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굴업도는 몇 개의 단어와 함께 기억된다.
20년 전의 굴업도는 방사성핵폐기물 처리장이라는 섬뜩한 낱말을 동반했다.
2006년부터는 CJ라는 대기업이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반대 데모로 인해 무산되었다.
최근 들어 캠핑 매니어 사이에선 백 패커(Back Packer)의 성지로 통한다.
이런 뜨거운 역사를 안고 있는 섬은 인간사에는 무심한 듯 날것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굴업도행 선박은 하루 한 척뿐이기 때문에 굴업도 여행은 최소 1박은 해야 한다.
굴업도는 홀수일에 들어갔다가 짝수일에 나와야 한다.
홀수일엔 진리-문갑도-굴업도로 3번 만에 들어가는 반면,
짝수일엔에는 진리-문갑도-지도-울도-백아도-굴업도 6번 만에 간다.
굴업도는 마치 두 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새다.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굴업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는 섬이다.
문갑도를 출발한 나래호는 약 40분만에 굴업도에 닿았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현아민박 사장님의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트럭은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 민박집 앞에 내려주었다.
굴업도는 큰 섬과 작은 섬 두 개가 모래밭으로 연결되어 있다.
큰 섬에는 큰마을과 작은마을이, 작은 섬에는 목금이마을이 있었다.
30여 년 전쯤 목금이와 작은마을은 폐촌이 되어버리고 이제는 큰마을 하나만 남았다.
굴업도에는 서너 개의 민박집이 있다.
고씨네 민박, 굴업민박, 장할머니민박, 현아민박...
숙박료는 주중과 주말 구분 없이 5만 원, 식사비는 백반 8,000원이다
최근에는 깔끔하고 쾌적한 해바라기펜션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외지에 살던 아들들이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버스까지 운영하는 고급 펜션은 민박집 노인들과 갈등이 많다고 한다.
고씨네 민박집 벽에 '고씨명언'이란 재미있는 글이 씌어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서 재미있게 읽고 간다.
굴업도에는 큰말 마을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해변은 마을 이름을 따서 큰말 해변이라 부른다.
섬 민박집 대부분이 이 마을에 있어 관광객이 찾는 굴업도 해변 1순위이기도 하다.
큰말해변에 나오면 굴업도의 부속 섬인 토끼섬이 보인다
커다란 구멍이 절벽에 형성된 해식와(海蝕窪)라 불리는 해안지형을 볼 수 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두 번 물길이 열리는 날짜에 맞춰야 들어갈 수 있다.
목기미해변은 섬을 연결하는 경사 1~2°로 중앙의 대사빈이다.
굴업도 제1의 해변으로 평탄한 모래벌판이 1km나 펼쳐져 있다.
코끼리바위를 가는 왼쪽에는 호수같이 커다란 원형의 사구가 있다.
목기미해변의 오른쪽에 굴업도의 최고봉(138m) 덕물산이 있다.
덕적도 방향에 있는 산이라 해서 덕물산이다.
등산로가 잘 보이지 않고, 위험하다고 해서 등산은 포기했다.
목기미해변 왼쪽에 30m 정도의 풍성사구(風成砂丘)가 있다.
모래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어 산림지대까지 확장되고 있다.
해안에 인접한 급경사 사면에 모래가 퇴적되는 것을 '산태'라고도 한다.
목기미해변의 끝에 잔뜩 녹슬고 거의 부서져 있는 전봇대가 듬성듬성 박혀있다.
마치 영화에서 봤던 어느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네는 다 사라졌고 몇 개의 전봇대와 콘크리트 벽돌 구조만 남아 있다.
1920년대에는 민어 파시로 명성을 날리면서 수천 명이 살기도 했다고 한다.
목기미해안을 나와 연평산 가는 길 왼편에 굴업도의 명물인 코끼리바위가 있다
코끼리바위는 파도와 소금, 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졌다.
바위는 마치 코끼리 엉덩이와 뒷다리 모양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형상이다.
코끼리 바위는 소금과 시간이 만든 작품이다
생물학자에게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여겨진다.
굴업도는 지리학자에게 살아있는 지리학 교과서로 불린다.
연평산과 덕물산 사이에 붉은 모래 해변이 있다.
붉게 보이는 이유는 주변에 분포하는 붉은색의 용결응회암과 화강반암 때문이다.
1920년대만 해도 매년 8월 1,000척이 넘는 배가 모여드는 민어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2,000여 명이 북적였고, 그들의 두둑한 주머니를 반기는 술집도 함께 흥했다고 한다.
