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동산·봉두·천황산’에 이어 서쪽(사천)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산행때 원점으로 삼은 봉발리 뒷쪽으론 낙남정맥이 지나고 거기에 대곡산이 솟아있다.
대곡산 원점회귀를 위해서 그 아래 비곡골짜기 뒤에 있는 오두산을 끼워 넣은 건 선택이었다.
오두산은 봉두산에 대칭되는 산이름이라 호기심도 한몫하였고, 또 그 산자락엔 ‘오두산치유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두산(烏頭山 421m)은 이름 그대로 ‘까마귀의 머리’라는 뜻.
까마귀는 영특한 두뇌가 있어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도구를 이용할 줄도 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鳥頭)’라고 한다지만 까마귀는 해당되지 않는 말.
까마귀는 흉조(凶鳥), 까치는 길조(吉鳥)라 여긴 우리의 정서도 이제 바뀌어 가고 있다.
까치는 지금 유해조수(有害鳥獸)로 분류되었고, 까마귀는 효(孝)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효를 다한다’는 뜻으로 인간을 제외하면 까마귀가 유일하다.
어디 이쯤되면 봉황만 상서롭다 하겠는가?
굳이 삼족오(三足烏)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 ‘오두산 치유숲’은 ‘고성군 상리면 신촌리 산 31’ 일대에 걸쳐있는 자연생태관광지로 2015년 7월에 개장하였다.
이만한 규모의 시설을 개인이 가꾸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그런지 기존 시설들은 이미 노후되어 쓸모없어져 가고, 진행 중인 작업은 정지된 채로 있어 그 피로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도 치유숲의 인프라는 모두 크고작은 돌들이 빽빽한 작은 계곡에 치우쳐져 있다.
오두산 치유숲의 주소를 네이버지도에 입력하니 오두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면적이 모두 치유숲의 시설(1·2·3차코스)들이 들어선 줄 알았으나 그건 단순히 주소가 차지하는 면적이었던 것.
나는 오두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지능을 따라 잡목이 잡아끄는 된비알을 올랐다.
‘치유숲’이나 ‘휴양림’이나 모두 정상으로 가는 코스를 먼저 놓은 뒤 정상석부터 세웠어야만 하는 것이 산꾼의 시각이다.
거기에다 까마귀와 관련한 그럴사한 스토리텔링을 덧입혔다면 훨씬 더 빨리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개장한지 6년이 지나도 아직 이렇게 정체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해 뵌다.
대곡산(424.5m)의 한자이름을 ‘大谷山’으로 표기하였다.
‘큰 골짜기가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어떤 지도에는 대곡산에서 400여m 떨어져 있는 삼각점(△391.2m)봉을 가리킨다.
또한 ‘고성 대곡산’이라 하면 낙남정맥과 통영지맥의 분기봉인 무량산(544.9m)을 떠올린다.
이름이 혼란스러운 고성의 산들은 천왕산(舊무량산)과 무량산(舊대곡산)으로 정리되었다.
무리한 원점회귀 코스를 고집하다 보니 군데군데 사유지가 있어 매끄럽지 못했다.
하늘아래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줄 알았던 곳에 철망울타리를 쳐놓고, 또는 맹견을 세워놓고 출입을 막고 있었으니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그런지 전체적으로 거친 산길이었고, 에둘러 말하면 ‘때묻지 않은 청정 산길’이었던 셈.
산행코스: 오두산치유의숲-오두산(421m)-아베스농장-임도-차단기(고갯마루)-<낙남정맥>-대곡산-△391.2m-울타리-임도-비곡1교-아스팔트-오두산치유의숲 입구(대진주유소)
빨간 트랙이 '오두산&대곡산'이고, 그 우측 파란 트랙이 ☞천황산,봉두산이고, 다시 그 우측이 ☞송구산,석창산이다.
큰지도.
확대.
<2021/ 11/ 16> 약 10km를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 산의 고도표.
미리 준비한 표지기. 서명은 이제 '복(福)'자 한 자만 쓰기로 했다.
벌써 낮의 해길이가 많이 짧아졌다. 그래서 조금 일찍 출발하여 오전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비에는 'S-OIL 대진주유소(고성군 상리면 고봉리 438-2)'를 입력하여 대진주유소 뒷편(하촌마을)에 차를 댔다.
'오두산 치유숲' 방향으로 100여m 이동하면 '대진주유소'가 있고, 비곡마을 삼거리를 지나 200여m 더 대로변을 따라가면...
비곡마을 안내판이 있는 곳(70m는 아니고 200m는 족히 될 것)에...
오두산 치유숲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공사중인 비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돌부스러기로 석축을 쌓은 조형물들이 각양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개장한 지 6년여가 지났지만 아직 진행중인 치유숲. 한편에선 작업중이나 또 한편에선 퇴화중이다.
'치유숲 길'은 좌측 계곡을 가리킨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표지판이 보인다.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으로, 나날이 발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계곡을 들여다 보았더니 물 한방울 없는 건계곡(乾谷)이지만 말끔이 정돈되어 있다.
계곡 좌측 능선으로 산길을 더듬어 보았으나 불가하였고, 계곡 이곳저곳에는 문화행사를 한 듯 썰렁하게 각종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계곡에서 빠져나와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 "이 길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궁금해하며 올랐더니...
정자도 파손돼 있고...
하늘원두막도 이미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좌측으로 계곡을 낀 임도는 중앙에 배수로를 드러낸 채 자꾸만 위로 향하지만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정상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 은근히 걱정.
현수막은 개인사유지임을 알리고 있다.
나무판떼기에 세워진 이정표엔 '치유숲길 1코스'와 '치유숲길 2코스'.
