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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일로 詩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골드
화창한 봄!! 봄은 우리에게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케 하는 계절이다. 봄은 인생에 있어 유년의 계절에 속한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과 신록은 새로운 생명의 교향악이 아닐 수 없다.
새 생명은 여리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우리의 유년은 아니 인생의 봄은 어머니의 치마폭에 휘감긴 그 부드럽고 유연한 호흡을 어머니의 젖가슴에 묻고 어머니의 젖를 빨고 자라며 어머니께 떼를 쓰다 회초리도 맞아 봤던 어리디 어린 시절을 다디달게 회상하는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있는 계절이다.
그 아리땁고 아스라한 유년의 봄을 맞이한 듯 2012년 5월 6일 오전 7시 30분 우린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풍 길에 올랐다. 천상병 시인의 소풍 길에 오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봄 소풍을 떠나는 것이다. 매년 정례행 사로 치루는 우리만의 봄 소풍 길에 나선 이내 가슴에 잔잔한 흥분의 금물결이 일지 않는다면 감성적인 한국 사람의 일원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서울서 출발한 36명의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3시간 30여분의 운행 끝에 우리의 목적지인 옥정호(玉井湖)에 도착했다.목포, 광주에서 올라 온 나이 들어 갈수록 반가운 얼굴들이 버스에 올라 서로 악수를 한다. 내 너희들 얼굴을 꼭 보고 싶어 왔노라고. 그리고 지난 1년 간 잘 살았느냐고. 이처럼 아름답고 격조 높은 인사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어떤 가식도 필요 없는 정말 품격 있는 인사가 아닌가.
우리 일행은 국사봉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옥정호 마실길, 또는 물안개 길이라고 하는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 옥정호가 초행길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봄가을 일교차가 심한 계절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붕어섬(외앗날) 주변의 풍광이 너무 좋아 많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순수한 우리말인 외앗날은 현지 지리학자들도 그 어원을 모른다니 참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효림이 올린 붕어섬의 물안개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옥정호는 호남평야의 농사를 위해 섬진강의 물을 끌여들여 만든 인공저수지로 1965년 이 곳에 다목적 댐이 건설되면서 가옥 300여호와 경지면적의 70%가 수몰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한때 운암댐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옥정호로 불리운다. 옥같은 샘물같은 호수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이름에 걸맞게 옥같이 푸른 물이 푸르다 못해 쪽빛이다. 지금은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옳은 결정이다.
저 외앗날의 품격이 하도 높아 감히 범접키 어려운 금붕어는 사시사철 철따라 옷을 갈아입고 유유자적 헤엄쳐 노니나니, 봄에는 연두빛 치마저고리를 여름에는 짙은 초록빛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을에는 은행잎 단풍잎 노오랗고 붉은 옷을 갈아입고 겨울에는 백설에 뒤덮힌 자태로 겨울잠을 자나니 외앗날 붕어여! 외앗날 붕어섬이여!
너는 언제나 생명예찬의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노래하리라. 난 기도한단다. 이 옥정호에 더 이상의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고 네가 편히 살수 있기를 기도한단다. 어떤 인위적인 자연 파괴 행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우리 모두 저 외앗날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오늘 우리가 받은 영감을 자연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걸 담보하기 위해서 이 옥정호를 견고한 투명어항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우리 그리운 동창들은 매년 만날 때마다 이렇듯 인증 샷이 필요하나 보다.
드디어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5월은 꽃보다 녹음방초가 더 좋은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고했다. 즉 푸른 나무그늘아래의 향기로운 풀들이 꽃을 이기는 시절이란 뜻이다. 신록은 푸르다 못해 연둣빛과 짙은 초록빛의 교집합을 연출하고 있었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니 해도 푸르다.해는 날일자다. 그러니 날도 푸르다. 자연은 이렇게 늘 우리에게 사시사철 본연의 모습을 연출하며 인간들을 교화하려 하지만 욕심 많은 인간들은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 나이 이제 6학년 몇반, 이제라도 자연의 계시를 수용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껏 살아 온 인생의 뒤안길을 한 번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반성할 일이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고교시절이 남녀공학 이었다는 게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나이에 우리 여자 동창들과 이런 오붓한 산행을 한다는 게 어찌 즐겁지 않으리.
우리가 고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 어느 학교가 남녀공학을 운영하고 있었더란 말인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이제 와 곰곰 생각해 보니 명문고였음에 틀림없다.
