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여행한 한국 양조장 대표 한 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소주 한 병을 구해서 내게 보내주었다. 상표에는 'MADE IN NEW YORK'이라 적혀 있고, '소주'라는 한글도 적혀 있었다.
소주 이름은 WEST32, 뉴욕 맨해튼 한인상가 거리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목이 긴 초록 병은 한국 소주병 색깔에 맞춘 듯하고, 알코올 도수도 19.9%로 순한 소주의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을까?
뉴욕 맨해튼을 방문하던 차에 나는 웨스트32번가에서 WEST32 소주를 만든 대니얼 리(Daniel Lee)를 만났다. 그의 한국 이름은 이성환이고 1983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만, 영어가 편한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소주를 뉴욕의 한 위스키 증류소에 주문 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난 지 30분 만에 그 증류소를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증류소를 방문하는데, 왕복 6시간이 걸리지만 함께 가자고 흔쾌히 답했다.
▲ 양키 증류소 가는 길.
대니얼이 모는 렌터카에 몸을 싣고 허드슨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달렸다. 핸드폰 내비게이션에 160마일(257km)이 떨어진 곳이라고 찍혔다. 전날은 맨해튼의 요란한 바에서 그와 목청 높여 대화를 나눴는데, 차 안에서 서로에 집중하며 대화하니 편했다. 자동차 도로를 달리는 6시간 동안, 나는 묻고 그는 답했다.
"왜 어떻게 해서 소주를 만들게 되었습니까?"
그는 맨해튼 한인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소주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었다. 2016년에 양조 면허를 내고 2017년 초에 처음 WEST32 소주를 만들어냈다. 소주의 매력은 대단히 소셜한(social) 알코올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위스키나 보드카는 대부분 잔술로 마신다. 그런데 소주는 병술로 마신다. 칵테일이나 잔술 문화이다보니 미국에서는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는 문화가 없다. 그런데 소주는 서로에서 따라준다. 게다가 소주는 위스키나 보드카처럼 독하지 않다. 그래서 소주는 훨씬 소셜하고 사교적이다. 이 때문에 그는 소주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는 소주를 좋아하게 되면서 소주가 궁금해졌다.
"소주의 무엇이 궁금하던가요?"
그는 소주가 저렴한 것이 가장 궁금했다. 미국 식당에서 소주 한 병에 17달러, 2만원 정도한다. 수입 유통 마진이 붙어서 한국 판매 가격보다 10배는 더 비싸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팔리는 다른 증류주에 견주면 무척 싼 편이다.
2014년부터 소주를 공부하면서, 수입한 타피오카를 사용하고 설탕이 아니라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고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값이 저렴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주는 순하고 깔끔하지만, 여러 가지 감미료들이 들어서 자연스럽지(natural) 않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우리도 만들 수 있겠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맨해튼에서 소주를 같이 즐겼던 친구 법률가 맥스엘 파인(Maxwell Fine)과 의기투합하여 자연스럽고 글루텐이 없는 소주를 만들게 되었다.
"소주 맛은 어떻고, 왜 자연스런 맛의 소주를 만들고 싶었습니까?"
그는 소주의 순하고 깔끔한 맛을 좋아한다. 그는 한국 소주를 만들고 싶어서 처음에는 안동소주를 맛보았다. 향이 있고 독한데, 이게 뭐지 싶었다. 위스키에서 나는 오크 향도 아니고, 브랜디나 고구마 소주의 발효 향과도 달랐다. 보드카처럼 담백한 듯하지만 그래도 뭔가 들어 있었다.
쌀과 누룩으로 소주를 만들어 보았는데, 맛이 특이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먹힐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보리, 감자, 고구마, 타피오카로 빚어보다가 옥수수를 사용하여 참이슬 같은 순하고 깔끔한 소주의 맛에 접근하게 되었다.
자연스런 맛은 요즈음 미국 사람들이 부쩍 관심을 갖는 요소다. 내 몸 속에 들어가는 음료나 음식은 좋은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호울 푸드(Whole food) 마켓에서 유기농 재배, 무첨가물, 글루텐 프리 식재료를 구매하고, 세인트루이스에서는 호울 푸드 데이를 열기도 한다.
▲ 뉴욕 클리프톤 파크(Clifton Park)에 있는 양키 증류소.
휴게소에서 쉬지도 않고 3시간을 달려 WEST32 소주를 제작하는 양키 증류소(yankee Distillers)에 도착했다. 올버니(Albany)를 지나 클리프톤 파크(Clifton Park)의 숲이 좋은 곳에 증류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동업해서 2015년에 창업한, 위스키와 보드카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천정이 높은 증류소 공간은 크게 3개로 분리되어 있었다.
한 칸은 전시실과 바가 있고, 다른 한 칸에는 2톤 용량의 이탈리아제 다단식 동증류기와 발효 탱크들이 있고, 또 다른 칸에는 병입실과 오크통 저장실이 있었다. 대니얼은 소주를 주문 제작하기 위해서 뉴욕주에 있는 증류소를 거의 다 돌아보았고, 그중에서 위스키와 보드카를 함께 만드는 이곳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했다.
3인의 공동 출자자 중의 하나이면서, 증류를 책임지고 있는 매튜 예거(Matthew Jager)로부터 양키 증류소를 안내 받을 수 있었다. 매튜 예거에게 물었다.
