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참깨 순지르기를 했습니다. 참깨는 꽃차례의 꼭대기가 계속 자라는 무한꽃차례이기 때문에 아래에 달린 꼬투리는 다 익어 벌어지는데도 위쪽에서는 계속 꽃이 핍니다. 그래서 늦게 꽃이 피는 것은 제대로 여물지도 못한 채 수확을 하게 되지요.
따라서 꽃이 핀 후 35~40일 됐을 때, 보통 8월 5일을 전후해서 순을 잘라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참깨알이 충실해지고 참깨가 쓰러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수확할 때 쭉정이를 골라내는 수고도 덜게 됩니다. 자라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제일 아래 달린 꼬투리부터 18~20번째 마디 위에서 꽃이 피고 있는 순을 손으로 따주거나 가위로 잘라주는 겁니다. 그나저나 너무 가물어서 정말 큰일입니다. 어쩌다가 중간에 순이 잘린 녀석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해 꼭대기에 10개 정도의 꼬투리가 한데 몰려 달려 있었습니다. ********* *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참깨 한 알의 무게 / 장미숙
나물을 무치려고 보니 볶은 참깨가 그릇 바닥에 깔렸다. 그 정도로는 양이 차지 않아 참깨를 볶으려고 냉동고에서 봉지를 꺼냈다. 나물은 참깨를 넉넉히 넣고 조물조물 무쳐줘야 맛이 나기 때문이다. 봉지 속 참깨를 두어 컵 덜어 넓은 볼에 붓고 살살 씻었다. 그런데 물이 넘쳐 그만 참깨가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난 싱크대 수챗구멍을 막았다. 놀랄 만큼 잽싼 행동이었다. 그런데 콩이라면 모를까. 쌀알보다 작고 가벼운 깨를 다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안타깝게도 찻숟갈 하나 정도의 참깨가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허탈했다. 흩어진 참깨를 훔쳐 담으며 친정어머니가 떠오른 건 당연했다. 한 알이라도 새어나갈까 봐 참깨 손질에 정성을 쏟던 모습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챙이질(키질) 하던 어머니를 가만 바라보았던 그 날은 약간 덥다 느껴지던 가을날이었다. 마당에는 온통 참깨였다. 바람벽에 세워져 있던 깻단을 비롯해 털고 있는 깨, 말라가던 깨가 마당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었다. 비가 오면 낭패라고 어머니는 햇살 좋은 날, 참깨를 털고 까불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참깨 터는 일을 거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이 되어 참깨를 털기는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는 더러 했겠지만 선명한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가 워낙 연로하신 데다 일이 많아 보여 덤벼들었지만, 어머니는 내가 미덥지 않은지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살살 애기 다루듯이 털어야 쓴다. 씨게 털면 밖으로 다 튀어나가분께 요라고 눕혀서 털어야 써.” 어머니는 몸소 시범을 보여주며 내가 잘하는지 지켜봤다.
“오메, 엄마는 참 별 걱정을 다 하네. 잘 할 수 있다니까.” 난 큰소리를 치고는 막대기를 잡고 참깨를 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 보이던 참깨 털기가 만만치 않았다. 힘 조절이 어설퍼서인지 깔아놓은 비닐 밖으로 알갱이가 튕겨 나가는가 하면 꼬투리째 떨어지기도 했다.
소리부터 달랐다. 어머니 소리는 “타닥 타닥 타닥~” 일정한 리듬으로 안정감이 있다면 내 소리는 “탁타다닥 타탁탁타 타타타!” 엇박자였다. 단을 잡고 꼼꼼하게 털어줘야 소실되는 참깨가 덜해서인지 어머니는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빨리 일을 끝내려는 욕심에 대충 털다가 어머니께 딱 들키기도 했다. “타다닥”소리에 “와그르르” 쏟아지던 참깨들, 땅에 떨어지면 눈에 띄지도 않을 한 알이 모여 한 줌이 되고, 한 바가지가 되고, 한 되 한 말이 되는 참깨였다. 그렇게 작은 알갱이가 한 말이 되기까지 그 한 알에 담긴 정성과 땀이야 말해 무엇하리.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참깨도 손이 많이 가기로는 고추 농사에 버금가지 싶다. 베는 것부터 시작해 운반과 자잘한 뒷일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양으로 깻단을 묶어 말리는 게 첫 번째 순서다. 다음은 크고 작은 체로 치기, 까불리기, 티끌 골라내기, 말리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다.
