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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1월 ☞새출발의 달☜
삼상8:1-22절) 우리도 왕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든지 대통령을 뽑는 선거철이 되면, 온 국민이 *과연 어느 당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지*고심하고, 또 정치인들은 서로 대통령이 되거나 혹은 대통령의 참모가 되어서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일단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그는 국가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군통수권을 가지며, 외국과의 관계에서 나라를 대표하게 됩니다. 그는 또 나라의 모든 요직에 있는 사람들을 거의 다 임명하게 됩니다.(통반장까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대통령이 되면, 임기 동안은 그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결단력 있게 정치해서 나라가 아주 완벽히 잘된다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칭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집에 빠져버리거나, 혹은 정치를 망쳐버리면,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탄핵을 당하거나, 추방되어서 다른 나라로 망명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은 정권을 잡은 자나, 그의 추종자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고, 오직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더욱이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거나, 나라가 망하려고 할 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요즘 우리 청년들은 경제 사정이 어려우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등록금을 납부할 때가 되면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해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같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뛰어난 머리와 훌륭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를 바른길로 이끌어가기만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와 말씀 듣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참 답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입장에서 보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갔을 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주위에는 적대감을 가지고 언제든지 쳐들어올 수 있는 나라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이스라엘 내부에도 아직 항복하지 않고, 붙어 있는 이방 민족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든지 가시나 올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심하고 살려고 하면, 왕을 뽑아서 밖에 있는 적들과 내부에 있는 적들을 제압해서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왕을 뽑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마치 풀밭의 양 떼같이 풀어 놓기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적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공격을 당하기도 해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뽑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이라고 하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이었고,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군대나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적이 쳐들어온 후에야 나팔을 불고, 사람들을 모아서 전쟁해야 하니까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늙었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드디어 사무엘에게 몰려가서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니까 왕을 뽑게 해 달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 21:25)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이 자기 멋대로 행동을 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형편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좌파와 우파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탁월한 지도자는 이것을 통합시켜서 미래를 향하여 나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사람을 지도자로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우리 크리스천이 이런 위기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Ⅰ.이 세상에 특별한 나라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가 얼마나 특별한 나라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시대의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기적의 손으로 건저내시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이 있지만, 특히 그의 오른손을 폈을 때는 엄청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었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오른손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왕이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눈에 보이지 않는 불 말(馬)과 불 병거(兵車)로 지켜주시고, 불 칼(劍)을 가진 천사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겉으로 보면, 조직이 없고, 무질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으므로 항상 적이 쳐들어오고 난 후에야, 나팔을 불어서 허둥지둥 백성을 모아서 전쟁했기 때문에 언제나 한 박자가 늦었고, 불안정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도 쫓아내지 못한 많은 이방민족이 있어서 언제나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시였고, 함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안에도 강성노조 같은 조직이 법(法)을 무시하고, 폭력(暴力)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동성애자 같은 경우에도 아무리 다른 사람이 반대해도 굳이 이상한 그들의 *축제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허락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다스리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이것이 합쳐져서 부흥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성공이나 우상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부흥이 일어날 때도 있었고, 침체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침체하면, 여지없이 다른 민족이 쳐들어왔고, 실컷 고생하고 돈 번 것 다 빼앗긴 후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의 종을 보내어 주셔서 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을 때, 반드시 부흥이 오고, 복이 온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고생을 하고, 압제당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하고, 정치인이 말도 되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여도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믿고 나간다면, 올바르지 않은 많은 정책이 실패하고, 우리가 기도한대로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Ⅱ.사무엘의 두 아들의 실패
이스라엘을 백성들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士師)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워낙 청렴결백(淸廉潔白)했고, 너무나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재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사무엘의 두 아들은 사무엘같이 청렴결백하거나 정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으로 말하면 사회가 상당히 시끄럽게 되었던 것입니다.
