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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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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옛사랑/ 이영훈
은하수 추천 0 조회 7 14.04.13 03: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옛사랑/ 이영훈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걸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거리 흰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엔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 Art Book『광화문 연가』(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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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원래 '독서'를 위해 존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음미하거나 낭송되거나 노래하기 위한 것이겠는데, 시와 노래가 지금처럼 분화되기 전에는 시가 노래이고 노래가 곧 시였다. 현대시가 점점 산문화 경향을 띄며 난해해져가고 있는 이때, 오히려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시보다 더 시적인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노래가 된 시가 있다면, 시로 취급되어도 충분한 노랫말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문세의 노래를 도맡아 작사 작곡하여 80년대 팝발라드의 새 경지를 개척한 이영훈의 연가는 곧장 시로 쳐주기엔 미흡하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적시는 서정적인 기울기만큼은 여느 시 못지않다.

 

 특히 그의 ‘광화문 연가’나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등은 사랑의 고통과 이별, 그리움과 연민을 감성적으로 녹여낸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노래를 우물거리는 것만으로 이별도 서정적 품격을 갖추게 된다. 이영훈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넘었다. 그의 가사 등을 모은 LP판 사이즈의 이 책은 사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것이다. 이문세의 노래를 ‘여전히’ 좋아하는 중년여성에게, 혹은 ‘그녀’에게 보내는 감성의 선물용으로 꾀나 팔려나갔다는 소문이 있다. 이영훈은 자신의 히트곡으로만 구성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준비하던 중 2008년 2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매년 버전과 출연진을 달리하여 무대에 올랐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의 숨결과 음악에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곡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녀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였다. 이영훈은 본래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 영역에 속해 있던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1985년 이문세를 만나 그와 함께 천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한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좋은 음악은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사랑 받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영화나 소설 등은 아무리 좋아도 두어 번이면 족히 시큰둥해지는데 비해 좋은 음악, 추억 속의 노래는 청각 속에만 머물지 않고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반응하여 언제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좋은 음악은 골백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추억을 상기하는데 음악만한 게 없고, 어떤 음악은 특정 장소 또는 사람과 단단하게 얽혀 있어 한 소절의 가락만으로도 단박에 그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고 머물게 한다. ‘쎄시봉’ 열풍 역시 청춘의 시기에 몰입했던 노래가 평생의 사운드 트랙이 된데서 비롯된 현상이 아니던가. 세포 속으로 촘촘하게 파고들었던 음악은 옛사랑과도 같아 언제나 아련하여 벅찬 봄날의 '시를 위한 시'가 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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