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 많은 지체들이 관심을 표해온 아래의 글을 다시 이곳에 자료로서 올리는 것이 좋을것 같아서 올립니다. 주님이 서울교회에서 움직이고 계시는 것을 보는 것은 놀랍습니다. 서울교회 장로치회가 강화되고 달콤한 역사하는 하나가 있도록 계속 기도해주시기바랍니다. 특별히 최고의 어장의 대학들이 집중되어있는 서울에서 주님이 인수증가의 길을 얻으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오스틴에 추가 자료를 요청해둔 상황인데, 오는대로 연구해서 단 루퍼의 이상과 부담을 내재적으로 연구할 것인데 결과물이 있으면 다시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아멘)
"Donald Lee Looper(1945-2003):
I knew a man in the spirit, who counted the cost, paid the price and had a life of no regrets 저는 영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그는 댓가를 계산했고, 값을 지불했고, 그리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 단 형제님 의 장례식 전단지 전면의 글-
Donald Lee Looper : 그는 11월 28일 오전 9시 경(추수 감사절 다음 날) 심장마비로 주심품에 가심으로서 그의 이 땅에서의 58년의 순례여정을 마쳤습니다. 그가 죽었을때 그의 책상위에 단 하나의 액자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count the cost, pay the price and have a life of no regrets 즉 댓가를 계산하라. 값을 치루라. 그리고 후회없이 미련없이 살아라"였습니다. 그의 아내인 Judy Looper는 한 마디로 그녀의 남편을 평하기를 'I knew a man in the spirit'라고 했습니다. 이 두 문장을 형제님들이 하나로 묶어서 단의 장례식 전단 전면에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계시(복음서원 간) 65쪽에 보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언급하면서 이상수 형제님이 텍사스 주의 교회들을 방문한 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4년 텍사스 주의 서북의 조그만 읍인 Plainview를 방문한 것을 말하고, 1965년 Austin에서 IH35를 타고 북으로 2시간 반 걸리는 곳에 위치한 Waco를 방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Waco 또한 아주 작은 읍인데 그곳에 대학이 있습니다. Baylor Univ. at Waco이죠(이 대학은 이번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은 것이 있음으로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지금의 가장 연장한 동역자 중 하나인 Benson Philip이 그 대학에 다닐 때 회복되었습니다. 그가 텍사스 주 전체에서 네번째로 회복된 분인데 그를 통해서 회복된 다섯번째 사람이 Donald Lee Looper이고 여섯번째 사람이 '단'의 부인인 Judy Looper입니다. 단은 전도가 유망한 야구선수였는데, 졸업반때 이상수 헝제님의 LA 특회를 한번 참석하고는 즉시 회복안에 들어왔으며 완전히 삶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후 한번도 후회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78년과 87의 반역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시험을 통과했으며, 주님이 주신 위임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 매우 '실질적이고 내용있는 계속 전승될 가치가 있고 발전될 가치가 있는 유산'을 남기고 주님품으로 갔습니다.
Howard Higashi가 주의 회복 안에 풍성한 찬송의 유산을 남기고 주님의 품으로 가신 것과 같이, 단 루퍼는 우리에게 최고의 어장인 대학을 몸의 건축과 성공적으로 접목시킴으로 주의 회복의 장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유산을 물려준 것입니다. 물론 하워드 형제님도 일생동안 대학생들을 섬기다가 주님 품에 가셨습니다. 그가 돌아가실 때 그의 집은 LBCC(Long Beach City College) 후문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워드 형제님의 유산은 아무래도 젊은 이들을 매혹할 수 많은 찬송이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두 형제님들을 사용하여서 주의 회복의 장래와 전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유산을 일으키사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두 분은 공히 추수 감사제 다음날 돌아가신 것입니다. Minor Chen 형제님이 Austin 교회 주일 추모 집회때 언급한 것처럼 이 두 분은 새 예루살렘의 양끝을 이룰 만큼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지만, 주님은 이 두분을 사용해서 젊은이들을 얻고자 하는 회복의 전략을 실험하고 완성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로 이분들은 익은 열매로서 주님이 그분의 누림을 위해 취해가신 것입니다.
