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까짓 조이스틱이랑, 니 초등학생의 절반을 보내다니. 너 참 대단하다. "
문득, 저 까마득한 초딩시절에 나의 친구가 내게 충고삼아 주절거렸던 말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때도, 난 참 오락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뭔가 예감한 건진 몰라도, 그냥 오락실이 좋았던 거 같다.
그 중 테트리스를 가장 좋아했고, 버블버블인가. 그것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요 근래에는, 그러니까 한 일이년? 혹은 삼사년 전만해도 초딩사이에 둘러싸여
킹오브파이터 를 하곤 했었다. 그렇게 난 초등 3년부터, 쭉 오락실에 출입하고,
슈퍼마켓 앞 오락기에 돈을 넣곤 해서 아예 VIP 손님이 되버렸다.
그야말로 " 이 놈 없으면, 장사의 절반이 줄어 " 싶은 정도랄까.
바꿔말하면 나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을 조이스틱 돌리는 데에 돈을 투자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간혹 든다. 물론, 그 돈을 아끼고 아꼈다면
한 1억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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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수능시험을 마치고, 대학 합격결과만을 간절히 바라던 그때.
그날은 크리스마스를 한 이틀을 남기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오락실에 들어설 때도,
온갖 캐럴들과 산타분장을 한 남자, 혹은 여자들. 그리고 자선냄비에 둘러싸여 한참을 노닥대다
그 기분에 젖어, 간만에 받은 크리스마스 특별 용돈 3만원을 쏟아버리려고 들어왔었다.
참 신기한 것이 한참 북적대던 사람들인데 그 때만큼은 별 사람이 없었다.
한껏 비워져있는 자리들에 만족하며, 나는 조이스틱을 돌렸던 걸로 기억된다.
무려 3년 전이지만 정말 명확하게 기억된다. 아마도 ..... 그날 ..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닐까.
" 안녕하세요? "
뒤를 돌아봤을땐, 약간 사투리 억양이면서도 서울억양이 묻어나오는 괴상한 억양의 여자가 서있었다.
방금 시골촌구석에서 상경한 듯 한 모습이였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그랬다.
양갈래로 따묶은 머리와, 그 머리를 꽁꽁 묶은 사탕머리끈. 빨간 목도리 둘둘 두르고,
오래 입은 듯 보이는 캐캐묵은 코트. 단추 서너개가 떨어진 채 너덜거렸다.
바지는 검은색 바탕에 색색깔의 땡땡이가 박힌 몸빼바지. 그 밑은 양말 하나 안신은, 껌정고무신이 있었다.
그리고 한참 위로 올라가 얼굴을 보면. 평범하게 생긴. 갸름한 얼굴인 까무잡잡한. 나머진 동양 특유의 얼굴이였다.
" ..뭐. "
항상 외모지상주의였던 나는, 그 때도 매몰차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을 깠었다.
그 여자는 당황스런 표정이였지만, 그 땐 아무 대꾸 없었다.
" 그냥.. 서울....고등...학교....에.. "
두글자씩 띄엄띄엄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인 그 얼굴에 눈물이 가득히 맺힌 눈이 보였다.
입은 우물쭈물 거리는데, 눈은 울고 있었다.
" 그게 뭐. 서울고등학교가 어딨어. "
한창 테트리스에서 벽돌이 우수수 떨어질 때 하필 나타나 말을 걸어줘 상당히 짜증이 났었나보다.
그래도 그녀의 입은 한껏 웃으며 물어왔었다. 그래서일까.
" 저.. 서울고등학교가 아니라요...그게... 하운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
" 대체 거긴 왜 입학하려는 건데? "
" 그냥.... 그냥요.. 아줌마가, 가보래써요. "
" 아 짜증나. "
조이스틱을 훼훼 돌리다 말고 나는 그 여자애를 끌고 하운고등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사장실에 처억 - 세워놓고 나서야 뒤를 돌아섰다.
그러자, 그 얼빵 - 한 시골상경한 기지배는 이사장실 문을 돌릴 줄 몰라 어쩔줄 몰라했었다.
내가 다가가서 열어주자 그렇게 고마워했던. -
"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예요. 이름은 조이 버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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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그냥 니가좋아, 조이스틱. "
" 내 이름은 죠이 라고 몇번 말해? "
" 조이스틱은 니 애칭이라구! "
" ....하여간. "
" 죠이! 스틱! 하여간 내가 좋아싫어?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말이 없었다.
" 난 조이스틱. 오락실. 그리고 너를 사랑해. "
" ...... Losten, habin( 들어봐, 하빈. ) "
" 응? "
" I think … I'm in love with you. ( 내가 말이야 …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 "
" 무슨말이야!! 한국말로 말해! "
벌컥 소리를 질러버렸다. 저렇게 유창하고도 짧고, 그리고 원어민-_- 식으로 나오는
저 발음이 너무나도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아니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냥 그게 이유였다. 유일히도, 저 러브 윗유 어쩌고만 들리는 영어를 막기 위해선.
" I think it's part of it . ( 내 생각의 일부야. ) "
" 뭐래!! "
" ........ I love you. ( 너를 사랑해. ) "
나를 말꼼히 바라보던 그 입에서 드디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가장 바라던 말이 나왔다. 날 그 순간 세계최고의 행복자로 만드는 말이 나왔다.
" me to. ( 나도. ) "
물론 내가 아는 단어는 그게 다였다. -_- 미안하게도, 한국계 미국인이 여친임에도 불구.
그 수많은 의사소통은 어찌하려는지 몰라도, 쨌든 내가 아는단어는 단순한 거였다.
마이 네임 이즈 윤하빈. 그런거 같은거.
" .......... I know I love not only you yourself. I love your name, And - ( 내가 사랑하는 건 오직 너만이 아니라, 너의 이름도 사랑해. 그리고 - ) "
" Stop !!! ( 멈춰!!! ) "
순간적으로 툭 튀어 나온 말은 한국억양이 짙게 , 드리워진 그녀를 향한 유일한 영단어.
그러자 그녀의 말은 순식간에 한국어로 튀어나왔다.
" 그냥. 한국말로 하면, '널 사랑해' 란 말밖에 못 할 것 같아서 .. "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조이스틱 운명이 펼쳐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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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년. 연인이된 나의 죠이스틱은, 나란히 팔짱을 끼고 크리스마스 2틀전의 풍경을
흠씬 맛보고 있었다.
" 너. 그 괴상한 억양은 다 뭐야? "
" 내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던 사람은 오직 이웃아줌마였던, 충청도 사시던 충청댁 아줌마셨거든. "
" 그럼 그날 입고왔던 옷차림은? "
" 아, 그거? 그 아줌마가 한국 토속적 옷이라며 좋다고 추천해주시던데. 왜? 이상했어? "
지금 나의 죠이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여느 20살들이 입는 세련된 옷.
아줌마의 말을 굳게 믿었을 죠이의 말에 혼자 킥킥댔다.
물론 이상하냐는 말엔 " 아니, 전혀 " 라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사랑. 내 운명. 내가 겨우 찾은 죠이스틱을 놓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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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벌써 두명의 아이를 가진 지금.
그 때를 추억해보면, 난 운명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 후줄근한 오락실을 들락거리며 죠이스틱을 잡았던 게 아닐까 싶다.
첫댓글 재미있네요. 잘 봤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