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간;약4시간
산행코스;동학사-남매탑-금잔디고개-신흥암-갑사-주차장
충남 공주 계룡산
위 치 대전시, 공주시, 논산시
높 이 845.1m
예로부터 신라 5악의 하나이니 4대명산의 하나이니 하여 명산으로써 자리를 굳혀 온 계룡산은 높은 산도 이름난 산도 별로 없는 충청남도에서 가히 으뜸가는 명산이다
한국의 17개 육상국립공원가운데 면적이 62㎢로 최고 작은 면적인 월출산(42㎢) 다음으로 크나 산악공원으로는 67년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것은 게룡산이 매우 밀도 높은 경관을 지녔음을 암시한다.
계룡산이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은 한마디로 암봉미이다.
푸은 하늘로 불끈 치민듯이 솟은 암봉이 줄지어 섰는가 하면 손을 벨 듯 날카로운 바위 능선이 종횡무진 내닫기도 하면서 산세를 이루고 있다.
계룡산은 무속인들이 유별나게 많이 찾아든다.
유교식, 불교식 제례와 함께 무교식의 제례가 또한 함께 올려지는 중악단이 있기도 하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장소로 계룡산이 가진 역사는 매우 깊다.
신라때 오악중 서악으로 제례가 올려졌으며 고려조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으로 사직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주요한 장소로 손꼽혔다.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던 계룡산이란 이름은 산봉의 형태가 닭머리 형상이고 밑부분은 용 비늘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이산의 산세가 금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자 나는용이 승천하는 형상인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서 계룡산이라 명명했다는설도 있다.
계룡산은 조용한 산줄기 곳곳에 암봉, 기암절벽, 울창한 수림과 층암절벽 등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고찰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을 지닌 것으로도 이름 높다.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 등 4대 고찰과 아울러 고려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낸 숙모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동학사 등이 그것이다.
계룡산은 흔히 봄 동학사, 가을 갑사로 불릴 만큼 이 두 절을 잇는 계곡과 능선 등 산세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갑사계곡은 계룡산 국립공원의 7개 계곡중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빼어난 곳이다.
5리숲 이라고도 부르는 갑사 진입로는 특히 장관이다.
갑사를 중심으로 철당간지주, 사리탑 등 불교 유적이 많다.
특히 갑사계곡 아홉 명소 중 하나인 용문폭포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안고 흐르는 영험함 때문에 기우제나 산제 등 무속행사의 장소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계룡 8경 중 제2경인 삼불봉의 설화는 겨울 계룡산 최고의 풍광으로 꼽힌다.
특히 함박눈이 내린 다음날 햇살에 살짝 녹아 얼음이 반짝이는 설경은 일품이다.
날씨가 맑은날 삼불봉 정상에 서면 남서 방향으로 구불구불 용의 형상을 한 능선을 타고 관음봉과 문필봉, 연천봉, 그리고 쌀개봉과 천황봉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봉인 천황봉의 일출은 계룡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지만 출입금지 구역으로 등산객의 접근이 쉽지 않다
계룡산 겨울산행의 백미는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1.8㎞의 자연성릉 구간이다.
자연스런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협소한 길목이 자주 나타나 변화무쌍한 코스다.
특히 계룡산일대는 산세와 수계망이 서로 뒤엉켜 있어 소위 달팽이 형상 또는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다.
즉 신도내의 두계천과 세동천, 금곡천이 갑천으로 집수되며, 이 갑천은 북류하여 금강의 지류가 되며 금강은 남류하여 계룡산의 오른편 산능과 나란히 북쪽으로 흐른 후 동서로 평행하게 흐르는 형세가 되어 하천이 산릉을 달팽이형상 또는 태극형상으로 감싸며 흐르고 있다.
또한 계룡산의 전체가 화성암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지하수를 함유할 수 있는 조건이 미약하여 우기가 지나면 계류가 급격히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
수치상의 상봉이 천황봉이고 등산대상지로서의 계룡산의 중심이 관음봉이라면 풍수상의 계룡산 주봉은 삼불봉이라고 풍수가들은 말한다.
주변볼거리
계룡팔경
1. 천황봉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2. 삼불봉을 하얗게 덮어버린 겨울의 흰눈
3. 연천봉의 낙조
4. 관음봉을 싸안고 한가롭게 떠도는 구름
5. 한여름 동학사 계곡의 숲
6. 가을 갑사 계곡을 온통 붉은색으로 수놓은 듯한 단풍
7. 은선폭포가 낙수되면서 하얗게 포말을 일구워내는 물안개
8. 남매탑에 반쯤걸린 달의 모습
갑 사
계룡산 서쪽에 위치한 이 절은 백제 이래 풍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로써,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로 발전 한 것은 백제 멸망후의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 및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였고 후에 신라의 의상대사는 당우 천여칸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사는 왜군에 대항하는 승병궐기의 거점이 되어 당시 갑사 청련암에 주석하시던 영규대사는 왜병이 북상하자 800여년 승려들을 이끌로 궐기, 충청도 의병장 조헌선생의 의병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충청도를 왜군으로부터 지켜내는 큰 공을 세웠으나 금산전투에서 800여 승병과 함께 장렬히 순절하셨고 영조 14년(1738)에 건립된 경내의 표충원에 임진란의 대표적인 승병장 서산, 사명,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갑사는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하여 한꺼번에 소실되어 수년이 지난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동학사
동학사는 계룡산의 동쪽에 위치한 사찰로 성덕왕 23년(724) 상원이 암자를 지었던곳에 회의가 절을 지어 상원사라 하고, 고려 태조 4년(921) 도선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이 되는데,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으로 있던 유차달이 이곳에서 신라시조와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로 이름을 바꾸어 확장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름에 대해서도 절 동쪽에 할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 했다는 설과, 고려 말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원조인 정몽주를 제사 지냈으므로 동학사라 했다는 설이 있다.
