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3부: 미국의 변화와 허물어지는 정교분리
미국의 건국 이념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대표적인 정신, 곧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벽이 허물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미국 사회는 자유인들로 이루어진 자유사회에서 출발했다. 미국 사회가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국 초부터 유럽 같은 군주나 귀족제도, 성직자와 같은 세습적인 특권층과 봉건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 자유를 위해 이주한 청교도들로 시작된 미국이었기 때문에 미 국민은 지극히 종교적이었고, 압도적으로 기독교적이었다. 미국의 건국 정신에 들어 있는 자유적 프로테스탄티즘과 정치적 자유주의, 민주적 종교와 민주적 정치 그리고 미국적인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심지어 어떤 학자는 "미국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유주의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까지 말했다.
처음에 미국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1620년 11월 11일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서로 약속을 다짐했다.“신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증진 그리고 우리 국왕과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로 시작하는‘메이플라워 서약’은 한마디로 미국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청교도적 복음주의가 미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착하도록 힘썼다. 그러나 한편 미국 국가를 세운 건국 시조들은 기독교도였지만 종교보다 이성을 중요시했다. 그들은 종교가 국가의 일에 개입할 때 생길 부작용을 경계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일을 맡고, 국가는 세속의 일을 맡는 정교분리 원칙을 정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의회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국교 조항’(Establishment Clause)이 그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1) 미국의 변화의 진보 좌파의 등장
그러나 미국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적어도 20세기 중엽까지는 자유사회를 유지해 왔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이 잘 지켜졌으며, 종교의 자유, 만인의 평등, 행복추구권, 자유 및 생명권 등 헌법에 규정된 사항들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것은 평등권, 공화제, 대의제, 사유재산,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구현하는 제도를 확립했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근면, 자조, 절약, 도덕 생활 같은 것이 국민 윤리로 자리를 잡았다. 정부는 각 개인이 자신을 실현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사상이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활방식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공산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나 독재 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29년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그런 사조가 깨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개입 또는 국가통제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를 흔드는 두 번째 도전이 있었다. 그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신좌파’세력이 등장하여 미국적 체제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신좌파는 구좌파에 반발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토니 주트”는“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라는 그의 저서에서 캐밀 파야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위대한 이상을 품고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결국 자유주의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주트에 따르면, 1960년대 신좌파들은 불황과 억압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의 잘못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변혁의 주체는 서서히 남성에서 흑인, 학생, 여성 등에 넘어갔고, 곧 동성애자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신좌파는 단지 자본주의의 불의에만 항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억압과 복지 국가를 비판했다. 이전의 사회에는 사회, 계급, 공동체가 중요한 개념이었다면,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신좌파의 개념에서는 공동의 목표나 전통적 권위는 존중되지 않았고, 개인적 주관주의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와 욕망이 중요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좌파 세력은 청교도의 윤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진한‘성 혁명’과‘마약 혁명’이 미국에 세속주의의 문화를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롭게 자리 잡은 문화는 흔히 대항문화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들은 이 대항문화가 청교도주의에 토대를 둔 전통문화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통문화와 대항문화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미국인들은 오랜 국민적 합의를 깨고 새로운 사상을 가진 자유주의파인 진보파와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려는 보수파, 곧 좌파와 우파 등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2) 기독교 극우파의 등장
파든 우파든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지 그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보수파는“보수-우파 연합”(a conservative-right coalition)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진보파는“진보-좌파 연합”(a liberal-left coalition)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프랑스에서 선거 때 수많은 정당이 ‘우파 대연합’과‘좌파 대연합’으로 크게 나뉘는 현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그 구분이 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치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말하면서 왜 굳이 우파와 좌파를 언급해야 하는가?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미국이 전통적인 입장을 잃어버리고 너무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극단적인 보수파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미국의 전통적인 입장과 종교를 고수하는 기독교인들과 공화당의 정치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통적인 기독교를 주장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정치의 힘을 빌려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입장을 강요하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 극우파라고 불리는 보수 세력은, 진보-좌파 사람들이‘국가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내세워 미국 사회를‘세속화’하려는 데 대해 맹렬히 반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속주의자들이 공립학교에서 기도 시간을 없애고, 공적인 행사에서 기독교 의식을 금지하려는 데 대해 분개하였다. 