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는 실용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한정된 단어일까? 독일산 프리미엄 세단과 SUV가 하이브리드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새로운 영역을 제시한다
요즘 자동차업계 최대 화두는 전기 파워트레인이다. 내연기관과 비교해 규제에서 자유롭고 발전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중에서도 하이브리드는 현실적인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인정받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순수 전기차나 수소차보다 만들기가 쉽다. 내연기관 엔진에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평소 판매 중인 모델을 활용해 만들면 된다. 그만큼 개발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적용 시점은 빨라지고 브랜드가 책임져야 할 위험 요소는 줄어든다. 이런 장점 덕분에 하이브리드는 시장점유율에서 다른 친환경 차들을 크게 앞지른다.
하이브리드 상용화는 일본 브랜드가 주도했다. 1990년대 후반 토요타를 시작으로 일본 완성차회사들이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열을 올렸다. 시장을 선점한 결과는 놀라웠다. 하이브리드하면 일본차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점유율이 높다. 반면에 독일차 회사들은 하이브리드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BMW는 2007년 처음 전기 파워트레인을 이용한 양산차 개발에 뛰어들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7년 뒤인 2014년부터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늘리기 시작했다.
독일차 회사들이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든 배경에는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인식과 까다로운 규제가 한몫했다. 엄격해지는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내연기관 엔진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눈을 돌렸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 기준이 변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일상 속 함께하는 물건으로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인체에 덜 해로운 친환경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기 파워트레인 중에서도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방식을 선호한다. 일반 하이브리드의 단점을 보완하고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보다 접근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출발은 다소 느렸다. 벤츠는 2014년 첫 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인 S 500e를 출시했고 C 350e와 GLC 350e가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친환경 전문 브랜드 EQ를 론칭하면서 전기 파워트레인 개발에 속도를 올렸다. BMW는 2016년 7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용 브랜드인 i퍼포먼스를 선보였다. i퍼포먼스는 740e를 시작으로 330e, X5 40e 등 BMW 전체 모델로 확대 적용 중이다. 뒤늦게 시장에 합류한 벤츠와 BMW는 일본산 하이브리드차와는 다른 특별함을 무기로 내세운다. 효율성을 바탕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강조한 세팅이다. 구현에는 차이를 보인다.
처음 운전대를 잡은 차는 740e다. 플래그십 세단인 7시리즈에 BMW e드라이브 시스템을 넣은 740e는 i퍼포먼스 중에서도 최상급 모델이다. 값비싼 대형 세단에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기술 과시용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친환경 사장님이 선호하는 차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시동을 켜니 차 주변은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공회전 시 전기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광활한 보닛 안에는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내는 4기통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최고출력 113마력, 최대토크 25.5kg·m)가 들어있다. 모두 더한 시스템 최고출력은 326마력이고 최대토크는 51.0kg·m. 수치는 크지만 차는 한없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움직인다. 운전 모드에 따른 스로틀 반응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부드러운 주행감이라는 큰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
740e에 넣은 회생제동 에너지 시스템은 충전속도가 제법 빠르다. 2010kg이나 되는 육중한 몸무게가 브레이크를 짓누를 때 나오는 회생제동 에너지가 꽤 크다. 가속과 마찬가지로 감속 시에도 매우 조용하고 침착하다. 다른 하이브리드차와 마찬가지로 브레이크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반응이 반 박자 더딘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거슬리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차를 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기술이 담겨있어서 피드백이 즉각적이지 않다.
배터리 충전이 빨라서 전기 모드로 적극적인 주행을 할 수도 있다.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전기 파워트레인은 세그먼트와 궁합이 잘 맞고 세련된 감각은 내연기관 엔진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전기모터의 정숙성과 진보한 기술력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7시리즈 성격과 잘 맞았다.
