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 던져진 정신의 결정체
— 동서양 문학사로 보는 작가들의 ‘분고(焚稿)’와 작가 정신
글을 쓰는 행위는 흔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작업에 비유된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영혼의 진액을 짜내어 원고지 위에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빚어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사에는 이토록 고통스럽게 탄생시킨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책을 스스로 불태워버린 작가들이 있다. 서양의 카프카와 고골, 중국의 이지, 그리고 조선의 허난설헌과 이매창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들이 원고를 불길 속에 던져야만 했던 고뇌의 순간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작가 정신이 무엇인지를 웅변해 준다.
서양 문학사에서 '자신의 글을 불태워달라'고 요청한 가장 극적인 사례는 단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일 것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실존적 고뇌에 시달렸던 그는 평생 쓴 원고가 세상에 나올 만큼 완벽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임종을 앞둔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에게 자신의 일기와 편지, 소설 등 남은 모든 저작을 읽지 말고 전부 불태워달라는 준엄한 유언을 남겼다. 비록 친구의 거역으로 유작들이 살아남아 현대 문학의 거탑이 되었으나, 카프카가 추구했던 예술적 결벽성은 여전히 엄숙한 울림을 준다.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 역시 분고의 비극을 겪었다. 그는 1829년 처녀 시집 《간츠 큐헬가르텐》이 호된 악평을 받자 시중의 책을 모두 회수해 불태운 전적이 있었다. 이후 거장으로 거듭난 뒤에도 폐쇄적인 종교 사회와 자유로운 작가 정신 사이에서 처절하게 방황했다. 결국 그는 광신적인 정교회 사제로부터 "사탄의 유혹인 글을 포기하라"는 핍박을 받자, 극단적인 종교적 죄책감 끝에 심기일전하여 쓰던 역작 《죽은 혼》 2부의 원고를 벽난로에 던져버렸다. 자신이 탄생시킨 피조물이 혹여 인간의 영혼에 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거장의 처절한 고뇌였다.
이러한 고뇌는 동양의 역사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명나라의 이단아적 사상가였던 이지(李贄, 이탁오)는 성리학의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가식 없는 인간의 본성을 긍정했다. 특히 그는 "남녀의 식견에는 차이가 없다"며 여성 제자들을 양성하는 등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사상을 펼쳤다. 주류 유학자들의 거센 비난과 유언비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책이 가져올 파장을 예견하고 이름 자체를 《분서(焚書)》, 즉 ‘언젠가 반드시 불태워질 책’이라 명명했다. 결국 그는 탄핵을 받아 체포되었고 책들은 불태워졌으며 옥중에서 자결했으나, 진실을 위해 목숨을 던진 그의 기개는 지식인의 매서운 책임감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 선비와 문인들에게도 자신이 쓴 글을 불태우는 '분고(焚稿)'나 물에 씻어 지우는 '세고(洗稿)'의 기록들이 있다. 조선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끝자락에서 방 안에 가득했던 작품들을 모두 불태운다. 다행히 친정에 남아있던 원고가 그의 시재(詩才)를 아깝게 여긴 동생 허균에 의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다. 부안의 명기 이매창 또한 거문고와 함께 자신의 시를 묻거나 태우며 삶을 마감했으니, 이는 여성이 글을 쓰는 것조차 용인하기 어렵던 시대의 벽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저항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문인들이 보여준 분고의 역사는, 문학이 결단코 가벼운 말장난이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아님을 증명한다.
글에 뜻(意)을 담고 정(情)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 작가는 글 속에서 일종의 창조주가 된다. 그러나 그 생명이 사회에 미칠 파장, 혹은 그 생명이 지닌 진실성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잘못 쓰인 글, 진실하지 못한 글, 혹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 인간 개인이 감당해 내기 어려웠던 글을 과감히 거두어 불태울 수 있었던 선인 작가들의 엄격함은 후인들이 본 받아야할 거룩하고 숭고한 작가 정신의 완성이다. 필자가 쓴 이 글의 메시지를 피부에 확 와닿게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뽐내려고 쓰지 말고, 목숨을 걸고 쓰라."
(괄호 속의 분고의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하여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