국사봉 붕어섬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그 아기자기한 물소리 바람소리 구름소리 꽃피는 소리 녹음방초의 웃음소리에 화답하는 우리 동창들의 미소가 돋보인다. 인생의 경륜과 연륜이 돋보이는 지금의 이 모습이 그간 우리가 살아 온 진면목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이 모습을 변질시키지 말고 지킬 일이로다.
난 이 전망대에서 붕어 섬을 바라보며 인간들이 택지를 선택하는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붕어 섬엔 민가가 두 채 있었는데 바로 붕어의 양 아가미에 그 민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만일 꼬리 부분이라든가 지느러미 부근에 집을 지었다면 그 땅은 풍수학적으로 흔들림이 심해서 아마 평안한 삶을 누리지 못했겠지만, 아가미에 터를 잡은 집은 늘 생명의 호흡이 들락거려 평안과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국사 봉 정상(475m)에서 주흥이 도도하게 펼쳐졌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참 묘한 인연이다. 근 45년도 넘게 교유하면서 우린 이렇게 살았다. 아니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두견새와 꿩의 노래 소리를 추심하고 진달래꽃을 완상하면서 녹음방초 우거진 계곡가의 비탈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한세상 사오시다가 고즈넉이 가셨고 우리가 그 뒤를 따라 가다가 내 아이들에게 또 그 길을 곧게 이어주면 그만인 것을......
이리 살다가 눈 감아도 이 금수강산과 나와 내 아버님 할아버님이 한몸인 것을.....
우리 모두 나이가 들었고 아름답게 늙어 갈 권리가 있는데 친구들아 서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배려하며 살아갈 일이로다.
좋을시고 좋을시고 화옥씨가 좋을씨고 좋을시고 좋을시고 맹순씨도 좋을시고 청산옥수 바라보는 화옥맹순 가슴에는 새색시적 그리움이 돋음즉도 하련마는 지난세월 회상하니 물보다더 빠른세월 가이없이 지나갔네 청산옥수 푸르름이 옷소매에 스며들고 녹음방초 짙은향기 그녀곁에 머문다면 화옥맹순 고운얼굴 진달래꽃 연분홍빛.
동창이었지만 어느덧 누님처럼 보이는 조선의 두 여인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골드
이 사진을 보니 위에서 쓴 내 노래가 틀림이 없다. 하나같이 모두 이쁘고 이쁘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사족일 뿐이다.
배 상희 선생님은 언제나 그 모습이다. 사실 배 상희 선생과 난 인척지간이지만 배선생의 부군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이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춘례님의 부군은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뵙지 않는가? 이웃사촌이 더 가까운 법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국사봉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니 이미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민어회 파티를 열고 있었다. 난 정만이가 썰어준 민어회를 여러 점 얻어먹었다. 좋은 날, 좋은 옥정호에서 좋은 친구들과 민어회를 먹는 호사가 왕족이 부럽지 않다. 영어로 말하면 매우 해피(HAPPY)하고 좋은 거래(GOOD DEAL) 가 아니겠는가.
우린 빨리 버스를 타라고 재촉하는 여자 동창생들의 성화에도 아랑곳 않고 민어회에 소주 한 잔 곁들이고 있는데 한 여자 동창생은 쑥을 뜯는데 정신이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가 선친의 산소에 들렸을 때 허리 굽은 몸인 데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쑥을 뜯어 나에게 안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 되어 나도 모르게 콧등이 뭉클하였다.
드디어 옥정가든에서 흥겹고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민물매운탕과 토종백숙과 갓김치, 특히 갓김치의 그 알싸한 맛이 그만이었다.
서로 주고받는 막걸리 한 잔의 미학! 이게 우리 조선 사람이 가장 조선 사람다운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봄날 모를 파종하는 논에서 술참과 함께 나눠마시던 그 막걸리도 이젠 사라진 시대가 되었지만 우린 어처구니 없는 인연으로 만나 어처구니 없는 사랑과 배려를 이렇게 쏟아붓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창인이와 남수는 그동안 동창회에 모습을 안보였는데 이렇게 나와 그리웠던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대견하고 이쁘기만 하다.
