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아. 목말 태워 주까?"
"정말로요?"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제안에 내 눈은 동그랗게 빛났다.
"자. 타라~"
더 어릴 적에도 목말을 탔었겠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약간은 쑥스럽게, 약간은 조심스럽게, 약간은 으쓱대며, 아버지 도움 받아 훌쩍 들어 올려져 아버지 목 위에 올라앉으니, 높던 세상은 저 아래로 낮아져 버렸고, 갑작스러운 높이 변화만큼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실눈을 뜨고, 턱이 아버지 머리에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고, 아버지가 내미시는 손을 꽉 잡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아버지의 어깨 따라 내 엉덩이도 함께 흔들렸다.
"기분 좋나?"
"예. 아부지. 히히~"
"인자 내려 온나. 아부지 어깨 아푸다."
아버지의 어깨를 내려올 때쯤엔, 눈은 새로 보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고, 손은 아버지의 손을 놓고 새로운 곳을 가리키기에 바빴다. 아버지 옆에서 따라오던 가람형은 내가 많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날이 분명 학교에는 들어가기 전인데 몇 살 쯤이었는지 기억은 분명치 않다.
공직에서 물러나 사업을 구상하고 계시던 그 당시 실업자였던 아버지.
집에 계시기 무료하였을까?
아니면 사업차 집을 떠나시기 전에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였을까?
골목에서 놀던 나와 가람형을 부르시더니 영화를 보러 가자 하셨고, 그 영화 보러 가던 길에 내 기억에 오래 남은 그 목말을 태워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
아버지가 태워주신 기억 속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말.
그날 본 영화도 몇 장면이 기억이 난다.
흑백이었고, 해병대의 무공을 다룬 6.25 전쟁영화였었다.
기억나는 배우는 고 서영춘, 최무룡 씨였는데, 서영춘 씨가 여자 분장을 해서 위기를 넘기던 장면에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고, 최무룡 씨가 마지막 장렬히 싸우다가 전사하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을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딸아이는 몸집이 또래들 보다 작고 목말 타기를 좋아해서 많이 태워주었는데, 뒤에 태어난 아들 녀석은 몸집이 큰데 비해 겁이 많아 내 목에 태울라치면 온갖 발버둥으로 거부를 했다. 발버둥치는 아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며 내가 더 놀랐다.
내가 받았던 신기하고 좋았던 경험을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싶었는데, 아들 녀석에겐 제대로 나누어줄 수가 없어서 때론 안타깝다.
아버지의 목말.
단 한 번이었지만 내가 앉아본 가장 편안하고 든든했던 그 자리.
한없이 따뜻한 엄마의 품속 자리와 비견되는 아버지만의 자리였다.
첫댓글
아버지의 목말을 탓던 어린시절이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았으니
그 때는 아버지의 젊었던 모습이었지요.
살아가며 부모님의 사랑이 생각날 때가
가장 순수한 나의 감정일 껍니다.
부모의 사랑 받으며 자랐다는 것은
평생 나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할 것입니다.
받은 사랑은 많았고 생생하게 남았는데, 건네주고 전해주는 일은 쉽지가 않네요.
한주일의 휴가가 끝났고 이제 새 한주가 시작됩니다. 길 위에서 뵙겠습니다.
아버지가 태워주신 목말.
아버지의 어깨 위 그곳은
어떤 두려움도 없이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Top of the world 였을 것입니다.
그러네요. Top of the world...
세상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글을 읽고 생각해 봐도 아버지의 목말을 탄 적이 없는 것 같아
그 따뜻하고 달콤한 추억이 부럽습니다.
더욱이 영화까지 보셨다니 ㅎ
잔잔한 옛 시절의 기억 잘 읽었습니다.
가슴 한 편이 덩달아 아련해 집니다. 건강하세요.
느낌과 영상으로 남은 기억들은 더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육십년이 꿈처럼 지나갔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목말위에서 더 높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셨군요.
저는 새벽 성당에 가는 길에 아버지의 등에 엎혀 다녔던 기억이 납이다.
농부셨던 아버지의 등에서는 바람냄새. 흙냄새가 났었지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버지의 등에 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어머니 등에 업힌 기억은 있는데 아버지께 업혔던 기억은 없네요.
딸이 아버지 등에 업혔던 기억과 느낌을 바탕으로 쓰실 글 기대합니다.
아버지 어깨 앉아 있는 기분이라니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았을 것같아요.
사랑도 대물림이라고 하는데요.
맘자리님도 아버님 닳으셔서 자녀들 사랑이 각별하신 것같아요.
그~쵸^^
각별하진 못합니다. 그냐유보통 아버지지요.
아버지의 목말은 제가 올라본 가장 높은자리였던것 같습니다.
나는 아들들 어릴때 안아주거나 업어준적이 몇번 있다
그런데? 아들들은 그거를 기억 못한다
손녀들 손자도 없어주거나 안아준적이 있는데 그거를 기억 못할거 같아서 안타깝다 우하하하하하
ㅎㅎ 정말 억울하겠습니다.
그래도 그 따뜻하고 든든했던 느낌은 오래 전해질 겁니다.
님의 글을읽으며
제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는것을 보니
유년의 좋은 기억은
그때의 아버지 연배가 훌쩍 지난후에도 저장된채 녹지않는 마음속 영양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든 돌아보면 웃고계실 것 같은 변함없는 활력소이지요.
딸들이 제 아빠의 목마를 탔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딸의 아들이
제 아빠의 목마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세월이 무심히 많이도 흘렀구나~ 느낍니다.
아버지의 목말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자식사랑의 몸짓이죠.
아녜스님댁에는 목말 전승이
성공했네요. ㅎㅎ
자식사랑도 자식이 받아주어야
사랑이 되는데...
ㅎㅎ 저는 넘겨주기가 실패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