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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생성 AI ‘달리(DALL·E)’에 ‘노트북 타자를 치고 있는 여자를 빈센트 반고흐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주문한 결과.ⓒ오픈AI 달리
챗지피티는 ‘글 쓰는 인공지능(AI)’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도대체 얼마나 잘 쓰기에 이렇게 난리인 걸까? 한 글자도 진도가 안 나가는 글을 챗지피티에게 맡겨보았다. 시말서다(〈그림 1〉).
〈그림 1〉 챗지피티에게 시말서 작성을 맡겨보았다.ⓒ챗지피티 갈무리
커서가 깜빡이더니 30초 만에 챗지피티가 ‘마감’을 했다. 분량은 지키지 못했지만 ‘시간 관리’라는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적어도 쓰기 싫은 글에 대해서는 이 녀석을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번 주 기사도 쓰기 싫다…. 또다시 챗지피티에게 부탁했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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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챗지피티에게 챗지피티에 관한 20쪽짜리 기획안을 부탁한 결과.ⓒ챗지피티 갈무리
웬걸, 꽤 괜찮다. 하지만 커버스토리를 쓰는 기자들은 표지 디자인도 고민해야 한다. 요즘은 미드저니(Midjourney)나 달리(DALL·E) 같은 AI가 그림도 그려준다. 작업을 지시하는 메시지(prompt·프롬프트)를 주면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식이다. 영어로 입력해야 하는데, 이걸 뭐라고 쓰면 좋을지 챗지피티에게 물었다(〈그림 3〉).
〈그림 3〉 이미지 생성 AI에게 줄 제시어(프롬프트)를 챗지피티가 제안했다.ⓒ챗지피티 갈무리
챗지피티가 제시한 첫 번째 프롬프트(‘인공지능의 진화를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라’)를 미드저니 채팅창에 입력했다(미드저니에 가입해 디스코드라는 서버에 접속, ‘newbies’라는 이름의 채팅창에 들어가서 ‘/imagine prompt’를 입력하고 이어서 영어로 제시어를 쓰면 된다). 곧바로 뿌연 그림 네 개가 만들어지더니 약 40초 만에 완전히 선명해졌다. 이 중 하나가 표지를 장식했다(〈그림 4, 5〉). 2007년 〈시사IN〉 창간 이후 최초다.
〈그림 4〉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 채팅창에 ‘/imagine prompt’를 입력한 뒤 챗지피티의 제안대로 ‘인공지능의 진화를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라’고 영어로 쓴 결과. 뿌연 그림 네 개가 완전히 선명해지기까지 약 40초 걸렸다.ⓒ미드저니 갈무리
〈그림 5〉 챗지피티가 제안한 제시어(‘인공지능의 진화를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라’)로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가 만든 그림 네 개 중 하나. 〈시사IN〉 커버 이미지를 장식했다.ⓒ미드저니
인간은 끝난 건가…. 진정하자. 그 전에 궁금증이 생긴다. 챗지피티가 쓴 글을 내 글인 척 여기저기 써먹거나, 미드저니나 달리에서 만든 그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저작권 문제는 없을까? 우선 챗지피티(글)와 달리(그림)는 오픈AI의 서비스인데, 오픈AI는 유료 회원이든 무료 회원이든 저작권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적어도 오픈AI와 상관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미드저니 그림의 경우 유료 회원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무료 회원은 비영리 이용만 가능하다.
AI로 생성한 글이나 그림이 다른 사람이나 회사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저작권 침해가 되려면 실질적 유사성뿐 아니라 의거성이 있어야 한다. 즉 우연히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보고 베낀 대상이 명확히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학습시킨 게 아니라면, AI의 글이나 그림이 (아마도 AI가 학습한) 실존 작가의 그것과 비슷하더라도 의거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창작자들은 소송을 제기 중이다).