왜냐하면, 진정한 미국 시민이라면 미국의 국민정신인 청교도주의를 당연히 국가 종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의“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의 실질적 운영자인“랄프 리드”(Ralph Reed)는,“미국의 정치와 종교”(Politically Incorrect)에서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미국적인 올바른 방식이라고 주장하게 되었고, 그 조직의 대표“팻 로벗슨”목사도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지지하였다.“그들은(Secular Humanists: 세속적인 인본주의자)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우리를 억압해 왔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란 말은 헌법에 없다. 그것은 좌파들의 거짓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극우파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인 종교만이 사회와 국가의 세속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과 세력을 이용해서라도 종교의 힘을 강요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3) 기독교 극우파의 왜곡된 해결책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주된 주장은 미국이 처해 있는 세속화 현상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극우파들은 미국의 세속화 현상이 종교적인 요소들, 곧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한다든가, 보수적인 신앙관과 생활태도를 보인다든가, 도덕적인 규범을 가진다든가 하는 종교적인 요소들을 배척하는 데서 생기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나라다. 전체 국민의 77%가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 신자의 40%가 개신교, 25%가 가톨릭이다. 개신교 신자의 25%가 기독교 근본주의, 25%가 자유주의, 20%가 복음주의다. 미국의 각종 설문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고 있고, 삼 분의 일이나 되는 사람들이 매주 적어도 한 번씩 교회나 유대회당에 참석하고 있는데, 그리고 많은 사람이 기독교적인 보수 성향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성서적 도덕규범이 사방에서 무너지며 사회가 세속화가 되는가? 보수주의자들, 특히 그들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에 관한 책임을 일반 방송매체와 미디어, 그리고 유흥산업체들과 특히 할리우드 영화 산업체에 지우고 있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미국인들 대다수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부도덕한 영화들을 관람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런 영화나 유흥업체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한 일은, 미국 동남부 주 중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주민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이며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들인데,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 외설물을 판매하는 소매점들이 가장 많이 산재해 있는 주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설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누구란 말인가? 교회에 출석하는 보수적인 교인들인가, 아니면 그 외의 20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인가? 미국의 세속화의 문제를 외적인 종교 생활의 결핍으로 보는 기독교 극우파들의 문제 해결책은 성경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마음과 사상의 변화와 사회의 변혁은 내적인 신앙과 거듭남의 변화에 달린 것이지 외적인 종교 생활을 강요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과학 및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죄악의 물결이 교회의 문화권 안으로 침투되자, 이로부터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관심을 정치적 활동으로 돌리게 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의도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사상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과 예수께서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힘을 빌려서라도 사회를 정화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기독교인들을 선동하여 그들의 종교를 정치적인 입장으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적인 병기가 아닌 육적인 무기로 이 죄악들을 물리치려고 하고 있다. 곧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것으로 성경에 묘사된 마지막 시대의 상태를 인간의 행위의 힘으로 막으려고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금까지 그들이 잘못 믿고 가르쳐온 반쪽 복음의 결과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인간이나 사회나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발견하면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어떤 다른 힘을 도입하게 될 때, 그것은 바로 강제성과 강요의 세력으로 거듭남과 변화를 꾀하려고 하는 헛된 시도가 되는 것이다.
4) 진보파와 기독교 극우파의 갈등
1993년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진보-좌파 세력이 집권하였다. 그런데 의원들 가운데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학위를 가진 의원들과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베이붐 세대’나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는 보수-우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이들 진보-좌파 엘리트 집단들이 시행하는 정책들에 대하여 보수-우파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클린턴 정부에서는 복지 정책뿐 아니라, 낙태허용, 동성애 인정, 여성 해방 등을 인정했기 때문에 보수파들은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막고 원래의 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극우파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사실 현재 미국 사회가 당면한‘사회 붕괴’현상은 심각하기는 하다. 이혼의 일상화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녀는 폭력과 난잡한 성 문화에 노출돼 있으며, 일부 주는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대학 사회도 건전한 학교생활보다 술, 마약 등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 사회는 급속히 보수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인 기독교 극우파의 활동이다. 그들은 미국이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이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을 대표하는“Moral majority”(도덕적 다수) 모임을 이끄는“제리 폴웰”목사는 911 사태 발생 직후“모든 것이 이교도, 낙태론자,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미국을 세속화하는 집단들이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다. 911 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더 무서운 사건들의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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