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간 극장을 보고
안 병욱 교수 님이 인생은 3 가지 선택에 의해서 산다 하셨다.
1.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배우자의 선택)
2. 나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직업의 선택)
3.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치관, 인생관의 선택)
존 헤이우드는 "인생의 행복도 불행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이다."
두 말씀을 통해 얻은 답은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결혼이 중요하다는 게 답이다.
살아본 사람은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 알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TV에서 가장 깊은 마음으로 보는 프로가 3 개가 있다.
1. 인간 극장 2. 아빠 찾아 3 만 리 3. 다문화 고부 열전 이다.
세 프로 모두 가정에 대한 프로이고 거기에는 인간이 사는데
"올바른 결혼이야 말로 행 과 불행을 좌우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고
" 주어진 운명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인간 극장' 프로에서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두 편의 이야기를 여기 옮기려 한다.
먼저 "발렌시아에서 온 편지" 의 김 산들 씨와 후안호 투르 라이게라 씨의 이야기다.
발렌시아에서 온 편지를 소개한 동영상.
https://tv.kakao.com/v/sf5b2u3BCBDQRer6gUCRlgC@my
<동영상 다음에서 옮김>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며 행복의 기준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 가를 얻으며
지나온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주인공 김 산들 씨는 한국인으로서 IMF 여파로 단 300만 원을 들고 인도로 떠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여행 가이드로 있으면서 네팔에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젓가락으로 식사하고
있는 외국인 후안호 투르 라이게라 씨를 보고 인연이란 생각을 하며 그와 가까이 지내다 부부가 되었다
한다.
자, 한 번 생각해 보자.
IMF 후유증 여파로 낯선 인도에 가서 잠시 살던 그가 젓가락질 하는 외국인을 보고 인연이라 생각했다니
참으로 어려운 답이다.
그것 뿐인가? 산들 씨가 후안호 투르 라이게라 씨를 따라가 살아야 하는 곳은 이국 땅이 아니던가?
이들 부부가 처음 정착한 마을 베스타베야 델 마에스트라스는 해발 1200 미터 고산 지대요, 인구도 200명
남짓 하며, 문화 혜택이라고 는 잡화점 2 개, 수영장 1개, 마을에 달랑 하나 있는 우체통이 전부이고,
겨우 초등학생 11 명이라니, 그런 곳에서 어떻게 가정을 꾸미고 아이들 장래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들이 처음 누울 자리로 마련한 곳은 200년이 넘은 낡은 집이었고 그 집을 단 돈 600만 원에
구입하여 5년 동안 고쳐가며 새집으로 변모 시키며 살았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기 때문에 이웃집
땅을 빌려 가꾸며 얻어야 했다니, 도대체 저들이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용기(?)는 무엇이 주었을까?
더구나 후안호 씨는 독신주의자였었는데 산들 씨를 만나고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꿈을 실현한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산들 씨도 사람 인지라 이국 땅 낯선 곳에서 매우 어려운 삶을 꾸리다 보니 외로움에 시달렸고,
둘째 쌍둥이 누리아 와 사라를 낳고는 심한 우울증에 괴로움을 벗 했다니 그 힘든 삶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런 부부가 이제 행복을 논하는 것을 보니 한평생 행복을 찾으며 온갖 괴로움 다 짊어지고 살며
자책해 왔던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 어려움 다 극복하고 지금 누구보다 아내와 남편과 세 자녀가 행복해 하는 삶의
원천은 무엇일까?
먼저 남편 후안호 씨는 좋은 산업 디자인 가로서 좋은 직장도 가졌지만 오직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새로 일으키면서, 세 자녀와 대자연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요,
그 아내 산들 씨는 남편과 세 자녀에게 모든 사랑과 헌신으로 살았기 때문 이리라.
