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9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허나 오늘이라는 시간은 여느 날과 똑같나이다.
고난주간을 고행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에 동찹하려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사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여 주님과 진심으로 연합할 수 있는 그 길을 찾게 하소서.
고난 주간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고행을 찾아서 행함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아나이다.
오늘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주님 존재 자체이신 말씀과 하나되어 그 말씀 속에서 주님의 고난을 경험하는 것이오니 뼛속까지 죄인인 나의 이 죄인됨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주의 의로 덮으소서.
그리하여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만 사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뜻을 이루며 그 뜻대로 행하는 영적 하루살이가 되기를 원하오니 나를 구원하오서.
죄의 길로 이제는 갈 수 없습니다.
나의 발은 나를 미혹하는 땅의 지체들이 있는 그 길로 갈 수 없는 거룩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방탕의 쓰나미가 나를 덮친다 할지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나의 손과 발을 끊어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자리 영생의 자리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26:69-75
제목 : 부인과 저주를 거듭했던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 가없는 인자와 자비의 눈길.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이 가룟 유다와 그와 함께 온 대제사장의 아랫사람들 무리에게 잡혀 가야바라고 하는 대제사장에게 끌려갔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간 그 결과를 알기 위하여 그 무리를 따라 가야바의 집까지 따라갔다.
베드로는 가야바의 집 바깥뜰에 있을 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가리키면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자라고 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잠시 후에 다른 여종 하나가 그를 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스스로 맹세하고 부인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 예수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다시 조금 후에 베드로 곁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너도 분명 그와 한 패다. 네 말소리가 이를 증명한다고 하자 베드로는 예수를 저주하면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그 사람을 정말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바로 그 때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곧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을 하였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은 누가복음에서 좀 더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눅 22:60-62)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자 닭이 울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의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다.
베드로의 눈은 자기가 적어도 수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그 자괴감에 빠져 예수님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엄청나게 운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와 눈이 마주친 예수님의 눈은 어떠했을까?
“너 이놈 베드로, 네가 감히 나를 부인하고 저주까지 해?”라고 예수님이 화를 내는 그런 눈이었을까?
아니면 너는 적어도 수제자가 아니냐면서 실망하는 눈이었을까?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죄인을 위하여 오시지 않았는가?
이미 베드로가 그렇게 부인할 것도 아셨고, 그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대로 부인하였다.
물론 그것은 주님 앞에서 큰 죄임에 틀림없지만 그 죄를 지었다고 예수님께서 실망하시거나 분노하실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런 연약한 베드로를 보시면서 한없는 긍휼을 베푸시는 인자와 자비의 눈길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는 가없으시다.
이 세상에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 없는 자도 없을 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부족해서 받을 수 없는 자도 없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하여 사망을 삯으로 받았으므로 그 사망에 종노릇하는 자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자 속으로 다짐과 결단을 했을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부인한다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하면서 다짐 또 다짐하였을 것이나 그는 불과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보기 좋게 넘어지고 말았다.
예수님은 그처럼 연약한 베드로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 오르셨다.
나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결단과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외면하지 않을 거야, 하면서 결단을 하였다.
또한 주님 앞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을 거야, 라는 결단도 수도 없이 하였다.
세상의 정욕에 빠지지 않겠노라는 결단은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런데 나는 이런 결단과 다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나의 연약함은 이를 이겨내거나 승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이런 결단과 다짐이 오히려 나를 더 수렁으로 밀어 넣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담 이후로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연약함을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우리 주님이 그래서 나에게 절실하다.
내가 연약하여 죄를 먹고 마시는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의 가없으며 인자하신 사랑의 눈망울이 머문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이라고 정죄하지 않으신다.
베드로는 그 순간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눈길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였을 것이다.
가룟 유다와 같이 그냥 뉘우침 수준이 아니라 철저히 회개하는 그런 통곡이었다.
그런 자를 주님은 당신의 품에 품어주신다.
나와 베드로를 비교하면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한 죄를 먹고 마셨다.
파고 또 파도 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있는 죄의 본질이요 나의 연약함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이다.
내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오늘도 그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품안에 거하여 연합하고자 한다.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하여 함께 죽고, 주님의 무덤에 연합하여 함께 장사되며, 주님의 새 생명에 연합하여 함께 부활함으로 오늘이 나에게 최고의 날이 될 것을 믿는다.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한다.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기 위해서 주님과 연합해야 하는데 일부러 몸을 해치면서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이 바로 진정한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믿나이다.
성령께서 내 영을 감동시키셔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영으로 느끼게 하시고 그 고통이 바로 나로 인한 주님의 고통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입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 되게 하옵소서.
주님...
주께서는 그 어떤 고통보다도 아버지와의 분리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하셨나이다.
나는 처음부터 고아여서 아버지와의 분리의 고통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오나 주님의 부르짖는 단말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게 하시며 아버지와의 분리의 고통임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우리 주님과 온전히 연합할 수 있도록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