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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이 어떻게 전투했고 어떤 방법으로 서양인들의 공포심을 유발시켰는가는 상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서적은 없다. 단지 훈족과 비슷하고 유일하게 서양을 침략한 몽고의 제베군의 전투사를 보며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징기스칸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정복(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따위 쪼다들 말고) 을 이루었을 때의 그 총 병력이 8만명이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정예군단이었던 케식텐만 10만은 됐을거다)
유럽을 또다시 훈족의 부활로 공포에 떨게 만들고 유럽 최강의 세력이었던 폴란드를 초토화시키고 라이프니쯔에서 연합군 기사 10만명을 몰살시킨 제베군의 총 병력이 2000명이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쪼다같다는 나폴레옹이라면서 그양반이 싸운 전장터 이름은 왜 대는겨?)
사실이었다. 몽고군이 서양에 쳐들어간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맨 처음 몽고의 징기스칸이 가진 목적은 딱 두가지였다. 한가지는 몽고의 통일이었으며 또 한가지는 비참하게 죽은 자기 아버지의 복수였다.
(얼씨구?)
이 푸른 늑대는 이 두가지만을 위하여 전 세계를 헤집고 다니게 된다. 첫번째 목표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 금의 이간질책 덕에 나름대로 애를 먹었지만 두번째 목표에 비해서는 쉬웠다. 하지만 두번째 목표는 상당히 어려웠다. 원수가 도망다니는 길을 쫓아다니며 정복한 곳이 오늘날 우리가 사회과 부도에서 감탄하는 몽고의 영토이다. 이 원수가 처음에 서하로 도망치게 된다. 서하에 침략한 징기스칸이 좋게 말할때 내놓으라 하니까 서하가 싫단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서하가 망했다니 웃긴다. 게다가 흐와리즘 원정이 서하제국 마지막 황제의 사망보다 먼저다!!)
그래서 서하를 멸망시키고 지금까지도 그 땅의 유물이 땅을 몇십 미터나 파내려가야 어쩌다 하나 나올 정도로 초토화시킨다. 그 원수가 그 다음에 도망친 곳이 인도였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은 징기스칸에게 하나의 전령이 도착한다.
(인도? 카라 키타이 밀어버리고 흐와리즘과 접한뒤 바로 흐와리즘의 몽골 사절단 사형이 뒤따르고 1219년에 원정 시작한다. 그때 인도에 무슨 왕조가 있었는지는 알까?)
그 원수가 인도가 아닌 아랍으로 도망쳤단다. 인도는 살았고 아랍은 죽었다 이제. 아랍의 호라즘 왕국으로 쫓아간 징기스칸에게 호라즘 국왕은 웃기지 말란다. 어디서 굴러먹은 개뼉다귀냐는 욕설과 함께 징기스칸의 사신을 죽인다.
(그 원수 이름이나 좀 보자. 게다가 무함마드가 직접 몽골 사절을 죽인게 아냐-그 몽골 사절도 상업적 정치적으로 같이 놀자고 온거다. 원수는 무슨-오트라트의 지사 이날칙에게 살해당한거지. 무함마드가 거부한건 이에 대한 배상이다)
그리고 호라즘 또한 초토화된다. 초토화란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다. 그냥 유목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땅의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이고, 모든 인공적인 것들(건축물, 논, 밭 등)을 전부 갈아(기록에는 벽돌 한장까지 다 갈았다고 되어 있다.) 흙밭으로 만든다. 이것이 초토화이다. 조금은 겁이 나는 말이기도 하다. 징기스칸 군대가 이용한 최대의 무기는 공포(恐怖)였다. 적에게 분노를 주지않고 공포를 주는 것이다. 침략해서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행위는 적에게 공포를 주지않고 분노만 심어준다. 하지만 몽고군 1명당 8만명 꼴의 대학살을 하는 중에도 약탈과 강간이 없었다는 사실은 적에게 사람이 아닌 마귀들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감만 심어줄 뿐 감히 저항할 생각이 들지않는 것이다. 또 한가지 징기스칸 군대의 무기는 민심(民心)이었다. 항복한 성에 진출해서는 일체의 약탈이 없었다. 유목민족인 징기스칸 군대가 정복당한 농경민들의 추수를 돕는다. 다음 차례의 적들이 선택할 길은 두가지 뿐이다. 반항하여 초토화되느냐 항복하여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살 수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다음 차례 적들이 항복하였다.
