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외상값 갚아야 합니다. 거기 반찬 가게.”
종종 이민철 씨가 잘 아는 단골 가게에서 외상을 하고 오는 경우가 있다.
평소 같으면 생활비가 들어오는 날을 기다렸다 갚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민철 씨에게 들어보니 다시 오픈하는 일 없이 폐업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폐업 전에 외상값을 전하러 이민철 씨와 돈을 찾아 반찬 가게에 들렀다.
“계속 했으면 좋겠는데 안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외상값을 갚고 나오는 길, 이민철 씨가 아쉬운지 몇 번을 말한다.
“사장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나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근데 개인 사정이라 어쩔 수 없다네요.”
“여기 반찬 좋아하셨나 봐요.”
“그렇지. 여기 맛있지.”
“뭐가 그렇게 맛있었나요?”
“닭강정, 떡갈비, 야채 계란말이, 도토리묵, 파전… 진짜 맛있는데.”
좋아하는 가게답게 좋아하는 메뉴를 막힘없이 말한다.
이곳은 주로 이민철 씨 혼자 들르시던 곳이라 직원은 이민철 씨가 그런 음식을 좋아하시는지도 몰랐다.
저렇게 줄줄 욀 정도라니, 이민철 씨가 왜 이렇게 아쉬워하나 조금 이해하게 된다.
“이제 갈까요?”
“그래야지.”
잠시 가라앉았던 이민철 씨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직원의 물음에 이민철 씨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오늘은 이민철 씨의 또 다른 단골 반찬 가게의 재오픈 날이기도 하다.
반찬 가게가 위치한 마트가 재개업을 준비하며 한동안 영업하지 않았다.
이민철 씨가 가장 자주 가는 반찬집이라, 영업을 하지 않은 한 달 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집 반찬을 그리워했다.
새로 오픈한 마트답게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지나 반찬 코너를 찾아간다.
이민철 씨 발걸음에 설레임과 기대감이 묻어 있는 듯 보인다. 마치 오래 보지 못한 친구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오랜만에 보네요.”
인사를 건네기 전부터 멀리서 오는 이민철 씨를 알아챈 사장님이 싱긋 웃으신다.
오랜만에 찾은 단골손님을 반가워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찾아준 고마움도 담겨있는 듯하다.
“이거 밥이랑 먹으면 맛있어.”
“그래요?”
이민철 씨 취향을 잘 아는 사장님이라 종종 반찬을 추천해주시는데 오늘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몇 가지를 더 추천해주신다. 이민철 씨는 반찬들을 하나씩 담으며 다른 집에는 이런 게 없다며
사장님께 너스레를 떤다.
“닭강정 하나 건졌네. 미리 해놨었는데 일찍 오지.”
“그러게요.”
“그동안 어디서 반찬 샀어요?”
“여기 근처에 반찬 가게 갔는데 이제 안 한다네요.”
“그래. 요즘 반찬 가게들이 들쑥날쑥해. 이제 여기 계속 와야지.”
“네. 여기 계속 와야죠.”
“이거 세일해.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 네. 이거 하나 해야겠네.”
“이거 국물 흐르니까 한 번 더 싸줄게. 그리고 이거는 서비스.”
“아이고, 고맙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것저것 근황을 나누고 반찬을 산다. 이 정겨운 대화를 다시 듣게 되다니.
가게를 다시 연 것이 새삼 반갑고 고맙다.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이민철 씨도 반찬뿐 아니라
이런 대화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잠시 생각한다.
“갈게요.”
주변이 시끄러워 그런지, 바빠서 그런지 사장님이 못 들으신 것 같다.
바쁘신 듯하니 인사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카트를 몰아 계산대로 향한다.
카트를 몰고 계산대로 향하던 이민철 씨가 진열대를 한 바퀴 돌아 멀찍한 곳에서 다시 반찬 가게를 바라본다.
밀고 있던 카트는 옆으로 밀어두고 한동안 반찬 가게를 본다.
입맛에 맞는 반찬을 다시 살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이 반가워서인지
반찬 가게를 바라보는 이민철 씨 표정이 기쁜 듯 오묘하다.
아마 두 가지 이유 전부겠지 짐작하며 그 풍경을 바라본다.
이민철 씨에게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묘하고 복잡한 표정 속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을 헤아린다.
살다 보면 종종, 아니 흔하게 좋아하던 가게가 폐업하고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는 것을 본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결국 사람이 하는 곳이니, 사람이 사는 곳이니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흔하게 보고 느끼는 순간들일 것이다.
그때마다 아쉬움, 반가움, 그리움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 감정이 드는 곳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나의 동네’라 부를 수 있는 곳이겠지.
시시각각 생동하는 나의 동네를 바라보며 이민철 씨도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겠지.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오래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거창에 처음 왔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나의 동네가 된 이곳에서, 시간을 거슬러 돌아본 감회 속에 떠나온 고향, 그리운 사람, 지금 나의 동네를
분명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많이 파이소. 내 또 올게요.”
인사를 하기에는 조금 먼 거리인 것 같은데 이민철 씨가 사장님께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사장님도 바쁜 와중에 인사하는 이민철 씨를 발견하고 나중에 또 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이민철 씨가 기쁘게 웃으며 계산대로 향한다.
“이민철 씨, 카트는요?”
“카트? 아! 아아아아.”
정신을 차리고 어딘가로 밀어둔 카트를 찾으러 이민철 씨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간다.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박효진
①“계속 했으면 좋겠는데 안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이민철 씨 말에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짐작합니다. 반찬 사고 파는 일에서 자기 일의 주인으로,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사시기 때문이겠지요. ‘반찬’ 그 너머의 무엇을 생각합니다. 이웃과 인정…. ②‘그때마다 아쉬움, 반가움, 그리움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 감정이 드는 곳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나의 동네’라 부를 수 있는 곳이겠지. 시시각각 생동하는 나의 동네를 바라보며 이민철 씨도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겠지.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오래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거창에 처음 왔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나의 동네가 된 이곳에서, 시간을 거슬러 돌아본 감회 속에 떠나온 고향, 그리운 사람, 지금 나의 동네를 분명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겠네요. 그렇네요. 단골 가게의 폐업이라는 작은 현상을 이렇게 깊이 사유할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박효진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겁니다. 고맙습니다. 정진호
폐업하는 가게에 외상값을 갚아야 한다고 직원을 재촉하는 민철 씨. 단골 가게가 다시 오픈해 반가운 인사를 하는 민철 씨 일 년 동안 민철 씨 자취생활 잘 하셨네요. 신아름
참 오묘한 날이네요. 폐업하는 단골 가게와 개업하는 또 다른 단골 가게라…. 외상값 갚고 아쉬움 전하고, 개업 날 반찬 사며 축하 전하고. 이민철 씨에게 이런 가게와 사장님들 계셔서 감사합니다. 월평
이민철, 주거 지원 24-1, 혼자여도
이민철, 주거 지원 24-2, 태어나 처음
첫댓글 외상이 가능한 시대가 아닌데 감사하네요. 정겹습니다.
이민철 씨가 주저하는 순간이나 곰곰이 생각하시는 모습도 때로는 같은 시선으로, 때로는 박효진 선생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배우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