게임부터 삼성에 1무2패. 그에 앞서 MBC에 7―0으로 진 것부터 계산하면 1무3패. 그렇지만 기분적으로는 4연패를 당한 셈이었다. OB는 "역시 삼성에게는 안되는구나"하는 열등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게임이 끝나고 숙소(수성관광호텔)로 돌아온 OB선수단은 평소 자랑삼던 ‘인화'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혹독한 시련을 겪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우리가 이길 거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하고 후배들을 이끌던 김우열 윤동균은 완전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은 꼼짝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2차전에서 병살타를 두개씩이나 때린 신진 구천서는 풀이 팍 죽어 양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아버지'라는 별명을 들으며 선수들을 이끌어온 김영덕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박철순의 고장으로 심란하던 판에 이길 것은 못 이기고, 지는 경기는 낯뜨겁게 콜드게임 스코어(9―0)로 대패했으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일단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그것을 회복시키는 수완을 발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 날 밤. 박용민단장은 수성관광호텔 코피숍으로 코칭스태프를 불러모았다. 담배를 빼무는 그의 손은 분노로 가늘게 떨렸고 목소리에는 칼날이 서 있었다.
"서울에 올라가면 당장 내일부터 합숙에 들어갈테니 그리 아시오. 에이, 이게 무슨 꼴이야."
"그래도 지금와서 합숙을 하게 되면 긴장해서 더 안될 텐데요. "
김영덕감독이 이의를 달자 박단장은 더욱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럼 합숙도 하지 않고 그냥 뻥 나가자빠지잔 말입니까?"
어차피 삼성에는 실력으로 불감당이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표시는 내야 할 게 아니냐―.
"어이 구 주무! 서울에서 합숙할 숙소 알아봐!"
박단장은 구경백 매니저(현 i-TV 해설위원)를 불러다 최후통첩하듯 말해놓고 휭하니 자리를 떴다.
김영덕감독, 김성근코치, 이광환코치 등 3명은 물끄러미 박단장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합숙훈련으로는 초상집같은 분위기를 되살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연패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박단장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김영덕감독이 한숨이 배인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뿜어올리고 있을 때 이광환코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제 합숙한다고 되겠습니까. "
"그걸 내가 몰라서 그래?"
김감독이 팩 쏘아붙였다.
"애들 기를 살리려면 종전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총대 멜테니 허락만 해주십시오. "
"알았어. 맘대로 해봐. "
김감독의 허락을 받은 이코치는 선수단 살림을 담당하는 이민우 운영부장을 찾았다.
"형님.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갈 테니 뒤 좀 봐줘요. "
"오케이, 알았어. 맘대로 마셔. 술값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에라 나도 같이 나가자."
이민우 운영부장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좋았어. 그럼 나갑시다. "
이민우부장을 앞장세워 이광환코치가 불러낸 선수는 김우열 윤동균 김유동 이홍범 유지훤 계형철 황태환 등 고참선수 7명이었다. 이들은 숙소를 빠져나가 대구 수성연못 근처의 술집에서 질탕하게 퍼마셨다.
이광환코치의 인솔아래 벌이는 술자리는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시즌 중에도 이런 자리는 수시로 있었다.
"코치님, 요즘 방망이가 영 안맞는데요. 오늘 이거 한번…히히히"
윤동균이 엄지와 검지를 입에 갖다대며 고개를 뒤로 제끼는 시늉을 하면 이코치는 "알았어 알았어"하며 팀내 술꾼들을 규합, 앞장서곤 했다. 김우열은 실실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슬쩍 치켜들곤 했다. 그것도 마찬가지의 신호였다.
당시는 OB만이 6개구단 중 유일하게, 그리고 남몰래 메리트시스템[승리수당제도]을 실시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용돈이 궁하지 않았다. 서로 돌아가며 지불하는 술값 정도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코치들의 주머니가 빈털털이여서 이코치가 1차술값을 치르면 2, 3차는 선수들이 내곤 했다. 당시는 엄연히 금주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코치가 ‘방패막이'역할을 해주는 것만도 선수들은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한잔하고난 다음날에는 알콜기운 덕분인지 더욱 신바람을 내며 방망이를 휘둘러대곤 했다. 그것이 프로원년의 일반적인 풍경이요 자기관리였다.