어느 정도 점심을 끝내고 서울 목포 광주 회장단의 인사말이 오갔다. 47산악회를 리드하는 회장단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실 이 풍광 좋은 옥정호를 우리의 만남의 장소로 정하고 미리 사전 답사를 통해 우리의 안전을 면밀하게 구상하고 음지에서 우리의 온갖 먹거리를 준비하여 주신 회장단이하 각 지역의 총무님들에게도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이 지면을 통해 올리는 바이다. 안개꽃에 감싸인 붉은 카네이션 꽃다발과 함께. 참 서울 나종옥 회장님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 머리를 저렇게 멋적게 긁적이고 계시는지...
맨 마지막 점심 풍광은 역시 민어회였다. 60여명이 넘는 인원이 민어회를 끝까지 먹을 수 있도록 정만이가 꼼꼼하게 포를 떠준 은공을 우리 모두 어이 잊으리..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연륜에 걸맞게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해택이의 현장감 있는 인생 이야기는 정말 소설 소재가 맞다는 말에 동감했다. 이제 지난 일이지만 나도 교편이나 잡고 초등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막걸리나 마시고 글이나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난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정말 격조 높은 죽음도 생각해 볼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곡(錢穀)이 우선이어야 하고 현역 이어야만 한다는 속물근성이 살구기름이 독약인 줄 알면서도 그 살구기름을 마시고 싶은 유혹을 못버리고 마침내 죽음을 택하는 여우의 어리석음을 우리 인간들도 답습하며 후회 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그의 묘비명에 쓴 “우물쭈물 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 는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앞으로 우리 나이에 향후 십년간 건강한 삶을 산다는 보장도 없고 그걸 바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욕심일런지도 모른다.
법정스님의 말처럼 입에는 말을 적게 담고 가슴에는 근심을 적게 담고 위에는 음식물을 조금 담을 일이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지갑은 빨리 열고 옷차림은 가급적 깨끗하게 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선 자리를 일찍 뜨고 볼일이다.
점심을 끝내고 우린 옥정가든의 마당에 나와 옥같이 푸른 샘물같은 옥정호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성철이가 어깨를 감싸고 있는 이 여인은 누구인고?
마님한테 혼나시려면 어쩌려고. 아까 점심 먹다가 너무 떠든다고 마님한테 꾸중 듣고 순한 사슴처럼 조용해진 성철아! 그게 남자들이 늙어 사는 방법이란다. 마님 말씀 잘 듣도록 하렴.
알아들었냐. 우리의 환상적인 테너 그집앞 성철아!
헤어짐이 아쉬운 듯 여기저기 삼삼오오로 모여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이윽고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한 이틀 밤이 새도록 말술을 마시면서 못다 한 우리 숫컷들의 서열 싸움, 돈 싸움 사랑 싸움 그런 이야기를 날이 훤히 새도록 할 수 있는 그런 소풍이 매년 계속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리 좋을 수가 있을꼬? 소안에 함박웃음, 이 여인의 이름은 모르지만 여인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모습에 담뿍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귀성버스로 향하는 우리 모두 봄 소풍을 마친 초등학생이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귀성길의 버스 안에서는 흥겨운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화옥씨의 신사동 그 사람은 정말 프로 가수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기가 맥힌 솜씨였고 나머지는 전부 그랬다. 효림의 시 낭독,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가 어느 정도 바이브레이션이 실려 있어 좋았다.
사실 난 이번 산행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무명이다 보니 원고료가 없는 것도 이유가 될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내가 글쟁이 였다면 밥건지는 누가 건졌겠는가. 이 쏨씨로 끔직한 일이다.
나는 새벽처럼 깨어 있는 인간도 아니고 또 아침이슬처럼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도 아닌데 괜히 글을 쓰는 척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동창들 앞에서 난 간혹 사기를 친다.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사치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혼을 파는 정말 외로운 일이다. 사실 인간은 외로우니까 인간이다. 그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간혹 붓을 드나 결국 초라한 내 모습을 다시 받아들이며, 이런 고뇌에 빠질게 아니라 남이 잘 쓴 글을 읽고 감상하는 것이 차라리 속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지만 근 2년이 넘게 산행기가 없어 정말 좋았던 129차 옥정호 합동산행 까지 스킵 할 수 없어 펜을 들었다. 밋밋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준 동창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2년 5월 7일 골드 |
첫댓글 잘 감상했습니다. 근데 목상이 남여 공학이었나요? 처음 들은이야기라...
남학생 4클라스, 여학생 2클라스였고 여학생 중 절색이 각 학년마다
한 두명 넘어 고 년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숫컷들이 자웅을 겨루고
싸운 일도 많았답니다. 교내 커플도 한 3-4쌍씩 매 학년마다 나왔지요
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