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박용숙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신들린 몸짓
뭍에 나가 살고 싶다던 바람은
파도 소리에 호오이 던져 버리고
해류 따라 떠밀려온 사내 닮은 스티로폼
둥글납작하게 깎고 다듬어져
한 송이 꽃이 되었다
바농질로 이불 천 싸매느라
불턱의 모닥불 밤새 꺼질 줄 몰라도
물질은 더 깊이 더 길게
소라 멍게 전복 해삼 따면서도
사내의 자연산 감정 따고 싶었다
씨알 굵은 별똥별 가득 담긴 테왁에 몸 기대면
든든한 사랑꽃 하나 피어나는 것이어서
감귤보다 탐스러운 젖가슴
갈치보다 빛나는 몸뚱이
파도에 맡겨 춤도 추고 싶었다
제주 앞바다, 사내의 부표 사라지던 날
호오이 호오이 꽃보다 처연하게
갈매기도 숨죽여 울었다.
우리 인간들은 공동체 사회 속에서 태어나 공동체 사회 속에서 죽어간다. 공동체 사회의 법이 혈액이라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혈액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공동체 사회의 행복과 불행은 법률에 달려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행복과 불행은 사랑에 달려 있다. 사회적 계약, 즉, 법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듯이, 사랑이 없는 사회는 동맥경화증에 걸린 사회이며,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관계로 공동체 사회의 행복과 종의 건강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모든 사랑은 이타적이며, 그 유효기간
이 없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고, 더럽고 추한 사랑도 없다. 건강한 사랑과 병든 사랑도 없고, 어느 누구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사랑도 없다. 사랑은 모든 생명체의 붉디 붉은 피이며, 이 사랑의 고귀하고 위대함이나 더럽고 추함 따위는 그 사랑의 주체자들이 자기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돌보고 가꾸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혈액)은 샘이고 강물이고, 사랑은 불이고 불꽃이다. 사랑은 대지이고 바다이며, 사랑은 공기이고 해이다.
박용숙 시인의 [숨비소리]는 제주 해녀의 어렵고 힘든 삶과 그 연정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신들린 몸짓의 소유자인 그녀, 뭍에 나가 살고 싶다던 바람을 파도 소리에 호오이 던져버린 그녀, 해류 따라 떠밀려온 사내 닮은 스티로폼을 둥글납작하게 깎고 다듬어 한 송이 꽃(부표)으로 만든 그녀----. 이 해녀공화국의 [숨비소리]는 ‘사내의 자연산 감정’을 따고 싶은 동맥경화증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가 없어도 살 수 없고, 법이 없어도 살 수가 없다. 인간과 인간이 없어도 살 수가 없고, 더군다나 남녀간의 사랑이 없어도 살 수가 없다. 눈이 녹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다. 젖을 떼면 자기 짝을 찾고, 자기 짝을 찾으면 자손을 남긴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와 자기 짝을 찾는다. 이 자연의 법칙, 이 사랑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지만, 그러나 하늘을 감동시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든 자원은 희소하고, 이 자원을 둘러싸고 수많은 중상모략과 질투와 시기와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질은 더 깊이 더 길게/ 소라 멍게 전복 해삼을 따면서도” “사내의 자연산 감정”을 딸 수 없는 현실이 그렇고, “감귤보다 탐스러운 젖가슴”과 “갈치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몸뚱이를 지녔으면서도 자기 짝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그렇다. 제주도는 젖과 꿀이 솟아나오는 축복의 땅도 아니고, “소라 멍게 전복 해삼”을 따는 직업은 만인들의 존경과 찬양을 받는 직업도 아니다.
공동체 사회, 즉, 모든 국가는 만인평등과 자원과 가치의 공정한 분배라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구축되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무리를 짓는 속성상, 출신성분과 학연과 지연에 따른 서열을 짓게 되고, 따라서 공동체 사회의 이념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만인평등은 인간차별 속에 짓밟히고, 한 사람의 자유는 수많은 타인들의 자유를 짓밟고, 소수의 인간들이 그 모든 자원과 가치를 독점하게 된다.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는 제주 해녀의 한이 되고, 이 한은 제주 해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 노래가 된다. 소라, 멍게, 전복, 해삼을 따면서도 ‘사내의 자연산 감정’을 따고 싶은 제주 해녀, 감귤보다 더 탐스러운 젖가슴과 갈치보다 빛나는 자연산 몸뚱이를 지녔으면서도 그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를 토해내는 제주 해녀!
제주 앞바다, 사내의 부표 사라지던 날
호오이 호오이 꽃보다 처연하게
갈매기도 숨죽여 울었다.
오오, 국가가 다 무엇이고, 만인평등과 부의 공정한 분배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박용숙 시인의 [숨비소리]는 이 세상의 사랑의 바다가 되고, 사랑의 동맥경화증을 앓는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