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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메시아를 거절한 사건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어도 진리되신 예수님이 안착하실 교회가 없습니다. 약속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임했건만 그분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교회처럼, 현대 기독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전하시는 진리의 기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은 결국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참된 증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곧바른 진리의 기별을 거절하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절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그 당시의 유대교회가 메시야를 거절했던 이유와 현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메시야를 거절한 유대교회와 그 이유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기사가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게 하고 신앙 생활에 큰 각성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 1부: 메시야를 거절한 사건
유대 백성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메시야에 대한 많은 예언과 메시야에 대한 소망의 기록들이 있었다. 온 민족의 희망과 꿈에 정점을 이루어줄 사건이 메시야의 강림이었으므로, 그들은 열렬하게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약속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그렇게 많은 이적과 기적들을 목격하면서도, 수없이 병자를 치료하고 고치는 행위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과 동정과 자비를 보면서도, 그리고 특히 영혼과 마음의 병을 치유시키는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그들은 왜 메시야를 거절했을까?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고향 교회에서 일어난 일
어느 날 예수께서 나사렛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수께서는 유소년 시절을 나사렛에서 보내셨고 회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셨었다. 공생애를 위해 고향을 떠나 계셨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같은 고향 출신인 예수의 행적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예수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에 대한 흥미로운 소문이 그등레게 빠짐없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사렛 사람들의 흥미와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하시리라는 기대감과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뭐라고 선포하실까 하는 호기심 속에서 그들은 예수를 기다렸다. 드디어 예수께서 나타나시고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앉으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분에게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예수님을 유아 시절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의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고,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었다. 그 날의 봉사 순번에 따라 한 장로가 선지자의 글을 읽으며, 장차 메시야께서 오셔서 모든 압제자들을 정복하고 유대 나라에 영광스러운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니 소망 중에 기다리라고 권면하였다. 그들은 모두 메시야가 위대한 통치자와 군대를 통솔하는 자로서 영광 중에 나타나 유대 나라를 구원하리라고 믿고 있었고, 그리하여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회당에 랍비가 참석하면 설교를 하도록 요청했는데 그 날 읽을 구절은 선지자의 글에서 뽑아 주어졌다. 예수께서도 예배 순서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으셨고 낭독하실 선지자의 글도 주어졌다. “예수께서…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눅 4:16,17). 예수님께 주어진 이사야 선지자의 글은 메시야에 관한 기록으로 이해되고 있는 구절이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케 하려 하심이라.”
2) 성경이 가리키는 메시야와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나 메시야가 오셔서 행할 사업에 대해 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수께서 복음 사업을 시작하실 때에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외치셨는데, 그 기별에서 “때가 찼다”는 의미는, 다니엘 선지자의 2300일 예언된 예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정해진 기간 중 이레 중간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메시야 왕이 일어나실 때가 찼다는 의미였다. 구약 성경에는 메시야의 강림의 때와 태어나실 장소와 그분의 사업의 성격과 심지어 그분께서 돌아가신 후 묻히실 묘실까지 자세히 예언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 멀고 현세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깊은 영적 흑암 속에서 졸고 있었으므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에 대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메시야가 오시는 때와 시간이 꼭 찼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야의 예언 중에서 관심을 기울인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통치와 유대 나라의 영광의 회복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고 가르쳐서 현세의 부와 권세를 얻게 하는 메시야, 권력과 힘을 주는 메시야, 유대나라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국가로 만들어줄 메시야를 기다리게 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은혜의 왕국을 건설할 메시야, 죄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메시야,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신, 영광과 권세로 강림하실 재림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의 메시야와 그분의 사업을 고대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의 모습과 성격과 사업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곡해하여 자신들의 욕망에 맞는 메시야상과 이미지로 변경시키고 말았다. 과연 누가 그들의 왜곡된 메시야관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메시야이신 당신 자신에 대한 예언을 설명하는 산 설명자로서 사람들 앞에 서셨다. 그분은 성경이 기리키는 메시야의 모습을 바르게 설명해주셔야 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방금 읽은 말씀을 설명하면서, 메시야를 압박받는 자의 구원자로, 사로잡힌 자의 해방자로, 고통당하는 자의 치료자로, 눈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키며 세상에 진리의 빛을 드러내는 자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인상적인 태도와 놀라운 뜻에 감명을 받아 마음이 예전에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으로 가득 찼다. 거룩한 감화의 물결이 좌중을 휩쓸고 성령으로 감동을 받은 그들은 열렬한 아멘과 찬송으로 화답했다. 그들은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기”(눅 4:20~22)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3) 자존심을 건드린 진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큰 감동을 가지고 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선언을 덧붙이시자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그들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깜짝놀라 자신들의 상태와 처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의 주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방금 예수께서는 택하심을 받은 유대인들이며 아브라함의 자녀인 자신들을 속박 당하고 있는 포로로 표현하지 않았는가? 이방인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악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며, 진리의 빛이 필요한 흑암 가운데 있는 자들이라고 예수가 제시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자부심은 손상을 입었고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는 진리를 듣기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 문제가 없고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이야 말로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업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고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금 그들 앞에 서있는 메시야는 그들이 원한 메시야, 그들의 욕망에 맞게 수정된 메시야와는 너무나 달랐다.