키질은 참깨를 마지막으로 까부르는 일이다. 키질에는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난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키질하는 모습을 곧잘 바라보곤 했다. 신기해서였다. 그냥 가볍게 쳐올리는 것 같은데 알갱이는 키 안으로 몰리고 검불만 밖으로 빠져나갔다. 알갱이와 잡티가 딱, 분리되는 것이다. 어떻게 알갱이가 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키질을 할 수 있을까. 신기함에 매료되어 어머니를 따라 하다 낭패를 보기도 했다.
키질은 양력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 하는데 어머니가 그런 원리를 알 리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키질에는 신명이 묻어있었다. 키질이 끝나면 어머니는 바가지로 키 안의 참깨를 쓸어올렸다. 그것도 오묘한 기술이었다. 한 톨 흘리지 않고 쓱싹 쓸어 올린 참깨를 양동이에 담아 어머니는 또 잡티를 골라냈다.
이젠 말리는 과정이 남았다. 어머니는 참깨를 일일이 다 씻었다. 자식들 손이 다시 가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다. 말개진 참깨를 평상에 펴 놓으면 볕 좋은 날 또록또록 말랐다. 참깨가 마르는 동안 수시로 오가며 잡티 고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깨를 털고 난 뒤, 마당이나 깻단 밑에 떨어진 참깨를 쓸어 담는 것도 어머니의 일이었다. 그렇게 모은 참깨는 어머니 몫이었다. 머드러기는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당신 몫은 늘 똘기나 도사리였으니 참깨도 마찬가지였다. 좋지 않은 시력으로 마당의 참깨 한 알 한 알을 줍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게도 참깨 한 알은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참깨 한 알에는 어머니의 바람과 수많은 이야기와 어머니의 세월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도 손이 많이 가는 농사를 매해 거르지 않고 짓는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다. 자식들에게 깨끗한 먹을거리를 주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올해는 예기치 않았던 폭염으로 인해 오히려 참깨가 풍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식들 몫을 남기고도 몇 됫박 팔았다며 좋아하셨다. 덕분에 내게 돌아온 참깨양도 예년보다 많았다.
수챗구멍으로 사라져버린 참깨가 한없이 안타까운 건 키질을 하던 어머니의 구부정한 허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는 참깨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어머니는 그만큼 당신의 건강에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떨어진 한 톨마저 줍고 또 주웠을 것이다.
나는 오늘 참깨를 볶으며 생각한다. 참깨 한 톨이 내게로 오기까지 어머니가 흘려야 했을 땀을, 그리고 그 안에 든 사랑의 무게를…. 보일까 말까한 한 알의 참깨 속에는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고된 세월이 들어있다. |
출처: 정가네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정가네
첫댓글 농사를 짓지않는 집이었으니 참깨농사는 아는바 없지마는...
깨를 씻고 떠오른 깨를 찰박이는 물에 떠내려갈까 조리로 잘 일어내고 소쿠리에 받혀 물기빼선 넓다란 양은냄비에 깨를 볶으시던
엄마생각이 납니다.
모처럼 쉬시는 일요일이면 깨볶느라 곤로앞에 앉으셔서 깨른 볶으시던...
굵은 땀방울 흘리시며.
맞아요. 곤로 앞에서 깨볶는 일 그거 정말...
아래에 올려 놓은 수필이 그런 어머니를 아주 잘 그려놓았더라구요.
꼭 제 얘기를 써놓은 듯 합니다.
여름휴가때 엄마집 가면 마당엔 늘 참깻단이 조르르 세워져 있었지요.
한톨이라도 잃어버릴까봐 바닥엔 천막을 깔았는데
혹여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비닐로 덮느라 이리뛰고 저리뛰고~~
깨터는 일, 키질은 전문가에게만 허락되어진 고난이도 작업이라 난 아예 할 생각도 않았지요.
그렇게 그렇게 수확한 먹거리를 추석날 참기름, 참깨,
기피된 들깨가루, 검정콩 등등
6남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지요.
그러고 남는건 봉지봉지 담아 광에 두었다가
인사하러오는 사람들에게 한봉지씩 들려 보내셨구요.
여름되면 엄마와 함께했던 3박4일간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새겨집니다.^^
엄마 보고싶네요.^^♥♥
생각 밖으로 나영 님도 시골 경험이 참 많네요.
저는 키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 할 수 있답니다. 해 보니까 되더라구요.
예전 부모님들은 정말 그저 자식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정가네(김천) ㅋㅋ 제가 시골 출신인걸 모르셨나 봅니다.
촌에서 자랐는데도 햇빛에 조금만 있어도 어지럽고 해서
농삿일을 거의 안시켰지요.