지금의 폐허 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자귀나무 아래
바람맞은 잎들이 모여듭니다
엎드려, 여름날을 생각하네요
저렇게,
바다처럼 하늘은 깊어
해 질 때면 푸르스름한 몸살을 앓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어부의 젊은 아낙이
무슨 악기의 곡조가 되는 등성이
그래서 달뜨면
헤진 치마끈을 풀어
모래톱 가득 출렁이는 고요와 한 몸이 되네요............................................................심응식 <굴업도> 부분
붉은모래해변의 왼쪽에 연평산(128m)이 보인다.
연평도 방향에 있는 산이라 연평산이다.
경사지가 가파른 구간이 있고, 잔돌이 미끄럽다고 해서 올라가지 않았다.
황량한 땅 위에 홀아비꽃대가 무리지어 피었다
홀아비꽃대라는 말은 한 개의 꽃이삭이 촛대같이 홀로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꽃일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모양에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잎을 뚫고 나오는 꽃의 형상이 바짓가랑이로 삐져나온 거시기를 연상시킨다.
`홀아비좆대'라는 재밌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홀아비꽃대'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굴업도는 덕적도에서는 남서쪽으로 13㎞ 떨어져 있다.
땅은 물이 잘 빠지는 세사토(細沙土)라 한때 땅콩 재배가 많았다
벚꽃과 신록 사이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정겨웁다.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두 손을
한가운데에
모으고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을 묵상하는
저 섬은...........................................................................문태준 <섬> 전문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람이 어찌나 센지 끝까지 가지 못하고 내려왔다.
개머리언덕에서 보면 세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선단여가 가까이 보인다.
이곳에는 남매의 서글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은 나가는 배가 뜨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수 없는법, 그냥 하루를 더 묵을 수밖에...
큰말해변의 백사장에서 그네를 타며 시간을 때웠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백사장을 거닐었다.
마을이 손바닥만 해서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멀리 보이는 선단여를 바라보면서 애꿎은 파도를 원망했다.
끼리끼리 모여서 해변카페에서 술병을 까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의 민박집은 대부분 식당과 매점을 겸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날씨가 좋아서 개머리언덕을 다시 찾았다.
사방으로 거침없이 열린 개활지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능선 아래로는 물새들의 서식지와 깎아지른 해안 절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천혜의 식물원인 이곳을 CJ가 골프장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었다
골프장 건설을 막고, 이곳의 환경을 보존하게 돼서 천만다행이다.
소사나무 숲을 지나면 수크령 군락의 초원길에 들어선다.
가을에는 수크령의 물결이 억새 풍경 못지않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소를 기르던 목장이었다
이제는 백패커의 쉼터이자 사슴들의 삶터가 됐다.
방목했던 꽃사슴이 야생화되어 이제는 200마리에 육박한다.
넓은 초원에 평화롭게 노니는 꽃사슴이 진정한 이 섬의 주인인 것 같다.
드넓은 초원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
숲은 바다와 함께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가파른 비탈에 형성돼 있는 소사나무 숲은 사슴들의 보금자리다.
능선을 따라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하면 섬의 끝 부분 낭개머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바람은 피할 수 없는 대신, 탁월한 조망을 누릴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풍경이 죄다 내 것이다.
이곳에서 보는 황홀한 노을과 장엄한 일출은 유명하다.
또한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앗,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구네군다가 위험하다. ㅋ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12시 20분에 출항하는 나래호를 탔다.
좁은 섬에서 이틀 동안 부대끼며 지냈기에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이다.
오늘은 홀수일기에 백아도, 울도, 지도, 문갑도를 거쳐 덕적도로 간다.
굴업도와 백아도 사이에 선단여라는 암초가 있다.
굴업도에서는 손톱 크기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거대한 바위다.
이곳에는 서글픈 남매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빠가 사랑했던 여인은 오래 전에 마귀할멈이 납치한 여동생이었다.
이들이 헤어짐을 거부하자 남매와 마귀할멈에게 번개를 맞게 해 죽게 했다.
그 후 이곳에는 3개의 절벽이 솟아나게 됐다는 것이다.
백아도를 출발한 배는 15분 만에 울도(蔚島)에 닿았다.
덕적도와 오고 갈 때 멀어서 울고 간다는 의미로 '울도'라 했다 한다.
울도에서 약 10분 정도 달리면 지도(池島)에 도착한다.
섬 가운데 연못이 있어서 지도(池島)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지도에서 선회하여 덕적도로 가는 길에 백아도(白牙島)에 들러간다.
백아도는 섬의 모양이 흰 상어의 이빨처럼 생겼다는 의미라고 한다.
중간에 그물이 스크류에 걸리는 사고가 있었지만 잘 수습되었다.
아슬아슬하게 덕적도에서 오후 3시에 출항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