2003년 12월 6일 Austin Convention Center에서 약 2,000여명의 내외빈들이 모인 단 추모집회와 7일 Austin 교회의 주일 오전 신언집회 및 이후의 많은 가정집회들에서 단 형제님의 목양과 이상과 삶과 사역에 대한 교통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가 죽음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저 또한 그런 사람을 잠시나마 알았던 것에 대해서 더없는 감사가 있고 형제님 앞에 설 때 부끄럼이 없는 자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1. a man of life :
그는 생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생명이 역사하고 그것도 오직 생명만이 역사한다'는 것을 100% 믿은 몇안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 그였다고 합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어떤 식의 교정이나 통제나 제한도 통하지 않고 오직 생명을 신뢰했고, 어떤 것을 안배하기를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생명이 분출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이 문제에서 자신이 본이되었습니다. 일례로 그는 성도들의 가정모임에서 어떤 것이 잘되지 못할 때 이것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당신이 자신 안에 주님의 생명을 신뢰한다면, 성도들 안에 있는 주님의 생명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주님의 생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성도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만 장로들은 성도들 안에 있는 생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기도해야 한다.
2. a man of sacrifice :
그는 회복을 만나자 마자 장학금과 함께 수여되는 그의 장래를 포기하였고 회복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는 회복의 장래를 위해서 무슨 본이 필요하며, 외적인 모양이 아니라 회복 안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 가장 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고 그일에 자신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표현되고 드러나는 부분의 분깃은 다른 형제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무명의 nothing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상수 형제님이 그렇게 보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정하신 길의 표준에 따른 교회생활의 본을 산출하는데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본은 후에 텍사스에서 일으켜진 수 많은 형제들에게 영향을 주어, 78년과 87년의 소요와 같은 상황에서도 텍사스는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수 있었고, 희생의 분위기가 우세해서, 교회 안에서의 자리다툼이나, 실질적인 봉사를 등한히하고 외적으로 잘보이는 것을 향한 본능적인 경쟁 같은 것이 교회 안에서 부각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남서부 교회들 안에서의 그영의 움직임과 교회생활의 분위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3. a man of oneness ;
Austin의 한 장로가 추도 집회에서 교통하는 바에 따르면, 한 번은 그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얼마의 시간을 교통했는데, 단 형제님의 교통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단은 단지 미소를 띠면서 듣기만 했다고 합니다. 후에 형제들이 형제님의 느낌은 어떠세요라고 묻자 '글쎄요....형제님들...제 의견이 정말로 필요하신 건가요?...전 느낌이 있지만 형제님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면 그렇게 하십시오....그렇게 합시다. 형제님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몸의 건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하였고 상대의 방법을 받음으로 하나를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의견을 달리하는 형제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님...저는 이 문제를 말하면서 엄청난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형제님은 어떠신지요? 형제님이 저보다도 더한 은혜를 누리고 계신다면 제가 형제님께 따르겠지만, 지금 형제님 안에서 은혜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으신다면 제 안의 은혜를 받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4. a man of fulltime training :
그는 젊은 이들이 훈련 받아야 함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고 그것을 교회의 사역과 접목시켰습니다. 미국 훈련의 대략 25%가 오스틴에서 인적자원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독특한 사역을 하지 않고 몸의 흐름 안에 있고 이 흐름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봉사를 했음을 보여줍니다.
5. a man of the God ordained way :
그의 무거운 부담은 진리에 걸맞는 실행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의 고봉의 진리는 나무의 줄기와 같고, 하나님의 정하신 길은 그 나무의 가지들과 잎새들과 열매들이다. 진리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러할 지라도 그것들이 실행되지 못한다면 표현이 없다' 는 것입니다. 그는 이상수 형제님의 캠퍼스 부담을 따라서 1976년 오스틴으로 이주해온 이후 지속적으로 30여년을 이 문제에 도전하여서 마침내 회복 안에서 공통으로 실행될 보편적인 성공적인 모델을 성공시켰습니다. 이것은 연구실에서 신 차의 원형이 개발된 것과 같습니다. 혹자는 오스틴에서처럼 수 없는 세월이 흘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연구실에서 완성된 것을 '연구원들과 기술자들로 구성된 연수팀'을 보내서 습득해서 우리 지방에 도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동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단이 회복에 남겨준 유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동역자는 그를 '웥취만 니는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요 이상수 형제님은 신성한 계시의 수행자이며, 단은 하나님의 정하신 길의 선견자'라는 것입니다.