고구마 심는걸 55살 때 첨으로 해봤다니까요.
ㅋㅋ 그 이후로는 엄마께 무지무지 미안한 맘이 들더라구요.
주는걸 넙죽 받아먹을줄만 알았지요.
요즘 감자 10키로 한상자 시키면 왜그리 헐렁하던지요
늘 꽉꽉 채워 보내주던 울엄마 감자상자에 익숙해서 그렇다는걸 요즘 새삼 깨달았답니다.
엄마 안계신 지금에사 말이에요.
요즘에도 늘 엄마를 찾곤 하네요.^^
@나 영(서울) 그랬군요.
부모님이 큰 농사를 하신 건 아니지만 논농사, 밭농사 다 있었기 때문에 저도 이것저것 다 경험은 해 봤지요.
자랄 때 보았던 걸 흉내내면서 텃밭농사를 짓는데 부모님 생각이 날 때가 더러더러 있답니다.
평생 도시에만 살아서 들깨는 봤지만 참깨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만
훅훅 뜨거운 열기가 온 대지를 감싸는 날, 이마에 주렁주렁 땀방울을 매달아야만 결실을 얻을 수 있겠지요. 참깨 한알의 무게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참깨를 찔 때는 익은 참깨가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너무 더울 때여서 보통 새벽에 찝니다.
그래도 촤르르 참깨가 쏟아지는 그때를 생각하면 견딜 만하답니다.
ㅎㅎ 제 키질 솜씨는 85점 정도 어려서 밥을 지으려면 쌀을 키질해야 했어요
조금씩 섞여있는 겨를 날리고 여름이면 쌀 벌레 때문에 비벼서 키질해서 날려야 했어요 싸래기와 조금씩 흘리는건 닭이 먹으니 괜찮다 했지요
엄마가 하시는건 지켜보다가
한 두번씩 따라해보면 재미있어서 하게 됐지요
참깨 순 자르기는 몰랐네요
시골가서 해드리고 싶은데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나서
한 시간 동안 그냥 갈 자신이 없네요 지난 번에 고쳤던 카센터가 휴가 중이라 기다리고 있네요
저도 농사는 모든 게 낯설지만 자랄 때 부모님 하시는 걸 곁눈질로 봐 둔 것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순지르기는 올해 처음 해 봤는데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더라구요.
너무 가물어서 목표로 한 수확량에 턱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린 소작농이라 참깨나 들깨농사는 안지었어요
그래서 농촌이지만 기름은 사먹었지요
그땐 참기름은 정말 귀한거라 나물 무칠때도 한두방울 떨어뜨리고 병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훔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사서 먹으면서도 듬뿍 쳐서 나물맛인지 참기름 맛인지 모르게 남용을 하고 있네요
할머니 보시면 쯧쯧 하실텐데 ~
하하, 참기름이 귀하다는 건 정말 옛날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농사는 겨우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올해 심은 거라곤 풋나물 말고는 땅콩과 참깨 두 고랑이 모두랍니다.
단위 면적당 수입으로 따지니 땅콩과 참깨가 제일 단가가 세더라구요.^^*
휴,,, 참깨ㄱㅏ 참깨가 되기까지 멀고도 먼 과정을 읽다가 말았습니다.
너무 안쓰럽습니다.
저는 조금 노동하고도 넉넉히 거두는 일만 하니, 참깨농사는 절대 안 지을 생각입니다.
근데 꽃만큼 예쁜 참깨들입니다.
저 모습을 보기 위해 한번 심어 보고도 싶고요.
꽃도 하얗게 핀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과 같은 과정으로 참깨를 얻는 일은 아마 시도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못하지요 ㅎㅎ
아, 어려워 보이나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뜻밖에 참깨는 심어만 놓으면 그 다음엔 크게 손 볼게 없는 쉬운 농사입니다. 가뭄에도 잘 견디고요.
수확하는 과정이야 조금 번거롭지만 기쁨이 함께 하니 할 만하지요. 한번 심어보세요. 재밌어요.
짬깨 농사가 이렇게 까다롭고 어려운 줄 몰랐네요
유년시절 참깨하면
굵은 초록색 벌레생각에
으으~~~
조그만 참깨알 한알의
소중함이 느께집니다
키질 이야기 진짜 올만에
듣습니다
참깨 농사는 쉬워요. 그러니 제가 심지요.
저도 그 깨벌레는 싫지만 지난해 보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라구요.
작은 참깨 한 알이 한 홉이 되고, 한 되가 되고, 한 말이 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