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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희망
- <조용한 희망>과 <그네>를 중심으로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교수(객좌)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인간을 이끌어 가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다."
―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는 영혼의 힘이다."
― 가브리엘 마르셀
Ⅰ. 로그인
현대시는 거대한 사건보다 일상의 작은 풍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르가 되었다. 거창한 서사보다 골목길의 적막, 오래된 식당,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처럼 누구나 지나치는 사물이 오히려 인간 삶의 진실을 더욱 깊게 말해준다. 사물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존재가 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라고 설명하였다. 인간은 사물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따라서 시 속의 사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증언하는 존재론적 매개체가 된다.
유네스코부산 우수잡지 에세이문예 편집2부장을 맡고 있는 장정애 시인은 권대근 평론가(중국 하북미대 객좌교수)로부터 “만학도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될 때 독자의 내면에 파문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생리학적 메카니즘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녀의 시편들이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 밀도와 정서적 울림을 동시에 확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그녀는 동시대의 우수한 시집들을 꾸준히 탐독하며 언어의 결, 이미지의 긴장, 시적 구성의 미학을 자신의 감각 속에 축적해왔다. 결국 좋은 시를 읽는 행위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시적 감각을 연마하는 가장 치열한 창작 훈련이라는 점에서, 장정애의 시세계는 독서와 사유의 깊이 위에서 구축된 성취”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 다스림부산강학회 7월 월례회에서 발표하는 <조용한 희망>과 <그네>는 그녀의 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하나는 폐업한 식당의 적막 속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발견하고, 다른 하나는 그네의 왕복운동을 통해 삶이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두 작품은 모두 일상적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희망을 사유하게 하는 철학적 시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두 시는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풍경과 사물에 존재의 의미를 스며들게 함으로써 일상의 미학을 새롭게 환기한다. 따라서 이 평문에서는 두 작품에 내재한 사물의 상징성과 존재론적 의미를 중심으로, 상실과 희망, 반복과 성장이라는 삶의 본질이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장정애의 시세계
두 작품은 모두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사물을 시적 중심에 놓고 있지만, 그 사물이 지닌 의미를 단순한 묘사에 머물지 않고 존재론적 성찰의 대상으로 확장한다. <조용한 희망>은 폐업한 식당 앞에 남겨진 사물들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기운과 희망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그네>는 반복적인 운동을 통해 인간 삶의 지속과 성장의 원리를 형상화한다. 전자가 정적인 풍경 속에서 침묵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면, 후자는 움직임의 리듬 속에서 삶의 역동성을 발견한다. 따라서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적 전략을 취하면서도, 일상의 사물을 존재의 언어로 전환하여 인간 삶의 본질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장정애의 시 역시 일상의 사물과 자연을 존재론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익숙한 현실을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그 속에서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고 세계를 다시 의미화하는 언어의 예술이다. 시인은 일상의 사물과 경험을 단순한 현실의 대상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재구성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사물과 인간, 자연과 삶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시적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동시에 시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정신적 공간을 마련한다. 따라서 존재론적 재구성과 성찰은 현대시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예술성과 철학성을 획득하는 핵심 원리라 할 수 있다. 평자가 이미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이론, 프랑스와 줄리앙의 탈합치, 라깡의 탈에고이론, 찰스 램의 액자이론 등에서 존재론적 재구성의 중요성이 제시한 바 있다.