(사마르칸트는 항복했는데 왜 인구가 1/4로 줄었대?)
아랍 끝 지금의 터키까지 도망친 원수는 끝내 병사한다. 징기스칸은 속이 상해 울어버린다. 그런 징기스칸에게 교황의 친서가 왔다.(그 당시는 십자군 원정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직후였다. 유럽의 제국가들은 무지무지하게 단결이 잘되고 교황의 권의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쿨럭)
'우리 공통의 적 아랍을 함께 무찌릅시다' 라는 내용이었다. 징기스칸은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아랍을 무찌를 이유도 없지만 너네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다시 고국으로 후퇴하던 징기스칸에게 사신이 온다. 러시아의 레지스탕스가 보낸 사신이다.(《대장 불리바》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러시아는 폴란드의 식민지였음) 온김에 우리좀 독립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징기스칸이 OK 한다. 그리고 제베에게 2000명의 군대를 딸려 보낸다.
(얼어죽을, 폴란드가 러시아를 지배해? 대장 불리바는 코사크족 반란 이야기잖아! 왜 크미엘니스키도 나오지? 게다가 제베와 수베테이가 러시아를 친거는 킵차크가 러시아 지원을 요구한뒤 러시아군 8만을 칼카에서 녹여버린뒤 볼가강을 건넌뒤 원정을 끝냈다)
「2000 대 10만」의 라이프니쯔 싸움 폴란드가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독립되었다. 전 유럽이 경악했다. 유럽 최강국 폴란드가 2000명에게 풀밭으로 변하다니... 긴급 소집한 각국의 대표들은 다시 한번 십자군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각국에서 기사 10만명을 소집하였다.(봉건제도를 보면 기사가 영주 다음 계급이다. 기사 10만명이라면 졸(卒)들까지 치면 100만도 훨씬 넘는 대군일 것이다.) 현재의 독일 라이프니쯔에서 기사 10만명 VS 몽고 기병 2000명의 전쟁이 벌어진다. 결과는 기사 10만명의 소리없는 증발.
(오오 알라후 아크바르. 타타르의 멍에라고 들어본적이 있는가? 이반 광제가 킵차크인들을 밀어버릴때까지 빌빌대면서 살던 러시아인인데 독립?? 게다가 동유럽 원정은 1230년대 후반이란 말이다. 라잔이 1238년 2월에 작살나고 수즈달과 블라디미르 역시 2월에, 러시아 모든 도시들의 어머니 키예프는 1240년 12월 6일에 박살. 1241년이 되서야 크라코프를 공략하는데? 게다가 이때 실레지아공 헨리, 독일군, 폴란드군은 대략 3만정도야. 몽골군은 만인대고. 게다가 절대 제베가 아니라고! 100만이 말도안되는 소리인건 말할필요도 없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전쟁이었다. 찍소리 한번 못하고 증발한 기사 10만명 때문에 유럽의 역사는 수치스러운 나머지 라이프니쯔 전쟁을 감추고 숨겼다. 불행중 다행으로 제베군도 러시아에서 눌러 살았지 맨날 비오고 축축한 서유럽은 별 관심이 없었다. 예전의 훈족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2000명이 10만명을 이겼을까? 1대 50의 싸움인데. 아니 졸(卒)까지 치면 훨씬 더했을 텐데. 그 해답은 기사의 갑옷과 국궁에 있다. 몽고군의 세번째 무기는 국궁이었다. 국궁이라니까 우리나라 화랑의 활 같은데 국궁은 화랑만 사용하던 것이 아니고 고구려, 말갈, 몽고 모두 사용한 활이었다. 양궁은 나무로 만든다. 국궁은 사슴뿔로 만든다. 또 양궁은 시위를 실로 단다. 국궁은 시위가 사슴 힘줄이다. 왠만한 사람은 국궁을 당기지도 못한다. 그 사람도 양궁은 당긴다. 딱 양궁과 국궁의 파괴력은 4배 차이가 난다. 이것이 국궁의 비밀이다. 기사의 쇠갑옷은 양궁에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의 두께로 제작된다. 그거보다 무겁게 만들면 걔들이 바보게? 하지만 국궁에 맞으면 끄떡하는 정도가 아니고 관통되어 죽는다.