그렇다고 AI에게 글이나 그림을 만들도록 한 ‘이용자’에게 저작권이 있는지도 모호하다. 최근 미국 저작권청은 미드저니로 그래픽노블을 만든 작가가 소설의 스토리나 그림 배열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갖지만, 해당 이미지에 대해선 저작권이 없다고 봤다. 미드저니에 제시어를 쓰는 단계에서는 이용자로서도 어떤 그림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성 AI의 저작권에 관한 몇 없는 공적 기관의 판단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된 것으로, AI가 만든 글이나 그림은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AI 회사와 이용자 중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도 정리가 안 된 상황이다. 사람이 아닌 AI의 저작권을 인정할지는 전 세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서, 당분간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신용우 변호사).”
■ 영어 글쓰기에 최적화
법적인 쟁점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챗지피티를 꼭 써야 할까? 그러나 챗지피티가 수많은 인터넷상의 문서를 학습했고, 그 문서의 압도적 다수가 영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말하자면 24시간 무료로 질문에 답해주는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생긴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앞에서도 나왔던 제시어, 즉 프롬프트다. 챗지피티한테 작업을 지시하는 메시지를 말한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게 중요한데, 이것을 최대로 써먹으려면 뭘 시키든 영어로 쓰는 게 낫다. 물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챗지피티는 번역도 한다! 원하는 걸 한글로 쓰고 영어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걸 시키면 된다.
해외 취재 때 영어 이메일을 쓰느라 골머리 앓던 게 기억났다. 언젠가 꼭 찾아가 보고 싶은 스웨덴 노총(LO)에 취재 요청을 보내는 이메일을 부탁했다. ‘내가 〈시사IN〉 기자이고, 한국에서 정·비정규직, 대·중소기업 격차가 심각한데 스웨덴 LO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10월에 취재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써줘’라고 한글로 적은 뒤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했다. 챗지피티가 9초 만에 번역했다. 번역된 문장을 복사해 붙여넣으니 15초 만에 이메일이 나왔다.
한눈에 봐도 자연스러운 데다, 정중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시사IN〉과 기자에 대한 설명을 적은 뒤 ‘이 내용을 영어로 추가해줘’라고 한국어로 시켰다. 역시 20초가 안 되는 시간에 수정본이 나왔다. 그 결과물을 최근에 나온 딥엘(deepl.com)이라는 인공지능 번역기에 입력한 모습이 〈그림 6〉이다.
〈그림 6〉 챗지피티가 써준 스웨덴 노총(LO) 취재 요청 영문 이메일을 인공지능 번역기 딥엘(DeepL)에 입력한 결과.ⓒ딥엘 갈무리
이메일뿐 아니라 ‘각국의 노동시장 불평등 해결 방안에 대한 에세이를 써줘’라고 해도 수려하게 써준다(실제로 훌륭했다. 대학들에 비상이 걸릴 만하다). 마음에 안 들면 ‘통계나 역사적 사실을 덧붙여줘’라는 식으로 ‘데스킹’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챗지피티는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가 가능하다. 이 ‘꼬꼬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챗지피티에서는 채팅방을 새로 개설할 수도 있고 기존 채팅방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는데, 적어도 같은 채팅방에서는 이전 대화를 기억하고 그에 맞춰 답변한다. 반면 채팅방을 새로 개설하면 자신이 주입한 정보들은 ‘리셋’된다고 보면 된다.
영어 작문 응용법은 무궁무진하다. 필요한 내용을 넣은 뒤 ‘이메일 본문을 써줘(Please write the email body)’라고 부탁하거나, 이미 쓴 문장을 제시하고 ‘고쳐서 더 낫게 만들어줄래?(Can you fix my sentence up and make it better)?’라고 시켜볼 수 있다. 헷갈리는 영어 표현을 한글로 물어도 잘 답해준다. 영어에서 ‘should’와 ‘must’의 차이가 뭔지 한글로 물었다. 예시 4개를 들어달라고 했더니 더 쏙쏙 이해된다(〈그림 7〉).