"양키 증류소에서는 어떻게 증류주를 만듭니까?"
2000ℓ용량의 이탈리아제 다단식 동증류기를 사용하고 있다. 재료는 뉴욕주에서 나는 보리, 밀, 호밀, 옥수수를 사용한다. 뉴욕주의 농산물을 75% 이상 사용하면 증류소 안에서 시음장인 바를 운영할 수 있다.
500갤런(1892ℓ) 정도의 발효 원주를 빚어 증류기 안에 넣고 뚜껑을 닫고 가열을 시작한다. 에탄올 증기가 파이프를 통해 이동할 때 수동적으로 농도 조절이 가능하다.
▲ WEST32 소주를 만드는 매튜 예거와 WEST32 소주 대표인 대니얼 리.
증류액이 농축되는 다단식 과정은 최대 8번 정도인데, 보드카의 경우는 6번 정도의 농축 과정을 거친다. 증류액은 처음 나오는 헤드(Head), 중간에 나오는 하트(Heart), 마지막에 도수 낮은 테일(Tail)로 분류하여 받는데, 테일은 다시 활용하여 증류한다. 투명한 술을 얻기 위해 여과를 섬세하게 한다. 위스키는 미국산 오크통에 숙성하고, 완성된 술은 손으로 일괄번호와 상표를 붙인다.
"여기서 만드는 보드카와 소주는 어떻게 다릅니까?"
소주와 보드카는 만드는 방식이 동일한데, 둘 다 맛과 향을 없애려고 거듭 증류하는 게 특징이다. 양키 증류소에서 만드는 보드카는 되도록 밀의 향을 남기려고 한다. 웨스트32 소주는 대니얼의 주문에 따라 깨끗하고 순하게 만드는데, 그러다보니 여기서는 소주가 보드카보다 훨씬 더 보드카답게 만들어진다.
보드카는 60%가 물이고, 소주는 80%가 물이기 때문에 물이 더 들어갈수록 조절하기 어렵고,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어야 한다. 소주와 보드카의 차이는 이를 즐기는 문화에서 생긴 것 같다. 미국에서는 보드카를 칵테일로 마시기 때문에 도수가 높아도 되지만, 한국에서는 소주를 물 타지 않고 그대로 마시기 때문에 도수가 낮다고 본다.
대니얼은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소주에 만족하고 있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났고, 믿음직하다고 했다. 제조는 양키에 맡기고, 자신은 금융쪽에서 일했고 마케팅과 세일즈를 잘 하기 때문에 그 분야에 전념하는 게 휠씬 생산적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인 맥스웰 파인과 동업하면서, 10명의 투자자로부터 투자도 받고 있었다. 발효나 증류를 전공하지 않고, 양조장에서 일한 경험도 없고, 한국 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데도 소주를 만들고 있는 대니얼에게 다시 물었다.
"WEST32 소주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옥수수를 분쇄하여 효소와 효모를 넣고 4~5일 정도 발효시킨다. 알코올 10% 정도로 발효를 시킨 다음 증류기에 넣는다. 원주의 알코올 도수를 더 올리지 않는 것은 의도한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알코올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 높은 도수의 알코올 만든다. 증류한 원액을 깔끔하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숯으로 여과하고 나서 두 번 더 필터 여과를 한다.
소주를 마시면 뒤따라오는 주정의 격한 느낌을 줄이기 위한 공법이다. 화학적인(Chemical) 첨가물을 넣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유지하면서, 사탕수수 설탕으로 단맛을 내는데 지나치게 달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 WEST32 소주는 두 종류가 나온다. 19.9도 순한 소주와 버번 위스통에 숙성시킨 리저브 32도 소주.
WEST32 소주는 한국 소주보다 달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에게 안 맞을 수 있다고 본다. WEST32 리저브 32도는 동증류기의 8개 칼럼을 모두 통과시켜 알코올 57% 상태로 버번 위스키 오크통에 6개월 숙성하여 출시한다.
"앞으로 소주를 어떻게 팔고 싶습니까?"
소주라는 이름이 미국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럼, 브랜디, 코냑, 사케, 데킬라들과 함께 소주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도 지역별로 소주가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뉴욕에도 소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서 소주 회사를 만들었다.
미국 술 유통 회사와 손잡고, 현재 미국 50개 중에서 15개 주에서 WEST32 소주를 팔고 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이 아니다. 소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한국이지만, 경쟁이 가장 센 나라도 한국이라서, WEST32 소주를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지난 5월에 신라호텔과 호텔 반얀트리에서 WEST32 리저브(Reserve) 32도 신상품을 미국보다 앞서 선보였다. 그들이 겨냥하는 소비자는 한국 소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술의 정체성에 충실한 소주를 미국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이름도 맨해튼 한인 상가 거리에서 따왔다. 자연스런 맛을 지닌 술이자 깔끔하고 부드러운 소주의 판매망을 미국 전역에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증류소에 왔는데 증류주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양키 증류소에 있는 바에서 매튜 예거가 따라주는 위스키와 보드카를 종류별로 맛보았다. 독한 보드카와 부드러운 소주, 짙은 버번 위스키 향에 감싸여 양키 증류소를 나오는데 세상은 빙글빙글 돌고 내 생각은 자꾸 한 점으로 말려들었다.
"소주는 무엇인가? 한국 소주는 무엇인가?"
오마이뉴스 허시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