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정지용 서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는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된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유고시집입니다.
모두 31편의 시가 3부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고,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 및 유령(柳玲)의 추모시가 포함되어 있지요.
- 그 중 정지용의 서문은 꽤나 강렬하고 품격이 있습니다,
윤일주가 형 윤동주의 유고 시집을 내기 위해 정지용을 찾아갔을 당시
오고 갔던 질문들과 그 답변들을 가지고 한참을 고심했을
한 시인의 지성적인 고뇌가 한가득이죠.
그래서 윤동주의 시만큼이나 정지용의 서문은 인상적입니다.
혹여 시인 윤동주를 아끼는 분이 계시다면
이 서문을 한번쯤 독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 아, 서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정지용과 윤동주 둘은 생전에 마주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일본 도시샤 대학의 선후배지만 정지용 시인이 15살 위로,
정지용은 1923년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었고,
윤동주는 1942년에 입학했으니까요.
다만 유년시절 윤동주의 책꽂이에는 항상 정지용 시인의 시집이
꽂혀 있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유고 시집을 통해서라도 동경하던 시인이 서문을 적어줬으니
하늘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이 얼마나 설레이고 기뻐했을까 싶네요.
▲ 1948년 출판사 정음사에서 발간한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이자 첫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본에 시인 정지용이 쓴 서문(왼쪽)과 목차
-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정지용 서문 -
서(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 마디 써야만 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病)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까지도 잃었느냐?”
질타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았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 편 되는 유시(遺詩) 이외에 윤동주의 그의 시인됨에 관한 목증(目證)
한 바 재료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피(虎皮)를 감정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는 마침내 호피에 지나지 못하고 말 것이나,
그의 ‘시’로써 그의 ‘시인’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그의 유시(遺詩) 「병원」의 一節
그의 다음 동생 일주 군과 나의 문답, ―
“형님이 살었으면 몇 살인고?”
“설흔한 살입니다.”
“죽기는 스물아홉에요―”
“간도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하여 소지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간도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 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와 같은 세대에서 부텀이었고나!” 나는 감상하였다.
..........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태초의 아침」의 一節
다시 일주 군과 나와의 문답, -
“연전을 마치고 동지사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습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인색하진 않았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져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간」의 一節
노자 오천언(五天言 )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이라는 구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의 一節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故土) 간도에 누워 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만일 윤동주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시가 어떻게 진전하겠느냐는 문제.
그의 친우 김삼불 씨의 추도사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분연 매진할 것이다.
- 1947년 12월 28일 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