6. a man of three-fold cord :
그는 교회 봉사에서 대학생 연련층이 갖는 '황소의 눈 Bull's eye'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제한된 돌멩이로 비유되는 적은 교회의 역량을 가지고, 쉽게 움직이려 들지 않는 교회인 황소를 움직이는 비결은 '눈'을 맞추는 것입니다. 대학생 봉사는 교회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황소의 눈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다른 봉사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할 때 다른 봉사의 영역도 활성화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대학생 봉사를 위해서는 한 무리의 전시간이 있어야 함도 보았습니다. 한 무리의 조율되고 동역하는 전시간자들입니다. 이들의 '교량성 효과 Bridging effect'를 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가정들의 역할'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정들이야 말로 교회의 건축이 수행되는 대부분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일궈냈습니다.
7. a man of the church locally and universally :
그는 절대적으로 교회를 위하였고 그것은 다만 그 지방만이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는 지방적인 교회는 새 술을 담는 부대로서 반드시 신축성이 있어서 그 영의 유기적인 역사를 담을 수 있어야 함을 보았으며, 이 신축성은 교회생활이 어떤 통제나 제한이 아닌 가정들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한 지방의 교회는 단독적이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권역과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사역의 움직임과 하나되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가 오스틴에서 하는 모든 것은 사역과 교통 안에서 하는 것이었고 사역은 이것을 절대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례로 텍사스 주의 북부에는 Dallas-Irving-Fort Worth를 잇는 공업벨트가 있는데 이 권역에 매우 중요한 대학들이 있는 일곱 지방교회가 있습니다. 단형제님은 이 권역이 함께 Arlington이라는 도시에서 캠퍼스를 개척하기를 시작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일곱교회가 자신들의 지방에 있는 사역을 내려놓고 먼저 한 지방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축복이 어떠한지를 보고왔습니다. 방문의 구체적인 데이타는 나중에 정리헤서 올릴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예는 형제님이 지방적이고 우주적인 교회를 관심하는 분임을 알 수 있게합니다.
8. a man of shepherding :
그는 'herd concept 집회에서 공급함'을 그렇게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one on one concept 일 대 일 목양'을 매우 강조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일대일 목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수 많은 간증들은 하나 같이 형제님을 통해서 일대일 목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물질적인 시간을 드려서 사람들을 목양하기보다는 집회에서 말을 거는 방식, 집회 전후에 말을 거는 방식, 전화를 하거나 전화를 받아서 대화를 하면서, 혹은 자신의 집에 초대하거나 선물을 주는 방식 등으로 겉보기에는 쉽게 목양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이런 짧은 말이나 간단한 방식으로 하는 목양이 성공적인 이유는 그가 그 사람 개개인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많이 기도하면서 그분의 느낌을 얻은 결과하고 하였습니다. 한 형제님이 어떤 자매를 사랑하게 되어 견디다 못해서 찾아갔을 때, 말을 다 들은 후 형제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여! 가서 아스피린 두알 먹고 잠자고 내일 아침에 아침부흥이나 오게'라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혼하고 형편 없이 사는 자신을 계속 받아주는 형제님께 전화를 걸어서 '왜 이렇게 받아주십니까?'라고 말하자 '형제! 주님이 형제를 받았는데 내가 어찌 받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형제님이 무슨 한탄을 하자 형제님이 말하지를 '형제님! 우리는 다 그런 식으로 경주를 시작하지만 경주를 그런 식으로 마치지는 않는답니다'. 특정도시가 좋다고 주장하는 어떤 지체에게 택사스가 좋다고 주장하는 언쟁(?)을 해 오시던 중에 그 지체에게 선물로 T-셔츠를 사주었는데 그 앞에 써지기를 'Don't mess with Texas 텍사스를 열받게 하지마', 통증으로 잠을 못자는 자매가 단 형제님에게 전화를 심야에 걸었는데, 매우 실행적인 처방을 말해주고는 남편을 바꾸라고 해서 여러 지침을 알려주었는데 며칠 후에 그 자매님이 단 루퍼 형제님의 딸을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딸이 말하기를 '어머,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그날 저녁이 제가 알기로 아버지의 증상이 최악이었는데...'. 이 모든 사례들은 그가 얼마나 '예수답게 인간적'이었는 지를 들여다 볼수 있게합니다.