〈그림 7〉 챗지피티에게 ‘should’와 ‘must’의 차이를 물어봤다. 예를 몇 개 들어달라고 하면 그대로 해준다. ⓒ챗지피티 갈무리
이렇게 형식이나 분량 등 원하는 걸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답변의 질이 상승한다. 인간과 협업하는 노하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참고로 둘 다 ‘나누다’라는 뜻의 일본어 ‘分け合う’와 ‘分かち合う’의 차이를 일본어로 물어도 완벽히 답했다. 일본어 텍스트도 꽤 학습한 듯하다). 음성을 텍스트로,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구글 크롬의 확장 프로그램 ‘Talk-to-ChatGPT’를 설치하면 영어 회화 연습도 가능하다.
■ 챗지피티가 할 수 있는 것
물론 챗지피티를 영어 선생님으로만 쓰는 건 아까운 노릇이다. 왜냐하면 챗지피티에게는 훨씬 많은 ‘배역’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의 프롬프트가 바로 ‘Act as(~처럼 행동하라)’다. 〈시사IN〉이 어떤 잡지인지 설명하고 ‘Act as a marketer of SisaIN(〈시사IN〉 마케터처럼 행동하라)’고 한 뒤, 지금의 슬로건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주간지’보다 신선하고 구독자를 끌 만한 문구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지금 당장 써먹어도 별 손색이 없다고 느꼈다(〈그림 8〉). 이 채팅방에서는 이제 이벤트 아이디어부터 채용 공고까지 주문하는 대로 술술 써준다.
〈그림 8〉 챗지피티에게 ‘Act as a marketer of SisaIN(〈시사IN〉 마케터처럼 행동하라)’고 한 뒤 구독 문구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게끔 했다. ⓒ챗지피티 갈무리
굳이 ‘Act as’를 주문하지 않아도 챗지피티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놀랍게도 코딩이다. 전혀 코딩을 할 줄 모르는 문과 출신 기자도 챗지피티 덕분에 코딩을 해봤다(정확히는 코드를 실행해봤다). ‘초보자에게 재밌는 코드를 짜줘’라고 했더니, 1에서 100 사이의 숫자 중 하나를 다섯 번 만에 맞혀야 하는 게임 코드를 짜주었다. 실행하려면 ‘파이선’이라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서 다운받았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 다시 챗지피티한테 물으니 차근차근 알려줬다. 한참 헤매다 겨우 코드를 실행해 게임을 해봤다. 답을 맞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그림 9, 10〉).
〈그림 9〉 ‘초보자에게 재밌는 코드를 짜줘’라고 했더니, 1에서 100 사이의 숫자 중 하나를 다섯 번 만에 맞혀야 하는 게임 코드를 만들어주었다.ⓒ챗지피티 갈무리
〈그림 10〉 챗지피티가 짜준 코드로 게임을 실행해봤다. 코드 실행 방법도 챗지피티가 가르쳐줬다. 숫자를 맞히자 ‘축하합니다. 숫자를 맞히셨습니다(Congratulations, you guessed the number)’라는 메시지가 뜬다.ⓒ기자 데스크톱 화면 갈무리
쉬운 코딩 기능을 맛보기로 넣은 수준이 아니다. 사무직이 많이 쓰는 엑셀 업무 자동화 도구인 VBA의 코드도 잘 짠다(물론 엑셀 수식도 가르쳐준다). 심지어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챗지피티로 업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카카오에서 AI 번역을 개발했던 양기창씨는 “코딩할 때 챗지피티를 많이 쓴다.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명령어를 물어보거나, 포맷을 바꿔달라고 하면 거의 99% 정확도로 해준다. 2시간에 할 일을 2분에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챗지피티 이전에 개발자들은 프로그래밍을 하다 막히면 구글이나 ‘스택오버플로(Stack overflow)’라는 질문 답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야 했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는 찾을 수 있었지만, 똑같은 난관에 부딪힌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게 달라졌다. 국내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AI 개발자는 “챗지피티는 일반화 능력이 있어서 원하는 걸 입력하면 딱 그걸 내놓는다. 이것저것 키워드를 바꿔가며 찾아보고 결과물을 조합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코딩이 아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챗지피티가 웹 검색을 대체하는 게 아닌지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 챗지피티가 검색을, 혹은 인간을 대체할까
