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동적인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
미국에서는 공정채권추심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법이 금융이용자의 보호에 이 용되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홍보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Fair Trade Commission,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각 주 정부의 금융담당 부서, 각 주의 검찰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부당한 채권추심의 피해자를 위한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문이 올려져 있다.
즉, 미국의 채무자가 부당한 채권추심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이렇듯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민간상담소까지 있음을 감안할 때 미국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불법적인 채권추심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은 소비자(채무자를 지칭)를 보호하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채무사실을 소비자 이외의 제3자에 대해 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소비자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제3자에게 연락하는 경우에도 소비자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804. Acquisition of location information) 즉, 채권추심자는
(1)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자신이 해당 소비자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연락하는 것임을 밝혀야 하며,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자신의 회사명을 밝힐 수 있으며,
(2) 소비자의 채무관계에 대해서는 물론 채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밝혀서는 안되며,
(3)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에게 한번 이상 연락하여서는 안되며, 단지 처음 연락 시에는 잘못된 정보를 주었지만 추후에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예외로 하며,
(4) 엽서로 연락하여서는 안되며,
(5) 우편과 전보를 이용하는 경우에 채권추심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일체의 언어, 기호가 나타나서는 안되며,
(6) 만약 해당 채무와 관련하여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경우에는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제3자와 연락을 취해서는 안되며, 다만 변호사와 장기간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경우만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엽서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엽서의 내용은 노출되어 있으므로 우편배달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채권추심자가 제3자와 연락을 취할 때 해당 소비자와 관련된 것임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했는가를 알 수 있다.
무슨 무슨 신용정보회사 명의로 시뻘건 압류 도장이 찍혀 있고 채권독촉문구가 겉표지에 있는 편지를 남발하고 있는 한국의 금융기관들과 채권추심기관들의 관행을 떠올릴 때 한국의 현 상황이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채무자를 위해 채권추심시 할 수 있는 행위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상세하게 조목조목 나열해 놓은 이 법을 읽어가노라면 문명국가에서 채무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구체적으로 채권추심자가 소비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폭력적 행위 또는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나 욕설 등의 언어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소비자를 괴롭히기 위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자주 방문하는 행위를 모두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 806. Harassment or abuse)
필자가 특히 주목한 대목은 소비자가 채권추심자에게 연락을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음을 규정한 조문이었다. (§805. Communication in connection with debt collection, (c) ceasing communication) 소비자가 서면으로 채권추심자에게 연락을 중단하도록 요청하는 경우 채권추심자는 법률에 의거 자신이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통고하는 외에는 일체의 연락을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전화는 물론 편지 등 모든 수단의 연락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미국의 채무자는 본인이 원한다면 채권자의 시달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채무자 본인 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같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채권자가 채무자의 가족들에 대한 강박적 채권추심을 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 조항의 실질적 효과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채무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를 채권자는 알 수 없다. 채권자의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채무의 변제를 독촉하는 전화 한 통화는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상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빚에 쪼달려 신경쇠약에 걸려있는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전화 벨소리자체가 생활의 평온을 깨는 행위일 수 있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과도하다고 느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조치한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은 필자에게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국에도 강박적 채권추심을 막을 수 있는 규제조항이 여러 법에 나뉘어 몇 개 조항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친절하고 상세한 규정에 비한다면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법 규정에 불과한 실정이다.
2. 너무도 야만적인 한국의 실정
채권추심자들에게 시달리다 견디다 못해 자살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채무자들이 발생하고 있음은 채권추심과 관련하여 한국이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현실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책당국자들은 도대체 어떤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 카드사들은 높아진 연체율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고자 채권추심업무를 대폭 강화하였다. 엄청나게 그 수가 늘어난, 채권추심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사람들에 의한 강박적 채권추심행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릴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 그들의 행위를 정당한 채권자의 권리인 양 용인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채무자에게 채무를 변제할 의무가 있고, 채권자에게도 채권을 추심할 권리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 모든 절차가 법에 의해 진행되도록, 채권자가 강박적 추심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채무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채무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연체율이 높아 부실화되었다는 소식은 듣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충분한 방안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필자는 왜 야만적인 강박적 채권추심을 허용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도 공정채권추심법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필자만인가?
사람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모한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일 같이 채권추심에 고통받고, 빚에서 헤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삶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채무자들이 불법적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것을 조금 더 경감시켜주고, 그들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넓혀 준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신용위기로 인한 불행한 사태는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필자는 굳게 믿는다.
첫댓글 정말 감동적이군요...당췌..대한민국 윗분들은 무얼 하시는지 온...
미국으로 이민가고파~ ㅜ.ㅜ
양파님의 글은 읽을 거리가 많아 좋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선 돈이 없거나 장애자이거나 그러면 우선은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죠. 현실성이 없어요. 위에서 아무리 고친다해도 이나라의 인식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종이 위의 글 밖엔 해석이 않되는 현실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추심원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게 통하니까
그러면 겁먹구 갚으니까 그러는 거겠죠. 사실 제가 사람을 죽인것두 아니고 상해를 입힌것두 아닌데 돈 빌려 썼다가 이자가 너무 많아 갚지도 못하고 있는 것 뿐인데 무슨 죄인인양 머리 조아리며 갚겠다고 약속을 하게 되는.... 암튼 잘못을 해서가 아니고 돈없음 죄인인 인식 자체가 개조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