9. a man of prayer, the word, and the homes :
그는 종종 말하기를 '당신과 주님의 개인 기도 생활의 성공적인 정착없이는 생명의 성장은 있을 수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남이 절대로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병마로 쓰러진 지 얼마지난 후에 말하기를 '나는 자신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재고했으며,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주님과의 개인시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아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일 주일 전쯤에 우연히 그의 집의 잡무를 돕던 한 자매에게 형제님이 말씀하였다고 합니다. '자매님! 저는 성경을 일고 싶은데 눈이 아파서 읽을 수가 없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것들 중 상당부분이 저의 뇌리에 입력되어 있어서 이렇게 눈을 감고도 읽을 수가 있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서 자매님은 자신의 진리추구 문제에 대해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가정을 절대로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의 시작은 이집 저집에서 교회생활이 실행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신뢰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니골라당적인 관념들이 들어와서 교회의 유기적인 방면을 무시하고, 지역으로 집회소로 혹은 어떤 개인들의 지나친 통제로, 교회 안의 가정의 역할을 죽이고 제한하였습니다. 단 형제님은 이런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비 성경적인 실행들과 싸워서 마침내 가정들의 유기적인 역량을 분출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번에 서울교회 네 형제님들과 함께 방문했을때, 장로들은 너무나도 바빠서 시간을 내줄 수가 없을 상황이라서 한 가정에게 서울교회 장로형제님들에게 교통해 줄 부담있는 가정들을 모아달라고 해서 11월 30 주일 저녁에 갔습니다. 저는 몇명이 왔겠거니하고 갔는데 무려 30여명의 성도들이 '이글이글 불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지시하고 안배해서 온것이 아니라 평신도들(?) 자신들이 부담을 가지고 '서울에서 오신 장로들'과의 교통을 위해 온 것입니다. 그날 저녁은 하늘이 너무도 가까웠고 그영의 솟구쳐오름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가정들의 유기적인 역량이 뿜어나오는 것입니다.
10. a man of coordination :
그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조율 안에서 일을 하는가를 매우 중요한 관건으로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열명을 양육한다고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와 조율되고 동역하고 그것이 몸의 유익을 가져올 것인지를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조율하기를 두려워하고 조율하기를 무시하고 자신만이 자유롭게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집회소 단독으로 어떤 것을 결정하고 지역이 단독으로 무엇을 하고 이런 구조를 없애야 합니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의견만 내서 몸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것도 조율이 아닙니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의견만 발생시키는 그런 것들을 페지하고, 또한 개인이 열매가 많으면 그 개인이 인정받고 봉사의 토대가 넓어지는 이런 구조를 없애고, 몸의 원칙이 통하는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그 길은 조율이 무엇인지 알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참으로 이것을 알았고, 실행했고, 성공적으로 교회안에서 일궈냈습니다.
11. a man of eldership :
그는 장로직분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안의 장로직분이 고른 연령층(30대 초반에서 그 이후까지)으로 구성되게 하고, 성도들을 주관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진리의 조성과 목양과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감의 본이 되는 방식으로인도하게 하였습니다. Austin의 8명의 장로들은 모두가 예외없이 캠퍼스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양육하지, 그냥 행정적인 일만 보고 집회만 인도하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집회만 실시하고, 자신은 개척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캠퍼스 개척의 최 첨단은 다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는 중간 봉사자 집회나 다른 류의 교회 행정모임이 아니라, 이런 본이되는 강력한 장로치회만이 교회의 행정과 인도에 합당하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2. a man of godliness :
그는 신성한 속성을 인성의 미덕을 통해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전화를 해본 사람들, 그리고 그에게 질문을 해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간증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무슨 말을 임의로 하지 않고 안의 주님에게 물어본 후에 대답을 하는 습관을 가진 자였습니다. 많은 때 전화라면 '형제님! 아직도 거기에 계십니까?'라고 물어보아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속의 느낌을 따르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번 그분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How are you?"라고 물었습니다. 그냥 인사로 물은 것인데 잠시후 들려오는 그의 응답은 '형제님!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오늘 상당히 안좋습니다'라는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말을 다른 주제로 바꿔버렸지만, 그의 응답은 제게 '성도들에게 열려진 사람'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리고 '주님의 응답을 따라서 말함'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또 한번은 전화로 서울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서 울음을 떠트렸는데, 형제님이 말하기를 '형제님,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니까, 형제님은 평안하셔야 합니다'라는 취지의 교통을 했는데 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13. a man of hiding :