GLC 350e는 운전모드에 따른 성격 차이가 명확하다. 에코와 컴포트 모드에서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기본 역할인 효율 높이기에 집중한다. 스로틀 반응은 침착하고 엔진회전수는 2000rpm 부근에서 머문다. 정속주행 시에는 코스팅 중립제어 기능(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변속기는 자동으로 중립으로 위치해 연료 효율을 끌어올린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반대로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놀라운 가속력을 보여준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더한 최고출력 320마력 힘은 크고 무거운 SUV를 이끌기에 부족하지 않다. 합산 최대토크는 57.1kg·m에 이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5.9초, 최고시속은 235km. 스로틀을 조금만 열어도 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튀어 나간다.
초반 가속은 경쾌하고 중·고속으로 가도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친 기색 없이 호기롭게 속도를 올리는 과정이 짜릿하다. 대배기량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우렁찬 소리가 흘러나오지는 않지만,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주변 사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일반 차들과는 다른 전기 파워트레인 특유의 강한 힘이 생경할 정도다.
GLC 350e는 자신의 취향과 성향을 반영해 엔진과 스티어링, 스로틀, 공조장치 등을 설정할 수 있는 인디비주얼 모드를 갖췄다. 에코와 컴포트, 스포츠로 조절할 수 있는 인디비주얼 모드는 조용한 하이브리드 SUV에서 운전 재미를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SUV 전성시대라 다양한 SUV에 관심이 쏠린다. GLC 350e는 실용적이면서 뛰어난 공간활용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기 파워트레인 특유의 강한 성능과 브랜드 인지도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엄격한 환경 규제에 맞춰 전기 파워트레인은 피할 수 없는 자동차회사들의 숙명이자 숙제가 됐다. 이제는 누가 얼마만큼 신선하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대중화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다. 후발주자는 선두를 뛰어넘기 위해 악착같이 따라간다. 선두와 다른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곱절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 늦게 출발한 만큼 치르는 대가는 상당하다. 그렇다고 후발 주자의 상황이 몹시 나쁘지만은 않다. 선두를 보고 미리 위험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시행착오가 적어 탄탄하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BMW와 벤츠는 하이브리드 후발주자로서 갈고닦은 실력을 과감하게 발휘했다. 하이브리드의 기본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주행 품격과 성능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선두를 위협한다. 후발주자가 선두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하이브리드에 대한 상식이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관건은 배터리 기술
벤츠는 전기 배터리 전압을 키워 역동적인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 이전에 12V였던 배터리 전압을 48V로 높여 순간 전기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독자 개발한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터보차저를 넣은 엔진과 고전압 배터리, 전기모터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강한 힘을 만든다. 벤츠는 이 시스템을 EQ 부스트라고 부른다.
BMW는 배터리 효율을 높여 엔진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전기모드 사용범위를 크게 넓혀 전기차 특유의 가속감과 주행감을 완성했다. BMW는 배터리 컨트롤이라는 새로운 충전방식을 사용한다. 운전자가 30%부터 100%까지 배터리 충전 용량을 미리 설정하고 나중에 전기모드로만 주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똑똑해진 하이브리드
BMW와 벤츠 모두 한 단계 진화한 하이브리드 기능이 눈에 띈다. 740e 센터콘솔에는 e드라이브 버튼을 배치했다. 전기 파워트레인을 주행방식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 오토 e드라이브 모드는 저속 및 일상 주행 속도에서 순수 전기로만 움직이고 엔진은 시속 70km 이상에서 작동한다. 맥스 e드라이브는 온전히 전기로만 움직이는 모드다. 주행가능 거리는 30km 남짓이고 최고시속 120km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차가 가볍게 치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잘 활용하면 고속도로에서도 순수 전기로만 빠르게 달릴 수 있다.
GLC 350e에는 마법의 EQ 파워 버튼이 있다. 4가지 주행모드(하이브리드, E-모드, E-세이브, 충전)는 운전자의 취향과 주행 조건에 따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는 주행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최적 연료효율을 구현한다. 배터리 잔량과 스로틀 반응에 맞춰 엔진과 전기모터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E-모드는 순수 전기 주행모드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는 가상의 엔진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E-세이브는 전기모터 사용을 제한하고 가솔린 엔진만으로 주행한다. 배터리 충전량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다. 충전은 말 그대로 전기 주행 및 사전 온도조절 시스템 사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모드다. 엔진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전기모터는 사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