(그래서 아랍인들이 유럽인 상대하는데 쩔쩔댔구나. 아랍애들 활은 합성궁이 아니래니? 비잔티움이 쓰던 활도 합성궁 종류인데 그래서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겼고? 아나톨리아의 룸셀주크의 술탄 아르슬란은 역시 11세기 유럽 기사들에게 패배한다. 몽골활하고 투르크활하고 다르니? 얼마나?? 게다가 전통 국궁은 물소뿔로 만든다. 사슴뿔로 만든 활은 녹각궁이라고 황소뿔로 만든 향각궁과 같이 물소뿔로 된 흑각궁의 대용품이었다)
라이프니쯔의 기사들은 쇠갑옷을 입고 말들에게 까지도 쇠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몽고 기병들은 무기외엔 쇠붙이가 없는(심지어 안장까지도 없다.) 경기병들이었다. 기동력에서 차이가 나고 또 몽고기병들은 기사(騎射)에 능했다. --- 음. 기사(騎射)란 춘추전국 시대에 연나라가 도입해야 겠다고 한참 싸우고 난리친 대목이다. 말타고 활쏘기인 것이다. 우리나라 무과시험에 말타고 활쏘기를 보았다는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말타기 따로 활쏘기 따로가 아니고 멀티테스킹을 시험보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말위에서 쏜 화살이 과녁에 맞춘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대 뒤떨어진 우리 후세의 생각이고 그때엔 정말로 했다. 이쯤에서 몽고군의 말에 안장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기사(騎射)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오른편의 적을 쏠 수 없다는 것이다.(오른손잡이일 경우에) 이 경우 두가지 방법이 있다. 말 배밑으로 기어들어가 말에 매달린채로 쏘는 방법과 말을 순간적으로 뒤집어 타서 쏘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개인의 취향이지만 안장이 있으면 걸리적거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장없이도 말타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뭣하는데 걸리적거리기만 한 안장을 매다는가?
(안장이 없다는게 등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겠지. 설마.)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도 기사(騎射)가 나온다. 고등학교 국사책 표지에 있다. 몽고 뿐 아니라 우리도 그런거 잘했다는 말이다. --- 몽고군의 전술은 단순했다. 기사 10만명을 가운데에 몰아넣고 2천명이 전속력으로 주위를 돌며 가운데에 활을 쏘아넣는 것이다. 10만명이 증발할 때까지... 섬찟한 면도 없지 않지만 부드러운 전쟁이란 없는 법이니까. 몽고군이 유목민족들 중 특별히 강한 족속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냥 평균적인 유목민족이었을 것이다. 말갈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 아골타는 이렇다할 원수가 없기 때문에 귀찮게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청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발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몽골이 밟은 카라 키타이도 유목민이다.)
첫댓글 이 글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너무 신나게 까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질려버렸습니다.. -_-
저글 쓴사람 졸라 어이없네요 hyhn217님 저글 쓴새끼의 대갈통에 박혀있는 진정한 정복은 대체뭘까요 ㅋㅋㅋ 조낸 어이없습니다.....나폴레옹과 알렉산더가 쪼다라니.....
옛날 역사속의 전쟁사 카페에 이 사람이 'sin'이란 이름으로 이런 글을 올렸다 제가 반박했던 적이 있었죠.
헐...저 인간이 그 훌륭한 카페에 가입을 했었다고요? 진정...리니그차 전투로 멋대로 부르고...게다가 어디서 본건 있어서 디코에서 사람들이 논쟁하던 글을 대충 베껴서 썼구만...그렇게 놀 바엔 책 한권이라도 더 읽어라...
한열사란 카페에도 올라왔던 글...반박글을 올렸던게 생각나는군요.
쓰레기글이네여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10만명이 증발할때까지 2천명이 전속력으로 주위를 돌며 활을 쏘아넣었다. 10만은 졸졸 따라만 다녔나?
아케이드 모드였나보네여 화살 무한대 ㅋㅋ
원본쓴쉑히 누구? 뒤져라뒤져.
토탈워에서 그 병력 뽑으면 천하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