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하루, 산의 품안에서 즐겁게 보냈네
아침 9시 해운대 장산 공원 입구에서 가다렸다. 먼저 동화작가 이자경 선생이 오고, 그 뒤를 이어 동화작가 한정기 부부와 이상미 선생이 해맑은 가을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멀리서 손을 흔든다, 손을 흔들어 주었으니 손을 흔들어 답을 보내는 것이 마음 나눔의 올바른 예의가 아닌가. 한정기 선생이 "어머, 상미야. 김문홍 선생님 얼굴 좀 봐라. 너무 맑아 보인다."라고 기분 좋은 덕담을 보낸다. 아프고 난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듣는 소리라서 은근히 기분이 좋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근 6개월을 담배 한 모금, 술 한 잔, 커피 한 잔을 안 하고 살았으니 어느 누구인들 얼굴이 맑게 보이지 않으랴.
<돌을 저렇게 휠 줄 아는 조각가는 사람의 마음도 그럴 수 있겠다. 장산공원의 조각>
<왼쪽에 서 있는 이가 이자경 선생, 그리고 등을 보이고 있는 이기 이상미 선생>
한정기 선생의 부군인 박종규 선생은 관세사인데 사진 찍는 수준이 일품이다. 어지간히 지나치는 나무와 풀꽃들의 이름은 거의가 다 알아 맞힌다. 박종규 선생이 함께 걷는 나에게 식물학 강의를 한다. 참나무는 학명이 아니란다.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이 식물학적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참나무들 때문에 본토박이 소나무가 점점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솔씨가 땅에 떨어져도 참나무의 큰 덩치와 너른 잎에 가려 햇빛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소나무가 좀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굴러온 돌 때문에 박힌 돌이 밀려나는 셈이다. 우리 인생사에도 이런 비유가 적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정기 선생은 저 아래 인공으로 조성해 놓은 연못을 가리켜 보이며 "원래 있던 그대로 놓아두면 될 것을 자꾸 사람의 손으로 자연의 순환을 그르친다."며 안타까워 한다. 그래 그렇다. 비틀즈의 노래처럼 "렛 잇 비"가 좋다. 있는 그대로 두어라! 얼마나 가슴에 와 닿은 노래 제목인가. 인간의 손에 의해 그르쳐 지는 것들이 슬프다.
<구절초 세 송이가 해맑은 얼굴로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다.>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박종규 선생이 구절초의 모습을 사진 찍으며 구절초는 국화의 일종이라고 말해 준다. 들국화는 학명이 아니라 보통 명사라고 한다. 즉, 들에 피어 있는 국화라는 뜻이다. 몇 번이나 손에 가 보지만 꽃나무와 나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관심이 깊지 못해서일 것이다. 관심이 깊으면 사랑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쉽게 이름을 가슴 한 켠에 쌓아두리라. 조선시대 선비 유한준의 말처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리라."가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이다. 길섶의 낙엽 더미 속에서 앳된 꽃술을 내밀며 앙증맞게 피어 있는 어린 꽃들을 보면 생명의 위대한 힘을 저절로 깨닫게 되어 그저 숙연해질뿐이다.
<동화작가 이상미 선생이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활짝 웃어 보인다.>
<산 위 마을의 길섶에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미나리 군락지>
우리들은 산길을 걸으며 해학과 풍자가 깃든 조크를 던지기도 한다. 정치가의 속성에 대한 일화 두 가지. 하나는 정치가가 성형외과에 수술하러 갔는데 이미 한 남자가 먼저 와서 성형 수술 상담을 받고 있더란다. 곁에서 가만히 엿들으니 자신과 똑같은 부위의 성형수술을 할 모양이다. 그 남자가 수술을 하고 나와서 수술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만 달러라고 한다. 정치가는 의사에게 아까 그 남자와 똑같이 수술해 달라고 말했다. 수술을 끝내고 나와 계산하려 하니 수술비가 5만 덜러라고 한다. 정치가는 "아니,아까 그 남잔 만 덜러를 받더니 수술 부위가 똑같은데 난 왜 5만 달러냐고 항의했더니 왈 "야이, 짜샤! 넌 얼굴이 좀 두꺼워야지."하고 말했다.