그러나 이날 술자리만은 여느 때와 달랐다. 이튿날은 이동일이기 때문에 경기가 없는 것을 기화로 일행은 코가 삐뚜러지게 마셔버린 뒤 숙소 지하의 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곱게 술만 마셨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유지훤이 술취한 사람들과 시비를 벌이는 바람에 주먹다짐이 오갔다.
주먹을 날린 사람은 이홍범이었다. 그냥 맞기만 했어도 별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상대가 다름아닌 대구의 조폭들이었으니 일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나이트클럽 안에서 벌어진 싸움은 호텔 앞마당으로 장소가 옮겨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엄청난 패싸움이 되고 말았다. 경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망신은 고사하고 철창신세를 지는 고약한 사태로 번질 판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으로 경찰에 넘겨지는 일만은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끄러운 고함소리와 함께 주먹이 오갈 때 호텔방에서 이를 내려다 보는 눈이 있었다. 그 눈의 주인은 박용민 단장이었다. 어럽쇼, 게임은 맨날 지기나 하는 것들이 중대한 경기를 앞두고 하라는 합숙은 할 생각않고 술이나 퍼마시고 돌아다녀? 그것도 곱게 마시지도 않고 사람들과 주먹질까지 벌여? 이런 때려죽일 놈들!
이튿날 아침 서울로 이동하기 위해 선수들이 모두 버스에 올라타 있는 시각. 짐을 꾸려나오던 이광환코치는 박단장이 버스 안에서 선수들에게 일장연설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김영덕감독은 맨앞자리에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었고 술값을 계산하며 ‘악동'들과 한패가 된 이민우부장은 아직도 벌건 눈동자를 눈꺼풀로 숨기고 있었다. 버스 밖에 있던 이코치는 박단장의 말이 직접 귀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전날 취객들을 상대로 벌인 복싱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사실을 치하하는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코치가 버스에 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가운데 10여분동안 열변을 토한 박단장은 버스에서 내리더니 이코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꼴도 보기 싫다는 뜻이리라.
난 이제 끝이구나.
이코치는 그날부터 사표를 써가지고 품에 넣고 다녔다. 구단에 제출하는 날짜는 한국시리즈가 끝나는 날이었다. 코치라는 자가 선수들의 기를 살려준답시고 술을 먹이고 집단패싸움까지 벌이게 했으니 모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이제와서 갑자기 합숙한다고 정신무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식대로 하는 거지 뭐. 어차피 합숙은 때려치우기로 한 판이었으므로 이코치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강남역 뉴욕제과 뒤의 어느 자그마한 주점으로 선수들을 또다시 몰고 갔다. 이민우부장은 더이상 술값을 염출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구경백 주무가 대신 그 자리에 합류했다. 그날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실컷 마시고 죽자"며 또다시 코가 삐뚜러지게 마셔댔다.
윤동균을 비롯한 선수들도 이코치의 안주머니에 사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 ‘유효화'되는 지도 뻔했다. 앞으로 이틀. 아니면 사흘. 삼성에게 한국시리즈를 지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과연 꼴깍 숨이 넘어가기 전에 OB가 몇승이나 거두느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박철순의 고장, 기분적으로 4연패에 빠진 사기저하, 게다가 음주와 패싸움 등으로 이어진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OB가 역전우승을 따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미친 놈 중에서도 상 미친 놈이었다.
"야, 우리들 때문에 이코치님 목이 달아나게 생겼다. 우리 알아서들 하자구 응?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야. "
김우열이 특유의 비음 섞인 말로 ‘악동'들을 독려했다.
"맞아. 우리가 말썽을 일으켰으니까 우리가 해결하자구. 내일 안타 못치는 놈은 나중에 혼날 줄 알어. "
윤동균은 왼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김유동 유지훤 이홍범을 둘러보았다.
이 말에 가장 찔끔한 것은 유지훤이었다. 1, 2차전을 통해 8타수 무안타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더 이상하게 번졌다. 바로 다음날 새벽 박용민단장은 술자리에 참석했던 선수들의 집에 케이크를 하나씩 사들고 일일히 방문한 것이다. 겉으로는 격려차 방문한 것이지만 이놈들이 과연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단장이 방문한 그 시각까지도 술이 덜깨 휘청거리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아예 외박한 선수도 있었다.
