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무심히 앉아 있자니
불현듯 한달 전에 돌아가신
둘째 시숙이 문득 떠 올랐습니다.
살았을 제 술만 취하면
괴물로 변해 버리는 술 주정탓에
일찍이 아내도 떠나 버리고
자식도 하나 없이
50평생을 살면서 무던히도
가족 들을 애 먹였었습니다.
그러다 돌이 킬수 없는
병을 얻게 된걸 안 것은 작년 이었죠.
작년 7월경...
그때는 시어머님이 직장 암에 걸려서
한참 가족 들이 충격에 빠져 있을때 였는데
설상 가상으로 시숙마저
암이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것도 손을 쓸수 없을 정도로
이미 모든 장기로
암이 진행 되어 버린 상태였죠.
한집에 암이 2명 이라니 정말 암담하더군요.
어머님은 다행히 수술후 많이 좋아 지셔서
퇴원했지만 시숙은 어쩔수 없이
그냥 시골 집으로 모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놓아버린
생명의 끊이 었건만 시숙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 하려 하지 않았고
정말 무던히도 살고 싶어 했습니다.
아예 자신은 아무데도 아프지 않다며
의사들이 잘못 진단 한 것이라며
자신에게 스스로 처방을 내리고는
엉뚱한 약들을 사다 달라고 조르며
가족 들의 가슴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6개월이라는 시한부 생명이 다해 갈때쯤
설날이 다가 왔습니다.
시숙에게는 마지막 명절이라는 생각에
가족들 모두 우울한 새해를 맞으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누구 하나 숨소리 조차
편하게 내 쉬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런 그때 시숙이 막내 동생인
저의 신랑을 갑자기 부르더군요.
그리고 잠시후 시숙의 방에서 나온 신랑이
조카와 아들을 데리고 시숙방으로 가더니
세배를 드리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자 시숙은 아이들의 세배를 제지하며
싱긋이 웃고는 아픈 사람 에게는
세배 하는게 아니라며
파르르는 떨리는 앙상한 손으로
지갑에서 빳빳한 만원권 2장을 꺼내어
아주버님 생에 마지막인 세뱃돈을
조카 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가족 들은
아픈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며
쓸데없이 헛기침을 해 대며
먼산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한창 보름 준비로 분주하던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 시숙이
임종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시골로 달려 갔지만
벌써 시숙은 그렇게도 한많고 미련이 많던
이세상을 소리 없이 조용히
그렇게 떠나고 난 뒤였습니다
허무하기 그지없는 심정으로
장례식을 치루던날...
상주하나 없는 쓸쓸한 장례식에는
새하얀 눈이 펑펑 내려서
이세상을 떠나기 싫어 했던
아주버님 마음을 아는냥
가시는 길을 더디 가게 했습니다.
남은 가족들은 어머님을 부여 안고
제사 지내줄 자식 하나 없이
이승을 떠난 시숙이 안타까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참뒤 슬픔을 가슴에 담고
시숙의 유품을 정리 하던중
지난 설에 애들 준다고
우리 신랑에게서 받은 빳빳한 만원권
남은 것과 50여 만원이 든
통장 하나를 발견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흰 편지 봉투 하나가 있었는데
안에는 내용물이 없고 봉투 겉지에는
힘겹게 쓴 한줄의 글이 있었습니다.
"엄마 약값 하소"
그것이 시숙으로서는
그 동안 무던히도 애 먹였던
어머니에 대한 사죄이고
마지막으로 드리는 용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끝내 붙잡지 못하고
자식을 앞세워 버린 팔순 노모는
한줌의 재가 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둘째 아들의 마지막 용돈을 받고는
끝도 없이 애끓는 통곡을 하셨습니다.
아주버님!
부디 고통이 없는 하늘 나라에서는
이승에서 못다 누린 행복을
맘껏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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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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