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인가
곽 흥 렬
혹 ‘정의’와 ‘지정’의 차이점에 대해 알고 있으신지 모르겠다. 정의와 지정은 둘 다 ‘A는 B이다’의 형식을 취하는 설명의 한 방식들이다. 이때 전문용어로는 A를 피정의항이라고 하고, B를 정의항이라고 부른다. 정의란 흔히 쓰이는 말이니 여기서 자세한 뜻풀이를 줄이고, 지정은 다소 생소할 듯싶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지정이란 곧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가리켜 정함’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래 놓고 봐도 역시 구분이 쉽지는 않으리라. 간단히 대비해서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면 이해가 빠를 줄 믿는다.
정의와 지정을 구분하는 방법은 대략 이러하다. 피정의항 없이 정의항만으로도 피정의항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정의에 속하고, 피정의항 없이 정의항만으로 피정의항을 이끌어낼 수 없으면 지정에 해당한다. 예컨대, ‘( )은/는 이 지구상의 생명체 가운데 가장 고등한 동물이다.’라고 할 때 괄호 안의 답은 ‘인간’이므로 정의이지만, ‘( )은/는 00학교에서 가장 착한 학생이다.’라고 할 때는 괄호 안의 답을 ‘누구다’ 하고 똑 부러지게 정할 수 없으므로 지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 )은/는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명제의 경우는 정의일까 지정일까. 이 물음에 대해 그 누구라도 일말의 의아심 없이 ‘정의’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틀린 답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내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람의 입장으로 얽어낸 아전인수일 따름이다. 개, 돼지 같은 짐승들이나 매미, 잠자리 따위의 곤충들도, 말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다들 자신들이 그러하다고 여길지 누가 아는가.
참으로 하느님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분은 뭐라고 답을 하실지 자못 궁금해진다. 온갖 극악무도하고 잔인박행하며 반인륜적인 짓을 마구잡이로 해대는 무리를 보고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며 치켜세울까. 제 행실이 이러고도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만물의 영장 운운하면 소가 다 짖을 일이다. 개화기 소설인 『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짐승들과 곤충들도 대놓고 까발리며 비웃고 있지를 않은가. 그런 비웃음이 조금의 과장도 없이 딱 격에 어울려 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작품 속 등장인물인 ‘나’처럼, 인간은 지금 그 생명체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나한테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가’라는 물음을 던져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위표를 지르고 싶다. 물론 진정 존경할 만한 위인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쌀에 뉘처럼 드문 일이고, 이마저 점점 찾아보기가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난 걸 보면, 지난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해도 세상은 날이 갈수록 그 천박성과 추잡함의 도가 꼭짓점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며 성도덕의 문란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생겨났다 하면 러브호텔이요 터졌다 하면 뇌물 스캔들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지 않았거늘, 돈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가치 전도 현상이 광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돈 몇 푼을 위해서 동족 해치는 것을 예사로이 여기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차지하면 그뿐이라는 비뚤어진 의식이 팽배해 있는 시대이다. 돈을 위해서는 부모 형제도, 처자도 나 몰라라 팽개치고, 남의 손에 든 것을 한입에 꿀꺽 삼켜 버리고도 트림 한 번 하지 않으며, 친구도 지인도 네 언제 봤느냐는 듯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배반해 버린다. 실로 목불인견이 극을 이룬 세태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 논리에 대해 정색을 하고서 따져 묻고 싶다. 영장이 어찌해서 영장이더냐. 사전적 풀이에 기댄다면, 영장이란 ‘가장 뛰어나 영묘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영묘한 능력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대체 뭐 그리 변변한 게 있는가. 날개가 달려 있어 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늘을 날 수가 있나, 부레가 붙어 있어 산소통에 의지하지 않고 바닷속을 유영할 수가 있나……, 그 알량한 머리 하나로 애꿎은 생명체들이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구잡이로 살상하고,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무참히 망가뜨리는 것이 고작 그것이더란 말이냐. 인간이 이런 존재인 줄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아마도 영장이란 소리를 입 밖에 내지도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어른이 어른으로 옳은 대접을 받으려면 제대로 어른답게 처신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옳은 대우를 받으려면 제대로 인간답게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애써 만물의 영장임을 내세우려 들질 말고. 만일 절대자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매김해 두었다면, 그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도 동시에 지워 놓았을 것이 아닌가. 그 책임과 의무 속에는 뭇 생명을 아끼고 위하며 보살펴 주라는 엄숙한 가르침도 담겨 있지 않을까.
“모든 생명 사랑하여 이 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이산 혜연 선사의 이 발원문 구절을 염송할 적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는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여 상류사회의 도덕성 문제를 들먹인다. 상류계층이 되기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그저 돈 하나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저절로 상류계급에 진입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거기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도덕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참으로 만물의 영장이라면, 그 영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 문제도 이참에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누구나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존경심은 억지로 강요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마구잡이로 권리만 행사하고 의무는 게을리한다면, 어느 누가 그를 존경하고 따를 것인가.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제국주의며 전체주의 따위를 합리화하는 것만큼이나 온당치 못한 발상이다. 사랑과 봉사, 희생이며 헌신, 이런 아름다운 덕목들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우러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새삼 부끄러움으로 다가드는 요즈음이다.
첫댓글
'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인가?'
라는 곽흥렬님의 글이 나오도록,
인간의 모습이 처절합니다.
이 글을,
요즘, 매일 시간 뉴스에 나오는 그 분이
보아야 할텐데요.
'지도층? 웃기지 마라' 라고들 하는
백성입니다.
곽흥렬님, 오셔서 반갑고
좋은 말씀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콩꽃 선생님, 설 잘 쇠셨습니까.
말씀처럼 오랜 시간 고뇌에 찬 결과로 빚어진 글입니다.
매일 아침 뉴스 시간에 나와서 "지도층, 웃기지 마라"라고 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분인가요?
인간은 과연 만물의 영장인가를 신랄하게 비판하셔서요.
마지막 '사랑과 봉사' '희생과 헌신'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 일 수있다는 희망찬 결론을 봤거든요.
서번트 리더십이라고 있어요.
어쩌면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서로가 융화되어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위를
누릴 수있는 권한은 서번트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요.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 오지 않았나 합니다.
그나마 현대의 민주라는 개념의 허울로 진전된거라고 봅니다.
인간이 만물영장이라면 종말로 치닫고 있는 지구를 구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개인, 국가간의 이기심은 인간의 종말을 벗어날수 있을까? 염려됩니다.
인간은 그냥 지적 존재라고 생각하면 가장 적절합니다.
너무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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