건계곡엔 흩어진 돌부스러기로 각종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었으며 수분이 부족해 단풍도 곱게 물들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건계곡은 사람의 손길이 스쳐갔으나 상당히 거칠었고...
주위에 흩어진 돌들을 모아 돌탑이 만들어져 있었다.
임도급 산책로는 여기까지였다. 덩그러니 선 자연석 돌비를 '입석인(立石人)'이라 하는 모양으로...
나무 판떼기 안내판에서 확인이 된다. 오른쪽 전체를 '신사처'에 해당한다며 자신속에 내재된 ㅇ성을 움띄우는데 도움을 주는 곳이란다.
더 위로 길이 있는 지를 살펴 보았으나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신사처'에 해당된다는 우측 잡목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산 서능(西陵)에 접속하였다.
길은 없으며 된비알에다 낙엽에 미끄러지며 발걸음은 더없이 더뎌진다.
석축이 쌓여진 묵묘에서 그만 퍼질고 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주음료 한 방울로 목부터 축이고 보자."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등성이에 올랐더니 묵묘.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조금 더 오르니 오두산 정상이다.
정상은 펑퍼짐한 평지여서 어느곳에다 정확한 좌표를 찍을 지 알 수 없어 그 중 높은 지점에다 표지기를 걸었다.
오두산에선 열혈 산꾼들의 흔적도 전무하다.
그런 뒤 내려서는 방향은 동남(東南)능선.
펑퍼짐한 봉우리여서 정확한 방향은 나침반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전엔 나침반을 따로 가지고 다녔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 깔려있어 무척 편리하다.송전탑 빨간 리본을 지나...
341m봉에서 우리 '부산한마음산악회' 표지기를 걸었다.
그 바로 밑엔 송전탑.
제법 길흔적이 뚜렷해지더니 개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개짖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더니...
버섯농장인 듯한 곳에 이른다. 이곳이 목줄을 길게 매어놓은 세 마리의 맹견들이 합창으로 짖어대는 곳이다.
내가 내려가야할 길은 하우스 뒷편이지만 이넘들 때문에 통과가 불가하다.
그래서 반듯한 길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섰더니...
무덤이 있는 곳에서 길은 끝이난다.
다시 개짖는 하우스로 되돌아 올라왔다.
세 놈이 죽으라 짖어대는 곳으론 통과하기가 어림도 없어 화살표 방향 좌측 희미한 산길로 내려갔더니...
묘지로 통하는 길이었다.
이제 선택은 유일하다. 무덤 우측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조금 내려섰더니 산자락 끄트머리에 임도가 보이지만 건너가기가 여의치 않아...
작은 수로를 더듬어 가시덤풀을 헤치고 올랐다.
임도를 올라와 좌측 건너온 산자락을 내려다 본다.
고갯마루로 올라오며 개짖는 하우스농장(▽)을 돌아본다. 화살표는 내려온 능선.
아직 죽어라 짖어대는 개소리가 산자락을 울리고, 임도는 개짖는 농장으로 통하는 길이지만 경고판이 놓여져 있다.
돌아보는 개짖는 하우스 농장(▽).
농장이름.
잠시 시야가 트였지만 &*%$..
차단기가 있는 고갯마루에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올라서는 낙남정맥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달라 걷기가 수월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묵묘와...
송전탑을 지나자...
대곡산.
표지기를 건 뒤 스마트폰으로 이렇게 인증을 하였다.
조금 더 진행하자 삼각점(△391.2m)봉.
정맥길을 벗어나 좌틀하는 터닝 포인터는 이렇다할 지형지물은 없다. 다만 묵묘 봉분에 특이한 고목이 있는 곳.
그 10m 앞의 나무에 흰색 끈이 묶여 있는 지점이 터닝포인터.
제법 길흔적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서자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다.앞으로 이 철망 울타리는 내려갈 때까지 가까이 혹은 멀리로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철망 울타리를 끼고 내려가는 산길은...
x256.7m봉을 목전에 두고...
철망을 따랐지만...
256.7m봉은 철망 울타리 안에 갇혀있다.
이후에도 철망 울타리는 계속 이어지다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거창유씨 할머니 무덤이 나온다.
다시 철망울타리를 바짝 끼고 따르는 길은...
점점 수월해지더니...
우측 아래에 철문이 나온다.
온 산자락이 사유지인 셈으로 그나마 능선을 열어준 게 고마울 따름.
여기까지 임도가 올라와 있어...
뒤돌아 보았다. 철망 울타리는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임도가 좌측으로 크게 꺾어지는 지점에서 내리막을 내려다 보았더니 길흔적이 보이지만 좀 돌아가더라도 임도를 따르기로 했다.
저 아래 비곡1교가 보이는 곳이 내려설 지점.
비곡1교에 내려서서 내려온 방향을 돌아본다.
차가 대있는 하촌마을로 회귀하면서 곡각지점에서 우측으로 산길을 더듬어 본다.
화살표로 오르면 아까 임도 곡각지점에서 내려다본 지점으로 질러갈 수 있을 것.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1차선 아스팔트 옆 들판엔 이미 추수가 끝났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소 사료인 '곤포 사일리지(梱包 silage)'가 뒹굴고 있고, 정면엔 장군당산(△378.8m)이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길 옆 숭조당(崇祖堂)은 '영일 정씨 납골당'.
붉은 신호등이 켜진 33번 국도 좌측에 노란색 대진주유소가 보이고...
장군당산이 올려다 보이는 하촌마을에 돌아왔다.
길도 없는 곳으로 잡목을 헤집고 다니는 행위를 산행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산짐승들이나 다니는 산속을 짐승처럼 헤매다 돌아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산에서 내려오면 군데군데 긁히고 할킨 자국이 선명하다.
내가 매일매일 숨이라도 쉬고 살 수 있는 것은 이렇게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