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 자리에서 서 있기
김장했냐고 묻는 친구에게 매년 시댁 형제들과 어울려서 함께 한다고 했다. ‘시댁 식구들이 우애가 좋나보다’ 하신다. 여형제가 많아서 그런지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데도 자주 모인다. 해마다 김장을 함께 한다. 여섯 가족의 김장을 시골에 모여서 담그는 대행사다.
우애가 좋아 보인다는 말에, ‘곁에서 보면 ‘부러울 정도’라고 답을 했다. 딱히 부러운 것은 아니고 ‘좋아 보인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밤새 딸 넷이 깔깔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딸들이 있어서 며느리가 많이 부족해도 우리 어머님 덜 서운하시겠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방인 같은 쓸쓸함을 느낄 때가 많다. 동생들 생각도 나고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논둑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날도 많았다.
그 속에 들어가서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으련만, 물과 기름인 것이 올케 시누이 사이 같다. 나도 시누이 입장이 되어보면 올케가 어려운 것은 친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올케가 신경이 쓰여서 대화의 소재도 그렇고 손위 시누이라는 강박감에 행동이 편하지 않다. 그 마음을 알기에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골에 가는 날에는 자리를 피한다.
친하게 지내는 연세가 드신 선생님이 남은 시간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자식들하고 여행가는 것이라고 했다. 딴 식구가 끼지 않은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하고만.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우리 동생들하고만 여행가고 싶다고 하나뿐인 올케를 두고 우리끼리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내 동생의 마음이 편안할까? 남겨진 올케는 그렇게 서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 것 같다. 이방인 같은 묘한 감정 말이다.
작년에 둘째 형님이 당신 고희 생신에 형제끼리 여행가고 싶다는 말씀을 식사 자라에서 하신 적이 있다. 나와 남편과 시누 넷이 시골집에 고구마를 심는 날이었다. ‘올케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 마음이 그래 우리 형제끼리만 가고 싶다,’ 순간 “그렇게 하세요.” 흔쾌하게 답은 했지만, 나는 허둥거리고 있었다. 대식구들 식사 준비하고 고구마도 심고 난리 북새통을 부렸다.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한가롭게 식사하면서 ‘나도 이 집안의 식구가 되어가나 보다’ 생각하며 혼자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중에 불쑥 그런 말을 들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이 쏙 빠졌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서울 것도 없는데 아니 솔직히 시댁 형제들과 여행 가는데, 함께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렵기도 할뿐더러 언제나 긴장을 한 상태로 다녀야 하고 나이가 나보다 많으니 언제나 꼴찌는 챙겨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기분은 뭘까? 내 앞에서 바로 이야기해서 당황했을까? 가자고 해도 형님들 모시고 다녀오라고 했을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좋다. 하물며 내 성격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 집안의 숟가락까지 알 수 있는 그런 성격은 못 된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지만 죽고 못 사는 그런 관계는 아니다. 참으로 묘한 감정에 나 자신도 놀라고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가슴으로는 뭐, 쫌, 그런 걸까?
김장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술렁인다. 어른들이 그냥 하는 소리지만 나에게는 그냥 편하지만 않은 것도 사실이다. 형님들이 배추를 사고 절이고 씻고 속을 만들고 하는 과정을 다 한다. 우리는 당일에 가서 김치 속을 넣는 것이 전부다. 형님들이 김장을 하시니 우리는 그냥 곁에서 서성거리다가 김치를 가져오는 격이다. 물론 김장 김치는 그냥 가져오지는 않는다. 형제끼리 배분해서 낸다. 우리가 누나들이 애를 쓰시니까 김장 비용을 더 드리는 편이다.
그런데도 편안하지 않다. 내가 성격이 모가 나서 그런 것인지, 그냥 편하게 언니들이 해주는 것 수고비 드리고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이쁠까? ‘나이 든 시누가 해줘야 하니, 어린 동생이 해서 잡수세요, 하면서 줘야지’
농담처럼 던지는 말도 그렇게 편하지 않다. 아무튼 일찍 가서 김장 하는 데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고 함께 정성껏 김치를 담글 생각이다. 다 내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속없는 사람처럼 그렇지만, 성실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시댁 형제들과 지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무조건 내 편이 한 사람은 있으니까. - 2025년1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