오냐, 이것들 잘한다. 시리즈만 끝나봐라. 너희들은 몽땅 모가지다.
10월8일 동대문구장에서 속개된 3차전. 이 게임의 실마리를 푼 것은 전날 후배들에게 으름짱을 놓던 윤동균 자신이었다. 정규시즌에는 주로 3, 4번을 맡다가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1번으로 전진배치된 그는 3회말 1사후 센터펜스를 직접 맞히는 2루타로 권영호를 두들겨 선제점의 발판을 놓았다. 김광수가 범타에 그쳐 찬스가 무산되는 듯했으나 3번 지명타자로 나선 김우열이 좌전적시타로 윤동균을 홈에 불러들였다. 1루를 밟은 김우열은 베이스코치로 나가있던 이광환코치에게 찡끗 윙크를 했다.
그러나 삼성에는 함학수가 있었다. OB가 리드를 잡았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그는 4회초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1―1 동점을 만들었다.
5회말 내내 부진하던 9번 유지훤이 시리즈 첫안타를 센터 앞으로 뽑아내자 윤동균은 또다시 좌월2루타를 터뜨려 무사2, 3루의 황금찬스를 엮어냈다. 2번 김광수의 내야땅볼때 홈으로 뛰어들던 유지훤이 횡사했으나 김우열의 땅볼을 삼성유격수 오대석이 더듬는 사이 윤동균이 잽싸게 홈으로 파고들어 다시 2―1로 리드를 잡았다.
시즌중에 펄펄 날아 큰 기대 속에 일약 4번에 올라선 신예 신경식은 외야플라이에 그쳤다. 그러나 김유동의 활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회심의 좌전적시타를 터뜨려 3―1로 리드를 벌려놓았다.
삼성이 6회초 1사1, 3루의 찬스를 만들자 OB벤치는 선발 선우대영을 빼고 여지껏 한 게임도 등판하지 않았던 박철순을 마운드에 올렸다. "드디어 나올 사람이 나오는구나"하는 관중들의 우레같은 박수 속에 등판한 박철순은 1루주자 정현발을 견제구로 잡고 천보성을 외야플라이로 처리, 산뜻하게 위기를 넘겼다. 그 순간 박철순을 허리고장 환자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숨돌린 OB는 6회말 유지훤이 우전안타로 나가 2루를 훔치자 윤동균이 기다렸다는 듯이 좌중간적시타를 뿜어대 4―1을 만들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OB가 7회말 1점을 보탠 뒤 8회초 박철순이 이만수에게 우익선상 3루타, 함학수에게 희생플라이를 각각 내주고 정현발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2점을 뺏겼으나 승부는 이미 결정난 뒤였다. 5―3 승리.
그날밤 ‘악동'들은 다시 뭉쳤다. 승부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묘한 미신을 갖고 있다. 누구랑 밥을 먹었더니 이기더라,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더니 이기더라 하는 식으로 이기고 나면 게임전에 있었던 일을 다음에도 반복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서초동 술집에 갔다가 이겼으니 또다시 그곳에서 뭉치는 건 당연했다.
"잘했어. 오늘은 전부 너희들이 해냈구나. 남들은 늙은이가 어쩌니 주접을 떨지만 역시 경험이 최고야. 역시 노땅들이 최고야. "
이광환코치가 기분좋게 잔을 치켜들었다.
"헤헤 코치님 목이 하루 연장됐네요."
이날 3안타를 때려내 으쓱해진 유지훤이 목에 힘을 주며 잔을 부딪쳤다.
"오늘은 살살 마시자. 그래야 내일 또 쟤네들을 죽여놓을 거 아냐. "
게임의 실마리를 푸는데 앞장섰던 윤동균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절제를 주장했다.
"아냐 아냐. 어제처럼 양껏 마셔야 해. 그래야 알콜기운으로 한방 갈기지. 마시자구. 브라쟈!"
계형철이었다.
