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철도 및 의료 민영화 논란을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정부는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이들 유언비어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새해에는 모든 비정상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30일 수석비서관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대해서 여러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철도 및 의료 관련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의 근본취지는 어디로 가 버리고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고 강력 대응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언비어는 근거 없는 소문 등으로 그 진위가 확인되면 소멸하는 성격을 지닌다. 유언비어는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전근대 사회까지 많이 발생하는 사회현상이지만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세기부터 유언비어에 대한 학문적 연구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은 '유언비어는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특성이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정보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정책 관련 유언비어가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거나 관련 당사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정부가 철도와 의료 관련 개혁에 대해 정확히 알리는 과정을 통해 소통을 강화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논란을 '유언비어'로 매도하는 것은 '불통'을 넘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10만 명 시민 철도 민영화 등 반대 집회...대통령은 '유언비어'로 낙인?
28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분쇄! 철도파업승리!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시청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양지웅 기자
철도 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여당 중진 의원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유언비어 언급은 청와대에서 눈과 귀를 틀어막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29일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해 수익이 보장되는 알짜 노선만 떼어주면서 경쟁하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비효율성 개선을 위해서라면 경춘선이나 중앙선처럼 수익이 나지 않는 적자노선을 같이 떼어내 경쟁 체제를 도입했더라면 이 같은 반발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변호사들의 조직인 민변은 합법적 파업이라고 규정하고 종교계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중재 내지는 해법을 적극 모색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나온 박 대통령의 유언비어 언급은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 관련 논란을 유언비어로 언급하는 것은 정부의 소통 부족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이 언급한 철도와 의료 개혁에 대해 박 대통령은 '내가 법이다. 나를 따르라'라는 식의 실천 방법을 보여 먹통 정권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지난 28일 서울 시청 광장에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와 시민이 영하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철도 민영화 등을 반대하며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에 동참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유언비어'가 빚어낸 현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소통을 중시해야 할 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의료 민영화 논란의 경우,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5일 여의도 공원에서 의사 2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 의사궐기대회'를 열고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기관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던 점이 주목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기관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은 사실상 영리병원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라며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문 닫는 동네 병의원과 지방 중소 병원이 급격하게 늘어나 의료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법안 철회를 주장했다. 그리고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정부의 철도 및 의료 개혁 드라이브와 관련해 유언비어를 언급했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방송과 대부분 신문은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선전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대국민 홍보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인정한 것과 같다. 정책 홍보의 홍수 속에서 국민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정부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는 현 정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 원인을 현 정부가 제공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시정할 수 있다. 정부가 불신의 대상이 된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특히 국가기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진상 규명에 역행하는 언행으로 일관한 것이 가장 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고등학생들까지 공공연하게 부정선거로 지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그 주변만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형국이 장기화되면서 현 정권의 도덕성과 윤리 지수가 바닥을 기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신뢰하지 않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전혀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유언비어 발생은 정부에게 그 책임이 가장 큰 것이다. 지금과 같이 철도 및 의료 민영화 논란이나 국가기관 부정선거에 대해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 되풀이될 때 대통령이 말한 '유언비어'의 발생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