1860년 강원을 개원한 승가대학은 전국의 많은 비구니(여승)들이 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분들이 없을 만큼 여승교육의전당이다.
지금까지 500여명의 스님들이 졸업하여 전국 타 강원의 강주스님들로 후학을 담당하고 있다.
계룡산 동학사 봄꽃축제는 매년 4월 중순 개최되는 관광축제로서 산신제, 개막이벤트, 풍물놀이, 야외음악회등 민속과 예술이 접목된 고유축제로 열리며 계룡산의 절경속에 풍성한 볼거리판이 어우러진다.
신원사
백제 의자왕 12년(652) 보덕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그후 고종 13년(1876)에 보연화상이 고쳐짓고 1946년 만허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한때 이성계가 창업개국의 야망을 품고 기도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며 이때 계룡산신은 이성계를 옹호하고 두둔했다는 설이 있다.
중악단
보물 제1293호 중악단은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 경내의 우측 동남방에 자리하고 있는 산신제단이다.
계룡산은 백제 때부터 영산으로 주목받아 왔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신라 오악중의 하나로 중시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을 상악, 지리산을 하악, 그리고 계룡산을 중악으로 삼아 제전을 올리게 되었다.
이 산신제단은 조선 태조 3년(1394) 무학대사에게 산신이 현몽하므로 이를 알게된 태조 이성계가 창건을 명하여 처음 제사를 올렸고, 효종 2년(1651)에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명성왕후 민비가 재건하여 제사를 다시 지내도록 하였다. 중악단 입구는 주형장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운 솟을 삼문이다. 문을 들어서면 다락 밑의 아궁이와 앞 툇마루가 달린 두 칸의 방이 역시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여기에 다시 내부 삼문을 통하여 중악단의 본전으로 들게 되는데 이 내삼문의 좌우에도 1칸의 익실이 붙어 있다. 이 삼문을 지나 중앙으로 낸 연도를 따라가면 십자형 연도참을 거쳐 층계가 세 곳으로 난 중악단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평면 배치는 마치 궁궐의 평면을 축소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러한 특징은 건물의 장식 곳곳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중악단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기둥에는 약간의 배흘림이 있고 처마와 지붕은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의 문은 중앙칸에 사분합 빗살문을 달고 좌우칸에는 삼분합문을 달았으며, 양옆면의 앞쪽에도 외짝 여닫이 문을 달았다. 문위에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을 껴 맞추고 그 위로 平枋을 놓았으며, 평방 위를 결구하는 공포는 내사출목, 외사출목으로 구성되면서 쇠서 끝에는 연봉을 조각하고 내부의 살미첨차는 복잡한 장조각되어 있다. 내부는식판에 연봉, 봉황 등이 바닥에 마루를 깔고 제단 위에는 산신도가 그려져 있으며, 양옆에는 창호를 달았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그 위에 우물천장을 설치하였고 건물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에 걸친 충양의 뒤끝은 용머리 장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지붕의 외관을 보면 용마루의 양켠에 물고기형 치미를 세우고 내림마루에는 잡상을 벌여 놓았으며, 아울러 처마의 공포, 담장의 치장 등이 매우 정제되어 궁궐건축의 의장답게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왕실의 제단이었다는 것을 십분 짐작케 한다.
석가여래진신사리탑
이 탑은 1990년 버마에서 4과 태국에서 3과 도합 7과의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셔다 봉안하고 있는 탑이다. 이곳에 가람을 세우고 탑을 세우면 천녀만대로 국익을 도모한다는 옛말에 따라 현주지 운담대사의 원력으로 세우게 되었다.
국제선원 이곳은 매년 초가을에 세계 각국에서 30여명의 외국 승려들이 운집하여 3개월간 수도하는 곳이다.
남매탑(오뉘탑)
삼불봉 기슭 계명정사옆에 있는 5층석탑과 7층석탑을 말함인데 의남매의 아름다운 전설을 지니고 있어 유명하다.
신도안
태조 이성계가 새 도읍지로 정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버려진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도량과 초식의 암석이 100여개 이상 남아 있다. 또한 정감록 풍수설에 의한 십승지지의 명당이라 하여 화를 면하려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잡신과 잡종교의 온상지로 토속신앙과 무속등 40여 신흥종교가 모여있었던 곳이다.
유성온천
대전시 서쪽 갑천 건너에있는 이 온천은 그 역사가 동국여지승람에 언급될만큼 오래되었다.
수온은 45℃정도이며 철분, 칼슘, 유황등의 광물질과 상당량의 라듐을 함유하고 있어 위장병, 피부병, 부인병, 특히 신경계통 질환에 좋다고 한다.
첫댓글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사진을 보니 과거의
역사까지도 잘 이해 할 수 있어 금상첨화 였습니다.
보는동안 즐거웠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건강하신 모습 또 뵙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