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빈 택시를 잡아낸다는 것.
변두리 도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서툴렀다.
긴박하게 솟구쳐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뚫고 기사양반의 귀에 닿을 정도로 내 목소리는 날카롭지 못했고, 남들 앞서 빈 택시를 향해 잽싸게 달려드는 동작에도 나는 턱없이 어설펐다. 그 능력이 부족하면 이미 먼저 임자를 정한 택시라도 합승이 가능한지 다시 한번 소리 높여 갈 방향을 외쳐보아야 하는데도, 내 숫기는 커져 가는 초조함에 반비례로 작아지며 입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살아야 하니, 굼벵이 재주넘듯 그래도 내가 개발한 요령이 하나 있긴 했다. 그것은 목소리 큰 사람들이 도도한 기사양반의 낙점을 받으려고 자기가 갈 방향을 외쳐 부를 때 나와 같은 방향의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사람이 요행히 택시를 잡으면 슬그머니 끼어들며, 나도 같은 방향인데... 합석 좀 합시다... 하며 함께 타는 것이었다.
퇴근길에 복잡한 버스를 탔다가 소매치기를 당하고 여러 후유증을 앓은 다음에, 가급적 만원 버스를 피해 기본요금 두 배쯤 나오는 택시를 타고 다니던 삼십 조금 넘은 나이의 어느 날, 영등포 시장 사거리. 그날도 퇴근길 택시를 잡는 사람들로 그곳은 붐비고 있었다.
같은 요령을 부릴 양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택시 하나가 내 앞에 딱 멈추어 섰다.
"신월7동..."
굴러온 호박이었으나 냉큼 줍질 못하고, 주눅 든 목소리가 빼꼼 열린 창 사이로 기어 들어갔다.
"타세요."
아니 이런 횡재가 나에게...?
일직선 방향이라 그쪽 갈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뒷자리는 비워두고 얼른 앞자리로 올라탔다.
근데 그 기사양반은 더 이상의 손님은 받지도 않고 부르릉~ 나만 태우고는 서둘러 출발해 버렸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그랬는지, 단호하게 출발하는 택시를 보고 포기를 했는지, 아무도 내가 탄 택시를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합승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절. 혼자 타고 가는 것이 미안할 지경...
"기사아저씨... 저... 가다가... 합승할 사람 보이면 태우세요..."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태울 사람 있는데... 잠시만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기사양반, 택시를 공중전화박스 앞에 세우더니 내려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래 새꺄~ 앞에 나와서 기다려~ 다 와간다~ 손님 하나 태웠어."
그러더니 돌아와 미안합니다 손님~ 하고는 다시 택시를 몰았다.
"손님~ 죄송합니다. 한 사람 태울게요."
안 그래도 미안하던 차, 얼른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오목교를 지나 한 사람이 뒷자리에 탔다.
근데 이 사람 말투 좀 보소~ 타자마자 다짜고짜...
"아~ 그 새끼 땜에 죽겠네. 새끼... 빵에서 나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사고를 쳐~"
헉! 이게 뭔 말이래...?? !!! 과묵하고 점잖아 보이던 기사양반 받는 말...
"새끼 그거 빵에서 한 십 년 더 푹 썩고 나와야 되는데... 에이... xx놈~"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더니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이 되는데, 띵한 가운데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 며칠 전 뉴스에...
택시를 이용한 강도사건이 늘고 있는데, 그 수법이 택시에 손님을 태운 다음 조금 더 가서 합승을 가장한 일당을 태우고 강도질을 한다는...
허걱! 딱 그거네!!! 아고... 이 일을 워쩐디여~
"새끼~ 만나기만 해 봐라~ 한 주먹에 강냉이를 확 뽑아버려야지~"
"아,,, 또 옛날 버릇 도질라 카네~ 참아야 되는데... 이 새낀 와 나와 가지고..."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기사양반과 뒷자리에 탄 그 친구의 대화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나를 겁주려고 그러나 보다...'
'한 명도 안 쉽겠구만... 두 명이나?'
'뒤에서 내 목에 칼이라도 들이밀면...?'
'소리 지를지 모르니 어쩌면 망치로 뒤통수를...? 헉!'
어릴 적 골목대장 체면 죄다 내다 버렸는지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공포로 가득 차버렸다.
'지금 내려 달라고 할까...?'
'아니야... 그러면 눈치채고 바로 범행을 결행할지도 몰라...'
'그 흔한 경찰이 오늘은 왜 이렇게 안 보이냐...'
'혹 모르니 비명이라도 지르게 창문이나 열자...'