10월9일 4차전은 같은 동대문구장에서 삼성의 홈게임으로 치러졌다. 1차전에 이어 다시 OB선발로 나선 강철원은 전과 달리 3회말 장태수에게 선제2점홈런을 얻어맞았고 4회초 김우열의 솔로홈런으로 1점을 따라붙은 보람도 없이 4회말에는 3루타 2개 등 3안타로 2점을 뺏겨 4―1로 뒤졌다. 전날 승리로 기가 다소 살아난 OB는 5회초 정종현의 중월홈런으로 2점차로 따라붙어 놓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운명의 7회....‘행운의 럭키세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OB에 해당되는 얘기이고 삼성으로서는 악몽의 7회초였다. OB공격이 6번 구천서부터 시작, 하위타순으로 내려가는 중이었기에 쉽게 이닝을 마치겠다는 게 삼성의 계산이었으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체구로 보아 장타는 기대키 어려웠던 구천서는 황규봉을 뜻밖의 좌중간 2루타로 두들겨 사단(事端)을 만들었다. 포수 정종현을 대신해서 대타로 기용된 ‘작은' 이근식은 내야플라이로 물러났으나 이홍범이 4구를 골라 동점주자로 나갔다. 전날 3안타를 때려냈던 유지훤은 회심의 일타를 터뜨리리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2루앞 땅볼로 주자들을 한베이스씩 전진배치하는 데에 그쳤다. 2사2, 3루.
다음 타자는 윤동균. 이번 시리즈를 맞아 워낙 좋은 컨디션을 보이던 그는 타석에 들어가면서 황규봉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로 훑으며 때려죽이겠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 장비같은 그 모습에 황규봉은 주눅이 들만도 했다. 고의4구.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쾌조를 보이는 윤동균과 정면승부하는 투수는 바보천치 머저리였다. 다음 타자는 김광수였으니까.
2사만루. OB로서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찬스였다.
김영덕감독은 여기서 김광수 대신 정혁진을 대타로 투입했다. 필자는 여기서 당시 현장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소감을 말해보겠다.
황규봉이 2구째를 던지고 정혁진의 방망이가 돌아가 투구의 궤도를 반전시키는 순간 필자는 타구의 행방을 놓쳤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와"하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 야수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우익수가 막 뒤돌아서고 있었고 타구는 벌써 라이트펜스에 헤딩박치기하고 있었다.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타구는 거기까지 날아간 것이다.
필자는 95년말까지 아마야구를 포함해서 2천게임 이상 현장에서 지켜봤지만 정혁진의 그때 그 타구만큼 빠르게 날아간 것은 본 기억이 없다. ‘딱(배트에 맞는 소리)~쿵(펜스에 부딪치는소리)'에 걸린 시간은 불과 2초 남짓이었다. 2타점 2루타. 타구의 체공시간이 워낙 짧다 보니 1루주자 윤동균이 아무리 발이 빠르다 한들 미처 홈까지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4―4 동점을 만든 OB는 신바람 속에 2사2, 3루의 찬스를 이어갔고 삼성 황규봉―이만수 배터리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악머구리 끓듯하는 OB팬들의 열렬한 함성속에 타석에 들어선 김우열은 배트를 곧추세웠다가 2구째를 강타했다. 그러나 펜스를 넘기겠다는 것은 오직 마음뿐 타구는 투포수사이로 높이 떠오르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플라이였다. 스리아웃 공수교체…가 당연한 귀결이었으나 그게 그렇지 않았다. 이만수와 황규봉은 제가 잡겠다는 콜도 없이 서로 잡으려고 달려들다 충돌, 타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운명의 충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에러로 판정될 장면이었지만 박기철 기록원(현 KBO 기록실장)은 규칙에 따라 ‘충돌안타'를 주었다. OB로서는 안타로 기록되든, 에러로 기록되든 따질 일이 없었다. 윤동균이 홈을 밟아 5―4로 역전시켰다는 사실이 워낙 중요했으므로.
김이 샌 황규봉이 신경식을 스트레이트 포볼로 내보내 또다시 만루를 만들어놓자 김유동은 2타점 중전적시타를 뿜어 스코어를 7―4로 벌리면서 황규봉을 강판시켰다.