하지만 챗지피티 같은 글 생성 AI가 검색을 대체하기 어려운 두 가지 난관이 있다. 일단 서비스 운영 비용이 구글 검색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물론 기술 발전에 따라 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이라 부르는 문제다. 챗지피티는 자신이 잘 모르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는 척 그럴듯하게 생성해낸다. 예컨대 챗지피티는 아직 2021년까지의 자료만 학습했기에 한국의 현재 대통령이 누군지 모른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이 점에서는 챗지피티를 실시간 검색 기능과 연결한 또 다른 글 생성 AI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 AI가 나아 보인다(〈그림 11, 12〉). 하지만 빙 AI도 잘 모르는 것을 웹문서를 조합해서 말할 뿐이다. 기자에 대해 묻자, 동명이인에 대한 정보를 거르지 못했다(〈그림 13〉). 다만 빙 AI는 출처가 달려 있어서 틀린 답변을 해도 왜 그런 답변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림 11〉 챗지피티는 2021년까지만 학습해 현재 한국의 대통령을 모르는데도 유창하게 답한다. 이렇게 AI가 틀린 답변을 그럴듯하게 하는 현상을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문제라고 한다. ⓒ챗지피티 갈무리
〈그림 12〉 마이크로소프트 빙 AI는 실시간 검색과 연결되어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 누군지 안다. 최신 뉴스를 물어도 잘 답한다.ⓒ 빙 갈무리
〈그림 13〉 그러나 빙 역시 인터넷상의 웹문서를 조합해 답을 생성할 뿐이다. 기자의 소속을 밝혔는데도 〈아시아투데이〉에서 일한다고 답했다.ⓒ빙 갈무리
양기창 개발자는 “챗지피티 같은 생성 AI의 장점이자 단점이 ‘없던 내용을 만들어낸다(생성)’는 점이다. 그만큼 유용하지만, 사실관계 확인에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용자가 모호한 질문을 할수록 챗지피티가 이치에 맞지 않거나 틀린 답변을 할 가능성이 높다. 막연히 ‘부동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 게 아니라, ‘현재 금리는 이렇고 주식시장이나 환율은 이런데 향후 10년의 판을 그려달라’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물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 때는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잘 검색해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사람이나 AI에게)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 중요해지지 않을까.”
챗지피티 같은 거대 언어 모델로부터 높은 품질의 답변을 얻어낼 수 있는 프롬프트 입력값의 조합을 찾는 일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prompt engineer)’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기술이 개발자를 대체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한다. 혹은 기존의 개발자가 챗지피티를 도구 삼아 숙련을 높일 수도 있다. 기자가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코딩을 했듯이 말이다.
앞서의 대기업 AI 개발자는 “프로그래머가 이전보다 덜 필요해질 수도 있지만, 거꾸로 코딩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더 똑똑해진다고 볼 수도 있다. ‘AI도 코딩을 하니 프로그래머는 모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예측은 극단적이다”라고 말했다. “챗지피티가 짠 코딩을 복사해서 붙여넣어도 대부분 돌아가긴 하는데, 그래도 신뢰성을 위해서는 인간 프로그래머가 검수를 해야 한다. 단, AI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평가하려면 코딩 등 특정 분야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AI가 당신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럴 것이다’.”