더운 척, 손으로 얼굴을 부치며 창을 내리는 순간, 턱!
뒷자리의 그 친구가 내 자리 등받이 위를 턱 짚더니 창 밖의 소음 때문에 그랬는지 바짝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아이고 놀래라~ 까딱했으면 비명 지를 뻔했잖아~'
강도는 자기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살려두지 않는다 했으니, 기사양반을 볼 수도, 고개 돌려 그 사람을 볼 수도 없었던 나는 그냥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눈앞에 꽂힌 기사 양반의 이름과 차량 번호를 외우며 온 신경을 뒤통수로 모았다.
'아...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으면...'
발에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가는지 발이 저려왔고, 굳은 목도 어깨도 다 저렸다. 신경이 곤두선 뒤통수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다 일어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딸아이를 바라보며 웃는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때 손에 흥건히 고인 땀은 아마도 식은땀이었으리라...
드디어 신정사거리를 지나고 남부순환도로 건널 목, 다행히 두 사람의 살벌한 욕설은 계속되었지만 택시는 옆길로 빠지지 않고 곧바로 집을 향해 달려왔고, 신호등만 건너서 내리면 된다. 마침 신호등 건너에 교통경찰이 보였다. 휴... 살았다...
신호등을 건너자마자,
"아저씨. 여기 세워 주세요~"
"네~"
나의 짧은 그러나 극도의 긴장이 무색할 정도로 기사양반은 너무 쉽게 대답하며 차를 세웠다.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 그 택시에서 내가 열어둔 창문으로 그들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쫌 쌩쌩 밟아라~ 썽질 더러븐 새끼라 늦으마 또 지랄하지 싶다~"
내리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온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서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날 나는 꼬맹이 주머니에 모아둔 비상금 털어 케이크 하나 집에 사들고 들어갔지 싶다.
새로 살아난 내 생명을 자축하기 위하여...
첫댓글 ㅎㅎ
긴장하고 줄줄이 글 따라서
웃다가 안도의 숨을 쉬었네요.
기억도 총총하시고 잘 읽었습니다.
88년 신월동에서 잠시 살았기에
동선이 훤하게 느껴저서
더 반가웠어요.
생애 처음 집 계약서 도장 찍던 날
부동산에 앉아 왜 그리도 떨리던지
그 신월동 집을 수십년 세를 놓았다가
딱 1년 살아보고 팔았는데
지금도 잊힐수 없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신월동에 사셨다는 댓글 기억납니다. 88년에 사셨으면 저도 그때 그곳에 살았으니 같은 동네 이웃이었네요. ㅎㅎ 다시 반갑습니다.
아이고 무서브라 ~
긴장하고 읽었는데요.
직업에 귀천은 없지요.
하지만, 직업에 따라
고운 사람도 거친 말을 써요.
특히 서비스업을 하는 분들은
손님에게 정중한 말을 하지만,
가까운 이 들에게
함부로 하는 말은 무섭습니다.
뒤통수에 눈이 달리면?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지금은 편히 돌아보지만 그땐 그 십분여가 아주 초긴장 싱태였지요. 온갖 나쁜 상상들을 해대며...
ㅎㅎ
생각해보니 뒤통수에 눈이 달려도 참 무섭겠네요. ㅎㅎ
ㅎㅎㅎㅎ
스릴있는글
재밌어서
죄송 해요....추천
그때 생각하시고
굳건 하시고
건강.만수무강요 ㅎㅎ
아자!!~~
굿나잇! 요...~
제풀에 죽다살다 했습니다. ㅎㅎ
완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셨네요. 스릴은 만땅이었어요.ㅎ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딱 그짝이었어요. ㅎㅎ
스릴은 지금이고, 그땐 생사고비에 매달려있었지요. ㅎㅎㅎ
어찌나 생생한지 마치 엊그제 당한 일같군요.
마음자리님은 정말 추억을 먹고 사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ㅎ
그러게요. ㅎㅎ 놀랐거나 이상했거나 신기했거나 들떴던 일들은 늘 그때 그 당시처럼 생생히 기억이 나요.
ㅎㅎㅎ
마음자리님은 그 시간에 오금이 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읽는 저는 재미있네요.
별일 없으셨으니 지금 이자리에 계신거라 결말은
아는지라 ~~
근데 그 두분은 어떤 분들이셨을까....
입이 거칠면 좀 무섭긴 하더라구요.
ㅎㅎ 저도 지금 뒤돌아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어요.
뭔가 거칠게 살아오셨지만 나름
정이 많은 분들 아니셨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