삶의 의미가 행복에 있거늘 그들이 그렇게 행복에 겨워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는 의미를 나는
마지막에 후안호 씨가 말하는 행복의 정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행복의 기준은 시기마다 다릅니다. 행복의 기준을 정해 놓고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 아내가 행복이요, 세 아이가 행복입니다,
과거의 행복은 행복이 아니요, 내일의 행복도 행복이 아닙니다.
지금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입니다"라고 하였다.
산들 씨는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기록하며 한국과 미국의 잡지에 기고까지 한다니 참으로 부럽고
자랑스럽다.
후안호 씨, 산들 씨, 그리고 산드라, 누리아, 사라 양
당신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기 기도하고 또 기원 드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넝쿨 채 굴러온 황티 쿡"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새로운 세대에 살고 있다.
그간 KBS에서 '러브 인 아시아'라는 프로가 있었고 나는 줄곧 그 프로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많은 공감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프로가 사라져 아쉬워 했는데 EBS에서 '아빠 찾아 3만 리'를 하는 것을 보고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정말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어찌도
우리 어렸을 때 우리네 삶과 그렇게도 같을 수가 있는가?
지금 우리 아이들은 지금부터 불과 60년 전의 우리 삶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정말 지금 우리 아이들이 저런 프로들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들의 삶에 대해 느껴 보았으면 해진다.
넝쿨 채 굴러온 황티 쿡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온 황티 쿡 씨야 말로 충북 진천에 사시는 이 근우 씨 가정에게는
"넝쿨 채 굴러온 황티 쿡"이란 이름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이 근우 씨가 40 이 되도록 노총각으로 농촌에서 살아왔는데, 황티 쿡의 고모 되시는 분이 이 근우 씨의
됨됨이를 보고 소개하여 오늘의 가정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 근우 씨가 황티 쿡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 이 근우 씨가 40세였고 황티 쿡씨는 겨우
20세였다니 고모 님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연이 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연을 맺어 부부가 되었지만 어린 황티 쿡이 낯선 이국 땅에 와서 힘든 농사일부터 해 나갈 때,
언어 장벽이며 문화의 벽이며 농촌의 벅찬 하루하루 삶이 오죽 했겠는가?
그러다 보니 황티 쿡 씨도 외로움에 시달리고 아들 상진 이를 낳아 기르다 상진 이가 갑상선 기능 저하로
고생할 때, 황티 쿡 씨도 결국 우울증에 걸려 고향에 가고 싶다며 그 어머니에게 전화로 매달리게 되었다
한다.
그 어찌 안 그러겠는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린 몸으로 향수에 시달리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그러나 현명하신 어머님의 설득으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문화 가정이란 굴레 아닌 굴레에서 벗어나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어려움을 겪을 자식을 위해 우리 문화, 언어를 열심히 배우는 한편, 수박 농사를
터득 배워 외국인 농업 조합원 1호라는 명예까지 얻었다니 얼마나 장한가!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황티 쿡 씨가 어느 외국인 못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
우리 속담에 '미움도 예쁨도 다 자기 하기 나름' 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니 누구나 도와주고 싶어질 거다.
그래서 정 상현 씨란 수박 농사의 스승도 만났고, 넝쿨 채 굴러온 며느리를 예뻐하는 시 부모님도 만났고,
사랑하는 남편도 만나게 되었으리라.
더구나 아버님까지 모셔와 외로움도 달래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안고 살고 있으니 이제 이 근우 씨 황티 쿡 씨 가정에 행복이 주렁주렁 매달리리라.
아래 사진을 보라.
남편과 자식과 시 어머님과 행복에 겨워 웃는 모습을 ...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모든 외국인들이 황티 쿡 씨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근우 씨 황티 쿡 씨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미지 : 다음에서 캪쳐
<추신>
제가 소개 올린 두 분에게 저는 메일을 통해 서로 오랫동안 교류해 왔습니다.
산들 씨는 매우 고급 지식을 가지신 분이었기에 가까움이 컸지만
황티 쿡 씨에게는 외국 인 어머니가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 근우 씨의 인간 됨에 존경을 보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