■ “이 일을 계속할 가치가 있는가”
일주일 좀 넘게 챗지피티를 쓰면서 놀란 순간이 여럿 있었다. 가장 놀란 기능 중 하나는 요약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장 리나 칸이 예일대 재학 시절 쓴 유명한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링크를 주고 ‘이거 요약해줘(Please summarize this)’라고 하자 13초 만에 세 문단으로 요약했다. 기자가 인공지능 번역을 동원해 낑낑거리며 읽었던 논문의 핵심을 챗지피티는 금세 파악해버렸다. 스웨덴 정부의 연금개혁 관련 131페이지짜리 문건은 링크만 붙였는데도 1분도 채 되지 않아 주요 내용을 알려줬다. 기자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스웨덴 연금개혁 내용과 일치했다. 다만 한글 문서 링크는 잘 인식하지 못했다. 글을 직접 붙여넣으면 요약해주긴 하는데, 너무 긴 글은 오류가 난다.
챗지피티에게 세 글자 끝말잇기를 가르친 것도 뿌듯했다. ‘예시’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그림 14〉).
〈그림 14〉 챗지피티에게 세 글자 끝말잇기를 가르쳐보았다. 예시를 들어주면 말귀를 알아듣는다.ⓒ챗지피티 갈무리
반면 영화 초성 퀴즈는 아무리 가르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기사를 주고 제목을 지어보라고 하거나 취재 아이템을 주고 첫 문장을 써보라고 했을 때는, 무난하지만 지루한 결과물이 나왔다. 자기소개서를 써보게 한 결과도 비슷했다. 아, 챗지피티는 농담도 잘 못하는 듯하다(〈그림 15〉).
〈그림 15〉 챗지피티가 생성한 농담. 아무래도 유머는 인간의 고유 감각인 것 같다. 영어 농담도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챗지피티 갈무리
그럼에도 ‘시·사·인’으로 지은 삼행시에는 좀 감탄했다(〈그림 16〉). 인간 시인을 대체할 정도야 아니지만, 막히는 대목에서 생각도 못한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앞서 인용한 개발자 양기창씨는 작곡이 취미인데, 챗지피티에게 키를 주고 작곡을 시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기자도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봐 걱정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의 활기찬 노래’를 다장조(C major)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그림 17〉).
〈그림 16〉 챗지피티가 지은 시·사·인 삼행시. ⓒ챗지피티 갈무리
그러다 보니 점점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요청으로 AI가 생성한 음악·그림·글과, 사람이 직접 생성한 음악·그림·글은 무엇이 다를까, 혹은 달라야 할까. 오픈AI는 어떤 글을 AI가 썼는지, 인간이 썼는지 분류하는 페이지(platform.openai.com/ai-text-classifier)를 최근 공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분류기는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 분류기는 AI가 쓴 글의 26%를 ‘AI가 작성했다’고 정확히 식별한 반면, 사람이 쓴 글의 9%를 ‘AI가 작성했다’고 잘못 분류했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 ‘고등학교 영어의 끝’에서 이렇게 썼다. “글쓰기를 적성과 지능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제 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소개서란 무엇일까요? ‘나는 이미 이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나는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왜 내가 이 일에 적합한지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전달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필기시험이란 무엇인가요? 필기시험의 주요 신호는 ‘많은 정보를 암기했다’가 아니라 ‘그 정보를 글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입니다. 많은 교사들이 필기 과제를 어떻게 낼지, 즉 손으로 직접 쓰게 하거나 수업 시간에만 출제할지 상상하며 챗지피티에 대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는 근시안적 생각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일을 계속할 가치가 있는가?’입니다. … 오픈AI는 이러한 것들(문학 형식으로서의 에세이, 지능의 지표로서의 문법 규칙, 기술로서의 글쓰기 자체)을 계속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림 17〉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봐 걱정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의 활기찬 노래’를 다장조(C major)로 만들어달라고 챗지피티에게 부탁한 결과. ⓒ챗지피티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