1. 상실을 견디는 사물과 침묵의 희망
<조용한 희망>은 폐업한 식당 앞이라는 일상의 풍경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가능성과 희망의 흔적을 포착한 작품이다. 시의 첫 행인 ‘햇살이 그늘을 걷어내는 시간’은 단순한 시간의 제시가 아니라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동하는 전환의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어지는 ‘큰 입 다문 식당’은 말을 잃은 인간처럼 의인화되며, 한때 사람들의 온기와 삶을 품었던 공간이 이제는 침묵 속에 갇혀 있음을 상징한다. 더욱이 ‘허기진 간판’, ‘검은 한숨’과 같은 표현은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하여 폐업이라는 경제적 현실을 존재의 결핍과 상실의 감각으로 확장한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의 삶을 기억하는 존재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시의 ‘물화’를 잘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조용한 희망’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는 기능은 있지만, 시 제목으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그 이유는 '조용한'과 '희망'이 모두 추상적 관념적 어휘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작품의 정서를 미리 제시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시적 긴장감은 다소 약하다. '희망'은 인간의 내면 상태를 직접 지시하는 추상명사이고, '조용한' 또한 분위기나 성격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관념적 형용사이다. 두 단어가 결합하면서 독자는 시를 읽기도 전에 작품이 전달하려는 의미를 이미 짐작하게 된다. 이는 시가 사물과 이미지, 구체적 장면을 통해 의미를 스스로 생성하게 하는 현대시의 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좋은 시의 제목은 관념을 직접 말하기보다 구체적 사물이나 낯선 이미지, 상징을 통해 독자의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용한 희망’은 작품의 주제를 설명하는 제목이라기보다, 시를 읽은 뒤 독자가 도달해야 할 해석을 먼저 제시하는 제목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문학이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말하기(telling)'가 '보여주기(showing)'를 앞서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에서는 가능하면 관념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가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높은 미학적 효과를 얻는다. 사물이나 장면을 제목으로 삼으면, 독자는 시를 읽으며 그 사물이 결국 '희망'을 상징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지연은 독서의 긴장감과 감동을 높이는 현대시의 중요한 미학 가운데 하나다. 결국 ‘조용한 희망’은 작품의 핵심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제목이지만, 관념을 직접 명명하는 설명적 제목이라는 점에서 시적 함축성과 여운은 다소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좋은 시의 제목은 관념보다 이미지, 주제보다 상징, 설명보다 암시를 선택할 때 더욱 깊은 시적 효과를 발휘한다.
햇살이 그늘을 걷어내는 시간,
큰 입 다문 식당 앞에는
접시와 수저들, 해피트리 화분 하나가
우 멍 구멍 한 골목길에 빛을 내면서
나란히 주저앉아 있다
한때는 따뜻한 국과 말소리들이
걸어 다녔던 공간으로
지금은 바래진 채
잠시나마 하루를 견뎠을 시간은
허기진 간판과 검은 한숨만 날고 있다
낮고 무거운 하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뚜껑을 덮는다
장정애, <조용한 희망>
그러나 이 작품은 상실을 절망으로만 귀결하지 않는다. 식당 앞에 남겨진 ‘접시와 수저들’, 그리고 ‘해피트리 화분 하나’는 사라진 시간의 잔해이면서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의 징표이다. 특히 해피트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으로 읽힌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희망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향한 의식"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피트리는 이미 끝난 삶을 애도하는 대상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이다. 마지막의 ‘낮고 무거운 하늘은 / 아무 일 없다는 듯 뚜껑을 덮는다’는 구절 역시 절망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늘은 모든 상실을 침묵 속으로 감싸지만, 그 침묵은 독자에게 더 많은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여백이 된다. 설명을 절제한 채 이미지와 침묵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환기하는 방식은 동양미학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 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폐허의 풍경 속에서도 생명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말없는 사물과 침묵의 공간을 통해 희망의 존재론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2. 반복과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존재의 성장
<그네>는 일상의 놀이기구를 삶의 은유로 전환하여 인간 존재의 시간성과 성장의 원리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그네의 목소리를 빌려 "나는 시간을 흔든다"라고 말함으로써 단순한 사물에 생명성을 부여한다. 그네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놀이기구가 아니라 삶의 시간을 움직이고 인간의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매개체가 된다. 특히 "오르는 일과 / 내려오는 일 사이"라는 구절은 상승과 하강이라는 물리적 운동을 넘어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인간 삶의 전 과정을 함축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자리를 왕복하는 반복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의 "사람은 / 조금씩 앞으로 간다"는 구절은 반복 속에서도 삶은 결코 제자리에 머물지 않음을 선언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의 시간처럼 인간의 시간은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 경험이 축적되며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흐름이다. 이런 인식은 드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통한 생성의 철학과도 통한다. 시인은 이러한 철학적 시간을 그네의 단순한 운동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냄으로써 삶의 본질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
