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비판하다
마르크스를 대표하는 저서는 《자본론》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상의 교과서로 간주된다. 하지만 《자본론》 전체를 다 읽어본다 하더라도 정작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정작 어떤 사회를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후대의 많은 이론가들과 혁명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적잖은 사람들이 과거 소련이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를 마르크스가 꿈꾸던 이상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세기에 존재하였던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였다는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분명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일관되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아니라,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설계하기 위한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었다. 마르크스를 관통하는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인 하나의 지침이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일 것이다. 마르크스가 당대의 많은 사상가들과 구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는 인간의 사유라는 것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정신노동으로서 다른 육체적인 활동과는 차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자질이라고 믿는 근대의 많은 사상가들과 분명히 달랐다.
이는 《자본론》을 집필하기 훨씬 이전인 청년기부터 마르크스가 지닌 일관된 신념이었다. 청년기를 대표하는 그의 저서 《경제학 철학 초고》(Ökonomische-Philosophische Manuskript, 1844)만 보더라도 이러한 특징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와 같은 근대 자본주의 경제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헤겔의 ‘노동’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 두 가지의 이론적 작업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이라는 개념은 이 둘을 묶어주는 하나의 끈이다. 스미스나 리카도가 ‘노동가치설’을 통해서 상품의 가치를 이루는 근원이 노동이라고 주장한 것에 상응하여 헤겔은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활동으로 보았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 점에서 스미스나 리카도, 그리고 헤겔은 위대한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비판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이들이 지닌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다듬기 위해서다. 스미스나 리카도와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은 노동을 경제적 부의 원천으로 삼지만 동시에 노동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한편 헤겔은 기존의 사상가들과 달리 ‘노동(Arbeit)’을 주요한 개념으로 확립하였지만 여전히 그의 ‘노동’은 육체적인 활동보다는 정신적인 활동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노동은 집을 짓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노동자들의 노동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일차적으로 노동이란 자연이라는 대상과 교호(交好) 작용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렇게 터득한 법칙을 바탕으로 이제 자연이라는 대상을 가공하는 일이 노동인 것이다. 헤겔이 보기에 정신적인 활동이 개입되지 않은 육체적인 활동은 무의미할뿐더러 노동도 아니었다.
알프레트 존 레텔(Alfred Sohn-Rethel, 1899~1990)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In tellectual and Manual Labour, 1978)이라는 저서에서 노동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제시한다. 추상적인 사유 활동에 대한 강조에는 곧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라는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고, 정신노동을 육체노동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이성이나 사유 활동을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육체노동은 항상 신체적으로 어떤 대상과 직접 대면하여 육체적 노고를 감내해야 하는 활동이다. 이에 반해서 정신노동은 직접적으로 신체적인 고통을 감내할 필요도 없으며, 신체를 사용해야 하는 대상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지적 능력만이 요구될 따름이다.
존 레텔은 이렇게 인간이 현실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 혹은 이러한 활동을 정당화하는 이론이야말로 정신노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헤겔의 철학은 전통적으로 무시되었던 노동이라는 개념을 철학의 무대 위로 끌어올렸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정신노동에 국한된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왜 헤겔의 노동 개념을 통렬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경제적 부의 원천을 노동에서 찾았던 스미스나 리카도 역시 피할 수 없다.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와 몸에 대한 철저한 억압이 근대사상을 설명할 수 있는 큰 특징 중 하나라면,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근대적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동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비판하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