식인종 나라의 식당에서는 철학자 튀김은 3천 원, 교사 철판볶음은 5천원, 정치가 복음밥은 2만 원이라고 한다. 정치가 볶음밥이 왜 그리 비싸냐고 물었더니 왈 "정치가 볶음밥은 요리하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야."라고 투덜대더란다, 어디 가나 정치가는 환영 못 받는 모양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일종의 위트이다. 위트란 외모와 움직임으로 사람을 웃기는 유머와는 달리 언어적 수단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일종의 희극적 장치이다. 이런 얘기를 하며 산길을 걸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시간도 우리들 모르게 빠르다.
<집 벽에그려져 있는 해학적인 그림, 자라가 호랑이의 불알을 물자 껌짝 놀라는 모습이다.>
<벽에 그려진 꽃나무와 그림자로 비치는 꽃나무와의 아름다운 어울림>
저작권 얘기가 서로 오갔다. 한정기 선생에게 교육방송에서 방영된 어린이 드라마 <플루토 비밀 결사대> 작품 사용료를 얼마나 받았냐고 물었더니 크게 받진 못했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저작권법이 바뀌는데 작가에게 아주 유리하다고 했더니 "우리는 언제 조안 롤링처럼 행복한 인세를 한 번 받아볼까"하고 한정기 선생이 부러워 한다. 그리고 아무리 궁색하고 어려워도 매절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애기한다.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가 그런 경우를 당해 지금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지 않은가 말아다. 그렇다. 모든 기회를 쉽게 내줘서는 안 된다. 작가는 자존을 당당하게 지켜야지 현실적인 눈앞의 조그만 이익 때문에그 존엄한 가치를 쉽게 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점심 때가 조금 더 남았지만 룰루 랄라 풀밭 위의 점심 만찬을 즐겼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미녀 3총사가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왼쪽부터 동화작가 한정기, 이자경, 이상미 선생님의 활짝 웃으며 포즈>
장산 공원에서 오전 9시 30분 경에 출발했는데 기장 산성산(원 이름은 수령산)까지 4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이 코스는 등산 초보자에게도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안성맞춤의 코스이다. 쉬엄쉬엄 걸으며 점심 식사도 하고, 또 두어 번 쉬면서 걸어도 4시간 정도면 족하다. 이 코스에서는 길을 걸으며 길섶의 풀밭에서 앳되고 귀여운 풀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산 공원에서 30 분 정도만 비탈길을 오르면 그 다음부터 최종 목적지인 기장 산성산까지는 쉬엄쉬엄 느긋하게 걸어도 좋은 산길이 계속된다.
<산성산을 내려오면 빌라촌이 밀집되어 있는데 나팔꽃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기장 시장에 들렸다. 오늘은 일요일인지 재래시장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싸고 맛있는 해산물들이 넘쳐 흐른다. 고래고기, 구룡포 과메기, 햇노가리, 대게는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산이다. 재래시장을 거닐고 있으미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 그저 주어진 하루 하루의 시간을 충실하고 보람있게 보내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일행은 음식점에 들러 장어구이를 시켜 배 부르게 맛잇게 먹었다. 아, 이런 행복이 또 어디 있을까? 동화작가 배혜경 선생이 바빠서 빠지기는 했지만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전임 집행부의 산행은 그런대로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다. 가끔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이 코스를 한 번 걸어보라.
행복과 기쁨이 소록소록 새어 나오리라.
첫댓글 어, 이런 행사도 있었네여~~산이 좋아 산에서 노느라네~~즐거운 가을(?) 소풍이었네요~~
ㅎ 남촌님도 해당되는 모임이었네요. 가을 배웅 잘했습니다.
좋은 산행이었네요. 자주 산에 가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오늘 산행하고 왔습니다.
아흐, 부러워라. 자라에게 불알 물린 호랑이놈 살아있을까요? ^^
플루토비밀결사대에 나오는 산성산,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즐거운 산행,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