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군도의 섬을 탐방하기 위해 과감히 길을 나섰다.
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굴업도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파도가 높아 굴업도에서 하루를 더 묵는 바람에 덕적도와 소야도는 포기하였다.
문갑도는 수억년의 세월이 빚고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의 걸작들이다.
덕적군도는 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선갑도, 굴업도, 선미도, 백아도, 울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 옛날 ‘망구 할매’가 흙으로 섬을 만들다가 무너지자 그것을 주먹으로 쳤다고 한다.
그 흙들이 산산이 흩어져 섬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주에서 새벽 4시 반에 출발하여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으로 갔다.
샌드위치로 대충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40분에 출항하는 덕적도행 배를 탔다.
대부고속훼리3호는 약 1시간 50분만에 덕적도에 닿았다.
덕적도는 8개 덕적군도의 어미 섬이다.
문갑도로 들어가는 뱃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서 섬을 대충 둘러보았다.
덕적도 도우선착장에서 11시 20분에 출항하는 나래호에 승선하였다.
나래호는 문갑도에서 굴업도, 백아도, 울도, 지도를 선회하는 여객선이다
오늘도 '섬섬옥수'는 나와 동행하였다.
섬으로 향하는 나의 열정이 식을 때까지 함께할 것이다.
문갑도는 섬의 형태가 옛날 선비들이 사용했던 문갑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에는 단애(斷崖)가 발달하였다.
섬의 동쪽 만입부에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지역이 있는데 이곳에 취락이 자리잡았다.
나래호는 약 20분 만에 문갑도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민박집 사장님이 직접 트럭을 몰고 마중나왔다
관광객은 안산에서 왔다는 할머니들과 우리 일행이 전부였다.
전화로 예약한 광복호 선장댁에 여장을 풀었다.
방이 두개인 2층 전체를 통째로 내주어서 편안하게 지냈다.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도 수준급이어서 먹을 때마다 행복하였다.
문갑도는 덕적군도의 섬 중에서 굴업도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섬이다.
문갑도 선착장에 내려 오른쪽으로 600m쯤 되는 곳에 문갑리마을이 있다.
문갑도에서는 가장 크고 유일한 마을인데 궁핍해 보이진 않았다.
마을 중앙에 근사한 건물들이 보인다.
보건진료소와 다목적회관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이다.
문갑도는 세 가지 종교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
천주교, 감리교, 장로교다.
당집도 있었는데 몇 년 전 만신이 눈을 감으면서 없어졌다.
1964년에 세운 천주교 공소는 신자가 8명이라고 한다.
공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입구에 고해소가 있었는데 손때 묻은 창문이 정겨웠다.
이 방에서 어떤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받았을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화유산 깃대봉(277.6m)을 올라가기로 했다.
화유산은 문갑도에서 유일한 산이고, 깃대봉은 문갑도의 최고봉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천주교 공소 오른편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처녀바위까지는 소사나무와 갈참나무, 소사나무가 많다
깃대봉을 500m 남겨둔 곳 왼쪽으로 처녀바위가 있다
섬에서 마땅히 나들이를 갈만한 곳이 없는 마을이었다.
처녀들이 이곳으로 소풍을 와서 춤을 추고 놀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작년에 산불이 나서 불에 탄 흔적이 있었다.
죽은 땅에서 가장 먼저 멱쇠채가 노란 꽃을 피웠다.
꽃이 민들레와 비슷하지만 잎 모습이 민들레와 완전히 다르다.
'멱'은 '미역'의 줄임말로 멱쇠채 잎의 형태를 보면 미역을 닮은 듯하다
처녀바위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500m 정도 깔딱고개를 올라 깃대봉에 닿는다.
깃대봉은 ‘황해 제일경’이라 불릴 정도로 ‘뷰 포인트’이다.
이곳에선 덕적군도의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흘기재(屹氣재)에서 잠시 쉬어갔다.
이곳에 우뚝 솟는 정기가 서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주변에 삼신샘이 있는데 이 물을 떠서 정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진고개에서 진모래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길래 몇번이고 망설이다가 내려갔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한적한 해변에 서니 굴업도가 가까이 다가왔다.
진모래해변의 한켠에 범상치 않은 집 한채가 보였다.
이곳에 들어와서 7년째 혼자 살고 있다는 남자의 거처다
사람이 반가왔는지 지나가는 우리를 불러서 커피를 타주었다.
대도시에서 큰 학원을 운영했는데 모두 정리하고 이곳에 들어와 혼자 산다고 했다.
진모래해변에서 진고개로 다시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물거리나무로 부르는 소사나무가 초록 빛깔을 뽐내고 있다.
한월리해수욕장 근처 야산에 새우젓갈을 담는 독을 만들었던 가마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갑도는 1970년대까지 새우가 엄청나게 많이 잡히는 풍요로운 섬이었다.
당시에 새우젓을 담는 독을 짓는 공장이 세 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깃대봉을 거쳐 이곳 한월리해변까지 등산은 사실상 이곳에서 끝난다.
한월리해수욕장은 단단한 모래질 해변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지만 매년 모래언덕이 80cm 이상 없어지고 있다니 안타깝다.
한월리해수욕장의 끝부분에는 해골바위가 있다.
벌집 모양처럼 움푹움푹 패여 있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다
수억년의 세월이 빚고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의 걸작들이다.
한월리해변과 문갑해변 사이의 고개에 ‘할미염뿌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할미염뿌리는 두 해변 중간에 바다로 뻗어나간 돌출해안이다.
문갑도에서 '뿌리'란 말이 붙으면 낚시터다
할미염은 바위섬이다.
대동굿 기간에 아이를 낳을 산모가 있으면 이곳에 보내 초막을 짓고 애를 낳게 했다.
이곳에서 낳은 아이를 할미염네라고 불렀다.
지금도 문갑도에는 ‘할미염네’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마을 앞에 있는 문갑해수욕장으로 나와서 하루 일정을 마쳤다.
문갑해수욕장의 모래는 미세하고 곱다.
사람이 다니는 해안도로는 온통 모래로 뒤덮여 노랗게 보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리는 아랑곳하지않고 문턱뿌리해안의 사자바위를 찾아갔다
마치 사자가 바다를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형상이다.
사자바위는 문갑도에서 “액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해왔다”고 전해진다.
벌집 모양처럼 움푹움푹 패여 있는 벌집바위가 보인다.
바닷물에 의한 염풍화작용으로 벌집과 같은 특이한 양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과정에서 생긴 풍화를 풍화혈(타포니)이라고 한다.
문갑도 기암괴석 8경 중 하나인 당공바위를 찾아갔다.
당산 밑에 공같이 생긴 동그란 바위와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당공바위의 구멍에 들어갔다 나오니 새로 탄생하는 느낌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걸어가는데 예쁜 꽃이 보였다.
잎이 활짝 피기 전의 모습이 고깔같아서 '고깔제비꽃'이라고 한다.
문갑도에서 12시 15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떠나왔다.
굴업도는 홀수일에 들어갔다가 짝수일에 나와야 한다.
홀수일엔 진리-문갑도-굴업도로 3번 만에 들어간다.
짝수일엔 진리-문갑도-지도-울도-백아도-굴업도 6번 만에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