8:3절)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의 트라우마(trauma)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비행(非行)이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강탈하고, 성막에서 여인들과 성관계도 갖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도 백성의 본이 되지 못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부흥의 불을 꺼트린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3만 명이 죽고, 언약궤도 빼앗기고, 땅은 초토화(焦土化)되었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사람들의 뇌물(賂物)도 받고, 재판도 돈을 주는 사람과 돈을 주지 않는 사람을 다르게 판결했던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앞으로 사무엘이 죽으면, 이스라엘이 또 홉니와 비느하스 때와 같은 재앙(災殃)을 당하겠구나 생각해서 사무엘을 찾아가서 그의 두 아들의 비행(非行)을 말하고, *왕을 세우게 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8:4-5절)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또 장로들이 그것을 기회로 삼아서 왕을 요구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그 훌륭한 목회를 따라가지 않았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스라엘 어른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부정적인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개 교회에서 중직자의 자녀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부모로부터 교회 어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비감이 더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처음 오는 아이들은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모르고, 오직 교회나 성전에서 기도하는 소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감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까 자꾸 가까이 하게 되고, 나중에는 큰 인물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두 아들이 생각하기에 아버지의 신앙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신앙은 인간미가 없어도 너무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즉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고, 처음부터 잘라버렸습니다.
두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신앙은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아들은 사무엘이 얼마나 자기를 부정하며, 날마다 자기를 죽여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는 원래부터 자기들과는 다른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아들은 인간적인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뇌물(賂物)을 주고받으며, 또 자기들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의 얼굴을 봐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리고 부모가 유명하면, 자녀들은 개인 프라이버시(privacy)가 없어지는데, 그것이 엄청나게 스트레스(stress)가 됩니다. 이들은 남들처럼 행동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무엘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길에 대하여 반발했고,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집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매일 큐티를 하게하고, 또 큐티가 끝난 후에는 설교 테이프를 듣게 하니까 아이가 가출해버리고, 나중에 불량 청소년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아비지가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부모는 늘 주의해야 하고, 아이의 불만이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발심이 생겨서 아무리 사무엘의 아들이라 해도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왕이 없으니까 군대도 없고, 모든 것이 너무 무질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이 언제든지 쳐들어와도 대비가 되어있지 않고, 공격을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군대를 모집하고, 전쟁을 해야 하니까 늘 불안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여유 자금이 있어서 은행에 저축해놓은 것이 있다면, 무슨 큰일이 생기더라도 걱정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축한 것이 하나도 없이 가족 중에 갑자기 입원하거나, 학교 등록할 때가 되어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가족 모두 너무나도 불안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을 이기지 못해서 우울증이 생기고,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20-30대 자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모든 원인이 불안이고, 병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면, 약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Ⅲ.사무엘의 반대
사무엘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제 이스라엘에도 왕이 필요하니까 왕을 세워달라고 했을 때, 그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8:6절)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얼마나 불안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이 없으니까 군대가 없고, 군대가 없으니까 늘 전쟁이 일어날까 불안했습니다. 또 사무엘은 자신의 두 아들이 자기 말도 잘 듣지 않고, 정직하지 않게 사사(士師)의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왕 제도를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큰 것이 한 방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합심기도였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안한 중에 하나님 말씀을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든 적을 다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큰 한 방을 믿었기 때문에 왕을 세워서 이 큰 한 방이 없어지는 것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미스바에 모여서 물을 부으면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큰 것 한 방을 날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력 진압하려고 모였던 블레셋 족속들을 우레와 우박으로 치셔서 승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순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군대도, 힘도, 정치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큰 것이 한 방 있습니다.
우리 각 셀(cell)가족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합심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세상의 정치를 바꾸시며, 전쟁을 막으시며, 적들로 하여금 도망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력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무기력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불방망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적들을 치시고, 정책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요구를 받아들여서 왕을 세우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7절)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세우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의 한 방의 능력을 믿을 때는 왕이 없는 혼란과 고생을 감당할 수 있지만, 믿음이 없을 때는 왕이 없는 것이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운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 왕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 기도하면 에벤에셀 같은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믿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은 그들에게 고생만 되었지, 기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할 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안정되고, 걱정이 사라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안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우리는 불안하면, 안정되는 것을 그렇게 원하게 되지만, 막상 안정되면, 기도도 하지 않고, 육체의 쾌락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겁내지 않고, 슬슬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왕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정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대로 *왕을 뽑아주겠다고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뽑음으로 그들에게 얼마나 불필요한 의무가 많이 생기게 되는지. 똑바로 가르쳐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안정을 택함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나, 청년 중에서 불안하게 생활하는 이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은 왕이시고.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 음 송 1923장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우리는 차라리 좀 불안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의 왕이신 것을 믿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정치를 다 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 매일 새벽과 저녁에 기도할 때. 반드시 ▽ 아래 3가지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求)합시다.
요16:23절)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求)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셀(cell)공동체
1.열방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2.동탄에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금년 설립할 동역자 위해
3.신실하고 충성된 후임자와 일꾼들을 보내주시기 위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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