이제 OB에게는 3점리드를 지키는 일만 남아 있었다. 4회말 강철원을 구원, 4점째에서 추가실점을 막아낸 황태환이 7회말 내리 2개의 사사구를 내줘 무사1, 2루의 위기에 몰리자 다시 박철순이 등장했다.
그의 첫상대 오대석이 풀카운트 끝에 삼진으로 물러나는 순간 런앤드히트 사인에 따라 3루로 뛰던 2루주자 장태수마저 태그아웃당하면서 당장 2사 2루로 상황이 변하자 그것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철순은 4번 이만수에게 중전적시타를 얻어맞고 함학수를 4구로 내보낸 뒤 정현발에게 또다시 중전적시타를 허용, 7―6으로 바짝 쫓기고 2사1, 2루의 위기가 이어지자 결코 안심할 계제가 아니었다. 4타자를 상대로 2안타 1포볼을 허용하며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던 박철순은 김한근을 삼진으로 잡아 기어이 1점차 승리를 지켜냈다. 8회 이후의 공방은 공배메우기에 불과했다.
이로써 OB는 게임스코어에서 2승1무1패로 오히려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광환코치가 이끄는 ‘악동'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서초동 맥주홀에 모여 한잔 술을 나누었다.
오늘 잘들 했어.
헤헤 코치님 목이 하루 더 연장됐네요.
오늘은 작작 마시자구. 내일이 또 있으니까.
아니야, 다시 코가 삐뚜러지게 마셔야 돼.
역전타를 날린 김우열과 쐐기타를 터뜨린 김유동은 코를 벌름거리며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대견해 했다.
이들의 활약은 10월10일의 5차전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윤동균이 1회말 선두안타로 출루하자 2사후 신경식의 선제타점 우월2루타에 이어 김유동이 좌월홈런으로 권영호를 두들겨 단박 3―0을 만들었다. 3회말에는 김우열의 좌월 솔로홈런이 폭발했다. 4―0.
여기서 밝혀둘 일은 이번 시리즈에서 이선희가 만인이 기억하는 만루홈런을 통타당해 비운의 주인공으로 부각돼 있지만 실은 1, 3, 5차전 선발로 나섰던 권영호도 시즌 15승을 올린 거물투수다운 위세를 보여주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OB팬들이야 노장들의 파이팅에 희희낙락하며 "역시 관록은 무시못해"하며 관전평을 나누었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흐흐흐 우리가 무슨 힘으로 치는 건지 알기나 하쇼? 알콜힘으로 치는 거요 알콜힘. 그리고 우리는 안타를 치는 게 아니라 이광환코치 목붙이기를 하는 거요 목붙이기.
그러나 게임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4회까지 1안타로 막아나오던 좌완 선우대영이 5회초 오대석에게 2점홈런을 얻어맞더니 7회초에는 대타 박찬에게 또다시 2점홈런을 통타당해 졸지에 동점을 만들어놓고 황태환에게 마운드를 넘겨야 했다. 1사1루에서 등판한 황태환은 첫상대 배대웅을 사구로 내보내고 후속땅볼로 2사2, 3루의 위기에 몰렸다. 마침 타석에는 앞타석에서 2루타를 터뜨리고 기세가 등등한 함학수가 타석에 나서자 1루가 비어있는 판에 굳이 그와 겨룰 이유는 없었다. 고의4구로 만루책을 편 황태환은 손상득을 외야플라이로 잡아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고 4―4 균형을 유지했다.
OB는 8회말 선두 김우열이 내야안타로 나가자 보내기번트로 2루로 보낸 뒤 적시타를 기대했으나 불발이었다.
삼성은 9회초 선두 박찬이 좌전안타로 나가자 보내기번트로 2루로 보낸 뒤 적시타를 기대했으나 불발이었다.
OB는 9회말 선두 이홍범이 내야안타로 나가자 보내기번트로 2루로 보낸 뒤 적시타를 기대했는데 이번에야말로 불발이 아니었다. 유지훤은 이선희의 2구째를 끝내기 좌전적시타로 연결, 이홍범을 불러들이고 5―4 승리를 일구었다.
내내 술자리에 끼어 있으면서도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던 이홍범은 결승득점을 올리는 수훈으로 체면을 세웠다.