회당이 술렁거리고 사람들에게 분노와 공포심이 일어났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에게서 들었던 그것과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예수께서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내시겠다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들이 진리의 빛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죄된 이방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 묘사하시지 않는가! 이 예수는 누구인가? 라고 그들은 물어보았다. 메시야의 영광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주장한 이 자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아버지 요셉과 함께 일하던 자,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수고하던 일개 노동자가 아닌가? 더구나 이 사람은 그렇게 큰 이적을 행할 능력과 힘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유대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데 사용하기는커녕 그들의 처지와 상태가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인 이방인과 같다고 말씀하시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은밀한 생각을 알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 4:23~27).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의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었다.
4) 일어난 폭동
엘리야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떠나 성령의 경고를 거절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여러 가정들을 그냥 지나치고 이방 땅의 선택받지 않은 백성 중의 한 여인의 가정에 당신의 종을 보내셨는데,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큰 빛에 마음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은 하늘의 은총을 입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의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이방인인 나아만에게 기적이 나타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이방의 귀족 나아만은 자신이 너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라며 간구하는 심정으로 물 속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따른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얻었을 뿐 아니라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축복을 받았다.
회당에서 청중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독선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죄 가운데 빠진 사람들이며 그들이 구원과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상실되었다는 그 쓰라린 진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비를 가장 깊이 필요로 하는 잃어버린 바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런 그들의 참된 상태를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진단하는 진리의 말씀이 그들 앞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진리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처지를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대신 분노하였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예수를 대적하여 고함을 질렀다. 자신들의 참 상태를 드러낸 예수, 가난과 비천함 가운데서 일어난 예수가 보통 인간 이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예수의 말씀으로그들의 극렬한 민족적 자존심이 건드려졌다. 이제 예수님의 말은 떠드는 청중의 소리 속에 묻히고 말았다. 집회는 깨어지고 그들은 예수를 회당으로부터 끌어내었다. 그리고는 그를 밀고 성 밖 벼랑 끝으로 급히 끌고 가서 거꾸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고함과 저주의 소리가 공중을 메웠다. 어떤 자가 그분에게 돌을 던지자 예수께서 갑자기 그들 가운데서 사라지셨다. 회당에서 그분 곁에 있었던 하늘의 천사들이 사단으로부터 충동을 받은 그 미친 군중으로부터 예수님을 보호하여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봉사가 끝날 무렵, 그분은 다시 한번 유년시절의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다. 그러나 모든 이적과 증거와 성령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선택받은 특권과 축복을 강조하고 그들의 상태를 칭찬하시기보다, 그들이 이방인보다도 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제시하신 그 쓰디쓴 기억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라는 헛될 질문만 허공에 던질 뿐이었다.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통치 하에 이스라엘이 모든 열국보다 높임을 받아 으뜸이 되리라는 자랑과 자만 속에 빠진 그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상태를 지적해주는 견책을 견딜 수 없었다. 마음에 한번 품은 불신은 나사렛 사람들과 유대 지도자들과 산헤드린과 국가를 지배하였다.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첫 거절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들의 최초의 거역이 정당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첫 거절은 갈바리의 십자가와 예루살렘 도성의 멸망과 온 유대 민족의 흩어짐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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