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아무르강은 몽골의 오논,케를렌에서 발원하여 아르군,부레야,제야 강을 합치고 백두산에서 줄기에서 발원하는 송화강,목단강을 합쳐 하바로프스크주와 사할린주 사이의 타타르 해협으로 태평양에 합류하는 4300킬로미터의 거대한 동북아시아 문명의 젖줄입니다. 아무르 호랑이,아무르 불가사리등 동식물의 이름도 아무르와 결합되어
자기의 출생지를 명료하게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아무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러시아인들이 불어의 amour라는 사랑과 정열의 뜻으로 불렀다는 것은 견강부회에 불가하고 우리조상들이 아!물 이라
해서 아무르가 되었다는 고려인들 이야기도 별 신빙성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몽고어 계통의 물을 뜻하느 <무렌>에서 파생되었다는 말이 조금 그렇듯합니다.
저는 속으로는 중국에서 표시한 목릉하 木凌河가 그 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중국인들은 종성의 기역발음을 못해 <무르하> 첫음절이 자음이되면 발음상 모음 ㅇ 이 붙어서 아무르하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르강은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이라 제일 남쪽의 발원지인 목릉하에서 이름을 채용했으리라는게 제 추측입니다.
백두산줄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중 맨 서쪽에서부터 송화강, 목단강 ,목릉하는 북쪽으로 흐르고
훈춘하,우수리강은 남으로 흐르는 수계로서 명백히 구분됩니다.
(바로 이수계가 우리민족의 고유영토입니다 우수리강 남서,훈춘강,부르통하가 우리민족이 조선조 말까지도
지켜온 고유 영토입니다)고려 광종때 복속시켰으나 중기이후 독립적으로 발전해 고려의 절제에서 벗어나 오히려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인 고려 동북변을 공략해 옵니다.
조선조 초기에는 지금의 목단강,영고탑,아성까지 미쳤고 아무르강 동쪽지역의 동여진에 대해서는 조선의 절제를 받기는 하였으나 식민하거나 관리를파견하여 감독하지는 못한걸로 보입니다.
윤관장군의 동여진 정벌은 지금의 집안 국내성부근에서 출정 통화.매하구,이도백하,왕청을 거쳐 목단강,영고탑부근까지
동여진을 공격한 것으로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흑룡강성의 경계인 천교령,노야령,노송령 경계를 넘어온
여진세력을 정벌한것으로 생각됩니다. 동영현 소수분하 부근이 바로 윤관장군이 고려경계비를 세운 선춘령이라 는 지도자료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지도나 물길이나 성곽의 위치를 설명한 모든 설명에는 핵심적인 오류가 있는데 바로 목릉하와 우수리강(중국에서는 水汾河) 수계가 다른것을 혼동한것 입니다. 윤관장군이 쌓은성중에 거양성은 60리를 더 남으로 내려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어 지금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남쪽의 크라스노야르성이 분명합니다.
( 巨陽성과 크라스노야르는 발음도 의미도 비슷합니다.크라스=붉은 야르=빛나는)
그러나 선춘령,공험진 설명에는 모두 소하강가에 있고 수빈강과 강물이 남으로 꺽여 바다로 유입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은 바로 옆줄기로서 왕청현 고개넘어서 발원 수분하 동영을 거쳐 남으로 꺽이는건 상류는 수분하,하류는 우수리강으로서 북류하는 목릉하와 혼동하기 쉽습니다,.
소하강은 현대의 목릉하이고
계서,밀산을 거쳐 북류하여 아무르강으로 합류합니다.
수빈강은 처음에는 북동류(동영현지역)하다가 수분하에 이르러 꺽어져 남동류하는 수분하인데 거양성(우수리스크 남쪽 크라스노야르 ,우테스노에 성) 부근을 거쳐 아민(라즈돌나에)에서 바다로 흘러 블라디보스톡 반도 좌측으로 유입됩니다. 소하강 줄기와 수빈강이 같은 줄기라 생각한것이 핵심오류입니다.
아무르는 바로 민족사의 영토문제를 해명할 핵심단어입니다.
그래서 저의 아이디로 정했습니다.
청나라의 누르하치는 원래는 조상때 흑룡강성 하르빈 근처의 아성시에서 발흥하여
(바로 이 아성이 우리가 여진족이 흥기하였다는 회령상경부입니다. 한반도에 있지 않습니다.
함경도 회령은 작은 산골에 불과한 궁벽한 곳입니다)요령성 신빈현의 혁도아랍으로 옮겨 거기서
조선,명,동여진이 갈라지는 수계의 가운데를 기틀로삼아 후금>청나라를 세웁니다.
중국정부에서도 滿族의 발상지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김영삼 대통령이 방문시 한자를 잘못쓰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흑룡강성 아성시는 옛 쌍성이며 이성계가 기틀을 잡은 알도리,현성도 이 지역 입니다.
이성계의 선조인 목조,환조,도조,익조의 무덤도 모두 흑룡강성에 있었습니다.
원나라시기 산길대왕의 개원로로서 훗날 민족반역자 조휘,탁청이 40성을 들어 원나라에 바친
쌍성총관부도 여기입니다.
조선에서는 함주,함흥부라 불렀으며 함흥차사란 바로 흑룡강성 아성시까지 다녀오는 먼길이었습니다.
함경남도 함흥은 한양에서 말타고 이틀이면 가는거리입니다.
중국이 이땅을 러시아에게 할양한건 대대로 동여진을 훗날 청나라로 발전하는 건주위가 직접통치한적이 없고
오히려 조선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남의 땅을 떼준것이고 이것도 원래는 20리를 더 올라와서 비노그라돕카 강에
청,러간 국경이 정해지기로 했으나 청나라 영관급 좌령이 아파서 위관급이 대신집행햇고 러시아측 장교가
억지를 부리자 권한과 재량이 없는 위관은 어쨋든 잡음없이 처리하고자 이를 방치해 중국의 동해 출해가 막히게됩니다.
첫댓글 Good
교과서에는 이런거 안가르쳐주죠. 친일매국사학의 폐해입니다. 한반도에 우리 역사를 묶어두려는 더러운 짓을 하고 있는거죠.
흠 드넓은 만주벌판을 누비시던 조상님들의 강인한 개척정신..존경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연결된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닐듯
귀한글 감사드려요
수필가?
국제백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