그는 드러나기 보다는 숨기를 원하고 십자가의 죽음 안에 머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 한 지체가 간증하기를 자기가 어떤 지방 교회에 갔을 때, 그곳에 우연히 롼 캉가스 형제님이 오셨는데, 오스틴 이야기가 나오자, 란 형제님이 말하기를 '아! 그곳에 언약궤를 메고 죽음의 강에 서있는 한 형제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주의 회복의 역사의 시작인 형제들 가운데 있었고 진리의 조성도 있었고 생명도 있었고 일할 줄도 알았지만 결코 드러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의 회복 안에서 가장 어려운 매듭인 인수의 증가와 교회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이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이것이 은사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과 희생의 노정 안에 있는 장중한 사역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기꺼이 한 알의 밀로 이 노선에서 죽기위해 감춘 길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14. a man of receiving others : 그는 항상 관용과 겸손을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나하임의 동역자들에게 말하기를 '형제들이 앞장서서 캠퍼스를 인도하십시오. 텍사스는 형제님들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앞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들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15. a man on the speed of life :
그는 항상 '생명의 속도를 따라 나가라'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무리 절박한 일이라도 성도들을 생명의 속도 이상으로 밀어부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항상 'comfort zone 안식 구역'을 찾으라고 합니다. 안식구역이란 봉사나 기능발휘나 교회집회나 기타 모든 일에서 각자가 자신의 분량 만큼만 하고 자신이 해서 좋게느끼는 한도 까지만 하고 무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있을 때, southwest corridor(미국 남서부 주들의 연합 대학생 집회) 특회에서 한 백인 학생 형제가 일어서서 아멘이 적다는 이유로 크게 아멘들을 하라고 회중을 '강요'할 때, 단 형제님은 즉시 일어나서, 말하기를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시라. 여기 모인 청중 중에서 영이 해방이 안되서이든지, 아니면 무슨 문제에 눌려서든지, 아니면 피곤해서 이든지, 여하한 이유로 아멘을 적게하거나 안하는 것인데, 편하게 하도록 두시라. 어떤 것도 조장하거나 꾸밀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6. a man of the rich supply :
그는 풍성한 공급의 마디였습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실행을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고 언제가 그리스도, 그영, 생명, 교회,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풍성한 공급을 수행하였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는 한 형제님의 간증: 언젠가 단 형제님이 자기에게 개요를 타이핑 하라고 요청하면서 '성경구절이 잘 인용되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길래, 되묻기를 '형제님이 직접 찾아서 적으신 것인데 왜 다시 확인을 하라고 하시나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단 형제님이 그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왜 확인하라고 했냐하면, 형제님! 제가 확인하고 쓴 것이 아니라, 성경을 찾지 않고 그냥 앉아서 기억한 것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타이핑을 하는 형제에게 진리의 조성에 관해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17. a man of loving speciall vessels:college students :
그는 대학생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대학생 때 얻어진 후로 사실 그의 일생은 이 연련층을 얻기위해 다 버려졌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비록 대학생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1976년에 오스틴으로 이주해 온 후로 지금껏 그의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이 식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사람을 사랑한 자였습니다. 하워드 히가시 형제님처럼 말입니다. 병으로 쓰러진 수개월의 시간 후에 그는 복음을 말해내는 문제에 대해서 참으로 목말라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의 집을 문두드리러 왔을 때, 그들을 들여서 사역을 말해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본은 아니지만 그의 복음의 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8. a man of apprenticeship:
그의 동역자인 마이클 린치 형제님의 전언에 따르면, 단 형제님은 올해들어서 말하기를 '형제여, 주님이 나에게 오년을 더 허락하시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 진행되는 수습훈련에 대해 부담이 너무 많다. 우리는 지금의 집회소를 팔고 형제자매들이 집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이 훈련을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하임 훈련의 교장이신 데이빗 히긴스 형제님은 추도집회에서 '우리는 앞으로 100개의 캠퍼스 팀이 수습훈련을 마치고 도처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하였습니다.
