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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 1장 15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6-거룩한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무엇도 하나님과 견줄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하신 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5장 21절을 보면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하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롭다는 면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만큼 공의로운 자가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베푸시는 면에서도 역시 하나님만큼 완전하게 구원을 베푸는 구원자가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옛날부터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 18-20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질서하게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질서 정연하게 만드셔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또한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감추어진 곳이나 캄캄한데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혼돈 가운데 숨어계시면서 하나님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밝히 드러내 알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둠 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라 밝은 광명 가운데 계셔서 사람들을 만나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며 구원을 베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나주시면서 자신이 누군지를 알리십니다. 21절에 이어 22절을 보면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하시면서 온 세상을 향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행동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은 인간의 약함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와 구원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모든 상황에서 구원할 다른 신들이 없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구원을 베풀며 사람들에게 밝히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에서 나와 밝은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고, 알아가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는 자들을 만나주셔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계시하시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들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도 역시 알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굽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9장 14절입니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바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모든 재앙을 내리겠다 그래서 온 천하 가운데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면서,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무서움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던 것을 풀고 자유를 누리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제로 애굽은 이스라 백성들을 압제하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열 가지 재앙을 받았습니다. 잔치집과 같던 애굽이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강한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35편 10절입니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공의와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학대 받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각별한 보호를 하시는 하나님께서 열방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4장 7절입니다.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며 알리며 장차 올 일을 알린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각별히 여기시면서 구원하시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신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 신들 가운데 하나님처럼 명확하게 자신의 뜻을 드러낸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공의를 행하면서 도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5절을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을 부르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 역시 거룩하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이 세상을 거룩하게 사셨는지가 잘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죄악 많은 세상의 수많은 시험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렇게 초연하게 거룩하신 삶을 사셨는지를 보았고 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표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거룩함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로서의 거룩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거룩입니다.
그리스도로서의 거룩은 유일한 구원자의 모습을 드러내심으로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신 것만으로 상당히 놀랐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거룩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권세를 거기에 하나를 더해서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육신을 구원하셨고 병든 마음을 구원하셨고, 죄악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구원하신 그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자신을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그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함은 그리스도로서의 권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다 가지고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낼까요? 성경을 보면 신구약 합쳐서 거룩이라는 말이 460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이 거룩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부분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에 안식하시면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날과 다르게 하셨습니다. 그 날을 복되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른 날과 다르게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은 복되며 거룩한 날이며 하나님의 안식에 함께 참여하는 날입니다. 물론 이 날을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일과 다른 날들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른 날과 똑같이 취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다시금 안식일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의 소중함으로 배웁니다. 그렇지만 율법의 안식일은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 진정으로 거룩한 안식일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은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천국에서의 하루는 천년과 같고 천년은 하루와 같은 시간개념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서는 매일매일이 안식의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구별해야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의미바로 거기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모든 날이 바로 거룩한 날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주일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승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향하여 안식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까? 다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쉬게 해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안식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전해 졌기 때문에 주일을 성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은 승리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로인해 지키는 주일은 모든 날을 거룩하게 살도록 초청합니다.
성경의 460번 사용된 “거룩”이라는 단어 가운데 모세 오경에만 무려 128번이 나옵니다. 그 중에 창세기는 안식일에 대한 것 한번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50번이 나옵니다. 레위기에서도 50번이 나옵니다. 민수기에서는 23번이 나옵니다. 신명기에서는 4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거룩”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의 제사법과 정한 것을 설명할 때 “거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삽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삶에 완전하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죄악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예수님의 몸으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세우심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 가운데서도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어느 장소에 있든지 그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황금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이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 산다고 해서 더렵혀지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하셨고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가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을 보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사장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거룩한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세우신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구약에는 아론의 후손들이 그 역할을 맡았듯이 오늘날에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예수님의 사람들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도인 여러분들이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로마서 12장 1절을 보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수 있는 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 제물로 구별하고 드리는 제물은 거룩합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릴 때 거룩한 영적 예배를 드릴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고 교회 밖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2장부터 16장까지를 보면 구체적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12장은 교회 안에서 드리는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섬기는 삶과 용서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장은 세상 속에서의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14장은 먹는 음식에 대한 거룩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장은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삶 역시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 안에 거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다하여 소개하면서 그들의 삶이 어떤 특징이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았는데 교회와 목회자를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거룩한 삶은 여러분들의 삶 전체 영역에서 증거가 되며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러 사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참된 예배요, 영적 예배로써 받으십니다.
여러분 거룩하게 살기를 소원하십시오. 말과 행동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거룩하게 사용하십시오. 거룩한 부모로 사십시오. 거룩한 자녀로 사십시오. 거룩한 국민으로 사십시오. 거룩한 남편과 아내로 사십시오. 거룩한 사장님과 직원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내신 그곳에서 맡기신 모든 일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시오,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1장 15절의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 안에 거하시면서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온전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거룩하게 사는 삶을 살도록 성령을 통하여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시며 능력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살아 역사하는 증거를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다른 성도와 세상이 보고 여러분들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믿음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을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 역시 모든 행실에 거룩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