그날 저녁 서초동의 같은 주점. 이광환코치는 입이 함지박만해졌다.
"그것 참 희한하구만. 오늘도 너희들끼리 다 해냈잖아. 여기서 안타 못친 놈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이코치는 기고만장해서 있지도 않은 사람더러 나오라고 탕탕 큰소리쳤다. 그날 OB가 때린 9안타 가운데 ‘악동'들이 뽑은 안타는 무려 7개였던 것이다.
어흠 어흠 목에 힘을 팍팍 준 유지훤은 점잖게 한마디했다.
"코치님, 이제 그 사표는 찢어버리시죠."
술잔을 들던 선수들은 일제히 이코치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냐. 아직 긴장을 풀어서는 안돼. 아직은 게임이 끝나지 않았어. 내일 하루 쉬는 게 어떤 변수가 될지 아무도 몰라. 우리가 2패… 아니 1무1패한 뒤에 3연승을 거둔 것처럼 삼성이 앞으로 3연승을 거두지 못하라는 법도 없어. 이제부터 더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아직 사표갖고 이러쿵저러쿵 할 때가 아냐."
10월11일은 휴식일 또는 예비일이라기보다 양팀 벤치에게는 과연 6차전에 누구를 선발로 기용해야 옳은지를 놓고 끝없이 두뇌를 굴려야 하는 고뇌의 날이었다.
삼성은 2, 4차전에 선발로 올라갔던 이선희를 선발로 올려보낼 타이밍이었지만 그가 5차전에서 3회부터 권영호 구원에 나서 5이닝 이상 던진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럴 때 선발3총사로 활약했던 황규봉이 평소처럼 던질 수만 있다면 만사형통이겠지만 시즌 종반부터 어깨 이상을 보이던 그는 3, 4차전의 난조가 말해주듯 코칭스태프로서는 그를 선발기용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 선택할 카드는 이선희밖에 없었다.
OB로서는 8, 9일 연속으로 마운드에 올라 세이브를 따낸 박철순에게 하루 더 휴식을 주고 7차전에 기용하느냐, 아니면 당장 12일 6차전에 올려보내느냐가 고민거리였다. 그의 허리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당사자에게 등판여부를 결정짓도록 했다.
박철순은 "마운드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던지겠습니다. 이게 어떤 기횐데 여기서 포기합니까"하며 다부진 결의를 보여 코칭스태프를 숙연하게 했다.
그는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야구장 뒤쪽의 씨름장 앞으로 갔다. 거기에는 밴(van) 한대가 서 있었고 그 자리에는 박용민 단장과 서울대 의대교수인 P씨가 타고 있었다. 박철순은 허리춤을 걷어올리고 맨살을 내보였다. 주사바늘이 살을 찔렀다. 그는 OB가 6회말 수비에 나서기에 앞서 다시 한번 이곳을 다녀와야 했다.
10월12일 6차전. 박철순이나 이선희나 모두 몸과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대결을 펼친 이날 게임은 초반부터 쫓고 쫓기는 양상으로 펼쳐졌다.
삼성은 1회말 1사만루에서 이만수의 중월2루타로 2점을 선취했다. OB는 2회초 김유동의 솔로홈런으로 곧장 1점을 따라붙고 3회초 김우열이 중전적시타로 2사2루의 찬스를 살려 동점을 만들었다. 여전히 노장 악동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었다.
삼성은 3회말 이만수의 좌전적시타로 다시 3―2로 앞섰으나 OB는 5회초 2사1, 2루때 김유동이 중전적시타를 뿜어대 두번째 동점을 만들었다. 이만수와 김유동의 장군 멍군 싸움이었다.
이후 양팀은 이렇다할 득점기회를 잡지 못하고 이닝만 채워나갔다.
그리고 맞은 9회초 OB공격. 선두 8번 김경문이 3루앞 내야안타로 살아나갔다. 6회이후 처음으로 나온 선두타자 출루였다. 유지훤은 보내기번트를 시도했으나 번트에 실패하면서 3루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다.
"어 그 녀석. 그것도 못 대?"
