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11월까지 문경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으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4년 전체 3등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1944년-1945년 1년동안 일본 만주군에 배속되어 근무하였고,이후 광복 직후에는 광복군에 합류하여 1년 정도 근무하다가 당시 신설되던 육군사관학교(2기)에 입학하였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군인이 되어 조국의 독립을 이뤄내겠다고 뜻을 품을 자들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장개석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중국인 염석산은 여운형의 소개로 한국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을 자신의 군대의 항공 중장으로 임명하였는데 염석산 또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英親王)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국민투표를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전북, 전남, 경북, 경남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위의 전북, 전남의 득표수를 눈여겨볼 만하다.
퍼온 사람 주>
정치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울, 경기 지방에서
박정희는 윤보선 후보에게 크게 뒤지고, 오히려 전남, 전북, 경남, 경북에서 만회한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박정희 압도적 우세지역-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박정희 박빙 열세 지역- 충청도.
박정희 열세 지역- 서울, 경기, 강원)
그리고, 서울, 경기 지방의 투표인구수가 요즘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것은 1962년 당시는 아직 우리나라가 도시화가 되지 못해서
서울로의 인구집중이 심하지 않았던 탓으로 보인다.
(서울, 경기 지방의 인구 집중은 이후 박정희 경제개발시대에 시작된다.)
전체 유권자 수도 1200만 정도인데, 요즘 대선에선 유권자가 2000만 정도 되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50년동안 얼마나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첫댓글 좋은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