19. a student of this ministry :
어떤 사람들은 니와 리의 사역의 말씀을 반복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배우는 자였습니다. 그는 리이프 스타디의 학습자요, 실행과 관련해서도 철저하게 서적을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워드 히가시가 '걸어다니는 라이프 스타디'였듯이 단도 철저히 사역을 배우는 학생이었습니다. 미노르 첸 형제님에 따르면 '나는 그들이 그러한 학습생들이었음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쉽게 알아본다'라고 했습니다.
20. a pioneer of the God-ordained church life and of a sustained campus work :
(이 부분은 너무 중요해서12월 7일 주일 오전 신언 집회에서 Minor Chen이 말한 것을 가급적 그대로 옮깁니다. 자료: a tape of coworkers sharing regarding Don's passing 12-7-03 taped by the church in Austin).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표준에 따른 교회 생활의 개척자였습니다. 하나님 사람의 생활과 하나님이 정하신 표준에 따른 교회 생활이 이상수 형제님의 부담이었습니다. 단은 이점에 있어서 주님의 사용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또한 캠퍼스 사역의 개척자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도해 왔지만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속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운동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실행되는 어떤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 역시 단형제님의 봉사의 중요한 항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시간자들의 활용면에서 볼때, 이형제님은 전시간자들이 새길에서 매우 중요하다했는데, 오스틴 교회에서 세운 전시간자들의 활용에 대한 본은 앞으로 나오게될 수많은 전시간자들을 온전케하고 목양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았기에 전시간 훈련의 후속훈련으로 '수습훈련'을 오스틴에 세운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주님이 단형제님을 사용한 항목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것은 주의 회복의 레거시(legacy 유산)입니다. 이제 사역 안의 모든 동역자들과 회복 안의 모든 교회들을 대표해서 이것을 선포합니다. 모든 동역자들과 모든 교회를 대표하여 우리는 오스틴 교회와 완전히 하나임을 천명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 아침에 심지어 사탄에게도 선포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오스틴의 모든 성도들과 하나이며 주님이 세우신 오스틴의 인도자들 모두와, 여러분이 이곳에서 하고 계시는 그 일과 하나입니다."
이번에 가신 서울교회의 형제님들 네분은 비록 가실때는 서로가 달랐지만 11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의 18일간 Austin, Arlington, Denton, Oaklahomacity를 방문하면서 완전한 전환을 가졌습니다. 이제 형제님들은 동일한 이상과 부담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교회건축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한 사역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되었으며, 생명의 또다른 길(Another way of life)을 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졌습니다. 그 중의 한 형제님이 말씀하시기를 '김형제, 돌아가면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주님이 서울에서 움직이고 계시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수년간 저를 짓눌러온 그러나 제게 주신 위임이 아닌 교회 건축의 청사진과 관련하여 행정적인 인도를 합당하게 가지는 문제에 있어서 형제님들이 보기 시작하자, 저는 수년동안 저를 누르던 압력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꼇습니다. 그러자 이제 본연의 문제로 씨름하게되었습니다. '이제 너는 생명의 길을 가고 생양교건에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이 이 문제에서 저를 더욱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저는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몸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신 몸의 하나와 관련한 청사진이 주님이 주신 것임이 확증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더욱 담대하게 믿음의 기도를 하고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분 형제님들 중에서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 생활 오래하다 보니 좋은 날도 있네!". 몸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형제님이 뉴저지를 방문 하셨을 때 이 교통을 듣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주님이 이글을 보게 하심을 감시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산인격이 가장 큰 복이며 만유를 포함한 복인 것을 아는 데 이 복을 참으로 누리고 표현하는 본을 보여 주심에주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과거를 뒤로 하고 진정 하나되어 주님의 산 간증
첫댓글 너무나 중요한 말씀 공급에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여러번 감동되어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가기를 사모합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 땅의 캠퍼스를 얻으시고 실제로 가정들이 드려지게 하소서! 인도하여 주소서!
형제님이 뉴저지를 방문 하셨을 때 이 교통을 듣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주님이 이글을 보게 하심을 감시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산인격이 가장 큰 복이며 만유를 포함한 복인 것을 아는 데 이 복을 참으로 누리고 표현하는 본을 보여 주심에주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과거를 뒤로 하고 진정 하나되어 주님의 산 간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