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귀대하실 땐 못 뵙겠군요.”
“바쁘신가요.”
“예, 직장에 매인 몸이라”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어떤 일을 하심니껴.”
“미용실-!!”
“아- 예-에 여자 직업으론 좋은 직업이지요. 퇴근 후엔- ”
“일이 늦게 끝나요”
“열두시 안엔 끝 날거 아입니껴?”
“ㅎㅎ 8시”
“딱 좋은 시간이네요. 뭐!!”
“뭐가 딱 좋아요”
“데이트하기 연애하기.....”
“ㅎㅎㅎ”
☆☆☆
은진은 이 남자 참 솔직한 돌 직구를 던진 다 생각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인연이란 게 참으로 묘했다.
은진은 그날이후 괜스레
혁제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지고 꿈에 보였다.
☆☆☆
혁제가 귀대하는 날은
미용실사장 승희언니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혁제를 만나려 나갔다.
은진은 혁제와 인천 월미도에서
생의 두 번째 남자로 받아들였다.
첫 번째 남잔 성도 이름도 모르는 순결을 훔쳐간 남자였으나
두 번째 남자는 은진이 스스로 순정을 주고 싶은 남자였다.
은진은 혁제의 활화산 같은 사랑을
가슴에 담고 혁제를 보냈다.
☆☆☆
사랑은 그리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기다림도 있고 불안초조도 있고 불길한 예감도 있었다.
혁제가 귀대하고 편지를 몇 차례 보냈으나
단 한통의 답장도 없었다.
☆☆☆
은진은 이 남자도 물 건너갔구나 생각했다.
혁제가 제대한다는 달 12월도 지났다.
구정을 앞두고 눈이 엄청 많이 왔다.
뜻밖에도 강원도가 아닌 충청도와 경북일원에 많은 눈이 내렸다.
그 겨울은 그렇게 눈 소식으로 겨울을 났다.
이른 봄꽃이 폈는데도 혁제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강남제비가 찾아와도 혁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은진이 그리움을 놓으려 해도 쉽사리 놓아지질 않았다.
잊으려하면 잊으려 할수록
불같은 혁제의 환상이 가슴에 불을 집혔다.
☆☆☆
은진은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때 굶주린 이리의 아가리로 들어가길 자청했던가,
왜! 왜! 처음 본 남자에게 순정을 주었던가,
성급하게 내던진 자신의 몸뚱어리가 더럽고 치욕스럽게 생각됐다.
은진은 스쳐지나간 바람의 상처라 생각하고 나이테에 묻기로 했다.
먹구름이 걷히고 달이 훤하게 봉창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