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농담 같은 진실, [김다니엘]
창세기 19:14
소돔성 멸망 때 롯의 사위들이 경고를 농담으로 여겨 멸망당했듯이 세상 사람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비웃고 무시하곤 한다.
노아의 방주 시대나 역사 속 수많은 엄중한 경고 역시 외면받았으나 결국 참혹한 심판으로 이어졌다.
반면 경고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미리 준비하며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고 구원을 얻었다.
마지막 때에 다가올 무서운 재앙과 심판을 미리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치부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버려야 한다. 스스로의 무지와 죄를 겸손히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늘 기도와 말씀으로 삶을 무장해야 한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대비하는 데 있다. 세상의 그릇된 착각에서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며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다가올 대환난을 넉넉히 이겨내고 세계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을 온전히 완수해야 한다.
26. 여호와의 사자(使者),
창세기 22:12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사자는 단순한 피조물인 천사를 넘어 구약 시대에 사람의 모습으로 직접 찾아와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이나 앏복 강가의 야곱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권세로 직접 말씀하고 축복하며 하나님 자신으로 계시되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초림 이전부터 역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셨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고 부활과 십자가의 진리를 담대히 증언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비진리와 세상의 협박이나 공갈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거룩한 무리처럼 온전한 신앙을 지켜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강함과 승리는 참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모든 순간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 말씀 위에 단단히 서는 데에서 비롯된다.
헛된 명분이나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허황된 소리를 배격하고 오직 성경적 진리와 부활의 복음만을 온전히 전파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7. 거룩한 그루터기,
사 6:9-1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의 환상처럼 진정한 일꾼은 스스로의 죄악과 부족함을 통회하며 하나님의 영광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이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 진리의 말씀을 멀리하고 들으려 하지 않으며 달콤한 복과 거짓 평안만을 좇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이 황폐해지고 깊은 재앙과 기근, 전쟁과 환난이 닥칠 때야 비로소 영적 무지와 강팍함을 깨닫고 말씀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무가 베여도 그루터기가 남아 새싹을 내듯이 아무리 암울한 시대에도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 명과 같은 거룩한 씨를 보존하신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이나 사람의 헛된 아첨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참된 신앙인은 타락하고 눈먼 세태 속에서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말씀과 기도로 스스로를 무장한다.
우리는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기도와 은혜의 자리를 사수하여 거룩한 그루터기로서 세상을 깨우치는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28.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창세기 22:7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리아산 번제 사건을 통해 참된 예배와 재물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양을 물었으나 결국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질 재물임을 깨닫고 순종했다.
입다의 딸이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을 기꺼이 바쳤듯 이삭 역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을 내어놓았다.
오늘날 우리 예배에는 형식만 남고 정작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진정한 재물인 우리 자신의 온전한 헌신이 빠져 있기 쉽다.
현대 교회의 약화와 부패, 붉은 사상과 무신론에 물든 모습 역시 참된 헌신과 재물이 사라진 결과이다. 스데반이 자기를 바쳐 담대히 진리를 전했듯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