유지훤에게 눈총을 준 윤동균은 깨끗한 중전안타를 때려 김경문을 2루에 밀어놓으며 노장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김광수는 이선희의 투구에 맞아 베이스를 꽉 채웠다.
동균아, 이번에는 내 차례다. 두고 봐라. 2루에 나가 있는 윤동균을 쳐다본 김우열은 배트를 쥔 양손에 힘을 더했으나 공의 밑둥을 후려쳤다. 유격수 플라이. 찬스는 투아웃으로 좁혀졌다.
큰 위기를 넘긴 안도가 지나쳤던 것일까. 이선희는 신경식게게 공 5개만으로 포볼을 내줘 그만 밀어내기로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순간 이선희는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여지껏 막아나오던 박철순의 구위로 보아 한번 남은 9회말 공격에서 만회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실점이었다. 어려운 OB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나왔으나 원아웃을 남기고 진짜 거지같은 밀어내기 포볼을 내주다니. 9회말에 1점이상을 뽑지 못하면 밀어내기로 시리즈 결승점을 내줬다는 치욕적인 기록이 남을 터였다.
그러나 이 밀어내기 결승점을 세상사람들의 뇌리에서 밀어낼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일단 더이상 실점하지 말고 버텨보자. 우리라고 1점을 뽑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 마음을 가다듬은 이선희는 김유동을 향해 몸쪽 약간 높은 직구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김유동의 배트가 힘찬 바람소리를 내더니 타구는 좌중간으로 높이높이 멀리멀리 날아갔다. 만루홈런! 이선희는 마운드에서 쪼그려 앉아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이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많은 야구팬들이 이 만루홈런을 결승타로 착각하고 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탓이리라.
‘넉재비' 김유동은 첫타석에서 솔로홈런, 둘째 타석에서 삼진, 세번째 타석에서 1타점 중전안타, 네번째는 내야땅볼, 다섯번째는 만루홈런으로 끝내기 안타를 쳐내며 혼자 6타점을 올려 8―3 승리에 독보적인 수훈을 세웠다. 그에게는 시리즈 MVP의 영광이 돌아갔다.
똘똘 뭉친 인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인화를 이룬 주인공들은 이광환코치의 인솔아래 1무1패로 뒤진 후 맨날 부어라 마셔라 하던 악동들이었다. 그날 축승회에서 맥주병을 흔들어 서로 머리 위에 술을 뿌리던 악동들은 남다른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맥주병을 흔들어 박용민 단장의 머리, 양복 가리지 않고 끼얹는 술에는 남모를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광환코치는 그날 사표를 찢어버렸다.
이것으로 인화가 아닌 '술이 빚은 원년우승' 얘기는 끝났다. 그러나 세상에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하나를 덤으로 추가하고 싶다.
8―3이라는 넉넉한 리드를 안고 9회말 마지막 수비에 나선 박철순은 선두 대타 손상득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잡고 장태수를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이제 우승까지는 원아웃만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제물이 된 타자는 배대웅이었다. 그는 박철순의 초구를 힘껏 두들겼다. 타구는 바운드되면서 박철순의 머리 위로 높이 튀어올랐다. 박철순이 점프해 봤으나 공은 그의 머리 뒤로 넘어갔다. 유격수 유지훤이 잽싸게 달려들며 노스텝으로 1루에 송구, 배대웅을 잡아냈다. 점프하는 탄력에 뒤로 넘어졌던 박철순은 무릎 꿇은 자세로 마운드에 몰려드는 선수들을 두팔 벌려 맞았다. 확정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지않아도 통증에 시달리던 허리가 결정적인 충격을 받고난 다음이었다. 설사 그 전에 허리가 말짱했었다 하더라도 배대웅의 타구를 잡으려다 뒤로 쓰러진 충격은 애당초 허리병이 없었다 하더라도 새로 병을 만들만큼 컸다는 것이 박철순의 얘기다.
첫댓글
동대문상고 출신의
김유동은 인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내리 네번을 낙선했죠.ㅎㅎ https://youtu.be/YYahbOcwMRc
PLAY
김유동선수 30년전쯤에 역삼동 국기원옆에서 식당했었는데 장사 디게 못했었는데요. ㅎ
원년에 계형철 투수랑 통화했었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