현대문학에서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는 표지가 아니라, 독자의 해석을 이끄는 첫 번째 텍스트로 기능한다. 특히 현대시는 구체적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므로, 제목 또한 설명보다 암시와 여백을 지닐 때 미학적 효과가 커진다. 따라서 좋은 제목은 작품의 의미를 미리 말하기보다 독자가 읽는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해석의 출발점이 된다. <그네>는 현대시의 제목이 갖추어야 할 미학을 잘 보여주는 제목이다. <그네>는 단 한 개의 구체적 사물을 제시할 뿐이다. 제목 어디에도 삶, 희망, 사랑, 기다림 같은 관념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독자는 '그네'라는 실재하는 사물을 먼저 떠올릴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제목은 해석을 미리 제시하지 않고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며, 시를 읽는 과정에서 그네의 왕복운동이 삶의 반복과 성장, 균형과 전진의 은유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이처럼 구체적 사물이 읽기의 과정 속에서 관념으로 확장되는 구조는 현대시가 지향하는 '이미지에서 의미로'의 생성 원리이기도 하다.
반면 ‘조용한 희망’은 제목 자체가 이미 작품의 주제를 설명한다. '희망'이라는 추상명사와 '조용한'이라는 관념적 수식어가 결합하여 독자는 시를 읽기 전부터 작품이 전달하려는 정서를 예측하게 된다. 이는 시를 통한 발견의 즐거움을 다소 약화시키고, 독자의 해석 가능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그네>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제목이며, <조용한 희망>은 보여주기보다 먼저 설명하는 제목에 가깝다. 현대시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후자보다 전자의 방식을 선호한다. 구체적 사물은 다양한 의미를 품을 수 있는 상징적 잠재력을 지니지만, 관념어는 의미를 하나로 수렴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네>라는 제목의 미학적 우수성은 구체성이 상징성을 낳고, 상징성이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되는 과정을 독자 스스로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그네>는 한층 더 시적이고 함축적인 제목으로 평가된다.
누군가의 발이 닿을 때마다
나는 시간을 흔든다
젖은 발로 올라서는 사람에게는
바람을 건네고
리듬을 품은 사람에게는
노래가 되어준다
오르는 일과
내려오는 일 사이
허공을 몇 번씩 오가면서도
사람은
조금씩 앞으로 간다
- 장정애 <그네> 전문
이 작품은 또한 존재가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네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이 닿을 때 비로소 운동을 시작하며, "젖은 발로 올라서는 사람에게는 / 바람을 건네고 / 리듬을 품은 사람에게는 / 노래가 되어준다"는 표현처럼 탑승자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사물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 의미를 획득하고, 인간 또한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을 경험한다. 이러한 관점은 프랑스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가 말한 '몸을 통한 세계 경험'과도 맞닿아 있고 신유물론의 ‘관계성’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를 확장해 간다. 그네의 왕복운동 역시 단순한 물리적 움직임이 아니라 몸과 세계가 만나는 경험의 장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한다. 결국 <그네>는 반복을 정체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관계를 의존이 아니라 존재를 완성하는 조건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이 시는 제목도 좋고, 짧은 시 속에 삶의 시간, 관계, 성장이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응축해 낸 점에서 높은 시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Ⅲ. 로그아웃
<조용한 희망>과 <그네>는 모두 거창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폐업한 식당과 놀이터의 그네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현대시가 지향하는 형상의 미학을 잘 구현하고 있다. 특히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사물의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독자의 사유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뛰어나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풍경을 노래하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만난다. 시의 제목으로 아쉬움을 지닌 <조용한 희망>이 상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제목으로 좋은 <그네>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존재의 역동성을 말한다. 하나는 침묵 속의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움직임 속의 희망이다. 하나의 시는 제목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발견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는 일상의 사물을 인간 존재의 철학으로 승화시키며, 현대시가 지닌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품, 좋은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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